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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회령시에서 아사자 발생
Korea, Republic o 착한놈 0 516 2010-02-10 16:16:05
출처는 자유북한방송 http://www.fnkradio.com/

[北통신원 “문화일용품 공장 간부 아사.. 강냉이쌀 10kg을 사고 나면 부식물은 꿈도 못 꿔”]

최근 북한당국은 함경북도 회령시와 온성군을 비롯한 일부 국경지역들에 한 달 중 보름치 식량과 노동자들의 한달치 월급을 지불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생활은 궁핍해 회령시 계림동에서 7일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본 방송국의 함경북도 통신원이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회령시 계림동에 위치한 ‘문화일용품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허광준(男. 41)씨가 영양부족으로 인한 결핵으로 7일 새벽 4시경 사망했다고 한다.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있는 허 씨는 어려서부터 두뇌가 총명한 탓에 고등학교 졸업도 안 되는 학력으로 ‘국방대학’에 입학해 가장 우수한 학생 중의 한 사람으로 발탁된 경력이 있다. 그는 북한의 최고 장학금인 ‘김일성 장학금’을 수여받기도 한 유망주였다.

하지만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열악한 식량난으로 신체가 허약해진 그는 끝내 학업을 중단한 후 제대되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회령시로 돌아왔다.

그 당시 허 씨의 아버지는 회령시를 대표하는 명예 교장이었고, 또 계림 고등중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던 교육자였다.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자들에 대한 당국의 우대와 배려가 특별해 부러운 것 없이 살던 이들 가정은 300만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급기야 교육자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상으로 수여받은 TV 및 녹음기, 재단기 등 재산들을 하나둘 시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더 이상 내다 팔 것도 없고, 또 너나없이 하루에 한 끼 벌어먹고 살기 바쁜 때에 인맥을 통한 식량구입에도 한계가 있었다.

국방대학에서 제대된 후 부모님들이 가산을 팔아가며 정성껏 부양한 덕에 그나마 원기를 회복했던 허 씨는 ‘문화일용품 공장’에 기술지도공으로 취직해 공장의 전반적인 생산기술 분야를 책임지면서 근무했다.

그러나 공장의 핵심중추였던 허 씨도 정상적인 생산이 없어 그 어떤 보수나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2003년 또다시 영양부족으로 인한 결핵에 걸리게 되었다.

물론 결핵은 잘 먹기만 하면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하루 죽물 한 끼도 먹기 힘든 북한의 현실에서 주민들이 결핵에 걸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허 씨는 병석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아내에 의존해 하루하루 힘겹게 생활했다. 그렇게 근 5~6년을 거의 식물인간으로 살아왔던 허 씨는 부족한 영양을 미처 섭취 못하고 끝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통신원은 사망한 허 씨와 남은 가족들을 생각해 주변 마을에서 1가구당 통 강냉이 500g씩을 모아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라고 전했다.

통신원은 최근에는 비록 얼마간의 식량과 2,000원 가량의 노임이 노동자들에게 지불되고 있지만, 흰쌀 1kg이 500원, 밀가루1kg이 500원, 통강냉이 1kg이 150원, 강냉이쌀 1kg이 200원에 팔리는 등 시장 물가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강냉이쌀 10kg을 사고 나면 부식물 같은 것은 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국이 배급과 동시에 장마당 장사도 함께 허용한다면 이처럼 굶어죽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턱 없이 부족한 배급만을 주고 시장을 전면 폐쇄함에 따라 주민들의 생활이 악화되고 있다고 당국의 시장봉쇄 처사에 불만을 나타냈다.

통신원은 현재 그나마 옥수수밥이라도 먹고 사는 집이 잘 사는 집이라면서 집집마다 식량이 바닥나 있어 정권에서 배급을 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90년대의 대참사가 도래해 대량탈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윤미 기자 oun050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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