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토론게시판

상세
북 지원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
북인민을위해 0 1749 2012-11-14 11:47:31
김대중씨의 햇볕정책이 북한동토를 녹였다>
남한선호 바람 일으켜 시장경제로의 전환 계기 


(새터민씀)

김대중 씨가 평양에 가 김정일을 만나고 6 ·15공동성명을 발표한지 벌써 5주년이 되어 온다. 내가 한국사회에 입문한 주기와 맞먹어서인지 나에겐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날이기도 하다.
이 날을 맞으며 김대중 씨의 대통령 임기시절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에도 일부에서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김대중 씨의 햇볕정책에 대해 탈북인으로서 나 개인의 견해를 잠시 피력해보고자 한다.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싸고 대한민국 사회가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사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문제는 명확한 선을 못 그은 채, 즉 대북송금을 어떤 차원에서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국내 국민에게 올바로 인식시키지 못한 채 정몽헌의 자살에 부딪쳐야 했다.
그 이후로 대북송금 문제는 한국사회의 중심이슈로 거론될 수 없는 미묘한 성격의 문제로 이전되어 논쟁 테이블 위에서 잠식되어야 하였다.
정몽헌 자살 직전까지 대북송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향을 보면 대북송금을 해야 한다는 쪽(극소수)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최다수)으로 나누어져 왔음을 볼 수 있었다.
양쪽은 자신의 논리로 상대편을 설득시키기에 서로 실패하였다. 대북관계에 대해 거시적 관점을 갖고 있는 몇몇 인사들이 거국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수차 주장하였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 제안을 충분히 납득하기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당해온 공산북한의 한이 너무 뿌리 깊었다.
또한 한국 사회 위정자들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비리에 대한 환멸도 대북송금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것들은 드러나지 않은 내적 원인들이고 외부로 드러난 한국인들의 대북송금을 찬성할 수 없는 이유는 이쪽에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한 돈을 북한당국자들은 핵개발에 이용하여 우리를 향한 무기를 만들게 한다라는 것이었다.
또 북을 떠나온 한 유명인사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북송금이 북한의 반인민적 체제를 연장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 두 번째 큰 이유가 되었다.
북한의 전제정치에 일찍부터 환멸을 느껴 드디어 그곳을 탈출한 탈북자의 한 사람인 나로서는 위의 논리들을 긍정하고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었음을 고백 드린다.
그러나 북한의 중하층 출신 시인으로서 살인적인 기아와 전제정치가 전횡하는 북한 사회에 살며 인본주의 정치를 누구보다 목이 타도록 갈망해온 한 사람인 나는 이 문제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하는 측면이 있었음을 더불어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대북송금이 남북간의 긴장관계를 완화시키는 데 어떠한 효과를 가져왔는가와 대북송금이 과연 북한에서 핵무기 제조에만 쓰여 졌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김대중 씨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고위급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일부의 논의에 대해 공감이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면서도 김대중 씨의 정책에 대해 긍정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근거를 들려고 한다.
김대중 씨의 햇볕정책은 표면적으로는 북한권력자들의 권력유지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정권이 50년 동안 북한인들 속에 주입시켜 온, 동토대처럼 얼어붙었던 북한인의 남한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햇볕정책기간 녹아 버린 데 대한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너나없이 놓쳐왔다.
그 대표적 실례가 북한 사회에 버젓이 배회하는 남한 선호의 선풍적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의 한 일환으로 북한엔 1998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남한 상표를 단 물건들이 2000년 이후로 북한 시장들에 보란 듯이 나돌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숨겨올 수밖에 없었던 북한인들의 남한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햇볕정책이후 잦아진 이산가족 만남을 계기로 돌출된 것이라고 나 개인적으로는 정의가 된다.
북한 정부가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오늘날 북한사회인들의 남한(자유사회) 동경 분위기는 햇볕정책이 전 북한인에게 안겨준 보이지 않는 큰 선물이다.
또 10년에 한번씩이나 진행 될까 말까 하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더는 뉴스거리가 안 될 정도로 잦아졌고 남북의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의 한을 풀게 된 것은 분단역사 반세기만에 남북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러한 성과들이 “돈”이라는 매개물 없이 과연 성사될 수 있었던 것들이었을까? ‘NO’라고 답변이 거침없이 나온다.
물론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퍼주기 정책이 덮어놓고 옳지는 않았다고 해도 북한 지원 정책의 새로운 노정에 통과할 수 밖에 없었던 과도기적 단계가 아니었을 가 싶다.
북한은 한국에서 지출된 대북지원금으로 시장경제로의 탈바꿈을 위한 시도를 한 흔적들을 우리는 보고자하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북한이 새로운 '경제관리조치'후 상점 물가를 올리고 장마당을 없애는 동시에 북한의 전반적 근로자들에게 3개월 분의 월급을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각종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경제자활능력이 없는 북한이 자국내 전 근로자들에게 3개월간이나 지급한 막대한 돈은 어디서 취해낸 것이었을까?
1998년 이후, 북한에서 거의 사라졌던 꽃제비들이 최근 다시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 데 그럼 그 5~6년간 북한이 전반적으로 최악의 기근을 면해온 물질적 토대는 어디에 기반 해 있었을까?
반대로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지시켰다고 해서 기아라는 그 한가지 원인 때문에 권력욕 외에 다른 안목이 없는 김정일이 자기 권좌를 내 놓았을 수 있었을까? 그는 기아를 정권유지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희대의 인물인데 말이다.
김정일이 보기에 자기의 생존과 무관한, 정말 별 것 아닌 국민기아 문제로 수십 년 간 공들여 쟁취한 자기 권좌에 위협을 주는 개혁을 섣불리 시행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문제들이 현실 불가능한 부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김대중의 대북 지원정책은 그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이며 인류애적 의미가 가미된 것이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에 대해 못 마땅해 하는 한국인 전반의 근본적 정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그 점을 이렇게 찾아보았다. 대북송금을 다루는 권력중심부 사람들이 그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사취할 것이라는, 즉 한국국민 일반의 신뢰성을 권력계층부 인간들이 심히 상실당해온 데 있다고,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났다. 대북송금과 관련된 어느 권력가의 운전기사가 자기 상사의 사기 심리를 노려 대북 지원용으로 명명된 몇 억대의 돈을 훔쳐낸 사건을 우리는 신문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이 조금 더 설득력을 얻자면 남북관계의 거시적 관점에서 포용력을 가지고 하되 이를 빌미로 한국 측이 저지르는 비리현상에 대해서는 엄격한 감시와 처벌을 병행했어야 하였다.
남한인들의 대북지원 방법에 대해 몇 가지 더 언급을 하자고 한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 배급소에 갔었는데 한국에서 온 것이 틀림없는 수수마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땐 의아했었다.
도와주려면 온전하게 흰쌀을 보내줄 것이지 어째서 남쪽 사람들은 그쪽에선 짐승사료로나 쓴다는 통수수를 주어서 수고하고도 고맙단 말을 받을 수 없게 구는 것일까하고.
나는 중국에 와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한국 측에서는 입쌀을 보내면 권력자들의 소유로 되기가 십상이므로 일반인들에게 전해지게 하자고 보내는 알곡종류에까지 마음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날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지닐 수 있는 애정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오래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정말이지 그것이 입쌀이었다면 일반주민 배급소까지 그 쌀 포대는 와 닿지 못했을 것이며 보통 평양시민들은 보다 더 심각한 아사위기에 허덕이게 되었을 것이었다.
한국에서 보내온 그 껄끄러운 수수포대 옥수수포대들은 수많은 무명의 평양시민들을 아사위기에서 수차례나 건져내준 것이었다.
북한인들에게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

물론 생돈을 내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북한의 실상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도 북한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가 있다.
집집마다 20~30개씩 쌓아놓고 쓰는 세수 비누와 세탁비누 절반씩만을 덜어내고 매 집집 연필꽂이마다에 빼곡이 꽂혀져 볼펜심이 굳어져갈 정도로 남아도는 필기도구들, 학용품들, 성냥, 라이터들, 타올, 수첩, 공책, 몇 번 입고 수거함에 버리는 의류품들....이런 것들은 북한 일반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절실한 최고의 필수품들이다.
북한 일반인들은 큰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가장 원초적인 생활품들, 식품들, 의류품들은 그들에게 최고의 수요품이다.
물론 북한정부가 허울만 남은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이런 것들을 받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인들의 절절한 입장이 되어 조금만 더 탐구한다면 보낼 방법들은 얼마든지 발견되리라고 나는 믿어마지 않는다.
그 방법은 돈의 회전코드에 대한 관념이 전후무후한 북한인들에게 올바른 경제개념을 심어주는 데도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고 나의 경험으로 보아 단정할 수가 있다.
북한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 남북한만의 문제, 나 아닌 남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20세기에 이런 비인간적 사회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게 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은 북한문제, 중국에서 탄압을 받고 있는 북한 탈북자문제에 국적과 이념,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 나가 팔을 걷고 나설 의무가 있다.
좋아하는 회원 : 0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미리내동무 ip1 2012-11-14 14:49:34
    21세기까지 이어온 한반도 문제에서 남한 국민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부분에 동감합니다. 21세기에 지구에 존재할수 없는 비인간적인 사화를 구성하고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김정은 정권이 있기 때문에 송금문제도 긍정적으로 평할수 없는게 아닐까요?
    북한 이란 나라는 군수품창고에 막대한 전쟁물자(식량,기름,의약풍등)를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국민이 몇백만씩 죽어나가도 그 물품은 항상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나라입니다. 아무리 막대한 지원을 해줘도 국민에게 아주 작은 부분만 돌아가는 실정상 남한으로써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어쨋건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윤대중 ip2 2012-11-14 19:22:15
    윤대중, 또는 제갈대중이라 하죠,
    그 사람이 대북송금이 떳떳하고 합법적이면 몰래 도적질 하여 김정일 주머니에 국민세금을 처넣었을까요?
    첫 시작부터 잘못된 판단과 행위로 하여 핵볕은 비난받는것 입니다.
    또한 생각없는 북한에선 돈은 아무때나 회수하고 바꾸고 마구 찍어낼수 있지요.
    그들이 조금이라도 생각 있으면 10년이 멀다하게 돈을 바꿀까요?
    그럼 매 10년 마다 남한에서 화페교환할 돈을 주었단 말인데,,,,,,,,, 넘 가상한 논리로 맞추자고 하니 참 힘들것 입니다.
    말도 아니되는 궤변을 새터민이란 자가 올렷네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허참 ip3 2012-11-15 05:57:14
    최진이씨 북에서 호의호식하며 평양에서 살면서 북한 김정일정권의 선전선동의 최전방에서 총칼보다 더 무서운 펜을 들고 그 정권을 옹호하던 사람이 한국와서 까지 그와 같은 종자인 종북들의 나팔수 노릇을 한다니 아쉽네요.
    북한의 김정일의 수족들의 동토를 녹였는지 모르겠지만, 김대중의 대북정책때문에 국경이 봉쇄되고 탈북자 북송이 잇달아 일어나서 중국이나 한국의 탈북자들은 북에 돈을 보내주지 못해서
    수만톤의 쌀을 보내줄 때 한쪽에서는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나 김대중정권시기에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가족중 두명이 북한에 아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두 친척(탈북자)이 중국에서 북송되었구요.
    98년 99년도까지는 식량이 없어서 보위원, 안전원들도 장사하고 눈감아 주고 하던것이, 2000년도 6.15.선언 이후 쌀 주면서 2001년부터 보위부, 안전부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장마당 폐쇄하고, 탈북자 잡아들이고 .....근데 쌀을 주면, 다 줘야지 평민들은 그냥 굶어죽는데....
    특권층들만 쌀주고 ... 말하자면 김정일의 손발들이 쌀처먹고 악랄하게 불쌍한 탈북자 잡아들였습니다. 지어는 중국까지 와서 연변지구 중국공안당국자들에게 뇌물까지 주면서 ...그 뇌물 줄 돈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게 바로 햇볕정책이었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참고로 ip3 2012-11-15 05:59:53
    북한에서는 말잘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 살았죠. 북한은 선전선동위주의 나라였으니까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ㅋㅋ ip4 2012-11-15 08:37:55
    수꼴들이나 탈북자들이 아무리 부정하고 비방해도
    남과 북 및 동북아 연관국들과 관계되는 외교정책으로는 햇볕정책 그 이상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게 수꼴들의 아픔이긴 해
    지난 50년 근래 5년처럼 계속해서 남북대립으로 가면 갈수록
    대한민국은 외교적으로 말빨이 안설뿐인데다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쥐기가 힘들다는 게 함정이지
    만약 더 나은 남북정책이 있었다면 새눌당에서 이미 발표했겠지
    그런데 문제는 없다는 말이지 그게 보수의 아픔이자 고뇌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햇볕정책 비스무리한 거 만들고 싶어도 이미 햇볕=악이라 지지층에 주입시켜놔서 엄청 까일 게 뻔하고
    그렇다고 전쟁할 수도 없고 계속 남북대립 정책으로 갈 수도 없고
    dj처럼 뚜렷한 철학 가진 넘도 없고 그럴만한 용기가진 넘도 없고
    그게 현 보수의 아픔인 거지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ㄴㄴㄴ ip3 2012-11-15 10:24:43
    라고 펭귄교도 신도가 말했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ㅋㅋ ip4 2012-11-16 07:22:40
    이건 뭐 진중권 vs 일베충의 토론을 보는 느낌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ㄴㄴㄴ ip3 2012-11-16 07:42:57
    진중권이 교수냐? 때중이 뇌물현 덕분에 박사학위도 없이 실력이 쟁쟁한 박사들 일자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교수도 아니고 뒷문으로 들어온 초빙교수 자리 얻어갖고 맨날 미디어에 나올 때는 교수라는 명함갖고 나오더라. 그러다가 명박이 정권와서 정치편향적 발언만 일삼다 중앙대에서 강의 다 짤리고 ... 시골에 듣보잡 동양대인지 하는데 가서 둥지를 틀었더라....ㅋㅋㅋ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ㅋㅋ ip4 2012-11-17 08:02:32
    수꼴들만 비판했냐 진중권이? 노무현도 비판질 해댔다 진중권은 지 맘에 안들면 모두 비판인 거야.. 그게 바로 자유인 거다 생각달라 비판해댄다고 정권잡자마자 자르게 하는 수꼴들이 개ㅄ들인 거고 그걸 또 맞다고 아우성대는 너같은 것들은 더 ㅄ인 거야 ㅋㅋㅋ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또라이야 ip5 2012-11-19 17:01:06
    니가 생각해도 신기하지 않냐? 중앙대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명문사학인데..거기에 박사학위도 없는 놈이 교수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되냐???
    정부가 잘랐다고 생각하냐??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ㅋㅋ ip4 2012-11-21 06:46:19
    중앙대가 명문사학이냐 니 생각엔? 미치겠네 ㅋㅋㅋㅋ
    박사학위가 있어야만 교수할거란 니 생각의 근거는 뭐냐
    교수모집요강 같은 거 본적없지? 뭘 나불댈려면 일단 가방끈 길이좀 늘리고 주절대라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재간동이 ip6 2012-11-19 16:43:41
    김대중 대북정책때문에 국경이 봉쇄되고 탈북자 북송이 잇따라일어났다니 무슨 소린지 좀체?? 그전엔 국경이 봉쇄가 안되었나요?? 그리고 탈북자 북송이 언제 잇따라 일어났는지?? 중국이나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북에 돈을 보내주지못하였다는 말씀도 대채 무슨근거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북의 아사가 시작될땐 90년대 초반부터였고 95년도엔 극에 달했으며 당시 김영삼 정권이었습니다. 다양한 대북정책을 새터민들이 보시고 다양한 방법중 여러분들 가족이나 친척이 살고있을 북조선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얼까 생각해보라는 의도입니다. 민주당이 했으니 무조건 반대라는 논리면 이명박대통령이 북에 타미플루 지원해주고 비핵 3000정책 역시 퍼주기가 되는 자승자박하는 오류가 되오니 냉정하게 생각해보실 바랍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이봐 ip5 2012-11-19 16:56:56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나 98년도에 중국 나가서...쭈욱 살았는데...99년도까지 북한에 돈도 보내고 그랬는데 2001년도 부터 중국에서 소위 따쏘포라고 탈북자들 대대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단다. 실제로 내 주변에 98~99년도에 탈북한 사람 제일 많았단다.
    2000년도 6.15.선언인지 뭔지 하고 나서 걔네들 보위부애들 중국까지 탈북자 잡으러 왔단다. 그전에는 뇌물만 주면 탈북자들 그냥 모른척하던 애들이...지네들도 쫄쫄 굶으니까....
    근데 개돼중이 달러갖다 바치고, 쌀 가져다 주니까 ...걔네들 살판났지.
    모르면 주둥아리 닥쳐라.
    나도 98년도 99년도 맘대로 북한 들락날락하다가, 2001년도에 시범계에 걸려서 잡혀서 죽다 살았다....썩어질 새끼들이 좃도 모르면서 까불지 말아라.

    새터민이라는 용어 쓰지 말라. 개새끼야.
    타미플루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지원하는것 하고 달러갖다 바친게 똑같다고 생각하냐 돌대가리같은 새끼.
    이명박 다른 것은 몰라도 대북정책은 확실히 잘하고 있단다.
    벌써 김정일이 혈압터져서 디지고....
    뇌물현 개돼중이 달러갖다 바칠 때에 비해서 기우뚱 기우뚱 하잖아.
    달러 쌀 가져다 줘봤자. 북한의 지하경제(장마당)를 말살하고 북한을 개방케 하는 것이 아니라 떠 꼭꼭 닫아매게 한다는 것 왜 모르는지 돌대가리 같은 새끼들...
    그런 대가리 달고 있을 거면...지나가는 강아지랑 대가리 바꿔 달자고 부탁해라.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얼간동이야 ip5 2012-11-19 17:04:36
    니가 북한에서 살아봤냐? 95년도까지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단다.
    97~99년도가 피크였단다. 탈북자들 한번 설문조사해봐라. 95년도 탈북한 사람이 더 많은가 98년도나 99년도 탈북한 사람이 더 많았는가??
    좃도 모르면서 아는것처럼 나불대는 새끼들 주둥아리를 다 인두로 지져버려야 돼!!!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거품 빠진 안팔수 사진
다음글
탈북자를 이용한 권모술수를 배격한다.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곽동기의 망언을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