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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사람에게 맨 붕 당했던 일(2)
Korea, Republic of 이민복 1 597 2017-12-04 11:14:32


사전에 이해를 구하기 위해 설명합니다.

이 글은 편을 가르고 누구를 욕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북정책의 난맥상과 일부 나쁜 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1)부에서 남한대사관에서 탈북자들을 야비하게 내쫓는 이유는

대외적으로 북한당국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명분이며

*이것을 국민이 아닌 통치자끼리 만의 <잔치>라고 표현하지요.

대내적으로는 <귀순용사>라는 가치가 없어지자

정착금을 많이 주면서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정책인 것입니다.

*몇 억대의 정착금은 폭락하여 1994년부터 1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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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정치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이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여독이 있을 만큼 인권개념이 부족한 대북정책인 것입니다.

이는 도무지 통일이 어렵다는 독일의 통일과

그 반대의 한국분단의 지속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서독과 남한의 근본적인 통일정책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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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책 하에서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겪어본 그대로 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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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국 남한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외신기자들과 인터뷰과정,

그중 로제트라는 월 스트리트 여기자의 소개로 알게 된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국)의 첫 등록자로 되어 입국한 것입니다.

처음 국제적으로 문제를 끌고 간다고 엄청 반대했던 남한정부는

차후 이렇게 좋은 방식이상 없다고 인정 되어 정책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납치해간다는 북한의 비방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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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를 떠난 대한항공기는 밤새 날아 1995218일 아침 김포공항에 도착.

꿈에도 그리던 남한 땅에 첫 발을 들여놓은 우리들의 소감은 뭘 가요?!

같이 온 벌목공 출신 탈북인은 일본 같다고 표현(발전되었다는 뜻).

나는 <한 쪽 땅만이라도 참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마침 출근길에 붐비는 차량과 인파, 지금은 지겹게 보이는

광고판들이 그때는 별세계로 보였고 모든 것이 긍지스로웠습니다.

서울차량의 99%가 국산이라는 데 <주체는 남조선>이라고,

왜냐면 평양거리의 승용차 90%가 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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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어느새 대방동의 합동심문소(대성공사)에 도착하여

지하로 들어가 내리자마자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나 <환영합니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하던

신사차림의 기관원들의 인상이 돌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웃는 얼굴에 갑자기 찬물을 끼언는 듯 한 분위기였습니다.

억압적인 반말을 쓰면서 자신들보고는 선생님이라 부르라는 것입니다.

밤새 날아온 피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잠시 휴식도 없이 심문이 시작.

탈북하다 북송되어 체험한 북한정치보위부 감옥의 수법 즉

상대의 기를 죽이고 심문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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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과정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오전 심문은 그런대로 참았는데

오후에는 종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점심시간에 잠시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탈북동료들의

맞은 기색을 보고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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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사람에게서 멘 붕 당했던 일(3)

맞은 탈북인들은 모스크바에서 인연이 깊어진 동료들이었습니다.

국제인권기구인 엠네스티에 기록될 만큼

해외의 탈북자 첫 조직인 <모스크바탈북난민협회>임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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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사오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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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가됨 ip1 2017-12-04 11:31:36
    그때 탈북한 사람들이 엄청 매를 맞았다고 하더군요.
    왜냐 하면 탈북자가 없던 그시기 간첩임무를 받고 왔을것이라고 추측했던것일수도 있죠

    남조선에 온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죠.
    라오스대사관에 들어 온 탈북자들을 라오스경찰에 신고하여 잡아가라고 한것도 한국대사관 놈들입니다.

    그것도 대사관이면 한국영토인데 경찰을 불러들여 잡아가라는 놈들이 제 정신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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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촌놈 ip2 2017-12-04 14:38:43
    과거 고기잡이하다가 납북되어 다시 이남으로 귀환된 어부들도 안기부에서 엄청 두들겨 맞았대지요.
    이들이 이북에 있는 동안 포섭되어 대남 공작원 교육을 받았는지 의심했겠지요.
    다만 일부 어부들은 조사받는 중에 어리버리하다가 진짜 간첩으로 몰려서 죽도록 고생도 하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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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랑인 ip3 2017-12-04 15:16:12
    이민복형님 정책그런글 썼다 나처럼 정신병환자 되지않을가 우려되여 여쭈고싶은맘입니다 탈북자의 마음 탈북자가압니다 형님도못처럼한국에오셧다 저처럼 정신병환자로 살지않을려면 정책 이런글을 쓰지않는게 좋을겁니다 나도 이명박정책에 대해썼다 죽을위기에서 벗어나 겨우면햇지요 난죽지않앗습니다 내가고생한걸생각하면 눈물나는 인생살이 눈앞에보이지도 않는 어머니가 얘기해주는것처럼 들리며 생각을 읽엇답니다 생각의 자유가없으며 살다보니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그이상으로 끓습니다 엄마 해준거 정말 고맙네 정신과병원환자로 오늘까지도 정신과병원약을 먹게해준것만으로도 감사하네 어머니가 자식한테 기꺼이해줫다는게 정신병환자취급해줫으니 고마워서 몸둘바를 모르겟네요 순실이보다 내엄마가 훨낫네 정신병환자로 만들어줫고 덕분에 정신지체가되엿으니 역시 내엄마는 자식한테 실망안시켜 세월호참사 이영숙이아니라 윤정숙이져? 미친에미 한국에와서 당햇나보네 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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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사오성일 ip4 2017-12-06 17:42:45
    이것은 인권유린행위이고 탈북민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남한땅에 와서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는데 얼마나 고생들이 많습니까?

    그러나 고생끝에 락이온다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누가 알겠습니까?

    이렇게 고생하다 보면 밝고 행복한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컴 앞에 앉고 보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아마 어느 기관에서 저에게 탈북민들은 도둑놈들이라고 말 했다가 그 기관이 되게 혼나서 저에게 잘못 했다고 빌던 생각이 납니다.

    나는 그때 탈북자동지회가 이렇게까지 힘있는 단체이고 기관인 줄 몰랐고, 오래간만에 컴퓨터 앞에 다시 앉은 것은 그때 도와 주셨던 많은 분들과 관계일군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남한 사람들의 우리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 즉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 할여구 합니다.

    제가 여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 한사랑요양병원>에 온것은 아마 지난 8월 중순경이라고 생각되고, 한사랑요양병원에 기본요인은 온양온천에 있는 어느한 요양병원에서 약을 ( 정신과 약 )너무 많이 먹다보니 길가에 떨어진 다른 사람의 카드를 주어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경찰 조사도 받았고 그 병원 부장님이 여기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빚을 갑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얼마전에는 검찰 형사조정위원에에 가서 카드 당사자라부터 이달까지만 돈을 (한달에 30만원씩 주기로 함)갚고 그만 두라고 각서까지 써서 저에게 보여주는것이었습니다.

    모든것이 저의 잘못이었고 아무리 약에 취해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생활이 어렵다는 이유로 저지른 절도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으며 지금도 정말 노력하고 있고 술도 끊고 담배도 하루에 많이 피워서 3가치 정도이다.

    앞으로는 이것도 끊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억울한것은 지금 입원해 있는 < 한사랑요양병원 > 에서의 우리 탈북민들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입니다.( 041-556-7781 )

    저는 입원할 때 나는 탈북민이고 여기 남한에는 부모 형제도 어고,보호자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차에서 내릴때만해도 웃어주던 분들이 얼굴색이 변화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담당주치의사의 태도였으며,다른 사람은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면서도 나 한테는 한마디 말도 아니 얼굴도 마주치치 않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들의 태도는 더욱 한심하며, 달ㄴ 사람한테는 웃어주면서도 나한테는 그것도 처음온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은 옆 사람한테 돈을 빌려다가 그것도 완 제품을 사면 비싸서 못사고 그냥 내가 가서 조립하겠다고 해가지고 LED등을 가져다가 조립해서 담당주치의한테 줬더니 그 다음날 부터 낮 색이 싹 바뀌는 것었습니다.

    물론 여기는 자본주의사회이며, 그런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보건법에 따르면 의사는 종교,모든 것을 떠나서 무조건 치료를 해주게 되었으며 환자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일전에는 자다가 새벽3시에 무릎에 통증이 너무 와서 깨어서 간호사보구 무릎에 너무 아파서 그러니진통제를 좀 놔달라고 하몄더니 참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 제가 당뇨합병증으로 말초신경염으로 인한 무름통증이 있다는 것을 병원에서도 알고 있음) 저는 그 간호사한테 내가 여기서 더 통증이 오면 나도 어떻게 할 지 모른다고 말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그래도 참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가 얼마 안 있어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정신과 약을 먹고 또 대학병원에서 따로 정 위급할 때 먺으라고 따로 지워준 약을 먹어도 그날따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짓이었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칼로 다리를 찍었습니다.

    얼마나 찔렀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0곳이나 넘게 꿰멧다고 담당의사가 말하는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더 화가 나는것은 중환자실 간호사실 옆방에서 뻔히 듣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들끼리 모여 앉아 나에대해 차마 입에 옮기기도 싫은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내가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어 먹을것도 사다주고,간식도 사다주고 했드라면 이렇게까지 안했을겁니다.

    물론 돈이 없어 병원비도 제때에 못내고 그런적도 있었으며, 높은 사람들한테 찾아가서 과일이라도 사준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프랭카드에다는 환자가 만족하는 병원이라고 언론, 방송마다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나 같은 탈북민들이 더 이상 나오지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며 우리 탈북민들도 바보가 아니고 다 자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며, 나도 한때는 페기물을 주어다가 LED등을 조립하여 하나센터에 기증 하였으며, 어려운 사람들한 테 도와 주기도 하였습니다.

    가진것이 없고 돈이 없다고 우리 탈북민들이 바보가 아니라는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한사랑요양병원 전화번호입니다.

    TEL:( 041 ) 556-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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