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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진실..
Korea, Republic of 돌통 0 489 2019-07-20 13:17:54

한국전쟁의 진실...

 

저기...  제 친구가 오늘 한국전쟁은 일본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이 만든 전쟁이라던데...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을 하더라고요.!!

 

글쎄...  한국전쟁은 동남아시아 패권을 노리기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할 일본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전쟁이라고 하더라고요.. ㅎㅎ 망상이 심하다 제가

친구에게 그랬죠..

 

내 친구말이...  미국의 의도는 일본을 농업국으로 만들어서 공산화 방패막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하더라고요.. 동양의 스위스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 주장은 말이 안된다.

한국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것은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일본에게는 뭐라그럴까, 어부지리? 그 쯤 되는거라고

 

그 덕에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가서 공업국이 되었다.

 

북한은 소련의 영향권에, 남한은 미국의 영향권에 있었는데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밀고내려오면서 전쟁이 시작된것이란다. 그랬죠..

 

제가 그쪽으로 대학에서 전공을 해서 나름대로 전에 있던 자료를 가지고 정리 해봤습니다.

일단 구소련이 붕괴 되면서 당시 고르바초프가 우리 김영삼 대통령에게 6.25 관련 비밀 자료를 공개 했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확실히 누가 전쟁을 확실히 일으켰다고 써있진 않지만 그 내용을 풀어보고 분석하면 거의 북의 김일성이 스탈린의 허락과 모택동의 동의를 얻었다는 그런내용을 중요시 써져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사람들은 그것조차도 김영삼 정권의 조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그건 아닌것 같고요..   그래서 구소련의 자료 공개로 거의 북한의 남침이 정설화 되있습니다.

더 깊이들어가서..

 

한국 전쟁(韓國戰爭)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된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사이의 전쟁이죠.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에서 전쟁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북조선에서는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고 주장합니다.

북한 즉 북조선에서는 6·25 사변, 조국해방전쟁(북조선), 조선전쟁(일본),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중국)이라고도 명칭하고 불릅니다.

 

배경

 

한반도(韓半島)는 제 2차 세계대전이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북쪽에 소련의, 남쪽에 미국의 신탁통치가 시작되었죠.

이승만(李承晩)과 김일성(金日成)이 1948년 각각 (물론 우리 대한민국이 먼저)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건설함과 동시에 남북 간의 긴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시작 전부터 38도 선에서 남측과 북측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남쪽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등으로 인해 국군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비상경비에 돌입하고 있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몇일 전 비상사태가 해제되어 당시 일부 군인들이 휴가, 외박등으로 외출하였는 상태에서 북쪽으로 부터 침입을 받게 되었다.

 

원인

 

용산 전쟁 기념관에서 전시 중인 러시아어로 된 남침작전 계획서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모두 상대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 있어 한국 전쟁은 적화 통일의 야욕을 가진 북조선 공산군의 침략을 저지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방어전이며, 대한민국 국군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북조선의 인민 무력이었다.

반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북조선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남아있던 주한미군을 남한에 대한 미국의 침략으로 간주, 북조선 인민 무력의 명분상 주적은 미군이었다. 현대 대표적인 시각은 학문,학설적으로 네 가지가 있다.

 

스탈린 주도설

 

한국 전쟁이 김일성이 아니라 스탈린의 의지로 발발했다는 설. 그 이유로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압력을 극동으로 분산, 미일평화조약의 견제, 미국의 위신을 떨어트리고 아시아 지역의 공산화를 촉진하기 위한 무력 시위, 중국공산당의 독자 노선에 대한 견제 등의 이유로 한국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김일성 주도설

 

한국 전쟁은 김일성의 의지로 발발했으며,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지원을 약속 받고 일으킨 남침이라는 설로,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련공산당의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그의 회고록에서 한국 전쟁은 김일성의 계획과 스탈린의 승인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혔으며, 중국에서도 1996년 7월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 전쟁의 기록을 북침에서 남침으로 수정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이랬다 저랬다 함.

 

한미 공모설

 

이승만의 제1공화국의 북진 통일론이 대남 도발을 촉진시켰다는 설. 이승만은 여러 차례 무력 북진 통일을 부르짖었으며, 미국의 군사 원조를 공공연히 요청한 바 있다. 실제로 1950년 부터 남북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시키기 시작했고, 미국이 국군을 강화시키면 이승만이 무력통일을 추구할 것이라고 판단, 북조선이 예방적 조치를 취했다는 주장이다.

 

북침 응전설

 

이승만과 미군의 주도로 한국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설. 대한민국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설이다.

6월 25일 새벽 남한에서 38선 전역에 걸쳐 무력 침공을 감행하였고 최초에 전선 1-2킬로미터 가량 북진에 성공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바로 공격을 중단할 것을 대한민국 정부에 요구했으나 교섭이 결렬되었다.

인민군은 조직적인 반격을 개시해 국군을 38선 밑으로 몰아내고 낙동강까지 진격하였다고 주장하나, 인민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또 준비에 최소한 1달 이상이 걸리는 상륙 작전을 6월 25일 동해안에 감행한 사실은 한국 전쟁이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내란 확전설

 

한국 전쟁은 6월 25일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기간을 포함해야 한다는 설이다. 1950년 이전부터 이미 정치적, 이념적 대립에 따른 국지적 무력 충돌이 계속되었으며 그것이 확대되어 한국 전쟁이 되었다는 시각. 실제로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이미 수많은 국지전과 무력 충돌이 있었으며, 1950년 6월 25일에도 사람들은 기존의 국지전의 연장으로 인식하여 피난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전쟁 기간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작은 전쟁( ~ 1950년 6월 25일) : 2.7 구국투쟁, 야산대 투쟁, 4.3항쟁,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38선 부근에서의 국지적 무력 충돌이 계속됨,

 

제한 전쟁(1950년 6월 25일 ~ 1950년 7월 1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제한적 무력 동원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긴급 점령하여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함)

 

전면 전쟁(1950년 7월 1일 ~ 1950년 10월) :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스미스부대가 참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7월 1일부로 전시국가총동원령을 발함)

 

확대 전쟁(1950년 10월 ~ 1951년 6월) : 인천상륙전쟁의 성공 후 국군 독단으로 38도 선을 넘어 북진 시작, 중국군 참전으로 이어짐.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듬)

 

고착/제한 전쟁(51.6월 ~ 휴전휴전협상과 함께 38도 선 근방에서 점령지 확보를 위한 국지전이 계속됨).

 

이러한 시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북침/남침설, 우발/의도설, 주도/응전설 등의 기존 시각이 모두 요점을 놓친 단편적 시각이라고 비판한다.

 

외국언론에서는 한국전쟁을 이렇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위의 글,자료는 유엔에서 평가한 자료를 올렸습니다.  


이상~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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