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광장

자유게시판

상세
나는 죄인입니다1
Korea, Republic o state 2 678 2011-02-01 02:20:32
철다리 위에서 군인을 떨어뜨려 불구로 만들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새벽
나는 두만강을 건너 북한 땅에 올라서서 고향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철다리가 나오고 30분정도 더 가면 집에 도착한다.

이렇게 한 번씩 두만강을 건너 집에 다녀올 때면 평소에 늘 잊고 지내다가 다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사람이 긴장하면 어깨근육이 심하게 아프다는 것. 그리고 국경경비대를 피하느라 초고조의 긴장감이 흐르는 속에서 두만강가를 보복전진으로 기어갈 땐 나 자신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는 점. 때로는 자신의 숨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무언가 실수하지 않았는지 주변을 둘러보기도 한다. 어깨가 아픈 것은 긴장하면서 어깨를 위로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행히 중국 쪽에서 두만강가에 늦게 나왔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긴장한 시간이 짧았고 덕분에 어깨근육도 덜 아파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사람이 초긴장의 시간 속에 목숨까지 걸어야하는 위험한 상황을 겪고 있는 순간이면 머릿속에 왜 그렇게 생각이 많이 떠오르고 또 산만해지고 회전이 빨라지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앞에 닥친 현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해야할 시간이건만 별의별 상황과 불안감을 상상하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제 10분정도만 뛰어가면 철다리가 나오고 곧 시내에 들어선다.

인적이 없는 여기 두만강가에선 행여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만나면 아주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여기 두만강 국경지역은 야간에 두만강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 중국에 드나드는 ‘강타기’꾼으로 의심 받아 결국엔 고초를 겪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단 한명의 행인도 없어서 그야말로 오늘은 대단한 행운인 것 같다.

이 초긴장의 시간을 수차례 느끼며 다니던 중 오늘은 정말 신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나보다.

난 원래 신을 믿지 않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이런 시간을 보내다보니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 잡듯 신한테 빌어보았다.

이럴 때 내가 부탁이라도 할 수 있고 빌어도 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는 신밖에 없었다.

“하나님 이번에도 무사히 두만강을 건너 집에 다녀오게 해주십시오. 중국의 또래 아이들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거 원망 안 할 테니 무사히 다녀오게만 해주십시오. 다른 거 다 잃어도 못 가져도 좋습니다.”

낮에 중국 연길의 세집에서 출발해 두만강가로 오는 버스에 앉아서 잘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한테 간절히 기도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급히 뛰어 가다보니 벌써 철다리에 올라섰다.

사람이 다니는 다리가 옆에 있지만 거기로 가면 행인들도 많고 행인을 단속하는 군인이나 안전원도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철다리를 이용한다.

예전에는 기차가 자주 다녀서 철다리로 가는 것이 위험할 때가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 힘들다.

어두운 철다리 원목을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밟으려고 온 신경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부지런히 뛰어간다.

한 발자국만 잘못 밟아도 철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

절반이 거의 지났다. 이제 곧 거의 건너갈 무렵이다.

“섯!” 하는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온다.

초긴장 속에 위험을 무릎 쓰고 두만강도 건너와서 이제 시내에 들어가면 다 왔건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앞에서 들린다.

어두운 밤이라 정확하게는 분간이 안 되었지만 분명히 총을 든 군인이 앞에 마주 서있다.

순간 더 다가가지 못하고 놀라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수백 가지 상황과 방법을 상상한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을 치는 것 같은 방법은 쓰지 못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만 하며 주춤하고 있었다.

“이리 가까이 와!”

내가 멈춰 서서 더 가까이 가지 않자 군인이 가까이 오라고 한다. 아마도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했다.

나는 그냥 정상적인 행인으로 둘러대면 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가갔다.

“어디 갔다 오니?”
“집이 어디야?”

군인이 다그쳐 묻는다. 나는 다른 시내에 있는 장마당에서 장을 보고 오느라 늦어서 지금 지름길로 오기 때문에 여기를 지나가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역시 국경경비대의 군인이라 인적이 없는 새벽 시간 두만강가에서 만난 수상한 사람을 가볍게 볼 리가 없다.

더 가까이오라고 한다. 바로 총구 앞까지 다가갔다.

나보다 몇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어린 군인이였지만 말투를 보아 앞쪽(황해도, 평안도)지역 사람 같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내가 사는 함경도 북중국경지역의 사람들은 중국을 통해 외국 문화를 자주 접하고 또 북한에서 가장 혜택이 적은 지역이다 보니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나 나라에 대한 애국심보다는 개인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앞쪽지역 사람들은 나라에서 혜택도 많이 받고 여러 가지 지리적 환경으로 살기 좋은 편이므로 대부분 순수하고 충성심도 높은 편이다. 오죽하면 1994년 김일성이 죽어서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되었을 때 기차를 타고 평양에서 함경도로 이동해 본 사람들이 함경도의 웃고 떠드는 평온한 분위기를 보면서 “여기는 외국이다. 어찌 수령님이 서거하셨는데 이럴 수 있나?”라고 할 정도였다.

이 군인이 기어코 내가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것을 발견하고 체포하려고 하면 돈을 좀 쥐어주고 설득해야할지 고민된다. 그런데 앞쪽 지역 사람인데다 나이도 어려서 협상이 잘 안될 확률이 높다.

어찌해야할지 또 결과가 어찌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중국에서 가져온 돈과 물건 전부를 빼앗고도 체포하는 최악의 경우와 다 뺏고 그냥 풀어주는 경우, 아무것도 안 빼앗고 체포해서 경비대 초소로 끌고 가는 경우, 아니면 중국 돈 몇 백 원만 주고 얘기가 잘돼서 풀어주면 다음에 또 돈을 주겠다고 협상을 잘하는 경우다.

보통 군인이 여러 명인 경우에는 돈을 받고 풀어주면 서로 뒤탈이 생기기 때문에 사전 약속이 되지 않으면 체포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 군인은 혼자인데다 얘기가 잘될 경우 돈을 주면 그냥 풀어줄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정상적인 행인으로 위장하면 통할 것도 같다.

나는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어떤 일로 시장에 갔다가 늦어져서 지금 걸어오는 중이라고 아주 피곤하고 사실인 듯 연기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군인은 내말을 믿는듯하며 듣고 있다가 갑자기 총구로 내가 들고 있는 큰 봉투를 가리키며 풀어헤쳐보라고 한다.

돌발 상황이다.
설마 짐을 풀어보라고 할 줄은 예상 못했다.

봉투 속에는 내가 두만강을 건너올 때 입었던 젖은 팬티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다른 중국물건이나 돈은 국경지역이기에 다들 중국물건만 쓰고 있어서 장사품으로 둘러댈 수 있는데 젖은 팬티는 절대 숨길 수 없다.

사실 두만강을 건너기 전 팬티를 벗을까 생각도 했지만 새벽날씨가 쌀쌀하기도 하고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어도 팬티도 안 입고 알몸으로 강물에 뛰어드는 게 왠지 쑥스러워서 입고 건넜었다.

건너온 후에는 잠시 버릴까 생각했지만 중국에선 별거 아닌 팬티라도 북한에선 귀하니 기왕에 두만강까지 무사히 건너왔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짐 속에 챙겨온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찌하랴.

그 팬티가 졸지에 두만강을 도강한 물증이 되어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다.

나는 생각했다.

돈을 꺼내서 설득할까, 아니면 맞붙어 싸울까?

1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서로 마주하고 있어서 들고 있는 자동보총은 무용지물이고, 불시에 급소를 때리면 한두 번의 공격은 실수로 빗나간다 해도 몇 번 중에 한번은 성공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짐을 풀라고 재촉하는 군인을 쳐다보며 허리를 숙이며 들고 있던 봉투를 철길 침목위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왜 짐을 보려하냐고 따져 물었다.

이 시간에 지나가는 것 자체가 수상하다며 짐을 꼭 확인해야겠다고 재촉하며 욕을 한다.

어떻게든 짐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더 이상 안 될 것 같다.

나는 아주 천천히 허리를 숙여서 짐을 풀면서 생각한다.

강타기 사실을 털어놓고 돈을 주며 구슬릴 것인지, 아니면 선제타격을 해서 쓰러뜨릴지...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잘못한 판단으로 내 목숨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난 이미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산지 몇 년이나 되었기에 북한에선 아주 심각한 죄인이다. 물론 체포되어 감옥에 간다하더라도 몇 년 살다 나오면 되겠지만, 우리 집안이 월남가족이라 원래 남조선에 연고가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중죄를 씌울 터이고 또 요즘은 감옥생활 1년도 못 버티고 대부분이 죽어나간다고 한다. 사회에서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도 먹을 것 없어서 앞집, 옆집, 뒷집 순서대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상에 감옥은 나한테 사형장이나 다름없다.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고등중학교 때 전자계산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루의 날씨를 계산하기 위해서 10여명의 박사가 10년 동안 계산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의 내 머릿속은 거의 그만큼 생각하는 것 같다.

천천히 짐을 풀었다.
빨리 풀어헤치고 다 꺼내놓으라고 총 끝으로 짐을 툭툭 친다.

다른 방법을 찾으려 모질음을 쓰지만 이 군인은 사납게 말하는 태도로 보아 도저히 협상이 안 될 것 같다.

나는 결심했다.

이 군인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그래야 내가 산다고.

물론 이겨서 쓰러뜨릴 자신은 없지만 기회를 봐야한다.

난 전혀 무장안한 20대 초반의 어린 민간인이고 상대는 훈련된 군인이다. 군인 특유의 고압적인 기세로 민간인들을 얕잡아 보는 경향도 많아 방심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목숨을 건 나는 무조건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안 그러면 월남가족의 후손으로 남조선과 연락했을 거라는 죄까지 추가되어 우리집안이 모두 잡혀갈지도 모른다. 나 한명 때문에 온가족이 멸살 당할 수 는 없다. 안 그래도 우리 동네에는 가족 중에 아버지나 일부 형제가 보위부에 잡혀갔다가 정치범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렸을 땐 그냥 먼저 죽었나보다 생각했지만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공민이 되던 날 아버지를 통해서 들었다. 오래전에 보위지도원이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말 한마디 실수 한 걸 가지고 체포해가서 지금 이 마을에 묘소가 없으면서 아버지가 없는 집은 다 정치범으로 잡혀간 거라고, 세상이 무섭다고,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도 전쟁 때 남조선에 갔으니 너도 행실을 특별히 조심해야한다고 당부하신 적 있었다.

나는 군인이 방심할 때가 곧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가까이 근접해서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 짐을 풀어든 채 잘 볼 수 있도록 가까이 가져갔다.

군인은 총구로 짐 속에 호기심을 가지며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다.

이때다.

군인은 이미 방심한 채 나한테로 너무 가까이에 와있었고 손에 든 총구도 짐 속에 들어가 있고 시선 또한 짐 속 물건들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나는 불시에 주먹을 날려 명치를 때림과 동시에 옆으로 확 밀쳐버렸다.

군인은 상황판단도 하기 전에 철다리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아~~~~~”

철다리 아래로 군인이 떨어지면서 소리를 지르다가 한참 뒤 강바닥 자갈위에 “쿵~”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군인이 강바닥에 떨어졌다. 죽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는지 크게 놀랐다.

체포될 위험에선 벗어났지만 현역 군인을 철다리 아래로 떨어뜨렸으니 보통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죽었거나 불구가 될 터인데 한 생명을 그리 했다는 죄책감이 순간 머릿속을 휘감았으나 더 지체할 때가 아니다.

얼른 짐을 챙겨가지고 정신없이 뛰었다.

강타기꾼과 국경경비 군인
서로 살기위해서 협력하거나 상대를 체포해야하는 참으로 불행하고 억울한 관계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군인을 철다리 위에서 떨어뜨려 죽게 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무리 스스로 위안을 찾으려 해도 안 된다.

그때 그 군인이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치지 않고 왜 하필 단속을 하고 짐까지 헤쳐 보려 한 건지 원망도 되고 야속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군인이 무사하기만을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무사히 살아있어 주라고. 언젠가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사죄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찌했건 난 그 당시의 위험을 피해 집에 무사히 들어갔고 그 사건으로 국경경비가 엄청 삼엄해 질 것에 대비해 다음날 바로 두만강을 다시 건너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시는 두만강을 건너가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북한의 고향집에 다녀온 마지막 길이 되고 말았다.


몇 년 후 남한에 와서 어느날 나는 지인의 부탁으로 일을 도와주러 잠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내 고향의 국경지역에서 군복무를 했던 분을 만났다.

무척 반갑게 만나서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부대에서 근무했었다는 말을 듣고 당시 내가 철다리 위에서 군인을 밀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부대에서 이런 사건이 없었느냐고, 당시 그 군인을 밀친 장본인이 바로 나라고, 그때 그 일 때문에 지금껏 죄책감에 가슴 아파했고 그 군인이 어찌됐을지 걱정하며 살았노라고 얘기했다.

마침 그분은 당시 그 부대에서 책임을 맡았었고 그 사건 직후 나를 체포하려고 전 군인들을 비상령으로 출동시켰었다며 깜짝 놀라신다.

그게 바로 너냐고, 널 잡으려고 당시 시내의 모든 강타기꾼들을 추적했었고 국경을 봉쇄하며 그 후 전부대가 몇 달 동안이나 고생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당시의 충격과 원한을 떠올리시며 놀라움과 미연의 천적을 만난 감격(?)에 어쩔 바를 모르신다.

그때 철다리에서 떨어진 군인은 어찌되었냐고 살아있냐고 조심히 물었다.

그 군인은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한쪽 다리뼈만 골절이 되었고 그 후 치료를 잘 마쳤지만 다리를 조금 절게 되어 곧 감정제대를 받아 평안도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내가 죽었을까봐 그동안 죄책감에 가슴 졸이며 아파하고 걱정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너무도 죄송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죄 없는 군인은 결국 다리를 절게 되었고 군복무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또 당시 나를 체포하려고 고생했을 군부대 군인들 모두에게 죄송했다.

그는 군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던 중이였지만 젊은 나이에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되어 몸뚱이가 건강해도 살기 힘든 북한이란 곳에서 평생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분한테 너무 죄송하다고 연거푸 사죄했다. 그 군인한테 하지 못한 대신이라도 더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쓰러뜨려야하는 불행한 운명, 서로가 서로에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누군가는 살기위해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가로막고 체포하기 위해 국경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던 사람들이 3대 세습의 주인공인 김정은의 명령에 의해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살되었다는 언론기사가 났다.

나도 그렇게 총탄에 맞아 쓰러진 이름 모를 두만강가의 시체가 됐을 수도 있고, 내가 밀친 그 군인은 나를 죽이거나 체포한 당사자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나라인 북한사람으로 태어난 업보인가보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남북이 왕래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그를 찾아 용서를 구하고 싶다.

마음속에 큰 돌덩어리처럼 담아 둔 그 날의 짐을 여기에 터놓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으며 그가 내 용서를 받아줄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게 잘살아주길 빈다.
좋아하는 회원 : 2
행복 park5286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비극이다 ip1 2011-02-01 02:50:57
    읽다보니 저 군인은 어떻게 되었나 하고 궁금해요..
    불구로 산다는게 쉬운일 아니자나요. 여기서두 힘든데...
    그거 생각나요.. 육이오날 대면 특집드라마 할때 형제가 북한군인 남한군인 서로가
    어쩔수 없이 총겨누며 싸운거요. 그런 차이였을거 같아요
    같은 민족이지만 어쩔수 없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행복 ip2 2011-02-01 03:03:53
    수년 전 행사때 state님 한테 들었던 얘기지만 이렇게 글로 보니 또 새롭군요. 제목에 1이 붙어 있는데 시리즈 아닌가요? ㅎ 언젠가 만나게돼 용서를 구할 날이 꼭 있으리라 믿습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낭만폭풍 ip3 2011-02-01 05:30:40
    글 잘읽었습니다.
    고생많으셨네요...그리고 그 군인이 살았다니.다행입니다..그러므로 글쓴님도 조금이나마
    마음고생 덜으셨겠구요...곧 설이 다가 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십시요. 새해복많이 받으십시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park5286 ip4 2011-02-01 10:03:14
    고생하셨유. 클 날뻔 하셨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지나가다 ip5 2011-02-01 21:54:18
    State님 정말 고생하셨네요.그래도군인이 살았다니 천만다행입니다.

    이젠 마음에 그림자를 깔끔히 지우시고 통일되는 그날까지 화이팅합시다.

    다음 2편도 기대할께요.^^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최승철씨 실망입니다
다음글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