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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질문과 답변..
Korea, Republic of 돌통 0 414 2019-07-12 07:06:55

변상규 교수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좋은 질문을 해 주신 분이 있어 공개적으로 답변

드립니다. 물론 답변도 제 견해이고 제가 신학공부 10년을 넘게 했지만 성서학만

전공한 것은 아니기에 한계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름의 관점을 갖고 답변을 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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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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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부활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기독교인들의 소망의 근원이며 기적인 ‘부활’을 나도 믿고 싶은 마음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 1: 예수는 무덤에 묻혔는가?

 

로마제국 법정 최고형 십가형에 처해진 범죄자들의 시체는 십자가에 매달아 두거나 새 먹이가 된다거나 공동 묘지에 묻힌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예수의 시체를 처리 하는 방식은 너무 독특합니다. 또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시체는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에게 넘겨졌죠.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사형시키려고 했고 요셉도 그 표를 던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예수의 시체를 고귀하게 장사지낼 수 있도록 했다는 건 너무 말이 안되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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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규 견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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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문제는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어난 일이기에(물론 성경은 마지막 때에 믿는 자와 불신자 모두의 부활을 말씀하지만..) 그게 자연스럽지도 않고(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신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기에) 믿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독 불신자들로부터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4대 의문(어찌 신이 사람이 되시는가? 어찌 처녀가 잉태하는가?

어찌 신이 죽을 수 있는가? 어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가?) 중 하나로 손 꼽힙니다. 그럴 수 있죠. 누가봐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성경은 사람의 검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설쓰듯 기록된 말씀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미 로마의 역사가로 알려진 요세푸스(예수 시대를 살았던 역사가) 전집에서

여러 번에 걸쳐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는 실존인물이고 지혜자(현자)였으며, 여러 위대한

사역을 펼쳤던 인물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최고의 형벌이었으므로 거기서 죽은 자들은 새먹이가 되도록

내버려 둔다거나 공동묘지에 버려지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지 않았으니 이는 빌라도의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재판을 맡은 빌라도는 예수를 만나고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예수가 십자가형 이라는 로마 최고의 처형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예수는 당시 유대교법으로는 십자가형이 아니라 투석형으로 죽었어야 했죠.

성전모독죄와 안식일 부정죄,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라는 등 이러한 언급

자체만으로도 예수는 유대교적 사형을 받기에 충분했으나 제사장들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자기들이 그토록 증오한 원수 나라

로마의 총독에 의해 예수가 죽도록 만든 겁니다.

 

빌라도가 예수의 사형에 머뭇거렸다는 것은 그의 아내가 사형을 말린 말씀에서도

언급됩니다. 그러나,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키며 우리의 왕은 로마왕이지 예수가

아니라는 말에 놀라 빌라도는 그 유명한 손씻기를 합니다.

저 자의 피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의 시신을 공동묘지에 버리지 않고 아리마대 요셉의 청에

의해 시신을 준 것입니다. 예수의 행위가 범죄라고 확신했다면 빌라도가 그 시신

을 유대인에게 줄 리 만무합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에 대한 복음서 저자들의 관점은 그가 유대관원이기는

했지만 예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진 자로 분류하여 말씀합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질문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사형시키려고 했고 요셉도 그 표를 던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만일 동의를 했다면 그건 그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지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선 다른 제사장들이나 종교지도자들처럼 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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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지라" -누가복음 23장 50-5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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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 부활이 모순되어 보임

 

마태복음28:1~3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의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다가와서, 그 돌을 굴려 내고, 돌 위에 앉아있다.

 

마가복음16:1~4

안식일이 지났을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가서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래서 이레의 첫날 새벽, 해가 막 돋은 때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어귀에서 굴려내 주겠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눈을 들어서 보니, 그 돌덩이는 이미 굴러져 있었다.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웬 젊은 한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누가복음 24:1~2,4

이레의 첫날 이른 새벽에,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무덤에서 굴러져 나간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갑자기 그들 앞에 나섰다.

 

위 와 같이 복음서에서 부활에 대한 내용이 일치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서로 조화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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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그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이에 관하여 서중석 교수가 지은 저서 복음서 해석 / 대한기독교서회

를 참조하길 바랍니다. 서중석 교수의 저서들을 소개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A.D 33년 이후 당시는 복음서가 기록되지 않았죠.

예수님이 승천하실 적에 내가 곧 온다고 하셨는데 그 "곧"이 예수님은 언약의 의미

즉 분명히 온다 그러니 종말론적 긴장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세상이 좋다고 세상에 마음 뺏기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곧 주의 재림이

임할 것처럼 살아라는 말씀이죠.

 

그런데 제자들은 그 곧을 시간으로 해석합니다. 금방 오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요한을 제외한 남은 사도가 모두 순교하자 예수에 대해

증언할 사람이 사라지는 위기가 옵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기록이 되는데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는 마가복음으로 대략

A.D 60여년경으로 말을 합니다. 이 시기에 도마복음이나  Q자료 라는 예수의 어록이 있다는

가설도 있지요. 아무튼 마가복음이 기록된 후 마가복음을 근거로 하여 누가복음

과 마태복음이 기록됩니다. 다만 마태나 누가는 자신들이 목회를 하고 있는

공동체(교회)적 상황에 맞게 마가의 기록과 자신들의 예수경험을 담아 복음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마태는 거듭난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기에 다른 복음서에 비해

구약성서 인용이 본문에 많이 등장합니다. 예로 이사야가 일렀으되 와 같이 구약

성서 인용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60여회가 넘는데 그것은 예수라는 분이 유대인

들이 그토록 바란 메시야가 맞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누가는 당시 버림받고 소외당한 계층 및 여인들 이방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기에 그런 소외된 자들의 예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누가복음에 기록(10장)되어 있죠.

그러다보니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이나 기록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나 부활 사건이라는 역사적 팩트는 존재했으나 이를

자신들의 공동체에 맞게 편집한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에 편집이라는 단어가 몹시 부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그런 편집 속에도 하나님의 개입과 계시가 있다고 믿습니다.

예로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기에 왕의 급에 맞는 동방의 박사들이 그 먼거리를

와서 경배합니다. 마태복음에서만 나옵니다.

반면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주님이기에 누가는 예수탄생 시 목동들

(당시 천민이었던 신분)이 와서 경배했다고 기록합니다.

 

즉 사실을 갖고 자신들의 공동체 교회의 상황에 맞게 편집을 한 것입니다.

그런 예들은 너무나 많으니 서중석의 복음서 해석을 정독해 보길 권합니다.

고로 복음서 내에 예수의 기록이 조금씩 다른 것이 예수의 존재나 부활을 부정

할 일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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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 정말 예수가 오백 명 앞에 나타나셨을까? 나타나셨다면, 왜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예수가 오백 명의 군중 앞에 나타났다는 내용은 고린도전서 15장에만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 보면서 왜 바울 외에 다른 누군가가 이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떨칠 수 가 없다.

나는 고린도전서 15장의 신뢰성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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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몇 가지 역사적 진실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 사건으로 두려움을 갖고 흩어진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모여 목숨을 걸고 에수의 증인으로 돌변할 수 있었는가?

 

2.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의 체험을 받은 사건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아무리 한 사람에 대한 충성이 크다고 해도 자신들의 목숨을 집단적으로 버리면

서까지 충성하는 이는 드문데 초대교회는 수도 없이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체험하여 그랬던 것일까? 집단 히스테리로 볼 수도 없다.

그들은 정상적 정신을 갖고 순교했으며 그들의 깊은 친밀함과 섬기는 사랑은

일반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오백명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집단 최면에 걸려 예수를 봤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들 중에는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만 그 부활을 기록했다고 했는데 다시 말하지만 그 당시는

기록의 필요성을 그 누구도 갖지 않았습니다.

곧 온다 라고 승천하신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 누가 기록을 할 마음이 있었

을까요?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당시에 학식있는 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쓰는 일이 요즘처럼 쉬운 시대가 아니었음을 전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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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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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부활에 대해 아무리 의문을 제기해도 기독교는 부활사건으로 시작되었고

부활사건으로 인해 성령이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 실제 마가다락방에서 이루어

지게 되었고 그 불씨가 예루살렘을 비롯 사마리아와 저 로마 및 전세계로까지

전파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처럼 부활이 없으면 우리(그리스도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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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 부활에 대해 알고 싶어요|작성자 변상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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