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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신. 이오시프 스탈린. 독재의 최고봉 (2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337 2019-10-02 17:39:28

그의 생애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어린 시절이 한 사람의 삶에 성격,심리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스탈린은 1878년 12월18일  러시아 제국 그루지야 동부의 고리(Gori) 시의 이란계 제화공 베사리온 주가시빌리와 러시아인 재봉사 케테반 겔라제 슬하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실제로..  1938년 소련에서 출판 된 스탈린 전기는 그의 생애를 1879년 12월 21일로 표기해놓고 있다.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에 따르면 그루지아에 가서 문서를 확인해본 결과 그가 태어난 해는 1878년 12월 18일이 맞다고 한다.


어린시절이 불행했는데 위로 미하일과 기오르기 두 형이 있었는데 모두 태어난지 몇달 안되서 죽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통적인 구두공이었던 스탈린의 아버지는 자신이 하던 구두공일이 잘 되지 않자, 큰 상심에 빠졌고,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과음하기 시작했다.


그덕에 스탈린은 아주 어릴적에는 어느 정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성장하면서 술에 취한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랐다.


일설에 따르면, 어머니 또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설이고, 실제론 스탈린과 어머니 케테반은 모자관계가 각별할 정도로 좋았다.


그의 아버지인 베사리온 주가시빌리는 술주정뱅이에 성질이 매우 거칠어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하도 학대당했던 나머지 스탈린은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벼른 적이 있었고, 자신을 때린 아버지에게 단검을 던졌다.


결국 스탈린은 가출해야 했고 아버지의 화가 풀릴 때까지 이웃집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스탈린 강철권력'의 저자 로버트 서비스는 그 당시 스탈린이 겪은 무차별 폭력이 스탈린의 성격과 인간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는 옆동네 총통의 어릴 적과 유사하다.



스탈린의 아버지는 그러나 머리는 꽤 좋아 그루지야어, 러시아어, 아르메니아어, 터키어에 유창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술주정뱅이가 되기 전에는 인간적 매력도 상당했고, 가정적이였으며 사업도 잘 되어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이 결혼을 시기한 마을 여성들의 악질적인 소문과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설이 있다. 어떤거냐면..스탈린의 친부는 다른 사람이다 카더라~ 류의 소문.


실제 스탈린도 사석에서 사실 자신의 친 아버지는 어린 자신과 어머니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마을 성직자가 아닐까 하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탈린과 그의 아버지 사진을 비교해보면 너무 붕어빵같은 부자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시피 농담일 가능성이 높다.)


이어서~ 악질적인 소문과 돈 대신 술을 내는 그루지야 특유의 관습 탓에 나날이 과음하여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렸다. 나중에는 신발도 제대로 못 만들고, 가정에 폭력을 일삼으며 술친구 중 하나가 길에서 자다 입돌아가 죽어버렸는데도 바뀌는 것 없이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결국 1883년에는 미친 사람으로 불리며 싸움을 일삼는 망나니가 되었다. 이런 아버지를 스탈린은 두려워하며 피했고, 이에 분노한 아버지는 스탈린을 이 잡듯이 패고, 트집 잡으며 사생아라 욕했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는데, 언젠가는 맞아 피투성이가 된 스탈린이.. 어머니를 구하기위해 경찰을 데리고 오거나, 칼을 던져 막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겨우 스탈린이 만 4살 때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그의 아버지 베사리온의 알코올 중독은 더 악화되어 갔다..  이때문에 사망했을때의 사인이 간경화였다. (일설에서는 엄청나게 취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다가 화난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 죽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스탈린의 아버지 베사리온 주가시빌리는 나중에는 벨트를 팔아 술을 사먹는 지경으로 전락해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것이..  그루지야가 속한 캅카스 지역에서는 벨트를 판다는 것은 인생 막장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스탈린은 이곳 저곳 떠돌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엎친데 덥칠격으로  이즘에 스탈린은 마차에 치여 왼팔을 다쳤고, 평생 왼팔이 불편한 장애로 남는다.


1884년 스탈린의 아버지인 베사리온은 스탈린을 학교에 보내야한다는 아내 케테반의 주장을 무시하고, 제화 기술을 가르쳤으나 이로인해 스탈린은 천연두에 걸려 얼굴에 곰보가 생긴다.


이 얼굴에 생긴 곰보흉터는 그의 삶에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 생각된다.  베사리온은 스탈린이 낫자마자 바로 집을 나가버리고는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았다. 이때문에 케테반은 재봉사일을 하며 여러 지인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스탈린을 키웠다.


이후 케테반은 스탈린을 주교로 만들기 위해 신학교에 보내려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베사리온에 의해 스탈린이 구두 공장으로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베사리온은 집을 나가 떠돌다가 구두 공장에 취직했는데 아들도 같이 취직시켜 돈을 벌게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신학교와 여러 고위 관료들이 도와줘 스탈린은 신학교에 갈 수 있었다. 이렇게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나머지 스탈린은 평생 아버지를 증오했고 훗날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의 무덤을 갈아 엎어버렸다.


어머니 '케테반 겔라제(??????? ??????)'는 폭력적인 남편과는 반대로 매우 신실하고 자식에게 헌신적이며 따뜻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스탈린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좋았다. 특히 나중에 서기장이 된 스탈린은 어머니를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게 하고 경호원들까지 붙여줄정도로 특별대우를 해주었다.


어머니인 케테반은 어린 스탈린에게 초등교육을 받게하고, 신학교로 진학시켰다. 시작은 매우 좋았다.


그 시기 이오시프 스탈린의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당시 스탈린은 자신이 리더로서 애들을 이끌고 싶어 했고, 카리스마를 보여 12살에 18살 상급생을 부하로 거느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을 끌어내 살인 협박도 할 수 있었다.


당시 스탈린의 성적..


성경: 5점.

러시아 문학: 5점

역사: 5점

수학: 5점

그루지야어: 5점

라틴어: -

그리스어: 4점

교회 슬라브어: 5

그루지야- 이메레티 노래: 5

이 성적표가 공개 보관되어 있다.  점수 5점이 만점 이다.


이후 스탈린은 다윈의 책 등을 접하며 점차 무신론, 반정부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고리 신학교가 파업으로 폐쇄되자 힘들게 트빌리시 신학교로 전학갔으나 억압적이며 그루지야 문화 대신 러시아 문화를 강요하고, 차르에게 복종하라는 학교에 반항해 혁명과 그루지야 독립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러면서 걸핏하면 학교에 안나오는 등 학업에 소홀해지자 장학금이 끊어졌고, 결국 스탈린은 마지막 학년에 학교를 자퇴한다.


기록상으로는 수업료 미지불로인한 제적으로 기록되어있으나 시잭 몬티피오리. 로버트 서비스 등 학자에의해 부정된다.


실제 스탈린은 장학금 480루블 안 돌려줘도 되나 제발 돌아와만 달라는 학교의 수차례에 걸친 요청을거부하고, 덤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까지 털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스탈린은 시인으로도 활동했는데 교외 활동을 금지한 교장에게 들키지 않도록 소셀로란 필명을 사용해서 1895~6년 사이 6편의 시를 발표했다.


시의 주 내용은 그루지야 애국심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중 데뷔작인 <달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베리아라는 잡지의 지면으로 실린다.

시는 이랬다..


<달에게 보내는 편지>


지상의 비밀스런 먹구름 위를
예전처럼 거침없이 부유하라.
그대의 은빛 광채로
짙은 안개의 어두움을 흩날려라.



잠에 취해 몽롱한 대지에
보드라운 미소로 고개를 기울여
캅카스 최고봉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라.
그대를 향해 높이 솟은 얼음 봉우리에게.



그러나 언젠가 박해당해 유골이 된 이도
시인들이 잠든 그 신성한 언덕에 올라
희망의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아라.



어두운 하늘에서 빛나라.
창백한 빛으로 뛰놀아라.
예전처럼 한결같은 빛으로
나의 조국을 비추어라.



나는 그대에게 가슴을 열고
마주 향해 손을 내밀고
또 다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밝은 그대를 보겠노라.




또 다른 시 <아침>은 당시 그루지야 문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문어체로 쓰여졌다.


<아침>


연분홍빛 꽃봉오리가 피더니
온통 푸른 빛 도는 보랏빛이네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계곡의 백합 풀 위에 누웠네



종달새 짙푸른 하늘에서 노래하며
구름보다 더 높이 날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이팅게일
숲 속에서 아이들에게 노래 불러주었네



꽃이여, 아 나의 그루지야여!
평화가 내 조국에 넘치게 하라!
친구들이여 노력해
빛내라, 조국을!




이아코브 고게바슈빌리(????? ???????????, 1840-1912)라는  사람은 그루지야의 유명 교육자 이다.


이 사람을 잠시 살펴보면, 그루지야에서 문맹퇴치운동을 이끈 민족주의 성향의 운동가로 아동문학가로도 유명하다.

소련 시절에도 일부 저작물이 재간행 되기도 하였으며 1940년 조지아 최고 예술인과 유명인들이 묻히는 마마다비드 교회의 묘지로 이장되었다.


이아코브 고게바슈빌리는 그가 집필한 교과서에 스탈린의 이 시를 넣을 정도였다. 그외에도 그루지야 귀족들의 선집에까지 시가 실리는 등 당대 스탈린은 그루지야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이상... ~~  다음편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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