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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독재 괴물 인민공화국 제24편.북한건국과정.역사
Korea, Republic of 돌통 0 255 2019-11-12 12:56:46
서울의 좌파 끌어들여라



◎박헌영­김일성 비밀회동:2/박­김 밀담 열흘쯤 지나 여운형 평양에/소 영사관 통해 정보입수/홍명희등과도 접촉키로



박헌영의 3차 평양방문 분위기는 확실히 1,2차때와는 사뭇 달랐다. 2차때와 같은 영접장소에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긴장이 전혀 없었다. 소 군정과 김일성의 대우가 우선 극진했다.



박헌영 스스로도 도착하자마자 김일성과 당시의 현안 전반을 논의했고 소 군정지도자들과도 회동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차방북당시 방청석에 마련된 자리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박헌영과는 달랐다.



김일성 진영의 이같은 태도 돌변은 「당신은 이제 당과 행정권을 장악,북한정권의 지도자로 굳혀졌으니 박헌영과 불편한 관계를 노출하지 말고 성숙되게 행동하라」는 소 군정 지도부의 충고도 있었던 때문이다.




전노동당고위간부 서용규씨의 증언이다.



『박헌영은 도착직후 조직위사무실에서 김일성과 오후내내 밀담을 나눴습니다. 저녁에는 소련군사령부 사람들을 만났고 저녁식사도 주요 지도자들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함께 했습니다. 소 군정의 로마넨코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레베데프는 미­소 공동위 때문에 스티코프와 함께 서울에 가서 없었습니다.



박헌영은 이번에도 김일성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4월4일 박헌영은 김일성을 만났고 소련군사령부에도 갔으며 조직위간부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조직위간부들과 논의한 현안들은 주로 임시정부 수립문제와 이남에서의 반탁운동에 대한 대책이었습니다. 이날 오후에는 연안파가 중심이 돼 결성한 조선신민당 간부들과도 만났습니다. 5일 조직위집행위원회 참석 및 김일성과의 회담,6일 역시 김일성과 회동 및 조직위원회내의 대남연락실 사람 면담,허가이·김열등 소련파 면담으로 일정을 채웠습니다.』


박헌영의 일정가운데 조직위집행위원회 회의에서는 임시정부수립문제가 집중토론됐고 잇따른 김일성,­박헌영 회동에서는 중요한 정치현안이 폭넓고 진지하게 논의됐다.


서씨는 당시의 김,­박 밀담에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 실려있다고 강조한다.


『당시 조직위지도자들은 미국이 이남의 인민당을 분열시켜 여운형의 정치적 입지를 좁게 하기 위해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을 시켜 사회민주당을 만들도록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사회민주당창당은 미국의 공작」이라고 말하자 박헌영도 동감을 표시했고 둘은 이 사실을 폭로해 여운형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박헌영은 또 김일성이 「임시정부수립과 관련,여운형·백남운·김원봉·홍명희·김창숙·장건상·김성숙등 좌파인사도 만날 필요가 있다」고 한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김일성은 서울의 좌익진영 움직임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전 소25군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은 『서울주재 소련 영사관에서 보낸 정보보고를 사령부에서 재분석해 이를 김일성 진영에 협력해줬다』고 회고했다.


서씨는 레베데프의 회고와는 달리 이 당시 김일성이 서울의 좌익진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김일성­박헌영의 2차회동후에 조직위원회에 설치한 대남연락실·연구실이 가동됐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좌파인사 접촉문제는 여운형 초청으로 발전했다.



계속되는 서씨의 증언.


『박헌영이 4월6일 서울로 돌아간지 열흘남짓만에 여운형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 것은 이 밀담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여운형이 평양을 방문하는데는 곡절이 있었지요. 초청합의는 해놓고 박헌영이 일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김일성이 직접 여운형에게 사람을 보내 평양으로 오도록 주선했습니다.


하여간 5,6일의 김일성­박헌영의 밀담에서는 좌파계인사들과 접촉을 갖는게 필요하다는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고 합니다.』(여운형­김일성 비밀회동은 나중에 상세히 다룬다)


김­,박회동에서는 또 서울정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있었다.



서씨의 증언이다.



『박헌영이 조직위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울정세분석이 있었죠. 당시 서울에서는 이승만·한민당·임정계가 비상국민회의를 조직했다가 미군정의 자문기구로 되자 반탁운동에 앞장서온 임정계가 4월쯤에는 여기에서 떨어져나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집중분석이 있었습니다.


또 김규식 선생처럼 삼상회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철저한 반공입장에 서있는 인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두루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김일성이 이처럼 박헌영과 현안을 자유스럽고 폭넓게 논의할 수 있었던 당시 평양의 정치정세는 김일성의 활동에 편리하게끔 정리돼 있었다.


박헌영과 만나기 바로 전날 김일성은 가장 부담스럽던 조만식 문제에 대해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서씨의 증언.



『김일성은 46년 4월2일 최용건·이주연·김책 등을 대동하고 고려호텔에 연금돼있는 조만식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김일성은 조만식 선생에게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임시정부수립에 관한 3호결정을 마련해서 발표했다」고 전하고 「마음을 돌려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조만식선생은 「후견이든 신탁이든 임시정부라면 결국 완전 자주독립정부가 아니라는 얘기인데 아무 관심이 없으니 당신들이나 해라. 36년의 식민지 생활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거죠. 김일성은 결국 이때를 계기로 조만식 선생과의 타협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박헌영은 그해 3월에 창당된 신민당부주석 한빈도 만났다. 그렇지만 이 자리는 박헌영에게 그다지 유쾌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서용규씨는 전한다.


『박헌영의 3차방북 당시는 한빈이 서울에 신민당특별당부를 만들기 위해 이남을 한창 오갈때 였습니다. 한빈이 서울에 들렀을때 박헌영을 만나려고 했지만 박이 바쁘다고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문제로 마음상해 있던 한빈은 4일 오후 박헌영을 만난 자리에서 섭섭함을 털어놓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최창익·한빈,신민당 조직부장 김민상이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빈은 성격이 조금 괴팍스러웠고,최창익은 자부심이 너무 강했고,김민상 역시 성깔이 있는 편이었지요.


이들은 박헌영에게 가시돋친 언사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니까 박헌영도 마음이 상해 얘기가 좋게 안됐죠. 결국 서로 기분이 안좋은 상태에서 자리를 떴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날 조직위 집행위원회 회의가 끝난뒤 김일성이 나서 「서울에 신민당 특별당부를 만드는데 있어 조선공산당측에서 사람을 보내 지원한다」는 합의를 유도시켜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박헌영이 신민당 간부들을 만나게 된 것은 「신민당간부들이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니 한번 만나보는게 어떻겠느냐」는 김일성의 권유때문이었답니다.』


서씨는 박헌영과 신민당간부들의 감정대립에 대해 재미있는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사실 박헌영이 두번째 월북했을 때도 최창익·한빈 등과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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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운동경력을 놓고 논쟁이 붙었던 겁니다. 일제하의 1∼3차 공산당 및 노동운동을 놓고 서로 정통성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박헌영이 최창익 등이 참가해 있던 ML당이 별게 아니었다는 식으로 말했던 모양입니다(ML당은 1926년 김철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3차 공산당).

최창익은 이론가로 정치적 식견이 있고 논리가 정연할 뿐아니라 입심도 센 편이었습니다. 최창익은 박헌영에게 「당신이 총비서라고 해봐야 예전에 공청위원장이나 하다가 경성콤그룹을 만든 덕에 총비서가 되었지 별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는 겁니다.』



  이상.  끝.  제 2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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