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편에 이어서~~
어쨌든 이번 출국의 경우는 망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목적지인 일본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으로 망명하기가 쉬운 곳이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명명에 실패하고 되돌아가게 될 경우가 큰일이었다. 나는 이번 출국에서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4월쯤에 있을 인도 방문 때 탈출을 결행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될 경우, 아내가 내 계획을 알고 있으면 비밀유지의 어려움이 배로 늘어날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는 내 진심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아무리 나를 이해하고 민족적 대의를 따라 준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50년에 걸쳐 함께 이루어놓은 소중한 세계와 그 성취가 있었다. 그것들이 일시에 부서지고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일 것이다. 그 고통은 내 망명이 이루어지기 전에 아내를 먼저 무너뜨릴 우려마저 있었다. “다녀오리다. 2월 12일쯤은 돌아오게 될 거요” 결국 나는 그 짤막한 한마디로 아내와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꽃다운 시절 아득히 먼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나, 믿음과 사랑으로 반백년을 함께 보냈다. 그런 아내에게 어쩌면 이 세상에서 다시는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작별을 하면서도 그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마음속으로 비통하기 그지없었으나, 나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아내에게 이번 망명의 암시로 느껴질 만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집 뒤켠의 채소밭을 손보면서 민족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다가와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뭔가 집히는 게 있는지, 나를 바로 쳐다보지 않은 채 토마토 줄기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내 고민을 옮기기 싫어서 짧게 부인했다. 그러자 아내는 무슨 까닭에선지 갑자기 말투를 러시아 말로 바꾸었다.
“우리야 지금까지 잘 살았지요. 그러니 당장 죽는다고 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어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딸려 있나요? 이제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참아야 해요” 대강 그런 뜻의 말이었다. 그때 아내가 내 마음속을 다 읽고서 그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의표를 찌르는 데가 있어, 나는 얼떨결에 마음의 일단을 내비치고 말았다.
“개인의 생명보다는 가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고, 가족의 생명보다는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민족의 생명보다는 인류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 역시 러시아 말로 그렇게 읊조리듯 말을 받았는데, 나는 그때 고리끼의 「매의 노래」(1895년작으로 일종의 산문시)에 나오는 매와 구렁이의 대화, 그리고 매의 장렬한 최후가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푸른 하늘을 보았지만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노라’고 그때 나는 그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려, 아내가 듣지 못했으려니 하고 그냥 넘겼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이상... 0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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