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비밀)문서등으로 밝혀지는 6.25의 진정한 진실.07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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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에는 단교가 있다고 한다. 6.25때 폭파되어 단절된 이 다리입구에 압록강을 건너는 중공군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 동상에 모택동의 아들인 모인영이도 동상에 세워졌다고 한다. - 스탈린은 미,중간 전쟁을 일으켜 국력이 소진된 중국으로부터 만주땅을 취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소련의 대중국 관계와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의 전략적 의도] 1949년 기간 중 상기와 같은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한국 방위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면 1950년 1월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6.25전쟁 개전에 대한 상기 주장의 大前提이다. 그러나 6.25전쟁에 대한 스탈린의 전략적 의도를 앞 章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국제환경의 변화와 애치슨선언을 연결하여 파악하려는 것은 소련의 대중국관계에 대하여는 내색을 하지 않고 국제환경 변화론만을 언급한 스탈린의 말을 고지식하게 믿고 그의 眞意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章에서는 중국 공산당 창당 후 우호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소련의 대중국 태도와 스탈린이 중국공산 혁명 달성 후 중국을 한국전쟁 개시 결정에 개입시키고 개전 후부터 참전을 필사적으로 유도하고 휴전협상 종료시까지 전쟁을 장기화하도록 중국측에 요청해 온 태도들을 차례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혁명에 대한 소련의 방해 1921년 창당이후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과 굴곡이 많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모택동 자신이 1956년 3월 31일 북경주재 소련대사 유딘(Pavel F. Yudin)에게 토로한 바와 같이 스탈린은 1926년 중국국민당을 혁명주력세력으로 평가하고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산하에 들어가 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을 지시하는 등 중국문제에 대한 로선 정립에 많은 오류를 범했다.
1920년대 중국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부로서 레닌(V. I. Lenin) 死後 코민테른의 지도자인 스탈린의 지령을 충실히 이행하였고 1930년대 장정기간을 제외하고는 모택동은 코민테른과 소련공산당에 당의 중요사항을 일일보고를 하였으며 1956년 중소분쟁이 대외적으로 공개되기 전까지는 소련과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공개토론을 회피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은 끊임없는 의심과 우려를 하면서 모택동을 낮게 평가하였다. 스탈린은 “모택동은 중국의 푸가쵸프(러시아 농민혁명 지도자)와 같은 농민지도자이다. 그는 자신이 맑스의 자본론을 읽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할 정도로 맑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몰로토프에게 말할 정도로 모택동을 형편없게 평가하였다.
또한 스탈린은 모택동과 적대관계에 있는 蔣介石주도 국민당 군대에 對日 抗戰 支援名目으로1937년부터 1939년 까지 3년동안 3억불의 차관, 군사고문관 500명 및 약 6만톤에 이르는 군수물자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상.. 08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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