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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6.25의 진실..
Korea, Republic of 돌통 0 72 2020-01-27 20:27:52

지금 이 시각에도 국가와 국가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 혹은 국가 내 같은 민족 사이에서도 종교와 사상, 이권의 문제로 무수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이란 둘 혹은 그 이상의 서로 상이한 속성의 공동체가 서로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인데, 공동체 간 여러 방식의 충돌 중에서 가장 극단적이면서 최후의 방편으로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그렇다 보니 전쟁은 인류가 쌓아온 도덕적 관념이나 인류애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으며, 극도로 잔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상대를 이기기 위한 최선의 수를 선택합니다. 제네바 협정*으로 각 국가들이 인도주의적 전쟁을 하기로 협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그건 18세기 정정당당한 전쟁의 명분으로 서로 일렬로 일어선채 일제사격을 하던 시대에나 통용될 이야기지, 자신과 민족의 명운이 달린 전쟁상황에서는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가 수없이 일어납니다.

 

제네바 협정 : 1864년부터 194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4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국가간 협약으로, 전쟁에서의 상대 국가의 군인 및 부상자, 전쟁포로, 민간인에 대한 최소한의 대우를 보장하기로 약속한 국제 협약

 

심지어 상대 진영에 공포를 심어주고 승리 의지를 꺾기 위한 민간인 폭격, 부녀자 강간, 미성년 학살을 자행하거나, 아군 병사들이 전쟁 공포를 잊도록 불법 마약을 투여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21세기가 되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구 학교 시설에 대한 백린탄 투하, 시리아 반군의 조작으로 민간인들에게 사용된 화학무기, 걸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열화우라늄탄, 예맨 공항에서 은밀히 사용된 핵무기 중성자탄 등 국제적으로 금지된 무기가 사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설마 21세기에 핵전쟁이?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된 이후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방사능은 최소화하고 효율은 극대화 한 중성자탄이 개발되어 비밀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쟁과 연관된 모든 당사자는 지도자가 되었건, 국민이 되었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본능의 차원에서는 도덕과 상식이 존재할 수 없고, 정상적인 사람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 민족의 예만 보더라도 국가 안보(와 자기 목숨)를 지키기 위해 수 백만의 국민들을 사지에 몰아낸 대통령, 전쟁 개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자 '김일성 수령 만세'를 외친 신문사, 아침에는 인민군의 깃발을 흔들고 저녁에는 국군의 깃발을 흔들었던 마을 사람들까지, 이들은 모두 잔혹한 생존의 문턱에서 제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 상흔은 오래도록 남아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물리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기반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으로 고통받은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트라우마가 남아 사람들의 일생 동안 그리고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건강하지 못한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내려버렸습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의 기억은 독재 권력에 의해 수십 년을 걸쳐 더욱 강화되고 굳어지게 되었고, 힘의 논리에 굴복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경험들은, 지금 시대에도 힘을 가진 자에게 동조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높으신 분에 대해 가져야 할 무한 신뢰와 경외감"의 의무감도 이런 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선거에서) 나는 OOO당을 뽑겠다."는 아주머니, "아버지 없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어."라고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모습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벌어진 민족의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사회 문화의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25 전쟁의 진실

 

30년 가까이 제가 알고 있었던 6.25 전쟁의 지식은 단편적인 몇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휴전선 근처의 상당수 지휘관들이 휴가를 떠난 틈을 타 북한의 기습적 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 전쟁이 시작된 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낙동강까지 밀려 나라의 존망 위기까지 갔었다는 것, 뒤늦은 UN군의 지원으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했다는 것, 그리고 북진을 거듭하여 승리를 눈 앞에 두었다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퇴각하며 지금의 휴전선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역사를 배울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했던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한반도 공산화의 야욕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공산당"의 잔인함과 비열함을 잊지 말 것,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온 국토가 잿더미로 변한 와중에도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경외할 것,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호시탐탐 전쟁을 노리는 북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해 6월 25일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류의 표어가 쓰인 포스터와 글짓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저의 역사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부족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시절에는 사실적 자료를 접할 길이 없었기 때문인지, 저는 최근에서야 6.25 전쟁에 대한 진짜 진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시작과 진행 과정 그 끝에 이르기까지, 세계사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부끄러운 사건의 연속이었고, 참으로 추악하고 창피하고 안타까운 민족의 역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6.25 전쟁의 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전쟁의 시작이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이었는지, 당시 남한과 북한의 정세는 어떠하였고 미국과 소련, 중국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해 일으킨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각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서운, 해방 후 3년 간의 역사

 

6.25 전쟁이 발발하기 5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충격으로 일본은 미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우리 민족은 약 35년에 걸친 일제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던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 5년 간 이 땅(남한)에서는 각종 비상식적 일들이 벌어집니다.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상해 임시정부의 수료들은 휘하의 세력들을 모두 무장해제당한 채 해방 조국에 입국해야 했고, 미국의 비호 아래 하와이에서 호가호식하던 이승만이 미군정 세력을 등에 엎고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일제 정부 아래에서 친일 행위를 일삼던 자들을 모두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국가의 주요 요직에 앉혔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는 임시정부 인사가 정권을 잡는 것보다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이승만과 어느 때든 친일 부역 행위를 명목으로 내칠 수 있는 친일파들을 고용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선택지였을 것입니다. 남한 정부는 겉만 대한민국이고 속은 여전히 친일파(=친미파)들이 장악한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렸고, 남쪽과 북쪽에 별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보려던 민족 지도자들은,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자에 의해 암살당하거나 북쪽으로 망명해 버리면서 남과 북이 나뉜 분열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북쪽에서는 김일성이 정권을 잡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세우게 됩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 김일성은 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이끌며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가 일본 관료에 대한 표적 암살을 주로 행하였다면, 김일성은 만주 지역에서 적극적 항일 투쟁운동을 하였던 것이지요. 소련과 중국도 당시 만주국을 세워 대륙 진출을 꾀하려던 일본 제국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는데, 여러 항일무장인들과김일성의 활약으로 일본이 과거 문서들을 보면 얼마나 골치를 앓았는지 알수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김일성이 북한에서 국가를 세우는 데에 스탈린 및 여러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것이기도 하지요.)

 

때마침 미국은 1950년 1월 10일 "애치슨 라인"을 선언합니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은 "알래스카-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선이라고 하면서 한국을 방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었지요. 이것이 북한의 남한 침공을 유도한 것이었는지, 당시 미국이 중국과의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제스처였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정권은 남한이 미국의 적극적 방위선에서 빠진 것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같은 해 6월 25일 새벽,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한 전쟁 명분을 "민족 해방전쟁"으로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즉 김일성 입장에선 친일 부역 행위를 한 자들이 미국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정권을 잡고 있는 남한 상황이, 일제 식민지 시대의 그것과 하등 다를 것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비록 미국이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민족을 수탈하며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김일성이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의 정통성 및 그의 이력,민족 자결주의에 입각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내세울수 있는 당당한 장점이고 또한 그런점에서 보면 운의 흐름도 그에게 좋게 흘렀다는 거죠.. 그는 남쪽 땅과 국민들을 해방시켜 주어야 할 존재로 자기자신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또한 실제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치에 있었고 그런 지위에 있었다는 겁니다.

 

 

전쟁의 결과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점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6.25 전쟁은 오히려 친일(친미) 기득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더욱 강화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은 한반도 남쪽에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었고, 일본은 전쟁 물자 보급의 특수를 누리며 현재의 경제 대국 지위에 이르기 위한 밑천을 마련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이승만은 미군정의 힘을 업고 대통령직에 오르긴 하였지만, 입법 기관 마련에 필요한 국회 구성에는 난항을 겪고 있었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여러 번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였지만, 사회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 정치/경제 체제를 원했던 다수 국민들은, 정부 여당이 아닌 군소 야당의 후보들을 뽑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몇 번이나 각종 명분을 들어 국회를 해산하고 재선거를 치렀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6.25 전쟁이었습니다. 냉전의 기운이 고조되자 정부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던 "국민보도연맹"을 좌익(공산당)의 앞잡이라 지목하여 수 만 명에 이르는 좌익 인사 및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여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고 낙동강까지 패퇴하여 밀리는 혼란스러운 정국에는 강압적으로 선거를 실시하여 제 입맛에 맞는 여당 인사들로 국회를 장악할 수 있었지요. 부산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에는 좌익 스파이가 활동할지도 모른다는 명목으로, 수 일간의 군경 조사를 통해 정부와 각을 세우던 인사들을 모조리 구금 연행하는 일도 저질렀습니다.

 

그 외 전쟁 전부터 벌어진 제주 4.3 사건이나 서북 청년단의 민간인 학살, 전쟁 패퇴 중에 벌인 한강교량 폭파 및 10만 명의 어이없는 죽음을 부른 국민방위군 사건 등, 이승만 정부는 전쟁 전후 과정에서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숙청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국가 총인구 대비 비례로 따진다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필적하는 규모이지요. 그는 무고한 시민들마저 자신을 위협하는 적이라는 생각에 무차별 살해하며 "공포에 의한 통치"를 확고히 하였습니다.

 

미국의 전쟁 참여도 오로지 남한 정부를 공산국가의 세력으로부터 지키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비밀 해제된 미국 국방 문서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계획적으로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만 총 120건 이상이었다고 합니다.(관련기사 : 미군의 계획된 민간인 학살, 총 120건 달해..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미 고위 관계자는, 한국 국민을 최대한 많이 죽임으로써 남한 정부가 미국에 고분고분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전쟁 목적이라고 회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문화적 상흔

 

미국은 철저하게 한국을 파괴함으로써, 한국을 쉽게 부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배고픔에 굶주리는 이들에게 밀가루 한 포대, 초콜릿 한 개를 던져주는 그들은 신과 같은 존재였을 테니까요.

 

이승만 정권과 그 계보를 잇는 독재 정권들에게도 축복받은 전쟁이었습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던 지식인들을 모조리 제거할 수 있었고, 전쟁의 공포에 기생한 반공의식으로 자신의 정권을 정당화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며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라를 팔아먹어도 OO당을 찍겠다는 그분들, 아무리 설득해도 사회주의는 빨갱이라고 비난하시는 그분들 또한 어떤 관점에서는 역사의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말 한마디에 생과 사가 갈리는 참혹한 상황에서는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체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일평생을 따라다니며 그 사람의 삶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들이 현실의 가해자가 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왜 우리는 이런 진실을 감추려 하고 있는 것일까요? 미국 만화영화 심슨 가족 에피소드에 나온 "제버다이 스프링필드의 이야기"에 나온 것처럼 진실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이유일까요? 그래서 바르지 않은 역사를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되기 때문일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역사마저 들추어내고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편이 되었든 저쪽 편이 되었든, 실수를 인정하고 사실을 밝힘으로써 다시는 역사의 재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후세 사람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 예전 국가 혼란기 때처럼 서북청년단이 죽창을 들고 다니며 상대편을 찔러 죽이겠다는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사람들, 더 잔인하게 대중을 핍박하는 기득 세력들에게는 어떤 면에선 연민의 애처로움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번지르르함 이면에 녹아있는 열등감과 두려움의 심리가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라고도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감추고 은폐하고 핍박할수록 그 분노의 에너지는 더욱 커질 것이며, 어느 시점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를 구할 수 없을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선을 이미 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모든 진실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닐 수 있고, 현재를 위해서라면 때론 거짓이 통용될 필요도 있다는 메시지는, 제가 그때까지 살아왔던 정직과 정의의 관념을 흔들만한 내용이었습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과거의 진실은 감추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새롭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어느 한 편에서는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가 중요하기에 과거는 덮어두자"고 말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있었던 과거마저 왜곡하려는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리도 일견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차라리 진실을 모른 채 온 국민이 대동단결하여 과거사를 미화한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전무후무한 질서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인간 집단의 속성이니까요.

 

이렇게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명제를 묻어두고 있다가, 최근 6.25 전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접하면서 다시금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기득 세력의 논리에 따라, 현재의 안정을 담보로 부끄러운 과거사를 지우고 왜곡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뼈아픈 진실을 드러내어 과거를 청산하되 부끄러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길일까요?

저는 이미 저의 결론을 말씀드렸지만, 각자 그 답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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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피린 ip1 2020-01-27 20:51:43
    에휴!~~~~~
    돌통이 빈슨아?
    너의 개소리는 대한민국의 국론을 분열시키자는 개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론이 분열되면 좋아할노무 색퀴들이 누구냐?
    돌통이 너네 짱개삭퀴들하고 북한에 뚱으니 아니겠니?
    자고로 역사란것은 말야?
    자기나라 입맛에 편찬하는기란다.
    너네나라 쭝꾹만 봐라!
    고구려와 발해 몽골의 역사를 외곡하는 동북공정하고며 돌궐계의 위굴족 역사를 외곡하는 서북공정하고며 티벳과 운남의 소수민족 역사를 외곡하는 서남공정, 그리고 남사군도의 암초에 공고리를 퍼붓고 남의나라 땅과 바다를 지네꺼라고 우겨대는 꼬라지들.......................................
    와그러니?
    돌통이 아새퀴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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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피린 ip1 2020-01-27 21:15:22
    돌통이 빈슨아 ?
    자고로 역사는 승자의 역사랑거 넌 모르지?
    대한민국이 뭐가 아쉬워서, 누쿠좋으라고 그따위 거지색퀴들의 역사적 사실같은것이나 파헤져야 하냐?
    하고싶으면 뚱으니색퀴보구 이기구 만들라고 해라
    내가 바라는 역사는 대한민국이 뚱으니 사살하고 흡수통일해서 한,중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했으면 좋켓다구..........
    그러면 너휘들이 바라는 거지같은 진실은 영원히 역사의 뒷편에 묻히게 되능거지..........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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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varish ip2 2020-01-28 05:43:23
    중국빨갱이새끼 본심 나오네. 100만명? 와 전쟁으로 죽은 희생자들을 전부 이승만 잘못으로 몰아버리는 빨갱이식 계산법...
    6.25. 전쟁 중 사망, 부상자, 납북자 전체 합쳐도 100만명이 넘을까 말가 하는데.. 개쓰레기 똘통새꺄..사람되라...
    제주 4.3.은 이승만의 결단과 탈북자들의 선배인 서북청년단의 활약이 없었으면 제주도는 공산화되었어. 멍청한 돌대갈새꺄!!
    니가 이승만박사 욕하는 이유는 목탱똥 개놈이 인해전술로 숱한 군대 보냈는데도, 적화를 못해서 한이 맺혀서 그러지...
    김정은 개.새.끼, 시진핑개.새.끼!! 한번 해봐라. 너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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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3 2020-02-01 13:49:06
    병신이 직접 보자고 하면 쪼라가지고 쪽도 못쓰면서 비열하게 온라인이고 그 입 나불대는데..
    정말 가소롭다.. 이젠 댓글 답 다는것도 재미있다.
    니 자식들도 너처럼 될까봐 심히 걱정된다. 너 자신의 영혼을 썩히는 거짓말을 하면서 한심하게 가정에 밥벌이도 못하는 한심한 가장..
    어디 너 따위가 나하고 비교를해..!! 이 열등감 덩어리야.. 정신병원에서 치료나 받아라. 널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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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varish ip4 2020-02-01 14:12:29
    병원가봐라. 정신병자 새꺄...이 게시판에서 너 아닌 다른 사람은 다 너를 정신병자 개머저리 취급한다. 주제파악해라!! 정신병원가면, 정신병자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ni zhen shi shenjingbing. chi yao 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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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3 2020-02-01 14:54:17
    이 무식하고 불쌍한 놈아.. 어디서 그딴말을 하냐.!! 지 집구석 하나 감당 못하면서 ..ㅎㅎㅎㅎㅎㅎ
    또 너가 북한 국민한테 조금이라도 해준게 뭐있냐.!! 그 냄새나는 쓰레기 같은 입만 나불대가지고 어디서 이상한 역사관을 들어가지고 꼴에 또 글들을 올리고
    정말 가소롭다. 이 미친놈아.. 그리고 구글번역기로 중국어 번체는 왜 올리냐? 이 등신아~~ 넌 영원히 머저리 빨갱이, 그리고 첩자 노릇그만해라.. 경고한다.
    뒤에선 무서워서 벌벌떨면서 ㅋㅋㅋ 영원히 드럽고 불쌍한 그지새끼..ㅋㅋ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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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통 ip3 2020-02-01 13:52:16
    너 중국인들 다 몰살되야 된다고 ... 이 히틀러보다 더한놈아.. 너 같은 살인마가 ? 하긴 그러니깐 깜방가서 전과도 있지..
    ㅎㅎ 병신이 진짜 병신짓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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