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언제 지도자로 김일성을 택했을까.?? 관련사료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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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윌슨센터: 김일성, 1945년까지 북한 지도자로 미확정 사료 공개.
북한은 소련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건국된 국가이다. 1940년대 말, 소련 당국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절대적 영향을 미 췄다.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것 역시 구소련 당국의 결정에 따른 것일 것이며, 적어도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우드로윌슨센터의 냉전디지털기록 원에서 이에 관한 중요한 사료가 공개되었다.이 역사적 사료는 소 련의 높은 간부에게 보낸 보고인데, 저자는 김일성을 ‘민주적 영 웅’으로 소개하면서 ‘미래 통일된 민주연합’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으로 추천한다.
사료의 원문은 러시아 군대 총참모부 기록원에 있고 러시아어 공식 등록 번호는 Архив Генерального Штаба ВС РФ. Ф. 172. Оп. 614631. Д. 23, лист 21-26이다.
본 사료는 김일성 임명 과정의 일부만 보여주었지만, 북한 당국의 역사 조작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추가적인 사료로 볼 수 있다. 보고서의 내용을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원문이 만약 필요하다면 댓글에다 요청바람)
전(前)소련공산당 (볼셰비키) 중앙위원회 비서 말렌코프 동지,
헤이조(평양)시에는 10년 동안 만주 조선인 빨치산 부대 사령관을 지냈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하바롭스크 지역 88특수여단 대대장이었던 김일성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이름은 조선 인민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사 그리고 조선 인민의 항일 영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인민 사이에는 이 사람에 대한 수많은 일화가 있고, 그는 참으로 조선 인민에게 전설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김일성을 잡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고, 그의 체포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김일성은 모든 민주 계층, 특히 농민 속에 인기가 높습니다.
※ 결론과 제안
박헌영이 영도하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조선에서 진행된 혁명을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으로 봐야한다는 유일하게 올바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 박헌영이 영도하는 조선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조선의 전체 공산주의 조직들을 영도하는 중앙 기관으로 인정하여야 합니다. 박헌영은 가장 준비된 간부로서 자기 기관을 강화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중략)
● 공산당, 민주당, 민주청년동맹, 여성민주조직, 직업동맹 등등을 통합하여 반일민주조직으로 통일된 민주연합을 설립하여야 합니다. 이 연합 지도자로 제일 인가가 높고 인민이 사랑하는 민족적 영웅, 김일성을 임명하여야 합니다.
사료의 저자는 익명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이는 당시의 북조선을 관할했던 테렌티이 시트코프(Терентий Штыков) 상장(3성 장군)으로 보인다. 시트코프 상장은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북한의 실제 최고 관리자로서, 북한 정치·경제·사회·교육 등등의 분야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한국전쟁 남침 계획 역시 시트코프의 승인을 받아 스탈린에게 보고된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 소련 간부들은 비밀문서에서도 소련의 공식 지침에 따라 소련이 북한을 통치한다는 사실을 숨겼는데, 시트코프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시트코프의 군사 직위는 군사위워회 위원, 즉, 정치 장성이었다.
그의 직속 상관은 바로 붉은 군대 총정치국장 시킨 상장이었고, 보고 대상자 중에 시킨 상장의 이름도 찾을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이 사료의 저자가 시트코프 상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임명한 것이 언제였는지, 아직 명확한 시점은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학계에는 이에 대한 세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 첫째 가설은: 스탈린이 이미 1945년 봄이나 여름에 김일성을 지도자로 선택했다고 하는 주장이다. 당시 북한을 점령한 25군의 간부이었던 레베데프 소장(1성 장군)도 “일본과 전쟁의 종결 며칠 전에 우리는 스탈린으로부터 소련 군대 대위인 김일성 씨를 북한 공산당 총비서로 추대할 준비를 하라는 암호전보를 받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 둘째 가설은: 일본제국 항복 당시에 조선의 운명에 대한 아무 결정이 없었고, 김일성에 대한 결정은 김일성이 조선에 귀국한 1945년 9월 19일과 그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책임비서로 임명한 1945년 12월17일 사이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유성철 전 북한군 작전국장은 “후보자는 3명이 있었다. 조만식, 박헌영 그리고 김일성이었다”고 주장하며 “로마넨코와 시트코프 장군들이 김일성을 지지했고, 결국 스탈린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추가로, 김일성을 원래부터 선출할 계획이 있었다면 그에게 대위보다 더 높은 계급을 수여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 세 번째 가설은: 1945년 봄, 여름 즈음 이미 후보자의 목록이 작성됐고 이들 중에 김일성이 선택된 것은 그의 조선 귀국 이후라는 것이다. 2005년에 러시아에서 출간된 ?전쟁 불 속에 한반도 (Корея в огне войны) ?라는 책에는 1945년 8월,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북한 향후 지도자 후보자 목록이 작성되었고 이 목록에서 모든 후보자를 5가지 분류로 나누었다는 주장이 실려 있다.
첫째는 박정애 등 국제공산당 간부, 둘째는 김두봉을 비롯한 연안파 활동가, 셋째는 조만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 넷째는 고려인, 그리고 다섯째는 김일성 등의 항일 빨치산이었다.
세 가설 중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본 사료는 첫째 가설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김일성이 이미 북한 지도자로 승인된 상태였다면, 사료의 저자는 “김일성을 지도자로 임명하면 좋겠다”라고 서술하지 않고 “스탈린 동지 명령에 따라 김일성을 지도자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고 서술했을 것이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한 최후의 결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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