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모택동)은 김일성 덕분에 중국을 건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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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떼어놓고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서 논할 수 없을 만큼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긴밀함, 그 이상이다. 따라서 북한과 중국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알면 앞으로의 통일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마오쩌둥, 김일성 덕에 대륙을 얻다! - 북-중관계의 시발점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UN군과 국군의 활약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은 ‘미국을 무찔러 조선을 돕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병력을 파병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원이 있기 불과 몇 해 전에 있었던 국공내전 시기에, 북한이 궁지에 몰렸던 마오쩌둥(모택동)의 중국을 도운 적이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차지하게 된 일본은 이듬해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溥儀)’를 황제로 옹립하여 만주국을 세웠다. 하지만 이 만주국은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그 종언을 고하게 되었고 이에 대륙에서 불어온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만주를 엄습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터지고야 만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말미암아 만주를 차지하기 위해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와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사이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공산당은 당시 국민당 정부군과 비교하여 여러모로 열세였고 이에 만주에서의 전황은 날이 갈수록 공산당에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국민당 정부는 선양을 비롯한 만주의 주요 도시들과 철도 등을 장악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남만주와 북만주에 산재해있던 많은 공산당의 해방구들은 고립되어 곤란에 빠지게 되었다. 상황에 이렇게 되자 중국 공산당은 당시 한반도 북부지역을 장악한 김일성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김일성은 이를 수락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화둥사범대학 심지화(沈志華) 교수의 논문 <상호의존인가? 정략결혼인가?>에 따르면 1947년 하반기부터 1948년 초반까지 김일성 체제는 각종 군사용품과 소모품 등을 포함한 대략 5천 2백만 톤 상당의 물자를 북한의 남양에서 중국 만주의 투먼을 통해 중국 공산당 측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물자뿐만 아니라 김일성이 마오쩌둥에게 병력까지도 지원하였다. 김일성이 김책을 선봉으로 하는 대략 3만의 병력을 만주에 파병하였다.
당시 김일성의 중국 공산당에의 지원이 상당했었다는 것 만큼은 명백하다. 그런데 왜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만주 점유에 이렇듯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일까?
그 까닭은 단순하다. 바로 만주가 접경지대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유진영인 국민당 정부가 김일성 자신의 신생 정권과 그 경계를 접하게 된다면 이는 자신의 체제에 큰 위협이 될 일이었다. 때문에 당시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의 만주 지배를 지원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인 것이다.
김일성의 이러한 투자로 만주를 차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은 마오쩌둥은 마침내 1949년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로부터 중국을 빼앗는 데에 성공하게 되었다. 실로 김일성 덕에 대륙을 차지한 셈이었다. 이렇듯 북-중 양측의 관계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습과는 달리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일방적 지원을 시작으로 하여 그 문이 열리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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