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주장하는 독립운동의 역사. 과연.?? 0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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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편..
남만에서는 국민부가 조선혁명군을 창설하였다. 국민부는 정의부 출신이 1929년 4월 1일 조직한 민족주의 계열 단체이다. 혁명(독립)과 자치를 분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1929년 12월 조선혁명당을 결성하였다. 국민부는 1929년 5월 자신의 무장대인 조선혁명군을 창설하였다. 1개 중대에 30여명씩 10개 중대로 편성되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전후해서 4개 중대로 축소되었는데 이는 국민부 좌파가 이탈해나갔기 때문이다.
사령관에 이종락, 고문 고활신, 군사부 김광렬, 참모부 안붕, 정치부 장기명, 박진이다. 국민부좌파는 1931년 3월 “제3세력”을 지향한 단체로서 세화군(世火軍)군정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세화군정위원회는 공산당원과 연락하며 반국민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조직은 1931년 5월 동방혁명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민부 출신인 신영근, 박근원, 최창걸, 차광수, 김성주(김일성) 등이 동방혁명군 간부였다.(참고)신주백,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 1920~1945????, pp. 201~202.
1933년 10월 일제의 치안숙청공작으로 요녕민중자위군이 궤멸되자, 이번에는 1934년 3월 신빈
조선혁명당과 신한독립당은 1935년 7월 한국독립당의 김두봉, 조소앙, 조선의열단의 김원봉, 윤세위, 미국의 대한인독립단의 김규식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결성하였다. 민족혁명당은 토지국유화하고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등 만주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주장과 유사하다.
이처럼 관내로 이동한 조선혁명당과 한국독립당의 당원들은 임시정부와 결합한 것이 아니라, 반임시정부 태도를 취하면서 정당형태로 관내지역의 민족운동 단체를 통일하고자 노력했던 세력과 결합하여 민족혁명당을 조직한 것이다.
또한 만주지역에서 파견된 김학규가 중국 관내의 민족운동 세력과 연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은 조선혁명군의 부족한 인적, 물적 자원을 해결하여 무장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중국관내로 계획적으로 이동한 경우는 김학규의 활동이 가장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상.. 0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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