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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한반도의 근현대 역사) 시리즈 01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33 2020-10-25 14:19:34

●  이 글은 내용이 전문가 고급 수준이므로 적어도 역사 전공자나 전반적으로 기초적인 지식이 있는 분들이 읽기를 권합니다.



01편.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

 

 




안창호는 대당결성을 위해 먼저 북경을 공략하였다. 사실 북경은 임시정부의 반대세력이 집결해 있던 곳으로, 유일대당을 결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임시정부 존립 자체를 부정하거나 계속해서 임시정부 해체를 요구하는 인물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곳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실상 이 시도는 시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첫 대상지로 북경을 잡았고, 1926년 8월과 9월에 북경의 유력자이며 좌파세력의 대표인 원세훈을 만나 대동단결을 거듭 촉구했다. 이 만남이 곧 촉성회 결성을 위한 최초의 본격적인 접촉이었다. 량인은 유일당의 결성에 대하여 각지에 먼저 세포조직을 설치한 후, 그를 통일하여 대독립당을 결성하는 방법에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10월 10일부터 3차에 걸친 회합을 갖고, 같은 달 16일에 선언서를 발표하여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이하 ‘북경촉성회’라 함)의 창립을 보았다.(참고)<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 慶北警察部(경북경찰부), 앞의 책, 109∼110쪽.>

 




북경에서 발표된 선언서에는 러시아의 무산혁명자가 공산당의 기치하에 모인 것과 중국의 혁명자가 국민당에 그리고 아일랜드의 혁명자가 신펜당으로 집결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당적 결합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일계급·일국민·일민족의 행복과 자유를 생각하는 동서의 혁명자 등이 각각 일정한 주의·강령과 훈련·규율하에서 일당에 결합하는 것을 명증
하는 것이다. 전세계 인류의 행복을 위해 혁명을 완성시키는 것과 역시 같은 것으로 세계일당의 원칙하에 그 총참모부이고 대본영인 제삼국제당의 붉은 기치하에 모이는 것은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바 아닐까(조선총독부 경북경찰부),≪고등경찰요사≫, 110∼111쪽).

 

 

이 글은 북경촉성회의 구성원들이 소련·중국과 같이 ‘이당치국’의 형태로 민족협동전선을 결성코자 한 사실을 나타내 주었다. 아울러 이 글은 북경 촉성회의 구성원들이 좌파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

북경촉성회의 선언은 또 “혁명이 혁명사상의 필연적인 도정과 원칙에 의하여야 한다”(참고)<
朝鮮總督府 (조선총독부)慶北警察部(경북경찰부), 위의 책, 111쪽.

 



고 했다. 선언은 이어서 “단결이 약자의 무기라는 말은 자명의 진리이지만, 그 단결의 길은 일시적 권모술수에 있지 않고 다만 정대한 주의와 광명뢰락한 정신을 근거로 한 당적 결합에 있는 것을 믿는다”

 



라 하여, 독립운동의 앞길이 일당의 결집으로 해결되어야 함을 명백히 하고, 따라서 이들은 대당결성을 위해 북경촉성회를 조직한 것이라 했다.


끝으로 북경촉성회는 “한국혁명동지는 당적으로 결합하라”, “민족혁명의 유일전선을 작 하라”고 하여 대당의 결성을 전선통일의 방법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구호는 좌파세력이 민족협동전선 결성의 구체적 방법으로 일대당 즉 유일당의 결성을 주장했던 사실을 나타낸다.

 

 


선언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안창호와 원세훈은 분명히 큰 골격에서 합의를 보았을 것이다. 안창호가 7월 8일 삼일당 연설에서 제기했던 ‘대혁명당 조직과 그때까지 임시정부 유지’라는 원칙에 원세훈이 합의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경에 포진하고 있던 “창조파로서는 임시정부의 존치를 용인하는 대신에 상해의 유지파까지도 참여시켜 유일독립당을 신속히 ‘창조’해 내는 것이 그들이 본래 지향했던 ‘전투적 독립운동’이념을 구현시킬 첩경이 될 것이기에, 원세훈은 그 요청을 선선히 받아들였을 것이다.”(참고)<김영범, 앞의 글, 496쪽.>


그리고 회원의 조직은 집행위원과 일반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당시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① 집행위원
元世勳(원세훈)·曺成煥·(조성환)朴健秉·(박건병)裵天澤(배천택)
 
② 일반회원
姜扶弱(강부약)(姜九禹)(강구우)·金廣善(김광선)·金雲坡(김운파)·金有成(김유성)·金人濟(김인제)·金一成(김일성)·金贊(김찬)·金海山(김해산)·權敬止(권경지)·李光(리광)·李贊(리찬)·朴海觀(박해관)·宋虎(송호)·裵雲英(배운영)·申翼熙(신익희)·尹(윤)?國椎(국추)·元興(원흥)·黃郁(황욱)(黃一山)(황일산)(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 慶北警察部(경북경찰부),≪高等警察要史≫(고등경찰요사), 111쪽)
 
북경에서 대당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자 상해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1926년 11월≪독립신문≫에 김생이란 필명으로<자치를 몽상하는 자에>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이 글은 왜정부의 자발에 의해 독립이 달성될 수 있다는 주장은 망발의 최상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독립운동은 오직 우리 민족의 열혈로서만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을 확신한다고 했다.(참고)<≪獨立新聞≫(독립신문), 1926년 11월 3일.

또 같은 일자의≪독립신문≫에 게재된<청년과 혁명>이란 글은 “혁명에 성공할 청년들이여, 오직 우리의 민족혁명이라고 말하는 사업을 목적으로 대동결당하여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하여 청년들에게 혁명의 방법으로 대당결성을 촉구했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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