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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돕다.(1)
Korea, Republic of 김태산 0 372 2020-12-04 10:10:45

오늘은 색다른 글을 써본다.
2002년 2월 평양은 김정일 생일을 계기로 해외 대표들을 모두 불렀다.
나도 들어가서 모든 일정을 끝냈다. 그런데 다른  대표들은 모두 내보내며 나에게만 출발 령이 안 떨어진다. 모두가 뭔가를 숨기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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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년 전에 말레이시아에 나갔다가 죄 아닌 죄를  쓰고 노동자로 강직되었던  과정이 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던 중 우리 성 담당 보안원 중좌가 하루는 나를 찾더니 “너와 교체 할 사람의 문건이 지금 중앙당에 비준을 받기위해 올라간 상태니 알고 있으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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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치밀었다. 권력을 업은 어느 인간이 또 내 자리를 탐 한 것이다. 그러나 힘없는 자는 도리가 없다. 여권은 내손에 있지만 사전에 출국통지가 나가지 않으면 출국을 할 수가 없다. 집에서 매일 술만 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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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개월 정도를 지나는 기간에도 거의  매일 본사로 불려나가야 했다.  자다가도 불려나가고 술을 마시다가도 불려 나가야 했다.  전번 글에서도 썼지만 체코에 공장 5개에 근 200여명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나가있으니 크고 작은 사고와 문제들이 제기 안 되는 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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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통역원들은 많은 인원과  대방 공장 사장들을 상대로 일처리를 할 능력이 안 되니까 계속 평양으로 긴급전화를 해댔다. 그러나 현지 실정을 모르는 본사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밤중에도  나를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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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또 나를 데리려 사람이 왔다. 부직포 생산공장에 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페병 진단을 받았는데 공장 측에서는 전염병이라며 출근도 못하게하고 방치 한단다. 당장 본사에 나와서 그 처리를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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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는 안 간다며  그냥 잤다. 그 다음날 아침에 또 차가 왔다.
나는 나가서  부서장에게 “나를 보내지 않는 이유가 뭔가?"를  물으니 답을 피한다. 나는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 현지에서 어떤 사고가 나도 나는 책임을 지지  않겠으니  알아서 하라.“ 고  큰 소릴 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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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아침에  전화를 받으니 내일 당장 체코로  떠나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체코 현지에서 사고는 계속 나고 중앙당에 올려 보낸 새로운 사람에 대한 승인이 예상 밖으로 늦어지자 할 수없이 당분간만 나를 다시 내보내자고 합의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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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하나님은 뒤에서 항상 나를 도와주었다. 다음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독자님들도 나의생각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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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로 본사에 나가서 전화로 체코 부직포생산공장 공장장에게 페병에 걸린 우리 노동자를 체코노동자들과 똑 같이 의료보험을 실시하여 결핵 요양소에 보내지 않으면 우리 노동자 전원을 철수시키겠다고  압박을 하여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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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간부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는 평양 땅을 밟지 않겠다.” 는 굳은 결심을 하며 다음날에 베이징 행 열차를 탔다. 베이징에서 며칠 묵은뒤에 나의 일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쁘라하 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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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코에 도착하니 통역원과 여성 노동자들이 놀란다. 알고 보니 김태산이  체코에 못나간다는 비밀이  체코땅에는 전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통역원이 사장 행세를 했다고 여성 노동자들은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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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우리가정은 분위기가 냉냉했다. 아내가 나의 망명제의를  극력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나의 편에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비자도 없이 온 가족이 무사히 한국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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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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