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스토리) 양세봉의 오른팔 "백파 김학규"의 자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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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규 1900.11.24~1967.9.20 의 자서전 백파. 자서전 (사료.)
◇ 백파 자서전
백파 김학규 자서전 내용..
내가(김학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중앙간부(中央幹部)가 되고 조혁군(朝革軍)의
참모장(參謀長)이 됨에 이르러서는 나는 그들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과
격렬(激烈)한 정면(正面) 충돌(衝突)을 불면(不免)케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의 동지(同志)들을 많이 죽이고 또 나를 죽이려고 많이 힘썼다.
또 나도 나의 직권(職權)이 있는 한도내(限度內)에서 그들과 여하(如何)한
투쟁(鬪爭)도 불사(不辭)하여 처음에 이론(理論)으로부터 나중에는 실제행동
(實際行動)에 이르기까지 치열(熾烈)한 투쟁(鬪爭)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실제행동(實際行動)이라 함은 물론(勿論) 서로 총칼을 가지고
상쟁(相爭)하였음을 맡함이며, 그때 그들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책임자(責任者)
현익철(玄益哲), 조혁군(朝革軍) 총사령(總司令) 양세봉(梁世奉), 동참모장(同參謀長)
나를 가리켜 「삼대살인반동영수(三大殺人反動領袖)」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가 어렸을 때에 그의 집은 장백(長白)에 있었고 그의 부친(父親)은 우리
민족진영(民族陣營)의 일원(一員)이었다.
우리 정의부(正義府)에서 학비(學費)를 공금(公金)으로 주어 길림(吉林)
육문중학(毓文中學) 2학년(學年)까지 공부를 시켰는데, 그 후 그는 조혁군(朝革軍)
제(第)1중대(中隊) 이종락(李鍾洛) 대장(隊長) 아래 있다가 공산주의(共産主義)로
사상(思想)을 전환(轉換)한 것이다.
1929년(年) 내가 길림(吉林)에 어떤 대표(代表)로 가서 있을 때에 그는 상기(上記) 육문중학(毓文中學)에서 공부하면서 길림(吉林)에 있는 소년(少年)들을 몰아가지고 소년대(小年隊)를 조직(組織)하고 그가 대장(隊長)으로 있으면서 나를 찾아 다니던 것이 기억(記憶)되며,
내가 참모장(參謀長)으로 1932년(年) 하(夏) 당취오군(唐聚五軍)과 같이 통화(通化)에
사령부(司令部)를 설치(設置)하고 있을 때 그는(김일성) 무송(撫松)으로부터 한국공산청년(韓國共産靑年) 수십명(數十名)을 데리고 중국인(中國人) 유본초(劉本初)라는 사람과 동행(同行)하여 통화성(通化城)에 있는 양(梁) 사령(司令) [양세봉을뜻함]과
나를 찾아와, 자기(自己)네도 항일(抗日)할 터이니 무기(武器)를 달라고 요구(要求)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미 사상적(思想的)으로 우리와는
적대진영(敵對陣營)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치지불리(置之不理)해 보냈던 것도
생각난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그의 기도(企圖)가 세계(世界)를 정복(征服)하는데 있기 때문에
그들과 우리와는 언제든지 양립(兩立)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과 타협(妥協)이니 하는 것은 호상(互相) 자기(自己)네의 정략전략(政略戰略)에
의한 일종(一種) 시간(時間)을 쟁취(爭取)하는 수단(手段)에 불과(不過)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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