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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대한 북한과 중국(모택동)과의 외교 관계..07편 마지막편
Korea, Republic of 돌통 0 301 2021-02-18 12:10:48
07편.    (마지막편)

 

 

●  《  원문  》

 

 

Kim Il-s?ng's two visit to Beijing and Mao's responses, 1949-1950

 

Kim, Jin-kyung

 

  The Communist materials on the Korean War, released from China and Russia since 1980s, enable us to take a new look at the cause of the Korea War.  This article is based partly on the PRC materials and more on the documents of the former Soviet Union, which were presented to South Korea by Russian President Yeltsin in 1994.  Though the Communists materials are not enough to clarify all the questions concerning the causes of the Korean War, a careful cross-examination of the materials unmistakably leads us to a conclusion that North Korea started the war.

Before the Korean War, Kim Il-s?ng visited Beijing twice, at the end of April 1949 and on May 13 1950.  Two visits are made both after the consultation with Stalin, possibly after Stalin's words to do so. Mao's response to Kim visit was surprising. Having been informed of the purpose of the visit,  Mao refused to see Kim.  Mao, instead, talked to only Kim Il, Kim Il-s?ng's lieutenant and who accompanied Kim. Mao gave his endorsement to North Korea's plan to invade the South, but with a warning that the war might drag into a prolonged one.  During the talk, Mao even brushed away Kim Il's proposal that Kim Il-s?ng would lead a congratulatory delegation  to Beijing when China announced the foundation of the PRC.

Mao's response to Kim's visit to Beijing shows us that even though Mao was giving a verbal support for the invasion plan, he was, in heart, opposing the plan. Knowing that the plan had been discussed with Stalin in Moscow and Kim was acting upon Stalin's encouragement, Mao could not overtly express his opposition. Mao could only refuse to see Kim, while giving a lukewarm oration to the plan. The very fact that Mao refused to receive Kim Il-s?ng shows Mao opposed the plan to invade the South.

 

The return of Korean soldiers in the PLA to North Korea also shows Mao's half-

 

 

hearted support for the plan.  The purpose of Kim's visit to Beijing was to secure Mao's approval for the repatriation of Korean soldiers in China to North Korea. The soldiers would be a backbone for the attack-troops for the planned invasion. Mao returned two divisions of Korean soldiers to North Korea during 1949. The third division was released only after the Soviet inquiry into the issue during Mao's visit to Moscow in January 1950. Mao ordered to return the rest of the troops to North Korea during his stay in Moscow. The troops numbered at least thirty-four thousand. These troops were a quick solution for Stalin's prerequisite for the approval of the invasion. Stalin and Moscow had been repeatedly stressing a military superiority over the South before any military action against the South was taken. With the Soviet weapons, the Korean soldiers returned from China made the North meet Stalin's conditions for his approval. Without these soldiers North Korea could not have achieved a military superiority over South Korea within a short period of time. Without them, the Korean War might have broken out later than June 25, 1950.


 

◇  《 위의  원문 한글로 번역 》


 

☆김일성의 베이징 두 차례 방문과 1949~1950년 마오쩌둥의 반응.



1980년대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서 공개된 한국전쟁에 관한 공산주의적 자료들은 한국전쟁의 원인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사는 1994년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에 제출한 PRC 자료와 구소련 문서 등을 일부 바탕으로 작성됐다.  625전쟁의 원인과 관련한 모든 의문점을 밝히기엔 공산당의 자료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그 자료들에 대한 면밀한 대질 조사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625전쟁 이전 김일성은 1949년 4월 말, 1950년 5월 13일 두 차례 베이징을 방문했다.  두 차례 모두 스탈린과 협의한 후, 스탈린이 그렇게 하라는 말을 한 후 방문한다. 김 위원장 방문에 대한 마오의 반응은 놀라웠다. 방문 목적을 알고 있던 마오쩌둥(모택동)은 김 위원장(김일성)의 면회를 거부했다.  대신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부관에게만 말을 걸었다. 마오쩌둥은 북한의 남한 침공 계획에 찬성했지만, 전쟁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경고와 함께 그의 지지를 표명했다.  회담 중 마오쩌둥은 중국이 PRC 창립을 발표하자 김일성이 축하사절단을 이끌고 베이징으로 가자는 김일성의 제안까지 일축했다.



김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에 대한 마오쩌둥의 반응은 비록 마오가 침략 계획에 대해 구두로 지지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으로 이 계획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이 계획이 논의되었고, 김 위원장이 스탈린의 격려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오는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 없었다. 마오쩌둥 총리는 김 위원장의 면담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고 김 위원장의 면담을 미온적으로 설명했다. 마오가 김일성을 받기를 거부한 바로 그 사실은 마오가 남한을 침략하려는 계획에 반대했음을 보여준다.



PLA 한국군의 북한 복귀도 마오의 반쪽을 보여준다.



그 계획에 대한 열렬한 지지  김 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한 목적은 중국 내 한국군의 북한 송환에 대한 마오의 승인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병사들은 계획된 침략을 위한 공격 부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한국군 2개 사단을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3사단은 1950년 1월 마오쩌둥의 모스크바 방문 당시 소련이 이 문제를 조사한 뒤에야 풀려났다. 마오쩌둥은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나머지 병력을 북한으로 돌려보낼 것을 명령했다. 병력은 적어도 3만 4천 명이었다. 이 부대는 침공을 승인하기 위한 스탈린의 전제조건에 대한 빠른 해결책이었다. 스탈린과 모스크바는 남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기도 전에 남한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거듭 강조해왔다. 소련의 무기를 가지고, 중국에서 돌아온 한국 군인들은 북한이 스탈린의 승인을 받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군인들이 없었다면 북한은 단기간에 남한보다 군사적 우위를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이후에 발발했을지도 모른다.



     이상.     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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