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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문제와 미국과의 역사..01편 (총6편작) 시리즈
Korea, Republic of 돌통 0 30 2021-02-27 01:29:44
01편.       시리즈    총6편작


북한의 핵무기개발 문제가 거의 30년가까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제기되어온 문제인데 2021년 현재까지 금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단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가 일어나게 된 배경이나 원인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울면 무턱대고 울음을 그치라고 다그치기 보다는,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우는지, 기저귀가 젖어서 우는지, 아니면 졸려서 우는지 알아보아야 아이가 울지 않도록 제대로 달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북한이 언제부터 왜 핵무기를 개발해왔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파악해보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정당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기 위해서다.




●  북한은 언제부터 왜 핵무기를 개발해왔는가




◇  군사적 배경



북한이 처음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배경과 원인은 미국이 1951년부터 북한에 대해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늦어도 1958년 1월부터 남쪽 땅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른바 1990년대의 ‘제 1차 북핵위기’와 2000년대의 이후의  북핵위기’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1990년대 이전의 사건 전개 과정만을 소개하려한다.


첫째, 미국은 한국전쟁 동안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몇 차례 위협하였다. 1951년 말 B-29 폭격기가 평양에 모의 원자탄을 떨어뜨리는 훈련을 했으며, 1953년 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상이 잘 진전되지 않으면 미국은 원자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암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둘째, 휴전협정이 조인된 직후 덜레스 국무부장관은 세계 어디서든 재래식 공격에도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보복전략’을 천명하였다.


셋째, 래드포드 합참의장은 1955년 1월 서울을 방문하여, ‘강력한 보복전략’이 한반도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필요하면 한반도에서 원자탄을 사용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넷째, 미국은 늦어도 1958년 1월부터 남쪽에 어니스트 죤 (Honest John), 랜스 (Lance), 나이키 허큘레스 (Nike-Hercules) 미사일 등과 함께 다양한 전술핵무기를 들여놓기 시작하여 1972년에는 약 760기나 되는 핵탄두를 배치하게 되었다.


다섯째, 1969년 북한이 영공을 침범한 미국의 EC-121 정찰기를 격추시키자, 미국은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는 B-52 폭격기들을 북한 쪽으로 위협 비행하였다.


여섯째, 1975년 남쪽이 사이공의 함락에 안보불안을 느끼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공개적 위협으로 남쪽을 달랬다.


일곱째, 1976년 2월부터 시작된 연례 한미합동 군사훈련인 ‘팀 스피리트 (Team Spirit)’는 대대적인 핵무기사용 훈련을 포함하였다.


여덟째, 1976년 8월 미군들과 남한군들이 북한군의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고 비무장지대 중립지역의 미류나무를 베어내려고 할 때 미군 2명이 북한군들에게 살해당하는 ‘판문점 도끼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은 B-52 폭격기를 포함해 핵무기 공격 능력을 갖춘 폭격기와 전함들을 한반도에 파견하였다.


아홉째, 1983년에 드러난 미국의 ‘공중지상 전투 (Airland Battle)’ 전략은 북한이 남침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여 북한 정권을 붕괴시킨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다음과 같은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첫째>,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도록 ‘적을 껴안는’ 전략으로 재래식 병력을 휴전선 근처로 전진배치시켰다.


<둘째>, 1963년 방위시설을 외부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지하 건설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김일성 수상은 원자탄을 갖지 않고도 원자탄을 가진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이 있다며 공장을 포함한 모든 주요시설을 지하에 건설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셋째>, 1963년 북한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소련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에 소련은 핵무기 개발은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한편, 북한을 달래기 위해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개발은 지원할 수 있다며 1965년부터 영변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핵과학자 300여명이 소련에서 20여년 동안 훈련을 받게된 것이다.


<넷째>, 1964년 중국이 원자탄실험에 성공하자 김일성은 베이징에 대표단을 보내 북한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였다. 마오쩌뚱에게 편지를 보내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형제국가끼리 원자탄의 비밀을 공유하자고 한 것이다. 마오쩌뚱은 김일성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다섯째>, 1974년 남쪽이 자체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김일성은 다시 중국에 핵무기개발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지만 이번에도 거절당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도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핵무기개발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은 1980년대 초 이를 낌새채기 시작했던 것이다.




◇   지리적 배경


한반도는 세계 4대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특히 북한은 북쪽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그리고 남쪽으로는 남한에 가로막혀 있는 가운데, 바다 건너 서쪽으로는 중국에 그리고 동쪽으로는 일본과 미국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이렇듯 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4대강국과 남한은 모두 늦어도 1960년대까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해놓고 있었다. 


《미국은》 1945년,  《소련은》 1949년, 《중국은》 1964년에 핵무기개발에 성공하여 다양한 전략 및 전술핵무기를 배치해 놓았으며, 일본과 남한은 자체 핵무기는 없지만 1950년대부터 주일미군 및 주한미군 기지에 미제 핵무기를 들여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은 남한을 포함한 해외 미군기지로부터 핵무기를 철수했다고 발표하였지만, 지금까지 남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핵우산을 제공할 것을 다짐해왔다. ‘핵우산’이란 남한의 안보가 위협을 당하면 미국이 핵무기로 보호해주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 위해 핵무기로 무장된 미군잠수함이 동해 근처 해역을 운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지상에서는 핵무기가 철수되었을지라도 한반도 주변해역에는 여전히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으로부터든 중국으로부터든 핵우산을 제공받은 적이 없다. 북한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다양한 핵무기를 다량으로 배치해놓고 있거나 적어도 미국의 핵우산을 받고 있는 마당에, 북한만 자체 핵무기도 없고 다른 나라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경제적 배경은


경제적 측면에서 핵무기개발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효과를 얻을 수 있다. 1970년대부터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경제력을 앞서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가 커지자 북한은 남한과 재래식 군비경쟁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76년 남한은 국방비를 2배로 늘리고 그 이후 3년 동안 해마다 군비를 대폭 증강하였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국민총생산 (GNP)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크지만, 군사비 액수로는 1970년대 중반부터 남한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1970년대 말에는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국방비보다 2배 이상으로 증가되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처하게 되면서 속된 말로 빌어먹고 굶어죽을 지경이다. 북한의 GNP는 대략 미국의 1/600 수준이요, 남한의 1/30 수준이다. 그래서 군비증강을 하기 어렵다. 북한의 군사비는 GNP의 30% 안팎을 차지할지라도, 대략 미국의 1/100 안팎이요 남한의 1/5 안팎인데, 미국과 남한이 지속적으로 군비를 늘리고 있어서, GNP를 몽땅 쏟아 부어야 남한의 군사비와 겨우 비슷하게 된다. 빈약한 경제력 때문에 전투기나 함정 같은 재래식 무기경쟁은 도저히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남한에서는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같은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데, 역설적으로 경제난 때문에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해온 것이다. 


대량파괴무기를 조금이라도 갖게 되면 안보에 대한 걱정 없이 재래식 무기 유지 및 증강에 들어갈 비용을 경제개발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래식 무기에서 아무리 뒤지더라도 대량파괴무기만 몇 개 있으면 상대방에게 결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2003년 6월 9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우리가 핵 억제력을 갖추고자 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협하고 공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재래식 무기를 축소하며 인적 자원과 자금을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에 돌리려는 데 있다”며 “미국이 조선에 대해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자금이 적게 들면서도 그 어떤 첨단무기나 핵무기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물리적 억제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핵무기 개발의 경제성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미국이 핵무기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고 위협해온 터에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재래식 군비증강을 꾀하기 어려우니 값싸게 핵무기로 무장해놓고 군비를 줄여 경제성장에 힘쓰겠다는 뜻이다.




◇  전략적 배경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걸쳐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이 무너지자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전통적 우방국인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지원이 끊어지거나 줄어지는 터여서, 북한은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와 미사일개발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이 끝나면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저지를 탈냉전시대, 특히 9.11 이후, 대외정책의 핵심목표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소련이 해체된 뒤 미국에 맞서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은 지역패권국으로 성장하는 것부터 봉쇄한다는 전략을 세우는 한편, 공산주의에 의한 위협 대신 테러에 의한 위협이 커지리라 생각하고 대량살상무기가 테러리스트들이나 테러지원 국가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정책을 세운 것이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도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잘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터에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돈을 얻어오든 빌려오든 해야할텐데 미국이 세계의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싶어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불가침조약이나 평화협정 또는 국교정상화 요구에 응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의 체제붕괴를 목표로 삼고 각종 제재를 하고 있다. 이에 북한은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 카드를 써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이 협상카드를 잘 활용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북한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을 직접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여 적어도 2000년까지는 성공적으로 협상을 이끌 수 있었다. 그 산물들이 1993년 6월 뉴욕에서 발표된 북미 공동성명,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맺어진 북미 기본합의, 1999년 9월 베를린에서 이루어진 북미 기본합의, 그리고 2000년 10월 와싱턴에서 채택된 북미 공동코뮤니케~~그 이후부터는 다들 잘 알것이다.



◇  정치적 배경으로는


북한은 1990년대부터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김일성 주석 사망 그리고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위기에 처해 왔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면서 내세운 것이 ‘선군정캄와 ‘강성대국’이다. 선군정치란 군대를 중시하고 강화하여 나라 안팎의 위협을 물리치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정치를 뜻하고, 강성대국이란 땅덩어리는 작아도 군사나 경제분야를 발전시켜 강대국의 위상을 갖춘 나라를 의미한다. 핵무기개발이나 보유는 선군정치와 강성대국의 상징이 될 수 있고 북한 당국이나 인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    0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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