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트럭 성공시킨 20대 창업가 “경험보다 값진 것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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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에서 2년 째 토스트 푸드트럭을 운영 중인 20대 창업가 박영호(2002년 탈북·27) 씨는 지난 8월 AI(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의 영향으로 매출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물론 안전한 먹거리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천정부지로 오른 계란 가격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박 씨는 “평소 도매시장에서의 계란 가격은 2500원대 정도였는데, 1차 파동 후 8000원, 2차 파동엔 1만5000원까지 올라 자포자기했다”며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떠올렸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두 달여 간 수익이 나지 않아 자릿세를 내기도 버거웠다. 하지만 유럽의 푸드트럭에 착안해 창업을 해야 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준비 기간만 2년. 현재의 위기는 금방 지나갈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신촌 아르바이트의 왕이 되기까지 박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진로가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자영업에 관심이 많아 무조건 경영학과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려면 마케팅 등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의 교육 커리큘럼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기업 규모가 몇 조원 단위에 달하는 성공한 회사를 분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오히려 실패한 기업의 사례를 배우거나, 작게나마 직접 경영을 해보는 게 더 좋은 수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박 씨는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우선 학교 근처에서 3~4개의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간 조정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가게 사장님에게 적극적으로 얘기해 일을 따냈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 시급도 남들보다 1000~2000원 더 받았다. 이 외에도 중학생에게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교사 일을 하기도 했다. 신촌역 대학가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거의 다 해본 것 같다고 박 씨는 자부했다. 박 씨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기는 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직장에서의 경험은 책에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박 씨는 중견기업인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잦은 회식, 야근 등 업무의 연장을 경험하기도 했고, 상사와의 갈등으로 바람 잘 날 없기도 했다. 박 씨는 “평소 규칙적이거나 틀에 박힌 일을 잘 못하지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남들보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세상에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은 많은데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실행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퇴사 이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요즘 박 씨의 하루 일과는 해 뜨기 전 시작해 해 뜨기 직전 끝이 난다. 작년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전날 밤 식자재 구입 후 재료 손질까지 마쳐야 했고,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친 후엔 장사를 시작했다. 마감에서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된다. 그 이후부턴 다음 날 장사를 위한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푸드트럭 경영의 꿈을 안고 하루에 사용하는 계란만 900~1200개. 양배추, 당근, 옥수수 등 재료 손질을 끝내고 나면 새벽 4시에서 5시. 쪽잠을 자고 7시에 다시 등교를 한다. 통학시간도 길어 9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힘들 법도 하지만 박 씨는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과 대화하는 것도 좋고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삶을 즐겁게 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쉽게 되는 일이 없고, 공짜로 되는 일은 더더욱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는 박 씨.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한국 사회 정착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많은 탈북민들이 떨어진 가족 생각에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 약속을 잘 지키거나 예의를 잘 지키는 등 기본 생활에만 충실한다면 정착이 한결 더 쉬워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학교에서 본 한국 학생들만 봐도 스펙관리로 토익, 토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이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며, 탈북민들 역시 충분히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민 3만 명 시대, 모두가 통일에 이바지할 수 없다”면서도 “‘먼저 온 통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통일 인재 육성에 힘쓴다면 탈북민의 한국사회 정착도, 미래지향적 통일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드트럭은 계절적 영향,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 영역이다. 2년 계약 만료를 앞둔 그는 이 일을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1인 식비 지출 금액이 높은 지역 등을 고려해 2호점, 3호점을 더 만들고 싶다는 것. 나아가 백종원 요리 연구가보다 더 큰 회사를 차리는 것이 최종 꿈이라고 전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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