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상처 어루만지는 일에 앞장서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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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서귀복(사진) 씨는 일명 '회장님'으로 통한다. 탈북자들과의 만남에서도 누구보다 인사를 먼저 건네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민다. 서 씨의 말끝에는 항상 '감사합니다'가 따라다닌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이 무척 감사하다. 부산시 북구에 위치한 '평화의 집'은 서 씨가 한 달에 두 번 '북구 작은나눔 봉사단' 소속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는 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꼈다. 이 때문에 주변의 탈북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권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봉사 시간만큼은 하나로 단합이 됩니다. 그래서 일할 때 늘 웃음꽃이 피지요. 봉사를 통해 얻는 건 마음의 풍요입니다. 일을 다 마치고 정문을 나설 때는 뿌듯함이 밀려오지요. 장애인들이 '이모'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맞아줄 때에는 기쁨이 더욱 크고요. 그래서 잊지 않고 이곳을 꼭 찾아오게 됩니다"고 말했다. 희망의 땅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제2의 인생 서 씨는 2004년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정착한지도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북한 함경북도 무산에 있는 딸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중국의 언니 집에 들른 것이 한국에 오게 된 시발점이었다. 네 번에 걸친 북송 등 그때의 역경을 생각하면 시 씨는 아직도 눈물부터 흐른다. 그는 "한국에 발을 붙이자 안도와 기쁨이 무척 컸지요. 만약 한국에 쉽게 왔다면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그런 감격은 없었겠지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고 회고했다. 2005년 1월에 부산으로 온 서 씨는 새롭게 보금자리를 틀고 제2의 인생을 살게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착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까 싶은 생각에 걱정이 앞섰고, 무엇보다 그리운 가족이 옆에 없다는 생각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그는 남북하나재단 콜센터 상담사를 통해 많은 위안을 얻었다. 서 씨는 "가족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착잡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남북하나재단 콜센터 번호가 눈에 보여 전화를 했어요. 그 때 상담원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셨어요. 그분 또한 탈북자이라면서 저의 아픔에 공감을 해주셨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후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더 가치 있게 쓰기 위해 애썼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정착을 못하고 힘들어 하는 탈북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 서 씨는 한국과 북한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글을 쓴다. 자신이 쓴 글이 모이면 언젠가는 탈북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쓴 글이 경찰청에서 실시한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적도 몇 번 있다. 서 씨는 탈북자가 한국에서 제대로 정착을 하려면 무엇보다 제일 먼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다. 그는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에 살았던 경험은 경험대로 살리고, 한국에서는 또 새로운 삶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조금씩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처럼 봉사활동이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라고 당부했다. 서 씨는 늦둥이 아이를 둔 엄마이다.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많이 행복하죠. 물론 마음 한 구석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상황만 조금씩 다르지 탈북자 모두가 그렇지 않겠어요? 상처가 빨리 아물려면 우리가 함께 어루만지면서 살아야 하겠지요. 저도 그 일에 앞장서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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