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를 아는가? |
---|
여론이 심상치 않다 신문에 연일 뒤숭숭한 “소문”들이 나돌아 이러다가는 정말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나? 걱정스럽기 까지 하다. 통일 연대니, 범민련이니 하는 친북 성향 단체 홈페이지에는 연일 “우리는 북한의 선군정치를 지지하며 고맙게 생각한다.”(7월 25일) “세계 최강 선군정치!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7월 29일) “우리는 선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8월 2일) 는 제목의 글이 동시 다발적으로 게제 되면서 선군정치 찬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글의 내용이다. “만약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언제든 북한을 침략했을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이 났을 것이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힘이 없어서 강대국에 휘둘리며 살아왔던 약소민족의 설음에 종지부를 찍고....우리민족이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각 북한의 선군의 힘이 강 위력하기에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고 우리는 평화롭게 직장에서, 일터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 다 ”선군 덕“이다.”(동아일보 8월 4일12면) 남한에서 북이 주장하는 선군정치의 “우월성”을 아무라 떠들어도 누구하나 거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으랴 만은 이런 글을 버젓이 올린 사람들의 의도가 궁금할 따름이다. 나흘 간격으로 비슷한 성향의 홈페이지에 유사한 내용의 글이 거의 같은 시각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탈북해서 남한에 온지 올해로 어연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도 지금 북한에 있다면 이런 식의 북한선전을 들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스쳐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듣는 지금 이 시각 “선군정치”란 말이 “먹은 것 다 토하고 싶을 정도”로 역겹기 그지없다. 누구보다도 “선군정치”의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은 우리 북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이 글들이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씌어 졌든 간에 글을 올린 당사자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선군정치를 아는 가?” 선군정치란 무엇인가? 先軍政治 말 그대로 軍을 가지고 國家를 統治하겠다는 말이다. 80년대 말 체스코슬로비아 로부터 시작된 동유럽의 사회주의 붕괴로 북한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었다.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혹심한 굶주림... 이름도 다 헤아리기 힘든“연례행사”처럼 들이 닥치는 전염병들.. 계속되는 가뭄과 흉년... 드디어 불어 닥친 전대미문의 기근과 수백만에 이르는 아사자... 먹을 것, 입을 것, 땔감, 물, 전기, 생활필수품들. 없는 것 한두 가지가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래서 김정일 이 내놓은 “탁월한 구상”이 바로 “고난의 행군”을 선포하고 “선군정치”의 “위대한 전략을 펼치신 것”이다. 1995년 경 민심을 수습하기에는 기존의 조선로동당 집권체제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식한 김정일은 급기야는 군을 조국방위가 아니라 내부체제유지에 동원시키면서 그것을 이름하여 “선군정치”라 하였다. 군이 아니고서는 국민들의 불만과 증오, 무너져 가는 사회질서, 늘어가는 범죄행위들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시기부터 군이 여객열차에서 직접 인민들의 여행을 단속하였고, 총을 들고 “인민들”로부터 농작물을 지켰고, 도로와 교통을 직접 통제 하였고, 수 천리에 달하는 북부 국경 압록강, 두만강 연안을 “탈북자”들로부터 지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대대적인 공개처형도 이시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인민은 수백만 명씩 굶겨 죽여 가면서도 조선인민군,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군 권력기관과 군인들에게만은 식량이 배급되었다. 그래서 군복이라도 걸치거나 군이라는 이름만 가져도 무슨 대단한 권력인양 목을 세우고 다녔다. 그러나 선군정치도 군인들의 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한밤중과 대낮에 군인들이 가까운 마을들에 내려와 식량과 김치, 가축, 가재도구들을 털어갔다. 가정집들에 군인들이 무차별적으로 강도질을 하여도 “장군님의 전사”들의 한 짓이라 하여 무시되었다. 김정일 장군님을 등에 업은 “장군님의 전사들”덕에 인민들은 돼지, 개, 닭, 오리, 염소, 등 가축들도 마음 놓고 기를 수 없다. 다 길러 놔야 그것은 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군님의 전사들이 배고파서 인민들의 집을 좀 털어 간 것이 무슨 큰 죄라고...” “전사”들은 공공연히 국민들에게 큰 소리쳤다. 누가 감히 “장군님의 전사”들을 욕할 수 있는 가? “선군정치”를 한답시고 “군이 최고”라고 자꾸 춰주니까 “철딱서니 없는” 병사들에겐 정말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그리고 98년 김정일은 “광명성1호”라는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누구를 위한 미사일인가? 미사일이 죽어가는 국민들을 배불려 준 다더냐? 오히려 미국의 더 강력한 대북제재로 “죽일 놈”은 “국민” 뿐이었다. “고래싸움”은 항상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요구하였다. 선군정치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지난 1986년부터 2003년까지 북한 금강산발전소가 군인들에 의하여 건설 되었는데 여기서 이른 바 “선군정치의 핵”인 “혁명적 군인정신”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혁명적 군인정신이란? 금강산 발전소 건설시기 군인들이 그처럼 배고프고 춥고 힘들면서도 “맡겨진 혁명과업을 완수하기 전에는 해 빛을 보지 않겠다.”고 하면서 굴속에서 몇 달 씩 살면서 발전소 건설을 위한 수 천리의 물길공사를 해낸데서 비롯된 말이다. 굴길이 하도 길어서 밥 먹으러 나오거나 잠자려 나올 시간마저 부족해서 아예 굴속에서 두더지처럼 몇 달씩 밥해 먹고 잠자면서 군인들이 일한 까닭에 생긴 구호이다. 그것을 군관들은 “자랑”거리로 상부에 보고하고 김정일은 그것을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미화시켰고 나중에 “선군정치의 핵심”이 되었다. “온 국민이 다 그들처럼 살라는 의미”이다. 그 때는 극심한 식량기근으로 하루에도 몇 천, 몇 만 명 씩 굶어 죽어나가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국민은 먹을 게 없어 아우성치는 데 김정일은 16~17살의 앳된 소년들을 모두 강제징집하여 군에 보냈는데 거기에는 이른바 “건설부대”라고 불리 우는 “군 복무 내내 건설만 하는” 공병부대가 많았다. 다음은 건설부대원출신의 한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지난해 9월 한국에 입국, 지난 1월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무소)을 졸업한 '615 관리국' 예하 407군부대(일명 까마귀 부대) 하사출신 임영수(25, 가명)씨는 8일 기자와 만나 "90년대 중반 식량난 시기에 안변발전소 건설에 참가한 군인 3만 명이 공사 중 죽거나 허약(영양실조)에 걸려 사망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407군부대는 고성군 위남리에 있는데, 부대 앞산 전체가 무덤으로 그곳에 3만 명이 묻혀있다"며 "우리는 임남댐을 가리켜 ‘죽음의 언제(堰堤)’라고 하고, 굴을 뚫는 야적장을 ‘죽음의 굴’로 불렀다"고 말했다. 임씨는 또 "지금 북한군 하급부대는 대부분 허약에 걸려 있다"며 "내가 소속한 부대는 나와 비슷한 또래 100명 중 군에 남은 사람은 5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임씨는 "2004년 7월 김정일이 407 군부대를 시찰한 적이 있는데, '우리부대는 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민가의 가축을 빼앗아와 식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한영진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2002년 입대하여 2004년 에 제대한 임씨는 “먼저 탈북 한 누이가 보내준 돈으로 어머니가 부대 간부들에게 뇌물을 고이고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자신을 “가정 곤난”으로 제대시켜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누가 그들에게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주었는가? 필자도 당시 1997년경 북한 함흥에 있는 언니 집에 먹을 것을 구하려고 장사를 갔던 중 함흥역 앞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였다. 함흥 역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며칠씩 기다리곤 했는데 역 주변에 유난히 “부상자”가 많은 것이 신경 쓰였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한 “부상당한 군인”들이 몇 명씩, 혹은 몇 십 명씩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자주 목격하고 놀라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였다. 하루는 참다못해 옆의 사람에게 조용히 물었다. “여기에 왜 부상당한 군인이 이렇게 많아요?” 그 사람은 여기 함흥에 북한에서 가장 큰 “정형외과”병원이 있어서 병원에 오는 군인들이 함흥에 특별히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금강산발전소 건설군인들이라고 했다. 오, 그러니까 요즘 TV에서 연일 떠드는 금강산발전소의 그 “유명한 혁명적 군인정신의 창조자”들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전쟁도 아닌 평화 시기에 부상자라니....나는 도무지 이 사실이, 아니, 이세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군인들은 대부분 의족도 없이 쌍지팡이를 짚고 상처나 대충 치료해 가지고 “명예제대”하여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 후 고향에서 보았던 휠체어에 앉아 거리를 다니던 이제 갓 20살도 안 됀 앳된 그 “제대병사”의 모습이 나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휠체어도 없어서 대부분의 “명예제대병사”들은 그냥 쌍지팡이에 인생을 싣고 다닌다. 과연 젊은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김정일이 요구하면 “조국을 위해 목숨도 바치고 팔 다리, 머리도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일생을 바쳐야 하는 가? 김정일은 과연 무슨 권한으로 2천만 국민의 목숨을 가지고 ”권력도박“을 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주었는가?” 나는 그들의 불행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혁명적 군인정신의 핵이고 북한에서 요란스레 떠드는 “선군정치”의 진실이다. 선군정치의 우월성이니, 뭐니, 떠드는 이들은 저들의 아무렇게나 “쓰고”, 출처불명의 글들을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놓고서도 아무런 책임감도 모르는 저희들의 그 행동이 우리 8천여 탈북자들과 2천만 북한 주민들의 아픈 가슴을 두 번 다시 멍들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경거망동”한 행동을 자제하고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2006년 8월 4일 최유나(2002년 탈북. 가명)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이새끼들 북한으로 가지는 않고 남한땅에서 혼란만 부추긴다. 그러고도 미제 콜라 컴퓨터 미국유학등 미국물 먹으면서 반미는 지독스럽게 하는 정일이 1소대
나라를 잘 못만난 탓으로 사랑하는 부모처자와 갈라져살아야하고,,, 언어도 통하지도 않는 남의 땅에서 부모 형제를 그리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이 댓거덩요
정말 천진한 생각이엿어요.. 군인이다 보니 난 정말 암것도 몰랏어요,,, 군인이라도 난 ㅋ 사관장 중대장 정치지도원ㅋ 분대장이 다 귀여워하고그러니깐 정말 고생이란건 모르고 군무생활을 보냇죠... 그러다보니깐 애들이 배고파하고 그럼 내거 안먹고덜어도 주고 그렇게 살앗어요... 님도 보아하니깐 군인 생활을 하던 사람 같이 느껴지네요... 그땐 정말 김정일 호위병으로잇는것이 자랑스럽고 다 날 쳐다 보는것같이 느껴지고 그랫죠,,, 짐 생각하면 얼마나 스치스런것인지 몰라요... 나딴에는 조국 통일을 위해 총잡고 나섯다지만 그것이 우리 인민을 얼마나 힘들게 한것인지 ,,, 물론 어느 나라나 군대는 다 잇어야죠,, 그지만 북한같이 군대를 더두엇다간 절대 안댐... 생지옥이대고야 말것임... 인권을 바로 잡기전에는 절대로 안댐
님 앞날을 위해서 힘차게 씩씩하게 걸어가자요... 힘을 내시구요
홧팅^^_^^
인민을 그렇게 많이 굶겨죽이구 파리잡듯 잡아죽이구 선군정치는 남아서
뭐하는데 인민이 있어야 군대도 있고 선군정치를 하든 뭐하든지 할게아닌가
결코 오래갈수 없다는것이 역사의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