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나의 꿈 - 평위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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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반도를 사랑합니다. 나는 한반도의 사람과 강산을 사랑합니다. 나는 한반도의 문제에 관하여 두 가지 꿈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한반도의 남녘땅 대한민국에 온 것은 1989년 4월이었습니다. 후에 사석에서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중국대학교의 총장으로선 내가 제일 먼저 한국을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방문 목적은 두 나라 대학교간의 친선과 협력을 도모하려는데 있었습니다. 나는 한국에 와서 배재대학교와 광운대학교, 중국요녕대학간의 자매결연 협의서를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이것은 모두 "비밀"적인 협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중국 1200여개 대학교 중에 요녕대학은 제일 처음으로 한국의 두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두 가지 큰 수확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대학지간의 자매결연 협의서에 사인을 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내가 "4근론(四近論)"을 제출한 것입니다. 중국과 한반도와의 관계는 천만가지로도 설명할 수 있으나 이를 요약하여 보면 곧 한글자-가까울 "近"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가까운 4가지는 역사적으로 가깝고, 지역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가깝고, 감정마저도 가깝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할 때는 중국의 심양-홍콩-서울 노선으로 우회 방문이었습니다. 나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오면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을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하루나 되는 시간을 돌고 돌아서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져보았습니다. 그 회답은 곧 "가깝고도 멀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멀다"고 하는 것은, 곧 두 나라간에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한국을 방문한 후의 첫 번째 꿈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곧 "수교" - 중한 양국은 반드시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며 그것도 하루속히 공식적인 수교를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오직 수교를 하여야 만이 우리들 양국 사이의 공간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다는 것을 없애고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래야만 그 어떤 나라간에도 가질 수 없는 "四近" - 네 가지 가까운 장점이 빛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중한 양국의 수교를 하루 빨리 추진하기 위하여 한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즉시, 중국정부의 유관당국에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 제목은 《한국의 중국붐과 우리들의 대책》으로 6가지 내용이었는데, 그 주제는 곧바로 하루 속히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92년 8월 22일 이 날에 나의 첫 번째 꿈은 현실로 실현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四近" - 네 가지가 점차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급속히 가까워 졌습니다. 중한수교 후 - 즉 1993년에 나는 요녕 중한경제문화교류협회를 창설하였고 중한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양국 지인들의 공동추천으로 이사장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중한양국의 경제문화교류의 붐을 조성하기 위하여 또한 이에 수요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중국에선 제일 처음으로 나는 요녕대학에 한국학과와 한국연구센타를 창설하였고 《한국논총》이란 논문집을 출판하였습니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후 요녕대학과 한국대학 간에는 학술교류 및 협력합작이 부단히 확대되었습니다. 현재 요녕대학은 한국의 이화여대, 경희대학 등 9개 대학교와 자매결연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1990년 8월 나는 처음으로 한반도의 북녘땅-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아름다운 평양, 수려한 금강산과 묘향산 또한 그렇게 순박한 인민들, 이는 모두 나에게 아름다운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바로 첫 방문에서 나는 판문점을 참관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38선의 북측에 서서 남쪽을 멀리 내다볼 때 나는 깊은 사색에 잠겼고 바로 그때에 나는 또 꿈을 꿨는데 그것은 남북의 "통일"이었습니다. 한반도는 반드시 통일이 되야 하며, 한반도는 반드시 평화적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한반도 "통일의 꿈"이었습니다. 나의 첫 번째 꿈 "수교"는 실현되었는데 나의 두 번째 꿈 "통일"은 언제나 실현될까요? 1993년 8월에 금강산에 올랐고 그해 10월에 나는 금강산과 인접해 있는 춘천을 방문했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담아 시(時) 한수를 썼습니다. 어제는 금강산의 물을 마셨는데 오늘은 춘천의 물고기를 먹는구나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그 언젠가 통일을 경축할 것인가?! 나의 한반도관은 곧 "통일"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곧 나의 소원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이것은 역사의 필연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의 관건입니다. 나는 중국인이지만 내 조국 중국못지 않게 한반도를 사랑합니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기 위하여 내 마음을 다 할 것이고 내 힘을 다 바칠 것이며 내 열정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분단된 남북학자들간의 접촉과 상호간의 이해를 추진하기 위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온갖 방법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남북학자가 참석할 수 있는 국제세미나를 조직했습니다. 1994년이후 나는 심양시에서 학술회의를 4번 가졌습니다. 매번 회의전의 준비사업으로 남과 북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을 방문한 것은 대회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고, 북쪽을 방문한 것은 학자를 초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매번 회의 때마다 남과 북의 학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회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남북의 학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면서 즐거워하는 장면을 보았을때 나는 얼마나 고무되었는지! 그 기쁨은 이루말 할 수 없었습니다. 상면(相面)! 만나야 만이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해야만이 서로를 포용할 수 있고 포용해야만이 비로소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화해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야 합니다. 다음은 사단법인 단체를 창설하였습니다. 1993년 나는 중·한 경제문화교류협회를 창설했고, 또한 한반도 남과 북의 교류를 추진하기 위하여 나는 또 1995년에 "요녕동북아경제문화촉진회"를 창설하였고 공동추천으로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나는 여러차례 동북아촉진회 회장의 명의로 북이 심양에서 개최한 고 김일성 주석 저작전시회 및 주체사상토론회에도 참석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자그마한 일을 했는데 결코 자기 자랑은 아닙니다. 그것은 1996년 북녘이 수재로 인하여 식량난으로 어려울 때 나는 나의 고향 - 북경교외지역에서 모금을 하여 동북아경제문화촉진회의 명의로 북녘에 50톤의 밀가루를 지원했습니다. 비록 그 수량은 많지 않았으나 곧 나의 마음과 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四近論"과 "통일관"은 나를 지배하여 많은 일을 하게 하였을뿐더러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내가 생각은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의 하나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상호접촉과 협력을 추진하기 위하여 또한 중·한 경제문화교류를 추진하기 위하여 나는 5년전에 한가지 새로운 구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울 → 38선 → 평양 → 신의주 → 단동 → 심양→ 북경. 즉, 서울발 → 평양체류→ 북경행의 "국제평화의 대로"를 개통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중의 하나는 관광버스의 운영입니다. 북방내에선 그들의 안내규정에 따르고, 운영자는 승객인원수에 따라 북방당국에 통과료(매 인당 100$)를 납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평화와 친선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곧 통일과 번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오늘 이 "평화의 대로"에 대한 구상을 한국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나의 상상이 실현될 지 안될지를 불문하고, 또한 나의 이 구상이 정확한지 아닌지도 불문하고, 이 모두는 한반도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시한 것이요, 나의 정과 나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느 분이 나와 같이 이 "평화의 대로"를 개통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동참하시려는지요? "평화의 대로"가 하루 빨리 개통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 평위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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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폐쇄된 감옥의 땅임을 잘 아신다면, 당신같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좋은 생각이지만, 평위쭝씨는 생각을 좀 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개방하려 하질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선 그 무슨 방법으로도 소용없는 일이지요. 아니그렇습니까? 평오쭝씨.
여러가지 양식 구호 물자 등등, 그러한 것들이 가여운 북주민의 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북정권체재만을 연장시켜 줄 뿐, 결국 북주민만 죽어 납니다.
북 정권이 오픈하질 아니한다면, 그 무슨 좋은 아이디어도 부질없는 것이지요.
중국 위정자들은 꽉 막혀 있습니다. 세계인이 모여 살고있는 중국은 합중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진데, 왜 북주민들을 허용해 주려 하질 않는거죠? 왜 북으로 돌려보냅니까? 그로인해 숱하게 죽어가는 북주민의 생명을 생각 좀 해 보세요. 진짜 신경질 나네요.
북한 정권은 무너져야 합니다. 그것 이외엔 방법이 없어요. 아니면 중국이 북주민들을 좀 도와주시던가, 제발이지 국경선을 넘어온 북한주민을 북으로 내쫓지 마시구요. 인간적으로 대해 주셔야죠. 그 무슨 야만 미개국 처럼 인신매매단에 팔려서 성적 노리게가 되게 하고, 부려먹다가 북으로 내쫓아 버리고,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중국은 아직 멀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중국이 되려면, 남북한 양쪽 오락가락하는 중국 위정자들의 심사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 입니다.
- 인왕산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1-23 03:2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