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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새 밀레니엄을 맞으며 - 허광일
동지회 16 4011 2004-11-18 00:11:42
나는 함북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 남다른 꿈과 포부를 안고 정치일꾼이 되기 위해 군관학교에 가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정규대학 입학마저 허용되지 않아 전문학교 졸업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제대 후에는 사로청 부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정치적 진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연속된 좌절 속에서도 당시 북한체제에 곱게 길들여진 나는 아무 불평불만 없이 때묻지 않은 충성심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키웠다. 적어도 내가 감수해야만 했던 모든 불이익이 어머니의 고향이 남한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임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86년부터 7년간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생활하던중 한국의 발전상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밤들을 뜬눈으로 지샌 끝에 탈출을 결심했고, 곧 실행에 옮겼다. 북한 안전요원과 러시아 경찰의 끈질긴 추적과 감시를 따돌리며 3년 동안의 유랑생활 끝에 1995년 9월 그토록 갈망하던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처음 밟아본 이 땅은 정말 내 겨레, 내 동포가 있고 자유와 민주가 살아 숨쉬는 진정한 인간이 사는 땅이었다. 서울은 나를 상상할 수 없는 환희와 희망에 들뜨게 만들었다. 그저 꿈만 같은 세월이 잠시 흘러갔다.

그러나 이 땅도 사람이 사는 곳, 잠시동안의 환희에서 벗어나자 생존 문제가 닥쳐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하는 자본주의 제도의 속성을 미쳐 깨닫기 전에는 모든 풍요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했으나 그것은 내 자신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취해야 할 전리품인 것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쟁에 대한 중압감이 물밀듯이 엄습해 왔다.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가 남한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가?

내 자신이 마치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상태에서 혹한의 들판에 서있는 것과도 같은 무력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북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여기서 출세 못할까?"하는 오기가 생겼지만 현대식 건물과 차량, 컴퓨터로 가득찬 서울 시내를 보노라면 슬며시 두려움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러한 때 나의 사회정착을 지도해 주신 분들의 격려와 충고, 종교적 믿음은 큰 도움이 되었다.

국가에서 준 정착금과 러시아에서 가지고 온 단 몇 벌의 옷가지가 든 가방만을 들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조그만 지하 냉면공장이었다.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면서 월 60-7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심신이 지쳐가면서, 이 사회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후회와 번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밤참에 소주 한 잔 걸치며 그늘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노라면 이것이 인생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한 만큼 분명한 대가가 돌아오는 노동의 가치도 깨달았다. 인생 40이 넘어서야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았으니 그 당시 나는 말 그대로 자본주의체제하의 신생아였던 것이다. 가끔은 내 인생의 두번째 요람기와도 같은 냉면공장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몇 개월 뒤 친형제 이상 열심히 뛰어주신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전력회사에 취업이 되었다. 냉면공장에 나갈 때는 그럴듯한 직장에 취업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괜찮은 직장을 갖고 보니 북한에서의 경력이 고려되지 못한데 대한 개인적 불만과 낮설은 업무처리에 따른 고충이 뒤따랐다. 이 벽을 넘지 못한다면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각오로 40을 넘긴 나이에 난생 처음 보는 컴퓨터를 익히기 위해 야간 정보통신학교에 다니는 등 주경야독하면서 직장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지금은 비교적 업무를 원만히 수행할 수 있게 됐음은 물론 맡겨진 민원업무 처리를 열심히 해서 칭찬을 받기도 한다. 이제 어느 정도 남한사회를 알 것도 같고, 내가 가진 경쟁력과 미래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것도 같다.

나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걸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의 삶은 노력하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확신이 있기에 크게 염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 한 켠에 있는 저쪽 북한을 생각하면 가슴이 편치 못하다. 내 형제들이 고통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새 밀레니엄이 다가오고 있다. 분단국이란 오명을 짊어진 채 새 천년을 맞이하게 되어 안타깝지만 나에게 새 천년은 희망과 소망 그 자체이다. 새 천년에는 자유인의 한사람으로 떳떳하게 살면서 시대와 민족 앞에 놓인 사명감을 자각하고 작은 힘이나마 통일을 위해 온 몸을 바칠것을 다짐해 본다.

1999년 12월 허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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