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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자유 - 김철민
동지회 19 5836 2004-11-18 00:25:49
평양에 있는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나는 자유를 찾아 1999년 8월 대한민국에 왔다. 중국에서의 1년 남짓한 은신생활을 끝내고 오매불망 그리던 한국땅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을 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소리높이 외치고 또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자유 만세!"

정부의 탈북자 사회정착 교육을 마친 나는 북한에서의 전공을 살려 바로 이공계 대학에 입학했고, 현재 경기도 안양에서 생활하며 특별한 근심걱정없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곳에서 편안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노라면 가끔 북한에서의 고달팠던 생활이 생각난다. 특히 이곳 대학식당의 풍요로운 식단은 진리탐구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울 궁리에 가득찼던 대학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수업을 받고 있노라면 배고픔 때문에 교수들의 설명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고, 어디 가서 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이 내 머리를 어지럽히곤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지난 2년은 그렇게 갈구해 마지 않던 자유를 한껏 누리며 산 기쁨의 나날이었고, 진정 모든 것을 내가 직접 선택하고 자신의 자유의사로 행동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먼저 대한민국의 물질적인 풍요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활용품들을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조건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고, 특히 주민들의 식생활이 너무도 다양하고 넉넉함에 놀랐다.

작년 여름 어느 때인가 감기몸살에 걸린 적이 있었다. 식사시간이 되었지만 식당까지 밥 먹으로 가기가 힘들어 그냥 한끼 굶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나를 본 옆방 친구는 내게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고 그런 다음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20분도 지나지 않아 점심식사가 내 앞에 놓여졌다. 한기를 느끼던 차에 먹는 뜨끈뜨끈한 만두국이 얼마나 맛있던지... 먹고 싶은 음식이 가정까지 배달된다는 사실에 또 얼마나 놀랐던지...

내가 대한민국에 와서 누린 자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우선 나는 이곳에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실감했다.

흔히 인간을 말하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말은 인간의 속성이거니와 인간이 자기 의사를 자유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와서 보니 국민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남김없이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날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보고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북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느날인가 거리를 가다가 어떤 기업소 노조원들의 집회를 목격하게 되었는데 연설자의 말을 들어보니 해고를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 연설자의 호소를 들으면서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다음으로 나는 정치활동의 자유를 체험했다.

북한에서의 선거는 유일당인 조선노동당에서 내세운 대의원 후보자 한 사람에 대한 강제적 찬성투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러 당이 있고 그 당들에서 내세운 후보자 가운데서 유권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나는 민주당, 한나라당, 자민련 등 여러 당 후보자들의 선거유세를 다 지켜본 다음 내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찬성의 한 표를 던졌다. 선거장을 나서는 나의 마음은 자기 권리를 행사한 기쁨으로 벅찼다.

언론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거주이전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현실을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이 필요에 따라 거주지를 옮기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은 극히 초보적이면서도 기본적인 권리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권리가 보장되느냐 안 되느냐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의 징표로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에 와서 내 의사에 따라 내 거처를 정했고, 지난 2년동안 부산, 경주, 설악산 등 국내의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다.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 또한 현재의 내게 주어져 있다.

나는 태어나서 이제껏 누려보지 못한 자유를 만끽하는 기쁨을 느끼면서도 가끔씩 씁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들을 접할 때나, 각양각색의 네온싸인과 노래소리가 뒤섞인 유흥가에서 만취한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우울한 느낌을 받는다.

혹자는 내 돈 가지고 내가 즐기는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신성한 자유에 대한 모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유는 일정한 절제와 한계를 전제로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을 넘어설 때 자유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무질서와 방종으로 흐르게 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자유는 수많은 우리 조상들과 선배들의 피나는 노력과 고귀한 희생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이 아니던가?

우리 탈북자들의 경우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이별, 집요하게 뒤따르는 죽음의 그림자를 극복하고 현재의 이런 자유스런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얻은 자유를 우리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올바로 누릴 줄 알아야 하며 잘 계승하고 보존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오늘날 개혁개방은 세계적 추세이며 그 어떤 힘과 수단으로도 막을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거센 흐름이다. 머지 않아 북한 사람들도 남한 사람들의 자유롭고 풍요한 생활실상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특히 민주주의의 불모지인 북한의 실상을 한시도 잊지 않고 북한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머지 않아 사랑하는 북한 동포들도 우리와 함께 삶의 자유를 누려나갈 그 날이 오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2001년 8월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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