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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에게 말뚝박기를 시키다니 - 박광일
동지회 45 9661 2004-11-19 21:04:04
박광일 前북한 중등학교 교사

내가 태어난 곳은 함경남도 함흥시이다. 나는 거기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함남 함흥 의 성천강고등중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일본에 사시다가 북한의 허위선전에 속아 1960년대 초 입북했으나 다행히 일본 친척들의 도움으로 가정형편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였다.

이런 평범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내가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주변의 친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다가 남한방송을 듣게 됐고, 얼마 뒤에는 남한영화를 보고 나중에는 남한의 드라마 테이프까지 돌려보다가 국가안전보위부의 그물망에 걸려든 것이다.

1995년부터 북한에선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을 때였다. 1990년대 후반은 기아와 아사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되다시피 해 함흥시 어딜 가도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북한에 대한 환상을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위부가 나를 잡자고 수사망을 좁혀오니 앉아서 잡혀 죽느니 탈출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피눈물을 머금고 1998년 10월 부모ㆍ형제를 뒤로 하고 두만강을 건너게 됐다. 중국에만 가면 살길이 열리겠지 생각했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국경을 넘은 지 일주일쯤 지나 좀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吉林(지린)성 허룽(和龍)의 버스터미널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공안은 나를 허룽시 공안국에 유치시켰다가 다시 북-중 국경지역인 난핑(南平)에 위치한 중국 변방부대로 호송했다가 그 다음날 함북 무산군 칠성세관을 통해 다른 탈북자 15명과 함께 북송시켜 버렸다.

이미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주변 대부분 탈북자들도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질려있었다.

무산군 보위부 유치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에게 「민족반역자 새끼」ㆍ「죽어야할 새끼」로 불려졌고 잠도 안 재우고 각목과 각종 고문기구를 동원하는 매질 신문이 시작됐다.

무산군 보위부에서의 조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였다. 이틀간의 조사를 마치고 15일 후에 함북 도보위부(청진)에서의 한달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지옥중의 지옥 경험이었다.

여기서 7일간의 조사는 차라리 목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감방 계호원(간수)들이 구둣발과 각목으로 나에게 뭇매를 안겼다.

북한 인민군 군화는 워낙 단단하게 만들어져 그것에 차이면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낀다.

구둣발과 각목으로 얼마나 맞았는지 처음엔 살이 찢겨나가는 듯이 아프다가 나중에는 정신마저 몽롱해지더니 각목에 맞는 부위에 퉁퉁 소리만 날뿐 감각조차 없어졌다. 이때 매 앞에선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졌고 살점이 뜯겨 옷이 피범벅으로 변했다.

초죽음 상태에서 신체검사라는 것을 하는데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좋은 옷을 입었다며 또 매질을 했다. 팬티까지 다 벗긴 후 감옥 구석에 무릎을 꿇려 앉히더니 또 구둣발로 나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조사관에게 제때에 대답을 못한다고 매질하고, 정신을 잃으면 물통에 머리를 처넣고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곤 했다. 너무 맞아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맞아도 제대로 불지않는다고 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뒤로 비틀어 묶어놓고 조사실 천정에 거꾸로 매단 뒤 또 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피가 머리로 쏠려 괴로워 버둥거리면 묶인 팔다리가 조여와 더 고통스러웠다. 짐승처럼 매달려 있자니 매 맞는 고통보다 짐승이 된 것 같은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렇게 7일이 지나가니 인간이 아닌 진짜 짐승 같은 폐인이 되고 말았다.

11월 초겨울의 날씨라고는 하지만 북쪽의 추위는 무척 매섭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만신창이 몸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까지 찾아오니, 젊고 건장했던 내 몸은 말라 비틀어지고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도보위부에서 30일간 조사를 마치고 나는 함북 농포집결소에 이송돼 28일간을 구류됐다.

내가 정치범수용소로 가지 않고 단순 경제범으로 취급돼 비교적 가볍다는 농포에 간 것은 예전 남한 비디오를 함께 봤던 친구들이 함남 도 안전국장 아들, 도당 행정부장 아들 등 고위층 자녀들이 함께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간부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살리려고 나의 정치범수용소로 행을 면하게 해준 것이었다.

농포집결소에는 남자 60명, 여자 70명의 탈북자들이 수감돼 강제노동을 하는 곳이었다. 오전 6섯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먹는 것이라고 콩찌꺼기로 만든 주먹밥이 고작이었다.

보위부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지만 매일 두세 명의 탈북동포들이 시체가 돼 가마니에 둘둘 말려나가 땅속에 묻혔다. 강제노역장 역시 사람 죽이는 도살장일 뿐이었다.

나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여서 집결소 구석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렸다. 오죽했으면 수감돼 있는 사람들조차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은가 혀를 찰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집결소 요원들이 사람들을 모두 앞 마당으로 불러세웠다. 나까지 모두 끌고 갈 정도니 무슨 큰일이 난 듯싶었다. 그때가 아마 그해 12월 초순 정도 됐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 대의 지프차가 오더니 차에서 임신한 5명의 여성들이 내렸다. 내 처지도 짐승처럼 됐지만 임신부라 그랬는지 그들이 더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농포집결소 소장이란 자의 변태적 야만행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해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조국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중국 씨종자까지 배왔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가 어디있겠는가』라며 어떤 심판을 받는지 똑바로 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남북한 모두 소꿉 시절 즐겨하던 놀이인 말뚝박기(북한에서는 말 타기라고 함)를 여성들에게 시키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자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임신한 여자들을 허리 굽혀 늘어서게 하고 거기에 남자들이 차례로 올라타 마치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두 발로 여성의 배를 힘껏 걷어차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농포집결소 소장의 개인적인 지시인지 아니면 상부의 지시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런 일들은 어디가나 비일비재한 것 같았다.

북한 당국도 이런 야만행위를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탈북자는 잡혀오는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니까….

남자들의 발길에 배를 차인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하혈하며 쓰러졌고 어떤 여성은 기절한 채로 질질 끌려갔다.

정말 북조선이 갈 데까지 가는구나, 아무리 죽여야 할 적이라도 최소한 지켜야할 인간의 존엄성이 있지 않은가.

김정일정권은 이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타락했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말살했기 때문에 이제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나는 정말 기적같이 농포집결소에서 풀려났고, 다시 탈북해 지금은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현재 서울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에 이렇게 슬픈 역사가 언제 또 있었던가? 동족에 의해 무참히 유린당하는 또 다른 우리 형제의 참상을 과연 외면해도 괜찮은가?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정신 나간 반인륜적인 독재권력과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 전에 어느 정당 관계자들이 탈북실태조사라는 것을 하고 돌아와 발표한 내용을 보고 정말 격분을 넘어 허탈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탈북자는 경제적 이유든, 정치적 이유든 탈북하는 순간부터 「민족반역자」로 낙인된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내부규정에 의해 처벌의 강도는 달라질 수 있어도 그들이 겪는 야만적인 고문과 학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반인륜적이다.

일부 학자들과 소위 진보단체에서 떠드는 「경제적 유민」이니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외국에 이민간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돕는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을 조그마한 이익을 좇는 브로커로 매도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억압해도 참고 견디라는 말밖에 안된다.

다행히도 남한 형제들이 외면하는 동안 외국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탈북자문제에 관심을 가져줘 그나마 위안이 된다.

탈북자들에 대한 외면은 인권에 대한 외면이며, 이 죄악은 고스란히 남한 형제들에 되돌려지게 될 것이다. 역사는 악랄한 독재자를 반드시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다./nk.조선

2004년 11월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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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이민복 ol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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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희 2005-07-19 21:18:49
    박호일님은 무슨 근거로 거짓말이라고 해요? 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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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 2005-08-14 00:18:22
    한심한 박호일님,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가 거짓말인데? 겪어본 사람들은 다알아요. 저것보다 더 한것도 아주 많아요. 윗글이 전부 진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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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일 2005-08-17 00:13:03
    박호일씨 북한에 한번 다녀오슈
    무엇때문에 목숨걸고 탈북하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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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 2005-08-18 21:38:21
    박호일씨 너무하군요.
    당신이 북한 사람 맞아요.
    난 당신을 어떻게 하나 북한으로 다시 보내겠어요.
    가서 직접 맛 보고 오세요.
    거기에 난 더 보태자고 하는데 뭐 거짓말이라고 너 혹시 빨갱이가아니야.
    분통해 죽겠다는데 거짓말이라고 그랬다가는 어디가서 칭찬을 못받아. 너아직 물정을 알자면 철부지 아이같아.
    북한이 그렇게 좋은걸 오긴 왜 한국으로 왔지
    사람죽이는 나라 썩어빠지 세상
    박호일 내 말 똑똑히 들어라.
    만약 우리 북한동포들이 이사실을 안다면 널 죽이자고 할거다.
    정신 차려라.
    여기는 북한이 아니라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이란 말이다.
    아무 말이나 할수있단말이다.
    넌 무엇이 무서우냐
    아직 김정일 사상이 있는것같구나.
    우리를 이지경으로 만든것이 누구냐
    됐다. 시간이 없어 오늘은 이만하겠다.
    의문이 간다면 이전화번호에 전화하여라.
    010-7169-609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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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 2005-08-18 21:53:11
    박광일씨 반갑습니다.
    저도 함흥시 성천강구역 상신흥도에서 살았어요
    여기에서 함흥사람 처음 만나네요.
    저도 헤산으로 잡혀가 머리를 맞아 저의 머리를 맞아 저의 머리는 간질이라는 병이 남아있습니다.
    다행이도 지금 초시기되여서 약만 먹으면 된다고 합니다.
    친척도 없이 지내는 저지만 함흥에서 왔다는 광일씨의 말을 듣고 너무 반가워서 다시 이글을 씁니다.
    전 지금 pc방에서 일해요.
    여기서 일하면서 모든것을 알게 되요
    광혁씨 시간이 있으면 진지하게 쓰고싶어요.
    그럼 오늘 이만 할게요.
    앓지말고 건강한 몸으로 힘을 내여 열심히 살아요.
    광혁씨의 앞으로의 희망과 앞날을 위하여 화 이 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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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2005-09-21 13:46:59
    답은 간단하네 박호일은, 북한의간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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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문자 2005-09-28 06:42:27
    글쓰신분의 심정은 저도 이해하나, 직접 그러한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남측 인사들이 북측의 거짓되고 조작된 상황들만 살펴보고 오다보니
    당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속에서 분노가 치미시겠지만 그걸 그들의 잘못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탈북자들을 이용하는 브로커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하여 하루라도 송금을
    지체하면 한국내의 거주지까지 찾아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애초부터 탈북자의 정착금을 노리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니, 정부당국에서 오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를 보시고 실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하실지 모르나
    하나의 나무를 보지 마시고 냉철하게 한국현실을 멀리서 숲을 보듯
    관찰해 보시면 제가 드린 말씀이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개인감정이 치우치면 제대로된 일을 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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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네, 2005-11-10 20:09:39
    박호일씨,'
    정말, 겪어보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되죠,
    저도 겪어보지 않은터라, 그 상황은 모르지만
    도와주지도 못할망정
    말이라도 마셔야지...
    왠 어이없는 말을 지껄이시는지요,
    정말 인간말종이시군요-_-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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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2005-12-13 12:30:28
    글을 읽어보면서 그장면이 뻔히 보입니다,눈물이 마구 쏟아지는데 박호일 저놈은 김정일이 발바닥 핧는 개가 분명하다.나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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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브르브 2005-12-21 10:57:33
    정말- 우리정부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탈북자들의 이런 참상을 알고도 뭐? 민족공조?
    이런 명분으로. 너무 무관심한거 같아 안타 깝군요.
    정말- 영화라도 만들어야, 관심을 가질거 같은데,
    아- 또 운동권 세력들이 이건 대를 위한 희생이라고 그러겠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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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호수 2010-11-05 18:00:06
    글쓴이는 박광일씨이고, 비난받는이는 박호일.
    이름이 유사하나 전혀 상관없는 사이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럼 박호일이 글은 지운겐가? 무개념상태에서는 함부로 댓글쓰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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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정 ip1 2016-12-21 15:03:28
    박광일씨 피눈물속에 사경에서 살아돌아온것이 너무너무기쁨니다
    내아들 김정복이도 1999년5월 중국 대련에서 공안에잡혀북송되였으니까요 박광일씨의글을보면서 아들생각에 피눈물이 흐름니다 대련항구에서잡혔으니까 남한으로 가려다잡힌것으로 정치범 수용소에 가지않았는지 생각됨니다 또아버지도 당원이고 정치군관이였으니까 아마더심하였을것을 생각하면 가슴이쓰리고 나혼자 이세상에 사는니 총이라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 보위부놈들을 싸죽이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에서 싸창총을 5천원에 팔겠다는 놈이있어 억척같이 돈을 벌었는데 7개우러동안 일한돈을 못받게되자 칼을 가지고 밤에 로반의 집에갔다가 파출소에잡히고 다행이 파출소장이 <니베이쵸센,,니 쩐썽신나 메이설 밍태 후이쟐라 >하면서 보수없이 양심적으로 일한사람에게 돈안주는 조선로반이 나쁘다면서 보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들과 갈라진지는 16년이 돼오지만 하루도빠짐없이 아들의소식을 기다림니다
    북한의 악랄성을 나는 잘압니다
    남한에서 악랄한 토막살인범죄사건이 일어나고있지만 북한에서는 독재정부가
    조직적으로 가장가혹한고통을 주고살인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고통때문에 죽고싶어도죽지못하게하는곳이 북한이라는것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북한을 긍정하거나 옹호하는자들을 더증오한다 그런놈들이 있기때문에 북한독재자들이 악을쓰고있는것이기때문이다
    우리는 북한독재자들과 한하늘을 이고는 살수없는 사람들이다
    김정은과 그반인민적 관료배들을 숙청하게될날은 기어이오고야말것이고 어둠은 가시고 새날은 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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