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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도 인간이다.(3) - 김혁
동지회 13 6169 2005-11-19 18:15:41
- 인간 세상 속에서 - 김 혁

나의 감옥생활

1999. 3. 24 ~ 11.12경까지 9개월이라는 감옥생활을 했다.
누구나 감옥이라면 수치스러운 곳이라 생각할 뿐 그 외의 생각은 즉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누구나 생각을 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감옥이라면 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본 감옥생활을 인간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곳은 사람을 처량하고 힘들게 만드는 곳이고 인간의 심령을 파고드는 상십령의 인적 드문 곳이다.
현실에 맞닥뜨리고 보니 흔히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태에 부딪혔다.
죄란 이 사회에서 현실태의 죄는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은 사람까지도 죄를 모면해주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사람을 잡아 먹었다 도적질을 했다 살인을 쳤다 강간을 했다 비법월경을 했다 등을 놓고 보면 자유가 없다는 점과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쥐어 주지 못한 상태에서 많이 일어난다.
지금 감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 예심을 받고 인권을 박탈당한 채 산지옥인 교화소로 가고 있다.
인권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에게는 천대와 멸시가 뒤따랐다.

10월 말경 우리 감방에 사람을 잡아먹은 죄수가 잡혀 들어왔다.
나의 감방생활에서 가장 인상이 깊게 한 사건이다. 그는 정신이 반은 나간 사람 같았다.
노래도 부르고 사람고기는 맛있다라며 외쳐대는 그의 머리에는 인간에 대한 이상마저 잊은 듯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질고 순한 송아지 같이 조용했다.

그는 가끔씩 살고 싶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다.
참으로 불쌍한 데도 있었다.
그는 온성읍에서 어느 한 탄광에서 일하였다.
아내와 아들애 (5살 정도)와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나 그것은 이제 전혀 다가올 수 없는 현실로 생각되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없어지고 그는 근 한 달을 애와 함께 남의 집 돼지죽물을 먹고 쌀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내가 집에 찾아와 중국돈 250원을 주고는 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그의 아내는 중국인에게 시집갔던 것이다.
남편을 저 버린 채 중국인에게 시집갔고 그는 혼자서 살아야 했다.
쪼개고 한 돈이 한 달 만에 거덜이 났고 그는 아들 애 동무가 집에 온 틈에 그를 목졸라 죽였다.
다리 한 쪽을 끊어 끓여 먹었던 것이다.
나중에 죽은 아이의 부모들이 신고하고 죽은 아이와 잘 놀던 집들을 사택 수색하던 도중 그는 잡혔다.
죽은 애의 부모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도중 그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것을 깨닫고 죄책감으로 인해 정신병에 걸렸던 것이다.

사실 사람은 배고픔에 시달리다 보면 자주 허상이 생기는데 그때의 허상이란 살찐 사람을 보아도 짐승같이 여겨지고 결국 잡아먹고 만다.
결국 나라가 박해지고 식량난에 허덕인 백성들 속에서는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는 정신이 되돌아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후회하기도 하고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자신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놓은 국가와 여자(아내)를 끝없이 저주했다.

그렇게도 어진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그것은 죄다 사실이었고 감옥에서 내가 만난 죄수였다.
그도 인간이다.
국가에서 제대로 식량을 내주고 월급을 주고 했으면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지금 조선 사람들의 희망이라면 강낭이 밥이라도 먹으며 사는 것이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범죄를 해가며 살아가고 그것마저도 두렵고 고정한 사람들은 다 죽어 버릴 것이다.

옛날 같으면 범죄인을 보고 침을 뱉거나 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정반대였다.
지금은 너무나도 퇴소자들이 많다 보니 누구나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먹을 것이라도 계호원들 몰래 건네 주곤 했다.
내가 재판을 오던 날 담배가 몹시도 피우고 싶어 17살 19살 짜리 형제들에게 담배를 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슬슬 피하며 담배가 없다고 했다.
그들의 경계심에 나는 울고 싶었다.
나는 사형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죄수라는 표징이 있기에 일할 수도 없었다.
나 역시도 학생 때는 죄수들을 피했고 무엇이 없는가고 하여도 냉정하게 없다고 했다.
그들도 그때 내 심정이었을 것이다.

몇분 안지나 두 젊은 여인들이 차단봉 초소로 왔다.
자동차를 타려고 온 것이다.
그 여인들은 나를 보고 전혀 경계심 같은 것은 없고 오히려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우리를 향한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 맞춘다.
동정의 눈빛을 보내며 음식도 몰래 건네주는 사람들은 그의 일가 친척들이 감옥에 갇혔거나 자신이 한번 감옥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와 반대로 경계를 하고 흘겨보는 이들은 한갖 부화하게 살거나 전혀 감옥이라는 곳을 간 가까운 친척도 없고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가보지도 친척 중 간이도 없다는 자체는 간부급들이나 송충이 같은 중간다리 놈들이 국가 양식을 야금야금 파먹은 놈들이 거의 절대수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좀벌레를 증오한다.
백성들이 죽어가는데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줄 그 자그마한 식량에서까지도 떼내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을 증오한다.
나라 백성은 어떻게 되건 자신들의 이속을 채우는 자들을 끝없이 저주한다.(계속)

2005년 10월 김혁

자료제공 : 북한인권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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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뭔지 고담녹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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