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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도 인간이다.(4) - 김혁
동지회 16 6282 2005-11-19 18:23:47
- 인간 세상 속에서 - 김혁

나의 감옥 생활

우리 감방에 무산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계호원들에게 항상 그살을 받으며 살았다.
계호원들은 그를 매일 자그마한 흠을 잡아 때리거나 벌을 세운다.
하지만 원래 도도한지라 그는 계호원들과 항상 맞서 싸웠다.
왜 때리는가 누가 당신들에게 때릴 권한을 주었는가 하며 맞섰다.
계호원들은 식사시간에 그에게 밥을 절반 덜어준다던가 아예 먹이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는 그럴수록 더 이악하게 달라 붙었다.
때리려고 쇠살창에 나오라고 하면 나가지는 않고 벽에 머리를 찧으며 매맞아 죽을 바엔 차라리 골 받고 죽겠다고 했다.
얼마나 계호원들이 지긋하게 굴었으면 쇠살창에 골을 들이 받고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기까지 하였다.
일명 앞서서도 말했지만 민지기라는 걸 했다.
이것을 하다가 계호원들에게 들키면 매맞는 것은 둘째고 민지기 밥까지 다 빼앗긴다.
사실 감옥에서 죄수들에게는 밥 한끼가 금같이 귀한 것이었다.
한 끼만 굶으면 형편없이 쇠약해진다.
사실 죄수들은 밥 한끼에 매달려 사는데 그것마저 빼앗기고 나면 결국 죽음의 길로 더욱 빨리 가는 것이다.
일반 범죄인들은 얼마 되지도 않고 거의 90% 소도적이나 비법월경이나 살인범 등이었다.
이 범죄의 모두가 식량난으로 시작된 것이다.
나라가 흥하면 범죄도 줄어들 것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조차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사회주의 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식이었다.

한번은 내가 라이타 철쪼각으로 칼을 만든 적이 있었다.
사실 감방 안에서는 칼 못 바늘 등 천 외에는 모든 것이 금지였다.
라이타 철퇴를 펴 가지고는 계호원들의 눈치를 봐가며 벽에다 갈아서 날을 세운 것이 결국 칼로 사용되어다.
그때도 칼을 갈다가 나는 그만 제일 악한 계호원에게 발각되었다.
그는 나의 왼팔을 쇠살창 밖으로 내온 다음 그 칼로 나의 왼쪽 팔을 죽 그어 놨다.
연약한 팔목에서는 붉은 피가 샘 솟았다.
짜릿한 팔목을 부여 잡고 나는 소리질렀다.
지금도 그리 깊지 않은 상처 자욱을 바라 보노라면 그때 생각이 가끔씩 났다.

한번은 동바늘을 만든 적이 있었다.
여느 손바늘과 다름없는 바늘을 만들기란 꽤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보통 하루에 1개씩 바늘을 만들었다.
깡쇠줄을 가져다 앞 모퉁이가 세밀하게 뾰족하게 한 다음 바늘 굵기보다 조금 더 굵은 구리줄을 가져다 바늘처럼 길게 잘라서 뒤면을 약간 두드려 주면 거의 바늘처럼 납작해진다.
두드릴 것이 없다 보니 이발로 물어서 만든 다음 강쇠 끝을 구리줄 뒤면에 중심에다 놓고 계속 비비면 구리가 쇠에 조금씩 갈린다.
그리하면 나중에는 구멍이 나지고 구멍 뚫은 것을 가져다 벽에 대고 골고루 비비면 바늘 굵기 만큼 된다. 이것은 사회 바늘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동바늘이 되었다.

한번은 그것을 12개 만들 때 계호원에게 들키우고 말았다.
계호원은 나의 손등을 바늘로 마구 찔러 놓았다. 바늘은 손등을 뚫고 손바닥까지 삐져 나왔다.
한참 찍고 난 그는 성이 조금 가라앉자 다른 감방쪽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바늘이 10개 더 남아 있었다.
비록 도구는 다 빼앗겼지만 나는 신심을 잃지 않았다. 싸우고 싶었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약한 구석에 빠졌을 때 일생에서 가장 큰 힘을 낸다.
손을 내려다 보노라면 내가 왜 이렇게 손등이 퍼렇게 멍이 들도록 찔려야 하는가 내가 왜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억울한 생각에 항의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몸은 너무나도 쇠약해져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화장실에 갈 때도 네 발로 기어서 가야했고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벽을 집지 않으면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390g밖에 안 되는 강낭이 껍데기 밥을 먹어야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인데다 국까지도 맹물에 염무우 몇 조각을 둥둥 띄워 놓고 주는 것이다.
그 감옥에서 3달이면 허약자가 되고 4달 부터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정신적 싸움을 해야했다. 100%중 90%가 허약자였다.

그들은 몸과 마음까지도 허약에 걸렸다.
누구나 쉽게 허약자라고 생각하면 그저 몸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다른 심정까지는 다 깨달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 고통을 말이다.
그들의 심정을 겪어보지 못하고는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최악에 다달은 그들의 심정을… 누구나 다 힘든 경험을 느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 땅에서 인간의 권리를 제쳐놓고 먹을 것 조차 없어 굶주리는 범죄인들 그들도 인간이다.
그들에게도 사랑이 있고 양심이 있고 도덕이 있는 두뇌를 가진 인간이다.
단지 악한 흐름 속에서 악하게 살아나야 한다는 잠시의 마음 뿐이다.
누가 누구를 고발하고 계호원들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먹는 것 이들도 막다른 굽이에 이른 이들이기에 택한 최대 생명유지의 방법인 것이다.

일명 감방에서는 도덕도 의리도 양심도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인이기 전에 사회의 떳떳한 사람이라면 그렇지가 않았을 것이다.
대개 퇴소자들의 의리는 금주고도 못 살만큼 높다.
고생 속에서 살아난 이들의 의리란 참으로 무서운 역사를 기록한다.

산 지옥이 탁구알들에게는 희망이었다.

누구나 이 제목을 보면 의문점이 생길 것이다.
산지옥이라는 말은 사람이 살아는 있으나 지옥 같은 곳이라는 데서 표현되었고 탁구알이란 형기를 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죄수들이 그 죽음의 곳이나 다름이 없는 산지옥을 희망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단 감옥에 앉아 4개월만 있으면 죽어버린다.
허약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먹지 못해 배가 고팠고 고프다 못해 배가 등까비에 붙는 판이다.
390g을 하루동안 떼우기란 참으로 힘이 든다. 그것도 쌀밥이나 강낭밥이라도 괜찮다.
통강낭이 껍질을 벗겨 찐 것을 밥이라고 주니 영양성분이란 하나도 없다.
다만 두부 콩 반줌도 못 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뿐이다.

그러한 것은 또 괜찮은 축이다.
일광욕을 시키지 않아 해를 못보다 보니 얼굴이 하얗게 죽은 사람이나 죽었다 살아난 사람 같았고 무섭고 힘든 곳에 있다 보니 눈은 무서움을 줄 정도로 정기를 낸다.
물이 잘 나오지 않다 보니 세면은 물론 발까지도 씻기 힘들었고 온몸과 다리 할 것 없이 기름기 없는 몸에서 마른 살이 한줌씩 떨어진다.
마치 털갈이를 하는 개나 가죽을 벗는 뱀처럼 말이다.
보통 하루에 한줌 거의 되는 마른 살이 떨어져 비듬처럼 나왔고 씻지 못한 몸에는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났다.
이와 벼룩이가 많다 보니 머리에는 서캐가 하얗게 붙어 있었고 옷의 매듭들과 오바로크한 자리들까지도 이와 벼룩이가 득실거렸다.
그러기에 옷을 널바닥에 놓고 뒤축으로 밟으면 이와 벼룩들이 소리를 내며 터졌다.
옷에는 온통 피자욱이고 그로 인해 종처라는 병이 엉덩이에 나다 보니 제대로 앉아 있기도 불편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다 써보아도 이와 벼룩이가 병을 옮기며 다니니 병이 악화되면 되었지 정지되지는 않았다.
변을 보면 물이 없어 나무 막대기로 구멍에 밀어놓고는 만다.
변기 냄새가 여름이면 코를 찔렀고 정신까지 흐려지게 만든다.
그러다가 변이 넘어 나면 긴쇠줄로 쑤셔야 했고 그래도 내려가지 않으면 깡짜로 손을 넣게 한다.
흘러 넘어 나는 변 속에 손을 넣어 막힌 것을 뚫으려고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조차 뚫지 못하면 계호원의 몰매를 받아야 했다.
참기 힘든 감옥 생활…매일매일 반복된다.
계호원들에게 걸리지 않으면 그것은 운 좋은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걸리면 매를 면치 못했을 뿐 아니라 힘든 교정까지 받아야 했다.

한번은 최가 성을 가진 계호원이 있었는데 우리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교정을 주었다.
무더운 한여름이라 창문을 열지 않고는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창문을 닫아버리고 엉뎅이 밑에 깔고 앉은 옷과 동복 심지어 양말 방석까지도 몽땅 입게 했다.
입지 않거나 감추려고 하는 경우에는 무서운 매가 안겨지기에 모두들 자신들의 입지않던 옷은 물론 양말까지도 다 신었다.
무더운 여름과 함께 두터운 동복까지도 입고 있으니 땀이 뻘뻘나고 나와 같은 허약한 사람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힘들었다.
우리 감방에는 80살 넘은 할아버지와 40살이 넘는 막내아들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늙은이라고 해서 이런 교정에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병세와 함께 쓰려지셨다. 하지만 계호원들에게는 이런 일이 보편적이었다.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그대로 시켰다.

그래도 이런 데는 여자들이 괜찮았다.
역시 여자란 예술적인 존재로써 애교로 남자를 녹이는 위력한 무기가 있기에 항상 제외될 때도 많았다.
계호원들과 애교도 쓰고 말도 하며 계호원의 정신을 완전히 자신들의 방에 쏠리게 한다.
그럴 때면 남자들이 조금 편안했다.
하지만 계호원들은 여자들에게 악하게 굴지는 않는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듯이 웃는 여자들에게는 같이 웃으며 농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깔깔 거리며 웃는 여자들을 보고 남자들은 증오하기도 한다.
질투라는 것보다도 다 죽게된 남자들에게 있어서 옆에서 웃고 떠드는 것은 다 죽은 송장들 앞에 놓고 결혼 잔치를 벌리는 격이나 한가지였다.
그와 반면에 좋은 점도 없지 않았지만 다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그런 점이 보일 리 만무했다.

약이 없이 결핵, 폐렴, 설사, 감기 등의 무서운 병이 돌았고 그 병으로 인해 죽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감옥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소원이 있으니 그것은 밖에 나가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5평방미터도 채 안 되는 감방에서 해도 제대로 못보고 5달~6달 씩 있자니 그야말로 독수감방이었다.
이런 기일이 거의 도달해야 재판 받고 밖을 볼 수 있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재판날을 기다리고 교화소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도 만날 성 싶어 교화소가 어떤 곳인지도 채 모른 채 옛날 교화소를 생각하며 교화소도 서슴없이 가겠다는 범죄인들…과연 이들은 앞날보다도 한치 내일의 먹을 것을 생각하며 산다. 결국은 미래보다도 내일은 어떻게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가부터 앞선다.
나 역시도 감옥에서 미련 속의 악으로 살아왔지만 폐렴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1999년 9월경 함경북도 전거리 제12교화소로 갔다.
사실 6개월 만에 입소하러 가는 길이었다. 12명이 함께 갔다.
전거리 역전에서부터 30분 정도면 1호 초소에 도착한다.
교화소는 산새가 묘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1호 정문을 지나 20분 정도 걸으니 마을과 교화소 정문이 보였다.
우리는 본소 앞에 있는 수직실에 들어갔다.
나는 창문을 내다보다가 기호 책임자가 들고 있는 영수증을 보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자 그들 중 한 재범자가 그 영수증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우리는 범죄를 지었기에 인권박탈을 당하고 즉 인간이 아니기에 물건처럼 영수증으로 인예한다고 했다.
사실 영수증이라면 경리나 인수원이 물건에 해당한 영수증을 물건과 함께 받아오거나 받을 때 사용되는 물건 증서였다.
결국 그런 영수증을 사람에게 사용했고 그 영수증 속에 매여 있는 우리는 물건이 아닌 짐승이었다.
세상에 사람을 짐승으로 취급하다니…사람들이 범죄를 하게끔 만든 정권이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우리를 짐승으로 만들다니 끝없니 저주스러웠다.
사람을 짐승에나 쓰는 영수증으로 쓰다니 대체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든 정치가 어떤 정치인데 자신들의 정치에는 잘못을 찾지 않고 불쌍한 백성만 죽이니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여기에는 단 두 가지 길이 있다.
굶어죽느냐 범죄해서라도 살아가느냐 하는 두 가지의 길…정치적으로나 사회주의 제도에 중독된 이들을 내놓고는 범죄라도 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후에는 어떻게 되던지 이 바쁜 목을 열어야 하겠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마지막 본질이다.
감옥은 미래가 없는 내일을 걱정하는 죄악의 마지막 전거장이었다.
이들 역시도 죽을 수가 없었기에 콩 한 알이라도 신경을 쓰며 먹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죽고 먹으면 산다는 이치는 결국 정신적인 위로와 타락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래도 교화소는 강낭쌀에다 콩을 많이 넣어주기에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갇혀 있기는 하지만 해를 본다는 것이고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해를 못보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부와 외부에 병이 생긴다. 특히 일을 하지 않으면 골병을 면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감옥에서 병을 얻는다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병이 나면 약이 없어 병이 있는 그대로 낫기를 바라지만 약을 쓰지 못하니 병이 악화되면 되었지 낫지는 않았다.
차라리 산지옥이라 불리는 교화소에서라도 해를 보며 일하는 것이 병에 덜 걸리게 하는 마지막 길이었고 죽음의 길이었다.
사느냐 병 걸려 죽느냐라는 두 가지 중 택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흥분된 분노나 정의감을 내놓고는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즉 다시 말해서 저주스러운 자신의 죄에 대한 흥분된 마음이 아니면 결코 자살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의 마음 한 구석에도 삶에 대한 애착이 있고 이성이 있고 미래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죽기 전이면 자신의 마음속에 말을 한다.
하지만 그들도 위로의 말을 들으면 미련이 생기기도 하고 살기 힘들 다는 약한 마음과 싸워보려고 한다.
하지만 미련이 약하다면 반드시 그는 죽을 것이고 미련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은 분명히 살아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은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하기에 우리도 교화소가 희망이었다.
하루빨리 해를 보며 일해서 살아나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은 신체검사에서 무너졌다.
살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병이 간단한 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실험결과는 폐염과 허약이라는 어마한 딱지를 찍어 놓았다.
우리는 7명이 병증상과 허약으로 퇴소되었다.(계속)

2005년 11월 김혁

자료제공 : 북한인권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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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뭔지 고담녹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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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와이이쭈 2006-02-17 14:28:10
    같은 사람들끼리 어찌 그럴 수 있나요..에휴 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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