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운명 -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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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3년 12월 탈북하여 중국에 체류중인 탈북자로서 북한에서의 생활과 중국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사실들을 글로 옮깁니다. 그리고 북한에 계시는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비인간적인 삶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뜻밖에 알게된 사실 제가 자란 곳은 함경북도의 어느 농촌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봄이 되면 살구꽃과 사과배꽃들이 만발하는 물 맑고 공기 좋은 아담한 마을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범하고 부지런한 농사꾼이었고 형제는 네 형제로서 맏딸인 저와 여동생 하나, 남동생 둘이 있었고 총명했던 형제들은 이웃과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던 제가 고등중학과정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추천을 받아 1994년 8월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강덕동에 위치한 "오중흡사범대학"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농장원의 집안의 자식으로서 대학시험에 응시하게 된 것 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던 저희 부모님은 정성을 다하여 저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무사히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송평 역전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낮선 할머니가 저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여기는 무엇하러 왔느냐 면서 묻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께 대답드리고나서 의아한 생각에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한가지 물어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뜻 물어보시라고 했더니 "거기에서도 배급을 안주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질문을 받고 저는 엉겁결에 "우리 있는 곳에서는 다 준다" 고 대답 드리니 할머니 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배급카드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카드는 1992년도부터 미정배급카드였는데 할머니는 지금 3년째 미공급 배급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면 줄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왜 국가에서 배급을 안주느냐고 이게 몇 해인가, 먹어야 노동자들도 일을 할 것이 아니냐며 오늘 아침에도 자기 탄광을 다니는 아들은 굶어서 갔다고 이렇게 허기진 채로 어떻게 일하겠느냐며 하소연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청진시 노동자들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저의 눈앞에는 그때의 그 할머니의 모습과 그 할머니의 말씀이 눈에 선하고 귀에 생생히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이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니 어머니 역시 여기도 마찬가지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할머니가 배급을 탈 대상자였는데 우리 할머니도 배급을 타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수령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식량난은 더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집은 그래도 농사꾼 집안이니 이 정도는 되는 것이고 현재 배급 타는 사람들은 식량난이 말이 아니며 모두가 농촌으로 식량을 꾸러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월남자가족의 슬픔 그런 와중에서 저는 대학통지서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토록 기다렸던 대학 합격 통지서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불합격이었던 것입니다. 저의 앞길에 놓여있던 장애를 저는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후에 안일이지만 저의 집안은 남쪽으로 내려간 할아버지로 하여 월남자 가족의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대학시험을 잘 치렀다고 확신에 차 있었던 저는 가정에 이러한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합격 통지서만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오중흡사범대학은 교원양성대학으로서 이런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한 자들은 절대로 합격될 수 없으며 학생을 가르치는 교원이 좋지 못한 성분의 가족이면 학생교양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저는 다른 수험생들보다 실력이 낮아서 불합격한 것인 줄 알고 재도전하기 위해 시험 준비에 더욱 열중했습니다. 낮에는 힘든 협동농장일을 하고 밤에는 눈을 비비며 학업에 열중했던 결과 저는 2년 만에 다시 대학예비시험에 응시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다시 대학추천을 받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망을 바꿔 청진시 수남구역에 위치한 고등경제전문학교에 응시했는데 그 때가 아마 9월1일 개학이 4월1일 개학으로 바뀌는 등 교육제도가 바뀐 후의 첫 시험인 것 같았습니다. 밤낮없이 학업에 열중했던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저와 저의 가족은 하늘을 날듯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때는 온 나라가 식량난으로 힘든 시기였고 집에서는 저의 상급학교 합격통지서에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참고 견디며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했으며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청진 고등경제전문학교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농사꾼 집으로서는 학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저의 의지는 허물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 했고 학교는 말이 대학교이지 그 안의 최우등생조차 실력이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학교경비를 서는 당번 날에는 당직근무 선생님의 식사비를 학생들에게 부담을 시켰고 학생들에게 수시로 농촌 돕기 과제로 맡겨지는 인분퇴비 그리고 구리등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저는 할당량을 채울 길이 없어 돈으로 내야했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부모님은 저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제가 속한 학급에는 노동자나 농민의 자식은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가족이 굶어 죽게 된 마당에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고 곧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허무함과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열정과 의지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을 괴로워했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되자 저는 3년제였던 학교를 1년 다니고 2학년 1학기에 중퇴하게 되었습니다. 슬픔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사회에 나오게 된 저는 고향에 자리 잡고 있는 모피공장 후임 부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기라는 직책은 현금을 다루는 직업,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나누어주고 공장 재산 문건을 작성하는 직업으로서 회계원의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경험도 없는 상태이고 단지 전문학교에서 일 년 동안 배운 지식뿐이었으므로 현장 일을 하면서 경험 많은 부기원들을 따라다니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공장에 들어간 지 일 년쯤 되자 공장 당비서가 저를 찾아와 간부부 이력서문건을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간부부 이력서를 쓰게 되었고 저의 이력서는 곧 시당간부부에 입송되었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저의 비준문건은 부결되었으며 그 때 저는 우리 가족의 숨겨진 큰 아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친할아버지라는 분은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인 6월 25일 전쟁시기에 남쪽으로 가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우리 가족은 여기 국경지대로 추방되어 오게 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서러운 가족의 과거를 알게 된 저의 심정은 참담할 따름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슴 아파한 것은 부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얼굴한번 보지 못한 친아버지의 월남으로 인해 어려서 부터 고통을 겪으며 자라야 했으며 이제 와서는 그것이 자식들에게까지 영원한 장애가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프셨겠습니까. 월남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를 이어 상처 받아야만 하는 우리가족에게 기쁨과 희망은 사치였습니다. 아버지는 10년간 농장에서 분조장으로 일하면서 목표량 성취를 미달한 적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일해 왔지만 당에도 가입조차 할 수 없었고 돌아오는 것은 자식들 앞에 놓인 장애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월남이라는 죄아닌 죄때문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늘 당이 어머니라 하지만 어머니 구실 못하는 당이 과연 어머니 당이란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머니는 아홉 자식의 행복보다 불행한 자식 하나에 마음을 더 기울인다는데 어머니다운 당이 어찌 불행한 자식의 슬픔을 더 가슴 아프게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 전쟁으로 헤어졌으면 불쌍히 여기고 더 돌봐 주기는커녕 오히려 의심을 하고 박해를 하고 있으니 이런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 철없던 저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할아버지가 한없이 밉기만 했습니다. 제 앞에 놓인 좌절과 서러움이 큰 상처로만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전문학교 시절이 생각났고 그것을 그만두게 되고 이젠 미래까지 어둡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만 커져갔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청진시 도 보안 간부학교에 다니는 남자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와의 관계도 도저히 결합 될 수는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생각 끝에 우리사랑은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저는 단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남자 가족이라는 죄아닌 죄로 많은 것을 잃게 된 고통은 참으로 컸습니다. 저희 가족이 배척당하고 따돌림 받고 의심받으며 살아야만 했던 그때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24살 되던 해 10월, 월남한 할아버지의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급작스럽게도 한 맺힌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장에서 뇌출혈로 돌아가신 것 이었습니다. 할머니 뱃속에서 부터 월남자 자식의 설움을 안고 태어나야 했으며 희망과 미래도 없이 남들에게 말 한 마디 조차 떳떳이 해보지 못하고 사회의 눈치를 보는 사회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 자식들에게 미안했다는 말밖엔 남길 수 없었던 불쌍한 우리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했던 할아버지의 죄 아닌 죄를 자신이 한 평생 짊어지고 온갖 수모를 받으며 살다가 죽음의 그 순간이 비로소 행운의 길이 되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한 없이 가슴이 저며 옵니다. 불효하고 철없기만 했던 저로 인해 많이 속 타고 많이 가슴 아팠던 우리 아버지. 자식들에게 마지막 하나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러 나가야만 했던 우리 아버지의 죽음은 적어도 저에겐 순교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끝까지 일하다 일터에서 죽은 아버지의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죽어서도 월남자 자식의 죄만을 안고가야만 했던 불쌍한 아버지였습니다. 지금도 소달구지에 실려 왔던 아버지 시신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기만 합니다. 그때의 제 마음은 마치 저로 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뜨게 된 것 같은 죄책감으로 가득했고 철없이 행동한 시절이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탈북 그리고 설움 그때부터 저의 가족은 아버지 없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저의 가족은 더욱 굶주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러 나간 저의 여동생이 자정이 지났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리려도 동생은 끝내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 집에도 찾아다녔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이미 제 동생은 중국에 드나드는 도강자를 통해 탈북한 뒤였습니다. 이제 저의 집은 월남자가족 뿐 아니라 탈북자 가족이란 죄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온 동네에서 수군거리는 마을 아주머니들의 사나운 소리, 사람들 마다 피하는 눈길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보안원과 보위지도원의 감시 속에 우리가족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시내 친척집에 나들이만 갔다 와도 오늘은 어딜 갔으며 뭘 하고 왔느냐는 등 보안원과 보위지도원의 보고 문건 속에 올려야만 했습니다. 저 역시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온 동네의 감시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우리어머니는 집을 이사하기로 결심했고 제가 탈북하기 두 달 전인 시내 근처로 이사를 갔습니다. 남동생 두 명은 이미 조선인민군으로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그 때 우리 식구는 어머니와 나 둘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저의 생활은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점점 이 제도가 싫어졌고 이 모든 것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동생의 무소식으로 눈물 흘리고 밤을 새우는 어머니를 혼자 두고 불효막심하게 저까지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제 결심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지만 어느 부모 제자식 멀리 이역나라로 가는 험한 길을 떠나는 것에 동의하겠습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이내 저를 이해해 주셨고 기둥처럼 저를 믿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혼자 두고 떠나는 저의 모습은 하염없는 눈물로 얼룩졌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꼭 소식을 보내겠다고, 내가 떠난 후 누구네 집에서 소식을 전해 들으시라고, 부디 건강한 몸으로 앓지 말고 제가 모시러 올 때 까지 살아 계시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면서 저는 한 맺힌 북한 땅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약속을 지켜드리지 못하는 불효자식이 되었습니다. 제가 탈북한 당시 나이는 26살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연길시 조선족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는데 우리 같은 탈북자들은 한국에 가야만 산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이 조선족을 통해 로녕성 심양시 농촌마을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집은 마을에서 그리 못 사는 측도 아니고 잘 사는 측도 아닌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저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저와 나이가 17살 차이로 삼춘, 아니 아버지나이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였습니다. 저는 글로도 말로도 통하지 않는 이집에 들어와 음식도 생활풍습도 다른 한족들의 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마을의 조선족 학교에서 교원을 하는 교포 여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그 교원이 퇴근시간을 기다렸다가 집에 가서 중국말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우리 어머니와 나이가 같았으며 전 어머니처럼 따르고 또 그 교원은 저를 딸처럼 사랑해주었습니다. 제가 음식이 맞지 않아 하는 것을 알고 된장과 고추장, 김치도 가져다주었으며 저녁마다 집에 오면 냉면국수도 말아주면서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집에는 한국 위성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을 보며 한국의 현실에 대해 차츰 알 수 있게 되었고 한국 분들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시위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이 한족 남자와 더는 살 수 없었기에 집을 탈출하여 저를 팔아먹은 조선족을 다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니소식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조선쪽에 경계가 심해 전화도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여기 연길은 검문이 대단히 심하니 다른 곳으로 또 시집을 가라고 했습니다. 또 팔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대답이 없자 그는 요번에 가면 돈도 얼마간 주겠다고, 그 돈으로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한테 자기가 직접 가서 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거짓이라는 것을 뻔히 알았지만 갈 곳이 없었던 저한테는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또 다시 조선족인간들의 돈벌이 농락물이 된 저는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팔려 갔으며 또 다른 연변 조선족에 의해 흑룡강성 대경시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온성군에서 왔다는 24살 난 처녀와 같이 동행하였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이들은 대경시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한 후 우리를 사기 위해 온 한족 남자들에게 맞선을 보게 했습니다. 그 때 남자들이 왔는데 한 명은 30살 난 하체 장애자 였고 한명은24살의 한족 총각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에게 만 이천이라는 돈을 요구하였는데 다리를 저는 남자는 그만한 돈이 없는지라 24살 난 총각이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 때 나와 함께 온 함경도 온성 출신의 여자는 저보다 키도 작고 인물 또한 못하여 나이가 많았지만 저를 데려간 것 같았습니다. 이들은 저를 차에 태우고 대경시에서 3시간도 더 들어가는 농촌 마을에 데려갔습니다. 도착해 보니 지붕도 없는 움막 같은 집이었으며 이 집이 제가 앞으로 생활하게 될 그 남자의 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은 농사로 힘들게 사는 이 마을에서 제일 곤란한 집이었습니다. 앞뒤로는 산이 보이지 않는 넓디넓은 사막이었고 삼일에 한 번씩 황사바람이 집을 흔들 정도로 불어대는 지역이었습니다. 집이란 어찌 더러운지 또 아무리 치워도 치운 티가 나지 않고 아무리 닦아도 닦은 티가 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저의 동생보다도 더 어린 남자를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할일이 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고운 한족 식구들이라 저는 그런대로 하루하루를 생활하며 농사일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농사일을 하면서 개인 농기계의 우월성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이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는 살 수 없었던 저는 또다시 이집을 탈출하여 제가 처음 팔려갔던 조선족을 다시 한 번 찾아갔습니다. 어머니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 생각으로 돈을 벌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나 깨나 나의 소식만을 기다리고 눈물 흘리며 가슴 앓을 어머니를 위해 나를 희생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저에게 조선족은 또 다시 저를 속이려고 했습니다. 여기나와 갈 곳 없고 반겨 줄 사람 없는 저를 잘 알고 있는 조선족은 이번엔 자기가 직접 나서겠다면서 다시 한 번 한족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돈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저는 다시 한 번 이들의 돈벌이 농락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만 흘릴 따름이었습니다. 탈북자의 운명은 어디가나 같았습니다. 팔리고 또 팔리고... 그것은 탈북여성들의 당연한 고통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저는 이 남자와 같이 산동성 워이방시 어느 자그마한 시내로 가게 되었으며 저는 여기서 또 어느 탈북자 여성의 소개로 한족 집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집은 좀 잘 살았지만 아들이라는 사람은 25살 이였지만 7살 난 아이의 인식수준을 가진 뇌막염 환자였습니다. 첫날에는 그의 행동에 의문이 갔지만 알고 나서는 더 이상 생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소개해준 탈북여성의 집에 전화를 하게 되였고 그들은 저를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는 소개비만 받았다고 하면서 이 많은 돈을 다시 물어주자면 너는 다시 다른 집에 시집을 가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같은 처지의 동료인지라 저를 따뜻이 대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또다시 흑룡강성 목단강시의 어느 자그마한 농촌에 5살 난 아이가 있는 홀아비 한족 남자한테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여성은 저에게 돈 이천 원을 몰래 주면서 어머니에게 도움을 주라고 만약에 이 집에서 살기 힘들면 자기에게 연락하면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팔려가는 몸이면서도 그 여자의 말 한마디는 저의 마음을 울려놓았습니다. 그 돈 이천 원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어머니를 도와줄 수 있다는 큰 희망 이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저는 반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에 4번이나 운명을 내싣고 다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4번이나 팔려 다니는 서러움을 당해야만 했던 나... 이것은 나 뿐 아니라 탈북여성들의 누구나 겪는 공통의 설움이었습니다. 팔리고 팔려 다녀야만했던 이국땅에서의 설움은 나에게는 크나큰 고통 이였지만 한편으로는 또 하나의 체험을 쌓는 관문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였다면 우리가 이렇게 팔리우는 몸이 되었겠는가, 말로만 강성대국을 부르짖는 저 북한은 어찌하여 한 개 국가로서 많지도 않은 인구를 먹여 살리지 못해 이렇게 수많은 인민들이 이역만리땅 까지 헤매게 하는가. 350만 명의 주민들을 굶어 죽게 한 북한이 과연 국가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는지... 지금도 나날이 굶어죽는 사람들을 보고도 아무런 대책하나 없는 지옥의 국가, 또한 인민의 눈을 가리고 눈뜬 소경으로 만들어놓고 입과 귀를 정신적으로 마비시키는 악몽의 국가, 인권유린 국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이리저리 팔리는 몸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저는 이집에서 마음의 자리를 잡으려고 결심하였지만 이 결심 또한 어리석은 결심이었음을 곧 깨달았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셨는데 술만 마시면 트집을 걸고 제가 온지 일주일도 안 되어 저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술질로 하여 본처와도 이혼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비통한 어머니의 소식 그리하여 저는 또 이 집을 탈출하여 다시 산동으로 탈북여성을 찾아가게 되었고 여기서 저는 그를 통해 일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가 소개해준 회사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품회사였고 이 회사는 산동성 청도 부근에 있는 교주시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김치 포장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회사의 상호는 "환영식품회사" 였습니다. 월급은 말로는 800원이라도 하였는데 정작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550원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으므로 말없이 일했습니다. 그러던 저는 월급을 타 가지고 두 달 만에 어머니가 걱정되어 연길로 나갔는데 우연히 버스 안에서 알게 된 연길 조선족분의 도움으로 저는 어머니와 전화상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돈도 얼마간 보내주면서 다시 제가 연락할 때 까지 뜨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머니와 저의 마지막 작별이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길에서의 일을 끝낸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고 연길 버스 정거장에 도착하여 길림으로 가는 버스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공안경찰들이 올라와 검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분증이 없었던 저는 이내 탈북자로 발각되어 공안국에 잡혀 들어가고야 말았습니다. 이들은 저를 여기에 오게 된 동기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너무도 기막힌 저는 물 한 모금 밥 한 술 들지 않고 눈물로만 시간을 보냈습니다. 막연한 생각으로 눈앞이 다 캄캄했습니다. 그러는 제가 불쌍하였던지 파출소장은 식당에 데려가 쉬게 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당에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한 분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저를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기도 하고 제가 겪은 고생에 대해 불쌍히 여겨 주었습니다. 공안국 경찰들은 제가 가지고 온 가방을 가져다주면서 세수하고 화장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한테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고 돈900원이 있었는데 이 돈은 고스란히 회수 당하고 말았습니다. 식당아주머니는 자기가 20년간 공안국 식당을 해왔다며 이렇게 잊지 말고 빨리 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단 둘만이 있었으므로 아주머니만 눈감아주면 얼마든지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길까지 알려주면서 짐을 가지고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너무도 고마운 아주머니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 곳에서 탈출하게 된 저는 지금도 그 때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안국 경찰들이 어느 구석에서 저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고 당장이라고 뒷덜미를 잡힐 것만 같았던 그 때 심정... 공안으로 부터 탈출은 했지만 돈 한 푼 없는 저는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다 생각 없이 가방에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안에는 돈이 500원이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알았습니다. 일부러 저를 도망치게 도와준 공안경찰...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곧 저는 다시 회사에 돌아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여 이번에는 어머니를 꼭 모셔 오리라... 그러던 올해 3월에 하도 어머니의 소식이 궁금하여 전화를 하였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통한 소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두 딸의 탈북으로 인해 함경남도 어느 이름 모를 농촌으로 추방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뜻밖의 슬픈 소식을 전해들은 저의 마음은 뼈가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어머니를 데려오지 못한 저의 비통한 후회는 이미 때늦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머니 하나 지켜주지 못한 단말인가. 나는 어머니 하나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없단 말인가. 불쌍하신 나의 어머니 지금쯤 어느 산골짜기에서 헤매며 모진 고생 다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 할망정 또 다시 어머니를 고통을 겪게만 하는 이 죄 많은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사랑하는 어머니. 탈북한 두 딸의 죄로 우리 어머니가 당해야할 고통은 과연 무엇이기에 불쌍한 나의 어머니를 인적도 없는 그런 산골짜기로 추방 보낸단 말입니까. 이것이 국가가 흩어진 가족들에게 베푸는 선물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슬프고 비통한 인민의 한가족 한가족에게 주는 대가라는 것입니까. 이것이 과연 김정일이 말하는 인덕정치라는 것입니까. 짐승도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굴 안에서 뛰쳐나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창조성, 의식성, 자주성을 가진 인간들이 굶어죽기를 바라며 앉아서 사회주의도 아닌 사회주의를 죽음으로 지키라는 것입니까. 이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이런 정치 고수하겠다는 것은 인민들을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고 과연 무엇입니까. 어찌 피도 같고 언어도 같은 한민족인 저 한국과는 이토록 다른 길을 가는 것인지 .... 만약 한국에서 우리가 태어났다면 이런 가슴 아픈 현실을 당했을까 생각해봅니다. 과연 이것이 북한에서 말하는 인간자주화 방침이란 것입니까. 6.25 전쟁시기에는 헤어진 월남자 가족들이 남으로 나간 가족들과의 상봉이 두려워 국경지대로 쫒아 보내 서로의 소식을 끊게 하는 것이 바로 북한 땅에서 김정일이 베푸는 인덕정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북한에서 말하는 인간의 권리이며 자유입니다. 어찌 우리가 북한인권문제를 침묵으로, 그리고 "기권" 으로 외면할 수 잇단 말입니까. 한민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어찌 자기가 겪는 고통과 슬픔이 아니라 고해서 모르는 체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탈북자들과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한국에 존경하는 동포여러분!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고 우리 땅이 하나가 되려면 북한인권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북한에 있는 우리부모형제들을 비인간적인 자유와 권리 속에서 하루빨리 해방시키기 위하여 모든 힘과 노력을 다 바쳐주기를 여러분께 진심으로 호소하고 싶습니다. 2005년 12월 아침(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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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을 하시던데....
아침님은 아직도 시련의 연속이군요.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시고 용기를 가지세요....
저의 글을 읽어주셔셔,
그래요 저는 아직 중국에 있지만 희망을 잃지않고 있습니다
또 시련속에 모든 체험을 격고있고요,
감사합니다
추천 한방 쏩니다.^^
먼저 한국으로 오는게 급선무일것 같네요(종교단체를 통하여)
한국으로 들어오면 어머니도 모셔올수 있는 길이 있을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것 같네요.
왜 북한사람들이 부모님들을 버리고 혼자만 잘살려고 뛰쳐나온 나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세요? 한번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적이 있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님처럼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가슴에 응어리되여 영원한 한으로 남습니다. 안그래도 부모님들 생각에 한순간도 마음편한날 없이 밤잠을 설쳐 일해가며 단한푼이라도 모아 고향집에 보내려고 자신은 옷한벌 아껴가며 안사입고 집에 계시는 부모님들만이라도 헐벗고 굶주리지 않기를 , 남은 여생이나마 땔걱정 먹을걱정,입을걱정없이 편히 사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양말 한컬레,치솔하나하나까지 모으고 모아 보내려는 자식들의 마음을 님은 다 모를것입니다. 왜 저흰들 부모님 곁에서 살고싶지않고 한창응석부릴 나이에 죽음을 각오하고 강을건너 남의 나라땅에서 멸시와 갖은천대를 받으며 고통도 참아내며 간신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겪어보지못한사람들은 아마 모를것입니다. 저희들은 자나깨나 보고싶은 고향을 꿈에서나마 만나보기위해 누으면서 항상 기도합니다. (꿈속에서 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탈북한 사람들의 99%가 부모형제를 위해서 자기의 희생을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만약님이라면 부모,형제가 굶주려 죽어가고 있을때 입에 넣어드릴 죽한그릇도 없으면서 옆에서 울기만 하며 지켜보시렵니까? 아니면 백방으로 뛰여서라도, 그무엇을 하여서라도 허기진 배를 달랠그무엇을 찾으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렵니까? 해답은 님에게 드리렵니다. 그리고 님이 북한부모님들이 자식때문에 탄광추방되여 가서 일하면서 자식을 원망한다고 했는데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욕은 할수 있다해도 원망하지않습니다. 하물며 못사는 북한에서 태여난게 죄고 , 죄아닌 죄로 추방까지 보낸 독재자인 김정일을 욕하지 왜 가족을 살리려고 희생한 자기자식을 욕하겠습니까? 부모님들은 자신들은 어떻게 되든지 자식들만 무사하고 행복하기를 빌뿐입니다. 그리고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살리려고 하는게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족애인것이지요.
모르면 가만있던가.. 꼭 뭘 아는것처럼 말하는 너 -- 참 재수없다..
아침님 항상 님의 안전에 근심이 되네여..
어렵게 탈북한것 만큼 꼭 잘되여야 하는데..
알아보십시요 분명히 할아버님의 혈육후손들이 잇으실걸요 가령
함경도 도민회 에
지난 7월에 중국에 관광구경 다녀왔는데, 아침님 같은 우리동포들이
그런 처절한 삶을 살고 있는줄 정말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알 수 있었던 일일텐데.. 너무 부끄럽습니다
중국에 있는 아침님에게 크게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이 또한 안타깝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조그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이글을 보시게 되면 <a href=mailto:bangrangman@paran.com>bangrangman@paran.com</a>으로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는데 몸 건강히 하시기 바랍니다.
꼭 한국으로 안전히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수수한 수기에 귀중한 시간의 한초를 받쳐주신 한국의 계시는 여러분들께 감사의 뜻을 보냄니다.
여러분들의 올려주신 댓글 하나하나를 보면서 저는 모든 희망과 기쁨을 다시 찾을듯 합니다 저의 힘이되여주시고 저에게 도움을 안겨주신 여러분들께도 건강과 행복을 바랄뿐입니다.
아침님 북한인권국제대회 에세이 공모전에서 님의 글이 입상을 했다는 소식을 이곳에서 접하고 무엇 보다도 흐믓하고 기쁩니다. 마침 내가 입상한 것 보다 더 기쁨의 감격을 느낍니다.
아침님 현재는 고향에 계신 어머님과 가족들의 걱정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현재 님이 처한 위치에서 잘 이겨 낸다면 멀지 않아서 가족과 재회도 하고 좋은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아침님 이곳에서 여러 님들과 글로써 교감을 가지면서 지내다 보면 님의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자주 뵙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럼 아침님 늦게나마 님의 입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 시점에서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데에는 무력사용(전쟁), 북한내부에서의 혁명, 김정일 스스로 개혁, 개방에 문을 열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이겟지요.
첫번째 무력사용에는 이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전쟁을 하게되면 한국이 전적으로 이깁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도와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변수가 있습니다만...
하지만 그 피해를 생각하면 결코 전쟁을 해서는 안되는 상황입니다.
한국도 지금 북한처럼 보리고개 시절이라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요.
그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서 지금은 세계 10위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일반에 해당되는 중심추가 서울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구요.
전쟁을 해서 그 피해가 최소라 하더라도 서울은 휴전선과 상당히 근접해 있습니다.
북한에서 흔히 말하는 서울 불바다 있잖습니까... 불바다가 될지는 모르겟으나 그러한 중심추인 서울에 피해가 간다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한국은 경제성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되어 지금처럼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인터넷기술이나 생명공학 등등 여러분야에 있어서 다른 강대국들의 최첨단기술을 다시는 따라잡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기술개발에 온 세계가 정말 치열합니다. 하루, 몇 시간만 뒤쳐져도 따라잡기 힘들어지는 이 상황에서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한국이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다면 지금 이뤄놓은 이 모든것들은 일장춘몽이 되겟지요.
두번째 북한 내부에서의 혁명은 저도 잘 모르겟습니다.
김일성이가 북한사람들 쇠뇌를 너무 철저히 해 놓은거 같습니다.
북한에 군부를 장악한 대부분의 간부들과 주민들이 합심하면 혁명은 이뤄지겟으나 그 대부분의 간부들도 김정일처럼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잇으니 그런 무리수는 생각하지 않을거라 판단됩니다.
한국에도 독재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학생들과 주민들이 정부의 총칼에 짖밟히고 죽어나가던 암울햇던 시절이 잇엇으나 하나하나 단계를 거쳐나가며 이와같은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잇엇지요...
한국도 이렇게 민주주의를 만들고 발전시키는데 많은 이들의 숭고한 목숨과 희생이 따랏습니다...
한국처럼 북한에서도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독재정권에 맞선다면... 글쎄요, 제 판단에는 아직은 힘들거라 생각됩니다.
한국은 북한처럼 우물안개구리식으로 자라며 쇠뇌 받아오진 않앗습니다.
북한도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보고 접하게 된다면 그들의 뜻을 하나둘씩 관철시켜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세번째 김정일이 개혁과 개방에 문을 열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인데... 힘들겟지요?
개혁과 개방은 그렇다치더라도 권력을 분산시키는 일은 힘들거라 생각됩니다.
인간이란게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어하듯이 정일이가 힘껏 쥐고 잇는 권력도 정일이만이 그 달콤함을 알것입니다.
제 판단입니다만... 현재로서는 북한을 개혁과 개방에 최대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지면 북한주민들의 생각과 판단이 변하게 됩니다.
작은 우물속에서 망망대대의 거대한 바다를 보게되는것이지요.
역사가 증명하듯... 민주주의를 이루는데에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더군요.
북한주민들이 변하면 한국에서 그러햇듯이, 많은 학생들과 주민들이 일어설 것입니다.
총칼에 짖밟혀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자유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지요...
마지막으로 현정권이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이유에대해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한국과 북한은 한민족입니다.
북한은 중국과 혈맹국입니다.
한국은 현재 중국과 최대 무역 교역국입니다.
만일, 중국과 무역을 단절하면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탈북자가 중국에 있습니다.
혈맹국 북한이 중국에게 북한으로 송환을 요청합니다.
북한으로 송환되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기에 한민족인 한국이 최대 무역국인 중국에게 인권을 고려하여 한국행을 요청합니다.
중국은 인권을 고려하여 한국으로 입국시킵니다.
탈북자가 계속해서 중국으로 들어옵니다.
중국은 인권을 고려하여 몇번을 한국으로 입국시켯으나 북한은 혈맹국인 관계로 다시 북한으로 송환시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악순환되는 실정인거 같습니다.
중국입장에선 혈맹국의 요청과 득이되는 무역국인 한국의 요청, 그리고 인권문제.
한국입장에서는 김정일정권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강하게 대처하게되면 그것들이 다 틀어질 우려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과 최대 무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문제.
한국에서 전쟁은 하지말아야 되는상황에서 인권문제를 들고 압박해오는 미국...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제치하 매국노들과 그 똘마니들...(이 부분은 일그러진 한국의 역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미국의 힘을빌어 전쟁으로 통일해야 되겠습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겠습니까.
아님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우리모두 강구해 봅시다.
중국에서 우리 아낙네들이 짱깨들한테 이리저리 팔려 나가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분노합니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방법은 연명시켜 주고 내부적으로 스스로 무너지게 하거나 방향전환을 하게하는 방법입니다. 여기계시는 여러분은 화끈하게 처리 하고 싶은데 더욱이 북한에 가족이 있어 더욱 마음이 급하시겠지요.
하지만 빈대잡자고 초가 삼간 다 태울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인내심을 갖고 좀 기다려 봅시다^^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내요^^
아무리 큰 둑방도 쥐구멍에 새는 물로 시작하여 무너지니까요...
북한 체제의 쥐구멍은 이미 여러곳에 뚤렸다고 봅니다^^
그 고통을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도 헤아릴수 없는 당신이 우릴 비난할 자격 없습니다.
남의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대부분은 온식구 앉아서 굶어 죽을수 없어서"나를 희생시켜서라도 가족을 구할수만 있다면" 이런 심정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한국정부가 탈북자들만 위해서만 일 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과의 마찰도 피해야 하고 중국에 강요만 할수도 없구...
남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너무 복잡한것 같네요~
저는 단지 탈북자들이 마치 부모형제가족은 안중에도 없고 나 혼자만 잘살자고 탈북한듯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인것처럼 매도한 한국사람님께 리플을 달았을 뿐입니다.
제가 말한 "남"이란 북한과 남한이라는 큰틀의 개념이 아니라 말그대로 내가 겪어보지 못한 "남"의 "일" 이라는 뜻입니다.
탈북자들의 개인적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신다고 하셨나요.?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는데 과연 남의 이야기만 듣고 백프로 이해한다고 자신할수 있을까요?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네요.
물론 당신들의 말대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기여한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벽돌한장 쌓은적도 없고 동전한푼 보탠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도, 중국에서도 인간답게 살수 없는 우리를 받아주고 정착시켜준 한국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에 친척이 있기에 원글을 쓴 아침님처럼 그런 끔찍한 일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아침님의 고통을 다 이해한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아침님에 비하면 그래도 호강?하며 살았지만 매일밤 꿈을 꿉니다.
해피한 꿈은 한번도 꾼적이 없고 꼭 북한의 안전원이나 중국의 공안에게 쫒기는 악몽을 꿉니다.
심지어 낮잠을 자도 악몽을 꿉니다.
제가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죄라면 지구촌의 하많은 나라중에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겠지요.
제가 이렇게 누누히 늘여놓는것은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당했으니 "이해해달라"가 아닙니다.
동정하셔도 좋고 무관심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돌은 던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다음부터는 리플을 달기전에 글의 내용을 충분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사람님의 글에도 또 저의 글에도 통일에대한 견해,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는 없습니다.
한국사람님은 개인이 탈북자들을 바라봤을때의 생각을 적으셨고 저는 그 글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리플을 달았을 뿐입니다.
님의 방조로 저는 중국에서남아 수기를 쓰게 되였으며 또 여기에 입승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수기란에 제 글이 이처럼 많은사람들의 관심의 참전이 될줄 몰랐구요, 정말 모든 분들에게 무슨 글로 저의 고마움을 표현해야될지 또한 모르겠구요,,전 지금 이전에 기쁨과 희망을 다시 찾은 듯 한 심정입니다,
또 신심을 가지게 되였구요, 감사합니다
그럼 탈북자들이 오기이전에는 세금이라는것이 없었는가요?
그리고 만약 탈북자들이 없었다면 그 많은 세금은 한국분들에게 다시 차례지는것인가요?그렇게도 탈북자들이 한국분들의 손해에 대상이 되였단 말입니까? 그리고 정착금을 주는 한국정부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말고 세금을 내는 한국국민에게 하라고 했는데 한국정부분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가요?
한국정부분들은 한국국민이 아닌가요?
조국 잘못만난 우리 민족들의 아품입니다
세상에 단하나밖에 없는 기가막히는 이런나라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암울한 조국은 그리 멀지 않아 회복 되겠지요...
다만 지금은 우리가 그 과정속에 격어야할 운명적인존재이며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것 또한 현실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시며 지혜롭게 모든일에 대처 하시기 바랍니다...
고난끝에 희망은 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힘네세요
글을 확대해석하여 읽는 참나님의 고견하신 선견지명에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제글이 "이해할 필요없다", "관심꺼라"로 받아들여 지셨다니, 참 할말이 없네요.그럴꺼면 오지말라구요?
어떤것이 그럴꺼면 인가요?
탈북자들이 부모형제를 다 버리고(한국사람님에 의하면) 중국으로 한국으로 오게된것이 그런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픔이 있고 사연이 있다고,그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고 한것이 그럴꺼면인가요?그러지않아도 힘들고 아픈게 우리니까 욕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한게 그럴꺼면인가요?
참나님이 오라, 오지말라 그렇게 말할수 있는것도 한국에서 태어난 특권이겠지요.
님은 세금을 참 많이 내시는가봐요.
정부에도 고맙다 할 필요없다시는거 보니...
정부사람들도 공무원이니까 세금을 많이 낼것 같은데... 그것보다 많으면... 탈북자들의 정착금의 절반이상은 님이 낸 세금이라는 말씀?
(님 방식대로 해석한 것임)
님께서 기쁨과 희망을 찾아셨다니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님의 수기를 읽고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을 느꼈는데.....
아무쪼록 님의 안전에만 신경을 쓰시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대비책을 강구해 두시기 바랍니다.
저도 님이 원하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계속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럼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님의 안전을 기원합니다.
내가 볼때는 한국사람의 글은 지나쳤다고 봅니다 . 우리사회의 일부에서 한국사람 처럼 탈북하신 분들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무책임한 언행을 하여서 탈북하신 분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물론 고의적인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탈북자에 대한 이해 부족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분들은 극히 극소수이고 대체적으로 같은 민족으로써 탈북하신 분들의 입장과 사정을 안타까워하고 뭔가 돕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엄지공주님께서 당사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데 대하여 불쾌감을 표시하고 따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글을 부쳐서 탈북자의 정착금에 대하여 세금 운운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나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우리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이룩할려면 당연히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자세가 바람직 합니다. 남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
물론 세금이 아깝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니라 생각합니다. 그 분들에게 나는 확실하게 말씀 드립니다 통일이 되면 모든면에서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탈북하여 밖깥세상을 알면서 북한의 정치적 선전이 거짓임을 깨닫고 자유를 찾아 어렵게 한국으로 온 탈북자 분들에게 같은 민족으로써 정착에 당연히 도움을 주는 것이 이치이고 도리인데 얼마되지 않는 정착금을 가지고 세금 운운하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는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가급적이면 탈북자 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발언은 삼가해 주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님과 같은 신경질적인 태도가 과연 탈북자 여론에 좋은 방향으로 해석 된다고 보시나요? 님만 사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앞으로 올 탈북자여론을 위해서 과민한 반응을 자제하라는게 그렇게도 거슬리시나요? 한국사람님의 글에 화가 나시는 심정은 저도 이해 합니다. 저 같아도 화가 날테니까요. 근데 여기서도 이해 못한다고 하실건가요? 좋습니다. 이해 못한다고 치고요.그럼 서로 무조건 반목할까요.
그건 그런식의 반응이 아니라 설득이 필요한거지요. 왜 차분한 설득을 못하세요? 능력이 안되세요? 그럼 다른 똑똑한 탈북자분들에게 맞기세요. 그리고 참 어이없는게 제가 저에게 고마워 해달라고 했나요? 님의 그런 막무가내 해석에 어이가 없습니다. 논쟁을 하려면 좀 팩트를 가지고 하시죠. 제가 말하는건 한국사람님과 같은 그러한 탈북자에 대한 반감을 많이 가지신 분들에게 설득이 필요하다는 애깁니다. 그분들 역시 이땅의 세금내는 분이고 여론을 주도하는 분들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이해가 안가세요? 대체 왜 글쓰세요? 그렇게 이해를 못하면서....
그리고 수술을 안받아본 사람이 수술의 아픔에 대해 이해한다고 옆에서 애기하면 화가 나세요? 참 이상한 열등의식을 가졌네요. 공주면 공주답게 자부심을 가지고 열등감 좀 버리세요. 탈북자가 뭐 죄졌습니까?
제 글에서 "이해할 필요없다" 라는 문장이 있기나 한지 찾아나 보세요.
글쎄 나는 초등학생이라 뭐 수준이 그 정도 입니다만...
님의 글에서 어떤부분은 님의 윗글에도 상반된다는 것을 아시는지요(초등학생이 쓴 글이니까 많이 배운 님이 너그러이 이해하시길...)
수술을 안받아본 사람이 수술의 아픔에 대해 이해한다고 옆에서 애기하면 화가 나냐구요?
이해한다면서 아파서 죽을것 같은 사람에게 뭐 그까짓거 가지고 엄살떠냐고 하면 어떨까요
....
정부나 세금에 대한 글은 님 방식대로 해석해 본것이라고 쓴것 같은데요
한국사람이 쓴 글은 너무 심했다고 봅니다.
저도 탈북자라고 해서 그러는것이 아닙니다. 한국사람님은 우리 탈북자들의 심정을 조금이나 알고 글을 남겼으면 합니다.
저희들은 고향에서 죽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탈북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이라고 부모님들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겟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시고 글남겨주었으면 합니다.
와~ 아침님 수기의 인기가 좋군요.
역시 공모전 수상작이라 그런지 조회수나 추천수도 높네요.
대필작가 노릇을 한 저로서도 수상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아침님의 초안을 받아들고는 며칠을 계속 씨름하던 일과 글을 읽고
교정을 보며 제풀에 감동해서 눈물 흘렸던 웃지못할 일들도 생각나는군요.
상금은 예쁜 옷 사입으시면 될 듯 하구요 무엇보다도 아침님께 좋은 추억이
될꺼란 생각입니다.
덕분에 저는 한 해가 가기 전에 또다른 보람을 얻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도 이렇게 되리라 생가해보지 못한일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님의 도움이 또한 저의 큰 힘과 용기가 되였습니다,,
저도 겪어 보지 못했지만-
당신께서 정치범 수용소 1주일만 하신다면,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진 않으실겁니다.
그렇다면, 국제정세로 따지기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기 위해서, 지금 탈북자분들이 겪고 있는 상황은
묵인이 되는거군요. 물론 저도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순수한 의도가 아닌
정치적 의도로 하는거 잘 압니다. 하지만 북한은 언제나 강공 드라이브였지
않습니까? 핵개발도 10수년째 써먹던 방법이고. 솔직히 제생각은
이렇게 끌려 다니다가는 오히려- 민족공조란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넘어오시는 분들의 희생은 그냥 역사 교과서에 한줄로 언급되겠군요??
정말 따져야 할건 따져야 합니다. 힘내시고. 어짜피 한민족 아닙니까.
북한도 문제지만 곤경에 처한 탈북자를 이용하는 중국놈들...열받네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런 수기를 쓸 정도면 그간의 노력이 보여지는군요
지금 여기 경기도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읍니다
이 내리는 눈 만큼 풍요롬을 복 받으세요 ()
글구 지금 그곳 비젼 없어요
한국으로 오도록 노력해보세요
젊잖아요?
그리고 찬반의 논리가 많지만 과도기이니까... 인식도 점차 좋아지며
님같은 분들이 한국에와 더 노력해주고 또 다른 사람도 함께하면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 또는 다른사람이 혜택을 받읍니다
한국도 인권이 낳아진지 얼마 안 됩니다
암튼 컨투를 빌어여~ 힘내삼 *^^*
그런말이 나오는넌 인간도 아닌 짐승색끼구나..
니 입에서 불효란 단어가 나오는것도 의심스럽다..
부디 사랑이란 뭔뜻인지 알고 살기 바란다..
희망컨데 니가 김정일똥깨거나 타민족이길 바란다..
너랑 같은 민족이라면 그 자체가 께름직하니깐..
아침님 난 연길에 사는 조선족입니다
님을 팔아먹었던 조선족도 있고 도와주었던 조선족도 있던데 어찌하든 현재까진 북에 안잡혀갔다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 한편 님걱정에 불안하기도 하네요
여기서 탈북수기들을 읽으면서 내가 백만장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살아있는 생에 많은 우리 민족을 도와줄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타까운건 난 그냥 노임타먹고 사는 평범한 출근족이여서 모든 탈북분들을 방조할수 있는 능력이 제한된것입니다..
또한 여직 북한동포들의 안타까운 사연만 들었지 탈북분들은 한번도 만나본적 없거든요..
혹시 연길에서 무슨 방조받을 일이 있으시면 나한테 연락주세요
<a href=mailto:beibian6@hotmail.com>beibian6@hotmail.com</a> (나의 메신저 주소입니다.. 메일도 가능합니다)
익명의 사이버 공간이라 그리도 주관적인 말씀을
함부로 사용하셔도 되는 건지요.
여기는 불특정 다수가 자유스럽게 왕래하는 공간입니다.
너무도 정제되지 않은 언사를 댓글로 올리셨더군요.
지나친 언사가 특히나 여린 가슴의 소유자에게는
비수가 되어 큰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제가 감히 사이버상의 예의를 지키라고 말할 위치나 자격은 없겠으나
말씀드리건 데 우선, 님의 언사는 글을 올리신 분이나 본인 스스로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모자란 행위로 받아집니다.
한 두 개의 댓글이려니 했는데 모든 글에 부정적이고
악의적인 댓글을 다셨습니다.
한두 개 보다가 답답함을 느꼈는데 모두가 그러하니
이제는 화가 치미기 까지 합니다.
저는 중국에 사업상 있는 한국 사람입니다.
님의 주관적인 사상이 합당하다고 판단이 되면 모르겠으나
결코 그렇지 아니한 것 같아
님위 댓글로 인해 온전히 치유 받지 못할 만한 상처를 받을 님들에게
오죽하면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 듭니다.
(((당신이 단 모든 악플 밑에 님에게 향기롭지 못한 말 들을
각오하고 이 댓글을 달겠습니다.)))
지금 당신의 행위는 스스로도 잘 생각하면 부끄럽다고 생각지 않으시면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가 잘못된 것이겠지요.
모든 것을 떠나 얼마나 가슴 아프고 민족적 비극입니까.
그렇다면 서로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며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이렇게 까지 하는 님의 모습일 적에야.... 휴~
이제 이 정도로 그쳐주시기를 거듭 당부 드립니다.
*** “아침”님 가슴 쓰린 말은 너무 유념해 두시지 마시고
***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참 아침님의 글을 포함하여 여러글을 읽었습니다. 감동이였죠..
정말 영화같은 이야기 들이더군요.. 한국에서 편하게 지내는 제가 정말
할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정말 고개숙여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싶
네요..
그리고 참나님 ㅡ.ㅡ 잘난체좀 그만하쇼..
엄지공주님처럼 하지말고 조용히 있으라구여? 여론이 어쨰여?
사이버상에서 헛소리 지껄여서 여론 들쑤셔 놓는게 님인가요?
북한사람들을 동정하진 않습니다. 전 다만 같은 한민족이기에
조금더 배려하고 이해하고 서로 노력하면 융화될수 있는거를
왜들 싸우려고들 합니까..
전 근뎅 참나님이나 한국남자 같은 님들 정말 싫습니다.
같은 한국사람이란게 부끄럽군요..
그나저나 아침님 걱정이네요.. 한국에 무사히 오셨으면 하는바램입니다.
어머니도 꼭 찾으셔서 한국와서 적응잘해서 성공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악플 NO~~!
그럼 아침님의 건승을 빕니다. FIGHTING~~~~~!!!!!부디부디...
윗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국사람'님의 댓글에 대해 한마디....
국산품도 여러가지 라는 말이 있죠? 별..X같은 사람이네요. 어찌도 그리 둔감한지....
아는게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원... 츠암내....
세금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합니다.
세금을 누가 냈느냐는 이야기만 있고 , 누가 낼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야기가 없네요. 이미 낸 사람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낼 사람은 더욱 중요합니다.
탈북자 여러분! 여러분은 천신만고 끝에 찾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꼭, 그리고 크게 성공하셔서 '한국사람'처럼 학교못다닌 불쌍한 사람을 위해 세금 많이 내 주세요.
탈북자 여러분은 틀림없이 통일문제 뿐만 아니라 이나라에서 절대적 지위를 스스로 만들어 가실 수 있는 분들 이라고 저는 확신 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만땅 받으세요.
얼마나 어려운 환경이면 그리하였겠습니까?
나라도 능히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요.
늘 용기를 내고 회망을 갖는 자에게만 그꿈과 희망이
이루어 집니다..
기회는 늘 있기마련입니다.
열심히 돈을 모으세요.
단 한번의 기회...
꼭 옵니다.
그때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출하는 것입니다.
중국 조선족을 사서 어머니에게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모으세요.
그리고 어머니를 탈출시키세요.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오세요..
꿈과 미래가 있는곳...
대한민국으로 오세요..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새해 여러분들 복많이 받으시고 행운을 기대합니다.
님의 어머님도 마음편히 건강해지시길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네요.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날도 오겠지요.
저도 경제여건이되면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기도하며..........
근데 중국은 8년으로 그런 무지몽매한 사회를 끝냈지만 북한은 이게 몇년째인가요?!
안타워요!
김정일이 뒈지면 북한의 인민들도 행복해지겠죠?
하느님은 어데서 뭐하고 있는지..
고향에서 작별한 어머니와 동생생각이 나서 울엇어요
나두 중국에 잇는 탈북자지만 한번 팔렷다가 다행이두 난 헤여나왓어요.. 갈곳이 업어서 산길에서 동생하구 헤매다가 한사람을 만낫는데 그사람이 자기 친구를 소개해줘서 첨에는 뭐 맘에 안들엇지만 할수 업이 살게 된것이 이제는 애두 낳구 살아요,, 애가 이젠 4살 ..뭐 이렇게라두 숨어살아야겟다구 생각하구 산것이 사는동안에 정이 들더라구요~남편하구 나이차이는 좀 만아요 (14년차이)
그래두 난 다행인 셈이죠 ~ 팔린 몸은 아니니깐~
그런데 아직까지두 숨을 제대루 못쉬구 살아요
밤에는 공안국에서 집을 찾아올까봐 두렵구요~ 어디나가두 공안 사람만 보면 무서워요~나를 붙잡을까봐~
그래서 한국 가려구 수소문해보앗는데~300만원 요구하는 브로커 박에 찾을수가 업네여~ 할수 업이 기회를 기다리며 살구 잇어요~
우리 힘내서 열심히 살아요~
새해는 꼭 모든게 이뤄지기를 바래여
안타까워요.사람이 나서서 해결할수 없는 문제구요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일은 없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아침님! 엄지 공주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땅 어디선가 피,눈물을 삼키면서도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름 모를 수많은 탈북자매님!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님들의 처절한 고통과 신음 소리가 가슴을 후비고
귀에 사무 치는데도 손 하나 쓸 수 없는 내 무력함과 나약함을 용서해 주십시요.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요. 제발 그날! 그날까지 버티고 이겨 내십시요. 햇살과 바람이 느껴지면 님들을 향한 우리 남한 동포들의 안타까운 기도가 함께 스며 있슴을 믿어 주십시요.
우리 민족 99%는 님들의 소식에 눈물 짓습니다.
// 도울 길이 없는지 애가 타는 마음입니다.
// 탈북에 성공 했다는 한 사람의 뉴스만 들어도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얼마 내지 못하는 세금이지만 탈북민들의 정착금으로 쓰인다면 더 많이 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내 수고가 베어 있는 세금이 그렇게 소중하게 쓰인다면.., 논리도 어설픈 한국사람과 참나같은 사람들 실은 세금 도둑질 더 하는 이기적 존재들입니다. 김정일의 탐욕스런 배보다 악의적인 의도로 한계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승복을 요구하는 비굴한 인간들입니다. 다행이도 그 인간들 껍데기는 조선놈이지만 심장의 피는 99% 한민족 피가 아닌 중국놈 피입니다.한민족에 1% 밖에 없는.............,
아침님! 엄지공주님!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염원할 것입니다
꼭 한국땅 자유의 하늘 아래서 온 가족이 함께 만나 시기를...,
저 억압과 폭정의 사악한 무리들이 한낮의 태양빛에 시들어가는 풀잎이 될 날을.........., 온 우주가 지금 님들을 돕고 있습니다. 용기를,꿈을,희망을 놓지 마십시요.하나님께서도 님들의 고통에 눈물 흘리시며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 관계를 분주하게 고치고 계실 것입니다. 승리의 그날을 꼭 믿으십시요.
감사합니다.저의 글을 읽어주셔셔,그리고 저와 같은 탈북자들은 님과 같은 한국분들의 힘나는 글을 보면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는것입니다.
님의 댓글을 보고 전 눈물을 흘렸습니다,어딘가 모르게 머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아고 따스한 이 글 한 글자의 느껴지는 한 겨례의 동포정을 다시한번 새기게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수님,,
힘내세요.
어떻게 하면 아침님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건지..
이렇게 글이라도 써서 응원해 드리고 싶어요
한국사람과 참나같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제가 사과드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정말 죄송하고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윗글에서처럼 한국에는 아침님같은 분들을 도와주고 싶고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님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답니다. 힘내시고 용기와 희망 잃지 마세요 기도하겠습니다.
몇백년전 어디 지옥엔들 있었을까 싶은 가슴아픈사연들
앞으로 얼마나 더 세월이 시간이 지나야 없어질런지요
모든 분들 힘내세요
악몽에 시달리며 불안과 공포에 잠못드는 님들의 그밤이 어제날 내가겪었던 날과 밤이였어요 아무쪼록 신변에 각별한 주의를 돌려 무사하세요.
아침님 어머님뿐만 아니라 저 북한땅에서 죽어가고있는 수천 수만의 부모,
형제 남편 ,자식들을 위해우리가 하나가 되여 기도합시다.
피눈물이 나네요,
주사파 노사모 등등 이런부류기 때문에 김정일욕하거나 북한체제를 비난하거나 하면 독설이 튀어나옵니다. 여태까지 리플다는거 한번 보시면 알겁니다.
흔히 친북단체라 하면 단어의뜻은 북한동포들을 위하는 단체인거 같지만
실은 반대로 동포를 위하는게 아니고 김정일과 그 똘마니들을 위한다는 겁니다.
수기 잘보았습니다,
이세상 그어떤 말로도, 이세상 그어떤 위로로도 당신이 격은 상처나 아품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리라생각합니다
옛 구석기시대도 아닌 최첨단시대에서 한사람의잘못된정치로 몇백명이 인간들의 이유도,원인도모르게 굶어죽고, 얼어죽고,맞아죽어가는, 심지어 정든고향을등지고 타향땅에서 온갓시련과 고통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비참하고 억이막히는 이현실을 말로야어떻게 표현할수가 있겠습니까,,
아침님
어두은밤 과거를돌아보며 울지말고, 밝은 **아침**에 미래을생각하며웃으십시요,,밤이지나면 아침이오듯이 언젠가는 님의 마음속에도 따스한 평온이 찿아올겁니다,
이세상 그어떤 힘보다 자기자신이 제일강하고,이세상그어떤 사랑보다도 자기자신보다더한 사랑은 없다고 합니다,
자신을믿고 힘내십시요 어머니와 동생들을생각해서라도 어려음을이겨내야 합니다
* * *
하늘은 언제나 당신의편에 서있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중국에 잇지만 고향에 두고온 형제들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픔니다,
아침님,, 힘내세요. 우리 다같이 열심히 살아서, 고향에 두고온 부모와 형제들 아픈맘에 희망을 가져다 줄날은 언제가는 반드시 꼭올것입니다,
대한 민국은 북한 인권문제에 외피한다면 반드시 세계력사에 면치 못할 수치로운 죄를 지을것입니다 북한 인권문제는 그누구도 소홀이 대해서는 안됩니다
전세계가 지켜보구 잇는 지금 이환경에서 우리탈북인들은 북한 인권운동에기여할수 잇는 모든것을 다 기여할것이며 사명을 다할것입니다 , 오직 북한 에 두고온 가족을 위해서만 아니라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잇는 북한인민들을 위하여.. 탈북인들 힘내여 열심히 살기를,,,,,
많은 부분에서 저 역시 공감을 합니다.
힘 내세요...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시고, 어머니와 꼭 재회하시기를 바랍니다.....화이팅...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북한가요 다시만납시다 를 온종일 듣고 있읍니다 북한가요를 탈북자동지회 를 통해 접하게 되었고아침님의 수기를 가슴저리게 접하고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임을 절감하게 되는군요
수 많은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용기를 잃지않고 생활하는 아침님 희망가운데 항상 미소속에 살아가길 바라며 나의 따듯한 마음과 사랑을 보냅니다.
같은 동포로써 정말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미친 김일성과 김정일로 인하여 3500만명이 힘들고 고달프게 살고 있는 현실과 살고자 탈북했던 동포가 빌어먹을 같은 동족인 조선족의 돈벌이로 팔려가
는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아픕니다.화가 치밀어 오르구요..한국이 중국에 압력을 가하여 탈북자만이라도 어떻게 보호를 해야하는데,통일이라는 얼어죽을 대업을 위하여 탈북자들을 방관만하고 있다니,..
그리고,전 지금까지 탈북한 분들이 이렇게 몇년씩 중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면서 탈북한것은 오늘 처음으로 알았습니다..기껏해야 1년정도 머물다 한국으로 탈북한것으로 생각하였거든요..
제 글을 보고 있는 아직 중국에서 머물고 있는 탈북자분들이 있다면,
절대 아무도 믿지 말고, 한국에서 중국에 나가있는 여러 탈북자도움단체(즉,
종교단체나,비슷한 목적으로 있는 단체)외에는 절대 믿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꼭~~!자유 대한민국의 품으로 오셔서 북한정권이 붕괴되는데,일조
하세요..언젠가는 자유대한민국이 북한의 모든 동포를 안을 그날까지 우리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같이 합께 노력합시다...
저도 힘을 내여 인차 한국으로 가려구요.
좋은 하루 되셍요
저도 적게나마 도울수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언능 한국에 오세요 언능 행복해 지셔야죠~
참 슬픈 일입니다...
귀고한 운명이란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걱정되서 마음이 무겁네요.-:-
하루빨리 한국에 오셔야 할텐데.... ....
교회를 통해서 오시는 분 많다든데. ..인터넷으로 잘 알아보시면 길이 있어요.
그렇게 오신분을 제가 봣어여.( 둘의하나교회)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그 수 많은 고초를 , 특히 여성의 몸으로 ...
분통이 터집니다..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 될까여..
꼭 한국으로 들어오시길 기원할께여..
힘 내시길 바랍니다..
한국에 오시면 다시 글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그리고 아침이슬님의 글을 퍼가도 될까요??
탈북님들의 실상을 알리고 싶습니다..
힘 내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시댁어른께서 6.25때 만삭인 부인을 데려오지 못 하시고 곧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혼자 오셨답니다. 여기서 크게 성공하셨지만 늘 슬픔에 젖어계셨어요. 두고 온 가족 때문에...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도 님처럼 힘들 게 사시진 않을까 많이 걱정되고 안타깝네요.
헤어진 어머니 형제들 다시 만나 함께 행복하게 오손도손 사시길 기도할게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무심한 두만강이 말없이 흐르면
두고온 어머님이 못내 그리워
겆잡을 수 없이 피 눈물 쏟는다
자식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등 떠밀어 내 보낸 중국땅
자나 깨나 어머니 걱정
갈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고 싶습니다.
가봐야 하늘만 쳐다보며
하루하루 살아갈 끼니를 걱정하는
고달픈 삶이기에
가고파도 갈 수 없습니다
왜 중국에서 살지
여기 북조선엔 뭐하러 왔냐고
울고불고 원망하실까봐
오도가도 못하는 강가에 앉아
하염없이 목 놓아 웁니다
어머니 그리운 내 어머니
꼭 살아만 계세요
오래오래 살아남아
못다한 이 불효를 씻을 수 있게 해주세요
어머니!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올해 1월에 한국으로 입국하였어요
지금은 하나원수료중에 있습니다
지금껏 저의 수기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제는 제가 시간이 되지 않아 님에게 인사 제대로 드리지 못했어요
님께서 저의 수기를 읽고 시까지 붙여주시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였습니다
어머니의 소식을 받았을때 그 기분 그 대로 글로 썼을 뿐이였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저도 언제 한번은 만나고싶습니다.
기자님의 사업에 큰 건투를 바람니다.
저의 메일 주소를 가르켜드리겠어요 jingch4@hotmail.com
아침님, 무사히 한국으로 오신거 축하드려요. 그리고 환영합니다.
살아가는 일이 이곳도 쉽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에 비하면 쉬울거라 생각합니다. 노력 하신만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좋은 생각만 하시고 행복한 일들만 꿈꾸며 노력하시면 바라시는 일들을 이루실 거라 믿습니다. 건강하세요.
40대 여성이니까 언니처럼, 이모처럼 생각하세요.
선교사님을 통하여 오는길이니 아무걱정하지 마세요.
전화번호 13962560102 번으로 연락하세요.
혹시 잘안되면 bsk7309@yahoo.co.kr로 연락하세요.
ps: to관리자. 댓글이 좀 거칠다해도 강제로 지우는건 좀 아닌것 같습니다. 별 뜻없이 육두문자 남발이면 모를까. 자신의 의견이 (의견같지 않은 의견이라도) 묵살당하면 당하는 사람도 기분 나쁠듯 한데요...
수많은 고생끝에 오신만큼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맛있는것도 많이 드시고 예쁜옷도 많이 입으시고요..
수기 잘 읽었습니다..많이많이 행복하세요 ^.^))
자유의 땅 한국에서 행복하시길,,,,^^^^
감사합니다 잃어 보면 잃어 볼수록 슬프고 눈물이 나고
그 야만스러운 세상에서 부모님들과 혜어지시고 얼마나 마음아프시겟습니까 인제는 한국으로 돌아 가셧으니 힘차게 희망찬 앞날이 오리라고 기도 할게요 전 지금 안직 중국에 있지만요 시간나시면 메신저나 메일로 좀 부탁 드립니다 guangfukong@hotmail.com 메신저 메일 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짱꼴라넘들 뭐도 안되는 것들이 -_-;;
감히 우리 민족을 사고 팔다니..
저희 학교에도 외국인 유학생들 좀 있는데
중국인들은 씻지도 않고 드러버여 -_-..
님의 수기 너무 감동깊게 잘 보앗습니다..
앞으로두 힘내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님처럼 힘내서 살겟습니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미국에 지배를 당하는 것처럼 확대해석만 하려고 한다. 미국을 이용해야지 무조건 반미의식만 가진다고 될일일까? 스포츠에서도 외국의 뛰어난 감독이 있으면 영입해서 승리를 거둘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을 이용하자는 것이, 왜 꼭 미국에 종속된다고만 생각하는지.. 대책도 없이 국제적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주'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통합성에 피해를 끼칠 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좌파이데올로기의 배후에는 항상 '이익'이 도사리고 있었다. 북한 정치조직을 보면 모르냐? 겉으론 인민을 위하는 사회주의라고 했지만 공동선을 김일성 김정일 한 가문의 사적이익을 위해 추구했고, 남조선에도 좌파들은 온갖 그럴듯한 말로 국민을 속여 권력을 얻어,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인기위주의 정책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지배하려 해왔으나 실패했다. 지금도 잃어버린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잖은가.
보수가 그러는 것은 이해가 가나,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논하니깐... 그러나 말로는 평등 분배를 외치는 자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속이 너무 들여다보인다.
결국은 권력의 맛을 잊기 싫다는 얘기에 불과함. 국가의 이익은 어떻게 되던 좌파의 이익만 추구하면 되는 자들이니까.
이들의 특징은 현실성이 없는 이상적인 말을 무척 잘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생각에 틀리면 어른이고 선생이고 선배고 무조건 개무시하고 뒤엎으려고만 하는 인간성 삐뚤어진 자들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나가게 되면 지금의 북한사회처럼 되는 것은 자명한 일..
탈북자님들, 대한민국의 무정부상태를 바라는 좌파패거리들의 말에 현혹되지 마시고, 힘들게 고생하신 경험을 살려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시고, 무엇보다 북조선 동포들의 인권에 한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될 것입니다.
통일의 그날. 우리 부모형제자매들께 부끄럼없는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합시다.
우리는 대중, 놈현 정권을 지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 국가에 가까워졌다. 중국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한 거 모르뇨? 오히려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인 것 같더라 ㅋㅋ
좌파꼴통들의 근시안적 시각이 남한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을 왜 그렇게 모르는지.. 당분간은 아무 문제 없겠지. 나중에 국제사회에서 왕따 당하면 그때 가서야 알겠지만.
친일파? 그런 인간들은 너보다 내가 더 미워하니깐 너 혼자 애국자인척 하지 말거라.
국익을 위할 생각은 안하고, 마비된 이성으로 살고있는 자신을 똑똑한척 하고 있으니... 어서 잠꼬대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좌파 열광주의 훈련을 그만두고 ㅎㅎ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네요. 우린
제 가슴에 구멍이 휑~하니 뚫린 심정입니다.
흩어진 가족도 찾고 아픈 마음의 상처도 아물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에 입국하여 제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그냥 순서없이 쓴 저의 수기에 아직도 많은 분들의 관심속에 댓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200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침님 수기를 보고 눈물이 주륵나오네요...
현 상황에서 남과 북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있어서 ..
정말 마음이 아프고..
어머님이 얼마나 그리우시고 만나고싶으세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너무궁금했는데 나름 열심히 사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비록 어리지만.. 아침님과 같이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공부도많이해서..
정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 글 보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네요..
같은 피를 나눈 형제 자매인데.. 반쪽으로 갈린지 50년이 훌쩍 지나가고..
.. 정말 마음만 아프네요..
이런 탈북자수기 읽을때마다 제가 당신들의 고통을 당한것처럼
마음 언저리가 저려와요..
부디 행복하시고 부디... 행복한 가정도 이루셨으면 좋겠어요
세상에 쓰레기같은 사람이 반이면 정말 착한 사람도 반은 있을거예요..
항상 행복하시길 같은 남쪽 하늘보면서 ^-^ 기도할게요..
제가 무슨 종교적으로 뭔가 신념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도할게요
화이팅이예요! 아침님은 행복해지셔야되요..♥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3-16 23:53:14
내내 마음졸이며 댓글을 읽는데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한국에서 행복한 일 더 많아지시길 바랍니다.
슬픈 기억 다 잊으시고, 고생하셨던 만큼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사랑받으세요.
하늘에서 지켜보시는 엄마도 뿌듯하실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