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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삶, 함께하는 삶 - 김하늘
동지회 100 9470 2005-12-12 15:27:09
낯 선 한국생활

나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이상하게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낯설지 않았다. 내가 북한을 떠나 6개월만에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얼마나 그리고 그리던 대한민국인가!

인천공항 도착 직후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외국인들과 뜻 모를 외래어,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를 보면서 ‘아! 이것이 대한민국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제공해준 따뜻한 보금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엄마와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실망했다. 12평도 안되는 조그마한 집에 여기저기 쥐똥만 널려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현실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러면 안돼. 그나마 이렇게 집이라도 얻게 된 것이 어디야.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해’ ‘여기서 내가 눈물을 보이면 엄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집이 작으니 청소하기도 쉽고, 집안을 꾸미는데도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자 노력했다. 청소를 시작한지 꼬박 3일만에 대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이곳저곳 도배며 페인트칠도 하고, 이것저것 꾸미고 나니 너무나 멋진 집이 완성되었다.

집안 대청소를 끝낸 후 엄마와 나는 가구를 사러 시장에 갔다. 그런데 막상 집밖을 나와보니 막막했다. 시장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등등 모든게 낯설었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에게 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택시요금이 4천원이나 나온 것이었다. 북한에서 4천원이면 전자제품을 살 수 있는 큰돈이다. 그때까지 경제관념이 없던 우리 모녀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도전하는 삶

집을 꾸미고 나니 아르바이트도 하고, 피아노며 영어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북한에서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나의 실력은 너무나 형편없었다. 고민 끝에 영어학원 선생님께 고향이 북한이라는 사실과 영어를 잘 모르니 초급부터 가르쳐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선생님은 나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였고, 나도 흥이나 영어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 있어서는 의사소통이 큰 문제였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었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 컸다. 그럴 때면 어딘가에 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 나서기가 두려웠다.

여기서 포기할까도 했지만 어머니 생각이 났다. 비록 못난 자식이긴 하지만 나 하나 바라보며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나는 인생의 전부이다.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나의 삶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삶까지도 망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힘들때마다 어머니 사진을 보며 나를 달랬다.

나는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메모해 두었다가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이러한 나의 노력에 사장님도 감동했는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사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나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힘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했다. 항상 수면시간이 부족했지만 오전에는 영어,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오후에는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공부가 재미있어 늦게까지 영어공부를 했다.

좌충우돌 대학생활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공부와 아르바이트만 해서 한국에서 살 수 있을까’ 뭔가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우연히 TV에서 본 스튜어디스에 관한 프로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보는 겉모습과 현실의 차이를 보면서 실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매력으로 느껴졌고 나도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었다.

우선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서울에 올라와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던 참에 하나원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은 나에게 대안학교에 입학할 것을 제안하였고,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2004년 나는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계열에 당당히 합격하였다. 대학교에 합격을 하고 나니 너무 기뻐 영어선생님과 피아노선생님 그리고 나를 친딸처럼 보살펴주시던 식당 사장님께 전화를 했다. 모든 분들이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기뻐하신 분은 바로 어머니였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고향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고향이 북한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당당히 밝힐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이상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이젠 친구들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내가 너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어를 조금 모를 수도 있고, 말이 서툴 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하는 데 있어서 너희들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대학생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친구들은 눈물을 닦아주며 나를 위로해주었고, 그 위로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의사소통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선영아, 너 유학과 리더십 과제 받쳤니?” 라고 물어보자 친구가 놀란 토끼눈을 하며 “응? 뭐라구? 받쳤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교수님께 과제를 제출한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받친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학술적 글쓰기’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너무 어려워 나는 고심 끝에 교수님을 찾아 뵙고 정중하게 부탁드리기로 했다. “교수님, 이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배워주십시오!” 그런데 교수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뭐? 배워달라고! 너 몇학년이야? 이름이 뭐야?”라며 화부터 버럭 내시는 거였다. 이유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물론 며칠후 교수님과의 오해를 풀긴 했지만 남과 북의 언어차이를 실감했다.

우리는 한민족

어느 날 방송국 PD가 나에게 MC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며 제안을 해왔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난감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 말투도 어색한데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하면서 방송에 출연한다는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걱정 아닌 걱정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도 하면 나도 할 수 있다. 남들도 하는데 내가 못 할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주위 분들의 관심과 애정 덕택이다.

내가 선택한 이 땅에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지금까지는 항상 주위의 도움만 받았다. 북한에는 없는 기부문화가 아직까지는 낯설지만 나도 언젠가는 남을 도우며 살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닌 삼과 사의 효과를 내듯이 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도와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한 채 사회주의 타성에 젖어 개인이 노력하지 않고 정부가 혹은 주위의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만큼은 지금 당장 바꿔야한다.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노력과 계발을 위해 힘써야 한다.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선입견을 갖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탈북자들도 한번 잘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만큼 소수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다 보니 정말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경우가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듯이 우리에겐 물질적 지원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용기가 되어 돌아온다. 반세기 동안의 단절된 삶으로 인해 생겨난 민족간의 이질감을 한순간에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통일국가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한민족이다. 남과 북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2005년 10월 김하늘(MBC 느낌표 MC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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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nsam3424 2005-12-13 11:19:43
    어머니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상당한 힘이 될것 입니다.
    탈북자란것이 결코 창피하거나 부끄러운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들의 양심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통일이 됬을때 님의 역활은 북한에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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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 2005-12-15 11:44:22
    님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절대로 탈북자라고 하여 주눅들지 말고 힘차게 살아나가시기를 바람니다. 저도 지금 중국에 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들을 만날 통일의 그날을 그려보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컴퓨터도 배워 가지고 한국에 계신 분들과 글도 나눌수있게되였습니다. 그래도 님은 한국으로 빨리가셔서 다행이예요. 통일이 되면 다 만날수있게 되겠지요. 님의글이 어딘가 모르게저에게 힘이 되는것같아요. 저도 인내력있게 살아 나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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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리빵빵 2005-12-15 22:45:02
    방송에서 뵈었던 하늘양이군요 얼굴도 이쁘고 진행도 너무 잘하시던데
    직접 쓰신 글 보니 기분 좋습니다
    언제나 기쁘고 좋은일 많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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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 2006-01-12 08:00:22
    참 영특하시고 사려 깊으신 분 같으시군요...
    그 맘이면 문제 없습니다. 다 잘 될것 같네요.
    세상은 오르막 내리막 비오는날 햇볕나는 날도
    있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어떻든 요런 세상. 요리조리 요리하면서 즐기면서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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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안개 2006-01-21 00:53:32
    나도 성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공무원 생활 17년하고 지금은 개인사업 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평안북도 정주인데, 아직도 북에 두고온 남동생을 못만나고 있지요. 그 영향을 받아 탈북자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앞으로 공부열심히 하시어 훌륭한 사람이 되십시오.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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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 2006-04-21 01:13:01
    하늘양 방송를 통해서 몇 번 봤었는 데 진행도 무난하게 하게
    잘 하셨습니다.
    요즘은 방송에서 보지는 못하지만 대학생활 열심히 하고 계시겠죠?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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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사랑 2006-06-24 14:10:56
    참 좋은 글입니다. 저두 회사에 다니면서 <배워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써서 실수 하군했는데 문화와 언어의 차이점이니 그걸 빨리 받아들이는것이 지혜라고 생각 합니다. 현재 대학 생활을 하신다니 축하드리구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조금은 힘들지라도 인내와 노력만 있으면 이세상 불가능이란 있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자아자~~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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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uke 2006-12-27 19:56:39
    화이팅!열심히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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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써니 2008-07-26 02:34:09
    하늘양 너무나 건전한 생각을 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좋습니다
    꼭 성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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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르마 2008-12-05 17:03:54
    좋은 글 잘보았어요. 새터민 수기들을 보면 26년간 이곳에서 살던 제가 오히려 배우는거 같아요. 당연시 여겼던것들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수있게 된다고 할까요...그런데 많은 새터민분들은 북한출신이라는걸 부끄러워 하시는듯 하네요.물론 제가 그 입장이 안되봐서 알수는 없지만 그건 부끄러울 일은 아닐듯해요. 오히려 탈북했다는 용기가 더 대단한게 아닐지요. 무의미하게 아무 생각없이 이나라에서 살고있는 사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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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워주세요 ip1 2013-10-30 22:59:26
    배워주십시오는 문법적으로 잘못된 말입니다. 배우게 해주십시오가 맞는 말입니다.
    선생님, 제게 이것을 배우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해야 합니다. 북한의 언어학자들이 뭔가 잘못된 듯 합니다.

    배워주십시오는 배우세요의 높임말과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교수님 이것 좀 배워주십시오라고 말하면
    남한에서는 교수님 이것 좀 배우세요라고 하는 말과 거의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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