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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같이 일어서렵니다 - 아침이슬
동지회 223 11121 2005-12-15 11:41:37
저는 어느 날 공원에 산책하러 갔다 들에 펼쳐 있는 잡초를 보고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였습니다. 흔히 잡초라면 사람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거나 밭에 뿌리 내린 잡초는 사람들이 뽑아 버립니다. 하지만 밟아도 뽑아도 여전히 그 존재는 살아있고 언젠가는 새싹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립니다.

모진 시련으로 쓰러지고 빛을 잃었다가도 어느 날엔가는 꼭 살아서 자기의 생명을 꿋꿋이 다해가는 잡초... 그 누가 보던 말든 좋아 하던 미워하던 자기생의 목적만을 위해 묵묵히 버티어 가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인간이 본받아야할 표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욕심 아닌 권리 때문에 배고픔을 이겨내려고 고향떠나온 것이 인제는 친지들과 영이별이 되고 타향 멀리 중국 땅에서 찬바람 찬비에 몸을 적시며 흐느끼고 몸부림 쳐야했던 저도 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거대한집 식구가 되여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한 하늘 지붕아래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덧 감격도 새로운 대한민국에 들어서던 그날로부터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수료를 거쳐 여기 제가 사는 곳까지 온 저는 처음에 담당 형사님과 함께 저의 집에 들어서서 앞이 캄캄 하였습니다.형사님이 이집이 "윤씨집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푹쉬고 내일 제가 다시 올게요." 하는 뒷말만남기고 떠난 후에 홀로 빈집에 들어서니 저도 알지 못할 오묘한 공포가 밀려오고 저의 처지가 너무 너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하고 또 아버지의 형제분들이 남한에 계시다는 이유로 그리도 고통을 받았고 그래서 그리도 제가 증오하던 남조선에 제 발로 찾아왔구나…….하고 생각하니 기막혀서 눈물만 줄줄 흘러 내렷습니다. 중국에서 있을 때에는 한국에 오지 못해 안달을 써왔건만 막상에 그것이 현실로 닥치니 다른 또 하나의 괴로움이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아찔한 벼랑 끝에 저 홀로 남겨두고 세상 모든 것이 저를 외면한 것같이 막막하고 아찔하였습니다. 파도 사나운 망망대해에서 자그마한 쪽배에 홀로 앉아 풍랑 속을 헤매이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저의 인생이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저에게는 홀로 감당하기 너무도 어렵고 힘든 숙제가 생겼습니다.

나이는 비록 30을 넘어서지만 남한에서 태어난 3살짜리 아이들의 수준밖에 안되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이해력으로 홀로 버티여야 하고 새생활을 개척해야 하는 이 숙제는 저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당시 몸도 않좋고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저는 무엇부터 어찌 했으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정부에서 준 정착금은(1370만정도) 손에 한 푼도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입국할 때 브로커한테 준돈이 1150만원에 주거지 임대 계약금을 주고 나니 정말로 얼마 안남았습니다. 임시 먹고 살 수 있는 것들만 먼저 간단히 사고 텅 빈 집에 있노라니 세상에 산소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고 하여 가슴이 답답하기만하고 머릿속은 착잡하기만 하였습니다.

어찌하면 제가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자나 깨나 그 생각뿐이 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는 교차로 신문을 보고 어느 가계에서 서빙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집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여서 교통비를 않써도 되겠다는 생각에 너무 좋아 그길로 연락하고 면접을 보아 합격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찾아 갔던 그 가계는 "호프"집이였습니다. 북한에서나 중국에서나 "호프"라는 말을 모르고 살았던 저는 그것이 무슨뜻인지 또 거기에 들어가서 무얼 어찌 해야 하는지를 알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이 세상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서 저도 돈을 벌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어 밤에 한잠도 못 잣지만 다음날 저녁에 일하러 첫출근하는 저의 발걸음은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만 하였습니다.

일을 시작하며보니 그 일은 제가 생각한 것처럼 그리 간단한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술을 파는 집이고 제가 손님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술심부름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제가 웃음을 많이 팔아 그 집 가계 술을 손님들이 많이 마시게 하여 매상을 올려야 하는 것이 저의 일이 이었습니다.

한몇일 하다 보니 도저히 그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잘못된 행동 하나 잘못된 선택 하나가 그처럼 어렵게 여기 까지 온 우리 탈북자들의 이미지에 크게 먹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겨 여기까지오는 길을 성공한 현 상황에서 돈몇푼때문에 이일을 계속해야 하나…….하는 갈등을 하던 끝에 결국에는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여 담당형사가 선택하여 주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일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메뉴판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이름들만 써있고 손님이 주문하면 기초로 무엇을 들여가야 하는지.그리고 분명히 손님의 주문은 메뉴의 것인데 다른 이름으로 주문하거나 표현하면 그때의 당황함은 어찌 글로서 표현하겠습니까. 이렇게 시작한일이 어느덧 손에 익어 제대로 되여 가자 그 이후부터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일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낮에 해야 할 사람의 일까지 제가 하여 제가 두 사람의 일을 혼자 하였습니다. 아마 제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드셨는지 사장님은 어느 때부터는 가계와 창고열쇠를 저에게 맞기시고 낮에하는 영업 중 4시간은 저 혼자 하게 하시고 창고에 부족한 물건은 제 스스로 알아서 주문하게 하였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5시 까지 종일 뛰어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면 다리가 퉁퉁 부어 있고 다리에 쥐가 오르고.하여 진통제 약을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 깨면 또 출근시간이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단골로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포스코"에 다니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제가 하도 살아 보려고 아둥바둥하니 보기가 안쓰러운지 저보고 포스코안에서 일할 의향이 없냐고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정식 직원은 아니고 일용직인데 여기서 고생하는것만큼만하면 시간은 8시간 일이고 월급도 더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그 사람들의 소개로 하여 저는 포스코안 막노동판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공구 창고를 보면서 거기서 또 역시 모든 공구의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다시 시작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둘 배워가면서 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금방배우면 돌아앉아 몇 분후면 또 그 이름을 까먹고.너무도 생소하고 모든 것이 외래어로 씌어지고 불리니 저는 그냥 알짜 무식이 된격이였습니다.

공구와 자재들을 내어주고는 짬시간에 현장에 나가 페인트칠도 해주고 볼트도 풀어주고.조여주고 전기선도 결선해주고..허리에 뻰찌 드라이버 몽키 스파나를 차고 일하는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일군들과 함께 일하였습니다. 볼트 조여주고 청소해주고 하느라 30~40M되는 크레인 꼭대기에도 올라 다니고 지하에 들어가 아슬아슬하게 외나무다리를 건너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그때 그 크레인 (기중기) 꼭대기에 올라가니 거기 운전기사와 일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 크레인이 생겨 여자가 올라와보기는 제가 처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사현장에 철거 작업을 할 때에는 아저씨들과 함께 볼트 풀고 쇠파이프(쇠로된 배관)도 나르고 소화전철거도하고 전기 판넬 철거도 함께하면서 저는 나름대로 정말로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작년에는 포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하여 일을 못하게 되자 저희가 맡은 공사가 기한은 다되가고 철거작업이 아직 마무리 하지 못하자 공사 현장 소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저하고 다른 한사람 4명이서 공사 철거를 하게 되였습니다.

모든 라인의 철거 작업과 동시에 철거한 내용물을 분리 처리 하는 작업은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여름이라 더운 날씨와 제철소의 뜨거운 열기는 생계란을 가져다 놓으면 금방 익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넷이서 작업 마무리를 다하던 날 마음이 그렇게도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들과 꼭 같이 일하면서 이 현장에서 있으나 없으나 한사람이 아니라 당당한 일꾼으로 쓰여졌구나 하니 힘들었던 순간순간들이 보람으로 느껴졌습니다. 주변사람들이 제가 일하는 것을 보고 그 일은 여자가 하는 일이 아니다고 그냥 창고에 가만히 앉아서 공구와 자재 관리만 하면 된다고 그리 말하여도 저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저의 일하는 모습에서 우리 북한사람들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한 제가 일하는 범위에서는 저도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한개 공사가 다 끝이나 다음공사가 이어질 때까지 빈공간이 생기면 인력 채용 쎈터에 연락하여 때로는 도로 공사장에 나가 뙤약볕에 신호수로도 일하여보고.이렇게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횟집과 불고기집에 들어가 아르바이트도 하고…….

작년겨울 어느 날 고향소식을 98년도 집을 나와 처음으로 듣게 되였는데 청천 벽력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렇게도 의지하고 믿던 언니가 굶어 돌아 가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땅이 뒤집히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큰 회오리바람이 저를 휘감아 수렁에 빠뜨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밤 10시경에 택시타고 인적 드문 바닷가에 나가 마음껏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 엄마 ~~~ 아버지~~~오빠~~ 언니~~~"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혈육들을 애타게 부르며 온몸을 떨어가며 울고 울었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언니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나올 때 언니를 데려오지 못한 것이 너무도 한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살 수 있다는 기약 없는 길이라 괜스레 언니를 데리고 떠났다 붙잡혀 언니를 고생시키거나 잘못되게 할가봐 차마 함께 떠나지 못했는데 그때 제가 마음을 조금만 더 독하게 갖고 함께 떠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제가 언니를 죽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병도 아니요 사고도 아니요 굶어서 30대의 꽃 같은 나이에 이승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고 찢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울고 소리치고 몸부림치고 하기를 몇 번이고, 집에 들어와 보니 새벽 6시가 되였고 목은 다 쉬여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끝내 작년 9월에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정말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일어났다는 다시 쓰러지고, 그러기를 몇십 몇백번...

억척같이 살아가니 하늘도 저를 외면하지 않았나 봅니다. 저의 주위에서 지켜보던 한 회사 사장님이 저를 경리로 채용하겠으니 함께 일하겠냐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불같으나 컴맹이라 어쩔 수 없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일하면서 배우면 된다고 제가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전 그렇게 하기로 하고 회사에 들어가게 되였고 대학생 알바를 찾아서 돈을 주고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하나원에서 컴퓨터 배우는 시간이면 어떻게 하나 구실을 만들어 빠지던 제가 이사회를 살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배워야 된다. 결심하니 저녁마다 배워서 인젠 시무일을 하는데 손색이 없게 되였습니다.

지금 저는 당당 합니다. 그 누가 저에게 물어 보면 회사에서 일합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수있는제가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저를 사랑합니다. 백번 천 번 상처받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가 바로 저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잡초는 제 생활의 견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잡초 같은 인생 잡초같이 살고 싶습니다. 잡초를 바라보면서 자신을 다독이고 돌이켜보며 살 것입니다. 힘들어 지쳐 쓰러지면 잡초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설 것이며 억척같이 살 것입니다. 하여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잡초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네가 내모습이기에...
나도 너처럼 살아야 하기에...

2005년 12월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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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 2005-12-15 11:59:07
    자책감에 몸들바를 모르겟읍니다.
    성공하세요.
    12년전 귀순,아니 탈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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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리빵빵 2005-12-15 13:45:16
    아침이슬님 인생의 승리자로써 삶을 살아가시네요
    잘 적응하시고 인생을 당당히 사시는 모습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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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2005-12-15 22:35:31
    가끔 한번씩 웃으세요, 될수있으면 방구도 많이뀌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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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신장 2005-12-18 19:52:26
    꿋꿋이 살다보면 좋은날이 분명오리라 믿습니다.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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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순호 2005-12-24 17:00:08
    꼭 성공 하세요 그리고행복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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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민 2005-12-27 19:18:42
    30대 직장인입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님의 언니 분 소식을 듣고 제 일은 아니지만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열심히 사시니까 이 땅에서 또 새로운 좋은 분들을 만나실 것입니다. 미혼이신것 같으신데 이곳에서 좋은 신랑 분 만나셔서 아들, 딸 많이 놓으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님의 글 보고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님 화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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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수유 2006-01-05 15:48:59
    저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해주시는군요.

    도대체 사람이 얼마동안 이나 굶으면 사망에 이르게 될까요?

    굶어서 사람이 죽는다는게 가능할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에.....

    건강하시고 좋은분 만나서 결혼도 하시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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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수강산 2006-01-11 22:10:25
    아침이슬님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반성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많이 느낌니다. 열심히 사세요 그리고 성공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한국사회가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아요.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하세요. 힘들다고 지프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나 믿고 의지하지 마세요. 남쪽 생활에서 배우면서 지혜롭게 행동하시고 지금 처럼 열심히 사시면 꼭 좋은 날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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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유학생 2006-01-12 11:43:42
    현재 동북삼성 어느곳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유학생입니다. 학교내 기숙사에서 공부만 하고 있던 저는 어느 조선족친구랑 통일 문제로 말다툼하게 되었다가 이렇게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시험이 끝나고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인터넷을 보고 있던 저에게 탈북자들의 수기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전 한국에서 부모님이 매달 2000원이상의 돈을 송금해주셔서 그돈도 생활하기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팔리고 산다고 하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것도 중국조선족이 그런짓을 하다니 !!!

    정말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괴롭습니다. 비밀리에 도와줄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이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하는데, 전 오늘밤 아니 지금 오후가될때까지 밤새동안 잠 한 숨도 못잤습니다. 너무 충격이여서 지금 옆에 자고 있는 중국친구를 깨워서 도대체 너는 이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저 중국어와 학과공부에 얽매였던 저에게 이곳 탈북자들의 수기는 충격과 눈물 그리고 자책감과 아무것도 도와줄수 없는 무력감에 시달려 나를 잠못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전 시험공부로 지금 50시간동안 3시간밖에 수면을 하지 못했는데도, 잠이오지 않습니다. 아침이슬님 건강하세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같이 연락하면서 지내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꼭 건강하세요. 님의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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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유학생 2006-01-12 11:47:25
    전 사실 자신의 이기로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통일에 대해 전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중국대학 교수가 북한문제에 대해서 물어볼때 사실 질문을 아예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똑같이 북한은 못살고, 너무 힘들게 산다는 그런 말을 하면서 은근히 무시까지 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아 근데, 정말 이런 인간이하의 생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단순히 정권붕괴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인것 같습니다. 그저 배를 채우고 가족끼리 같이 사는것이 이들의 꿈인데, 어떻게 이런 간단한 소워조차 이뤄지지 않는지, 오늘부터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중국에 공부를 하러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리로 보낸 이유가 있을것입니다. 아침이슬님의 글은 저를 많이 일깨워주웠습니다. 열심히 사세요. 주님은 항상 아침이슬님을 지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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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6-01-12 13:28:49
    중국유학생님 고맙습니다
    외국에서의 어려움과 외로움은 누구 못지않게 이해하는 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때가 많죠?
    저의 글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요 지금 하시는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여 주세요
    또 제가 아는 중국에서의 역사 교육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많이 외곡 되여 있는줄로 압니다
    하여 그 왜곡된 우리 민족의 자랑찬 역사의 진실을 주변 사람들께 당당하게 이야기 하여 주세요
    저도 중국에있는 ...출판사 편집 기자를 잘알고 있어서 그분더러 당신의 몸에도 우리민족의 피가 흐를진대 어찌 잘못된역사 교육을 알면서 외면할수 있냐고 하니 공산국가의 제한된 언론의 자유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언론의 힘으로 도와 달라고 하였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의 말씀이 공산국가의 특유가 정부에 유익한 정보만 싣기를 원하니 그이상을 벗어나면 자신의 밥줄도 끊어지고 당적으로 처분도 받아야 하니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자기로서도 어쩔수 없다는것이였습니다
    물론 굉장히 짜증 났고 감정이 격해 지기도 하였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공산국가에서 태여났고 자라면서 공산 교육만 받아온 저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되여 참으로 이해가 가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그사람들이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사실왜곡에대하여 강하게 맞섰으면 좋겠습니다
    님은 비록 지금 중국에 계시는 우리 민족의 한사람으로만 생각하셔도 그 한사람의 입을 통해 나가는 역사의 진실에 대한 정의는 수십, 수백, 수천명을 깨우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대변인이 되여주세요
    그럼 안녕히..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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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단하세요! 2006-01-13 23:19:52
    젊은 아가씨, 정말 대단하시네요. 전 이곳에서 태어나 현재 은행에 근무하는 40대 아저씨입니다만, 요즈음 젊은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여기는 힘들때 함께 해줄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열심히 사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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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6-01-18 16:45:06
    위의 미인송 박미영 님들 중국에서 참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참말로 돌이켜보면 저도 중국에서 살아오던 그생활이 너무도 지긋지긋해요
    하물며 지금 이순간에도 그쪽에 계시는 님들이야 오죽 하겠어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여기에서 지금 속 편히 사는 저보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항상 감시받으며 마음의 불안을 안고 열심히 사시는 님들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저도 중국에서 5년세월을 눈에 눈물이 마를새 없이 살았고 세상에 태여나서 짐승같이 천대도 받아 보았습니다
    저도 중국 조선족 교포를 만나 살았지만 그집에서 받은 인간이하의 천대를 생각하면 온몸이 부르르 떨린답니다
    부부가 살면 당연히 말다툼도 생기는 법이거늘 그렇게 둘이 다투면 시어머님은 저를 붙잡아 가라고 경찰차를 불러대고 난리 법석을 부렸어요
    때론 아들과 어머님이 함께 달라 붙어 때리고 발로 짓밟아 뭉개고 하였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통곡하니 나중에는 동네에 나가서 제가 정신착란이 생겨서 그리울었다고 소문내놓고..
    그래서너무 창피해서 한동안은 밖에 나가질 못한적도 있답니다
    한번은 도저히 삶의 욕심을 가질수가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려고 수면제 150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눈뜨고 보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더군요 근 6일 만에 눈을 떳는데 그때까지도 시댁 식구들과 중국 신랑은 죽은 시체와 한가지인 저를 방 웃쪽에 눕혀 두고 있었더군요 약한알 안먹이고 의사 한번 안부르고 말이예요
    내가 죽지않고 다시 살았다는 그 현실에서 저는 너무너무 짜증 났어요
    그래 비틀 비틀 하면서 일어나 다시 손목을 자해 하였습니다
    하도 천한 목숨이니 죽는것도 제 마음대로 안되더라구요
    역시 실패 한것이죠
    다시 눈을 뜨니 시 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더군요
    간호사들의 말이 제가 경찰차 110 에 실려 왔다고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저를 북송해 버리라고 고발을 하였는데 경찰들이 보고 너무 너무 안되여 차마 붙잡아 가지 못하고 저를 병원 응급실에 실어다 눕혀 놓고 간것입니다
    그래서...저의 지난날이 너무 원통해서....잃어버린 내 인생의 한부분을 되 찾고 싶어서 그냥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을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님들은 그 지옥 같은 중국땅에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하루 빨리 좋은 세상이 와서 중국과 동남아를 비롯한 나라들에 지금 이시각도 숨어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형제들 모두의 살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 할게요
    그리고 님들도 언제 어디서나 신심을 잃지 말고 건강하길 빌게요
    열심히 그리고 힘차~~~~아자 아자 화이팅 ^^*^^
    그리고 우리 좋은 친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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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신장 2006-01-22 23:03:46
    인생이란 가시밭길이라고 하지만 님들이 겪는 고통을 상상해보니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네요.
    제형편에 부담없이 도움이라도 드리고싶은 심정입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짐승처럼 눈치만 살피며 사시는 분들.........
    그분들도 분명한것은 사람이라는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은 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대접은 받아야되는데...
    혹시나 조금이라도 그분들에게 도움이될수있을까요?
    예전에 심양에 사업체가있어 가끔들러 조선족여성과 술만 먹은 제가 너무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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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미 2006-01-27 07:08:40
    장미님은 중국어디 계시나요 ?저도 탈북자인데 지금 청도거든요
    님말씀대로 중국에서 돈조금이라두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요 ㅠ,ㅠ
    아는사람도 없고 사는게 넘힘들어요 같은처지 칭구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메일주소라도 남겨줫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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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소녀 2006-02-04 02:37:24
    장미님.. 나두 중국에사는 탈북자인데여
    탈북한국인을 만나서 돈 300만원에 고민하던중 님을 여기서 만나게 되니 반갑네여,,
    이전에 천대받으며 산 얘기 나하구 똑 같네여 히야~
    친구하구 싶네여 ` 넘 외로운지라~

    그리구
    아침이슬님 오늘까지의 성공을 축하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기원합니다
    우리 탈북자들의 강의력과 불타는 정열을 발휘하신데 대해서
    더 업는 감사를 드립니다
    탈북자님들 새해 건강하시구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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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국화, 2006-02-05 13:47:08
    아침이슬님 님께서 올리신글은 감동, 그자체에요~ 그리고 여기에 리플을 올리신 모든 우리 북한의 여성 동포들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젖어드는 눈시울을 감출수없었어요~ 모두 힘내시구요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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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별 2006-02-09 14:58:09
    통일소녀님 .영미님 들국화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절망을 뒤집으면 희망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 땅에서 억척같이 살아가시는 그 모습 보기좋습니다.
    저도 산동성에 많이 있었고 그곳은 나에게 정말이지 추억깊고 사연도 많은곳입니다.그리고 세분모두 저보다는 훨씬 멋지게 사시네요
    궁금하거나 알고싶은것 묻고싶은것있으시면 우리 메신저나 싸이에서 만나요
    <a href=mailto:flduddhr@naver.com>flduddhr@naver.com</a> <a href=mailto:ya7223@hanmail.net>ya7223@hanmail.net</a> <a href=mailto:dbsrhkdtn@hotmail.com>dbsrhkdtn@hotmail.com</a>
    저의 메일주소입니다.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소원성취하시길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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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별 2006-02-09 22:21:36
    아침이슬님 정말 멋져요 구절구절 너무나 생동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반성, 확신을 심어주는 메세지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바른 심성과 확실한 목적, 억센 개척정신 부럽습니다.
    건강하시고 성공하시고 나날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침이슬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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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6-02-15 13:49:38
    qkraldud 님 먼저 고맙다고 인사부터 드릴게요
    님도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고 하시는일 꼭 성공하셔서 행복하시길 빌게요
    그리고 님한테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도전 그자체를 존경하고요 멋있네요
    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사노라면 여러가지 문제 점들과 애로 사항들이 많이 생길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까지 있게된 자신들의 지난날을 돌이 켜보면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님께서 처음에 일을 시작할때의 용기와 신심을 가지시고 일을 추진시키면 반듯이 좋은 일이 생길거라고 생각합니다
    복장 공장을 하신다 하셨는데 대체로 어떤 공장인지요..그리고 그 팔로는 어떻게 되여있는지 궁금합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묻고 싶네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시고요 새로운 멋진 꿈을 향하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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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반짝 2006-02-16 01:38:00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입니다.
    오늘 TV를 보다가 탈북하신 분들의 얘기를 보게되어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제 나이 얼마 되지는 않았으나, 이렇게 교육받으며 내 생각과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한국에 와서도 좋은일만 있지는 않으실텐데,
    나쁜면 보다는 좋은면을 보셨으면 하네요..
    좋은사람들 많이 만나시고 좋은일 많이 있으시길 바랄게요..

    한국의 갖은 불의와 안좋은점은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로 많으나,
    그만큼 착한사람들과 정(情)도 많은 사회입니다.
    말 그대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이구요.

    자유를 당당히 즐기고, 원하시는 일 하시기 바래요!
    고생하셨으니.. 앞으론 좋은일 많이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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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quf 2006-02-17 10:01:10
    아침이슬님 이메일주소 알려주시면 안될가요?
    개인적으로 묻고싶은것이 있어서요
    <a href=mailto:flduddhr@naver.com>flduddhr@naver.com</a>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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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6-02-17 12:08:31
    toquf 님 안녕하세요
    님의 글을 보고 저의 메일 주소를 남겨요
    <a href=mailto:ua1882@yahoo.co.kr>ua1882@yahoo.co.kr</a> 묻고 싶은것이 있다 하시기에 저도 궁금하네요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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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길에서 2006-03-28 13:29:31
    처음 글을읽으며 남자로 생각을 했어요
    몸 아프지 않게 생활을 하시길
    힘들땐 쉬어가며 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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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순 2006-04-06 16:09:50
    엄마 돌아가신 소식, 언니 굶어죽은 소식 읽을 때 저도 통곡하였습니다.
    우리 어릴적 50, 60년대에 함경도 또순이란 말이 있었어요. 6.25 때 월남한 북한 여성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정말 그 강인한 생활력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희들은 참 부끄럽습니다. 그 가운데서 중국 거주 탈북여성들을 위해 댓글로 격려하며 도우시는 모습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여기 안일하고 나태한 국민들에게 보내주신 천사들, 깨우는 파수군들이십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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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순이 2006-07-01 11:56:49
    ㅎㅎㅎ23살에홀로이땅을디닌난 진짜로또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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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2006-07-27 21:01:54
    아침이슬님 그동안 못다이룬 행복 자유대한에서 누리세요.좋은분 만나 결혼도 하시고.좋은가정 이루소서.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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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랑나랑 2006-07-30 15:26:30
    아침이슬님 님의 글읽으며 흘러내리는 눈물 억제하지못하겠네요.
    저도 중국에서 사업할때 갈곳없는 탈북여성분을 저히 집에기거시키면서3국으로 무사히 탈출시켰지요.아니정확히 다른분의 힘으로 갔답니다.
    그 여성분의 사연을들을때도 마음이 너무아파 가슴으로 울었는데 이슬님의 사연 읽어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암튼 힘 내시고 용기 내셔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 보았으면합니다.제가 돌봐주던 그 여성분은 한국오시면 저와 결혼하기로 했는데 그때 서로 자주 왕래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합니다
    혹시나해서 저의 메신져 주소 올려놓겠습니다, JJY0628_@hotmail.com
    참고로그 여성분은 8월 말 경에 한국 들어 온답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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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동 2006-08-06 12:23:24
    아침이슬님,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너무 많이 울어버렸어요. 남의 일 같지않고 사실그대로 순수하게 쓰신 님의 글에 감동되였어요.
    저도 98년에 중국에 왔어요. 북한에 있을때 환상적이였던 중국땅은 저를 중국땅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물건으로 취급해버렸어요.
    열심히 힘껏 일해가지고 3달만 벌고 고향에 돌아가려던 생각은 물거품이 되여버리고 팔려 시집가지 않으면 다시 북송돼야할 형편에 놓이게 되였습니다. 중국에 한번 넘어온것만 알려줘도 로동 단련대 생활을 하여야하는데 먹고 살아볼려고 중국에 왔다가 돈한푼 만져보지 못하고 북한에 잡혀들어가
    개천대를 받을걸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어요. 그래서 할수없이 그 사기군들이 소개시켜주는데로 갈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간 집은 한족집이였는데
    그집에서 도저히 살수가 없었어요. 조선사람 한명없는 동네에 , 단 한마디도 통할수 없는 언어에,집안에서 가래를 탕탕 뱉어내고 어린 여자들마저 담배를 피우고 같지않은 생활습관때문에, 함께 살겠다고 만난 남자의 형편없는
    소학교도 다니지 못한 문화수준때문에 아무리 눈감고 살아보려고 해도 살수가 없었어요. 북한ㅇ에 있을때 너무 어렵고 배고픈 고생을 많이하여 억지로 이겨내려 하였지만 너무도 원시적이여서 정말 살고픈 생각이 없었어요.
    후, 기껏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절망과 원한속에서 사는 동안은 너무도 힘든 나날이였어요. 그 집에서는 돈으로 사람을 샀다고 하루종일 보초서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다닐수가없었어요. 사람사는것이 너무도 힘들어서 이렇게 사느니보다 오히려 죽는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식음을 전페하였댔어요.
    남자라는 사람하고는 같이 잠을 안잔다고 두들겨 맞아대고...
    그때 느낀건데 싫은 사람과는 죽으면 죽었지 함께 생활할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예요. 이제는 조선족 남편을 만나서 살고있지만 지금도 너무도 힘이들어요. 나라없는 백성은 상가집 개보다 못하다 했던가,날마다 불안에 살아야 하고 설음속에 하루를 보내야만 해요.
    아침이슬님은 이 현실을 떠나사는 지금은 성공한 사람이니까 부럽네요. 그리고 지난 슬픈 력사를 잊지않고 열심히 남보다 배로 사신디니 박수를 보냅니다. 아침이슬님 이야기를 읽고보니 북에있는 저의 가족들은 모두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그리워 져요. 저에게도 밝은 해살이 비쳐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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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 2006-10-18 03:17:43
    우리민족이 우수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님같은 근성때문이라 생각 합니다.제대로 된 지도자 만나면 우리는 세계일류국가 ,일등민족이 분명 합니다.통일의 그날까지 용기를 잃지 마시고 반드시 자립하시기 바랍니다.건강 하시길 기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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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철 2006-12-06 01:18:13
    아침이슬님그대의당한고초를보고 저도조선족으로서 부끄럽네요 세상어쩌면 저런사람두다잇나싶네요 제딸이면그러겟습니까 제형제면----다같은한민족 혈육들인데---사실제사촌들두이북에잇어요 아직생사조차확인않되네요 양강도--보천군신흥리라고 기억되는데---아침이슬님굳세게잘버텨냇어요 참장합니다 제가 명년9월이면 한국가거든요 그때만나서 이야기나눠봅시다 꼭 약속해요 이슬님의행복을빌면서--영철올림----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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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철 2006-12-06 01:22:46
    영미님 여긴연태----05356875981---영철아저씨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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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이슬 2006-12-06 11:40:04
    영철님 고맙습니다
    님과같이 양심적이며 말씀한마디라도 따뜻함을 버리지않으시는 조선족 교포분들도 계신다는것을 새삼 하늘에 감사함니다
    님께서 내년에 한국으로 오신다하시니 마음이 허락하시면 연락주세요
    혹 제가 도움이 되어드릴수도 있겠는지...
    메일주소를 가리켜 드리지요
    <a href=mailto:ua1882@daum.net>ua1882@daum.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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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철 2006-12-06 22:56:37
    아침이슬님회답이오리라곤생각도못햇어요 사실전 한국서4년간잇다가8월19일날중국으로왓어요 불법체류자기때문에--님의메일주소베껴놓앗어요 명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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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ddasfad 2006-12-23 03:15:10
    안타깝고 분합니다. 김정일 이 개자식 같은 새끼때문에 우리 동포들이 고난을 당한다는것에 통탄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안타깝고 분하고 답답합니다. 부디 탈북자 분들 몸 건강하시고 한국에서 만나길 바라고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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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스타 2006-12-23 03:20:50
    전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입니다. 풍요에 넘치는 생활을 하면서 이런 모진 고생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것을 몰랐습니다. 제주위나 아니 대한민국사람 모두가 물질에 풍요에 빠져서 일상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는거 같습니다. 여기와 보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한국에서 볼수있길 고대합니다. 그리고 ..... 정말 김정일괴뢰 정권이야 말로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것입니다..그런 김씨왕조가 자신의 백성을 지키지는 못하고 타국을 내몰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어서빨리 김정일 괴뢰정권 ...........개 돼지만도 못한 개정일이가 이땅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동포여러분 꼭 살아서 한국에서 봅시다. 그리고 북한땅에 자유와 평등의 바람이 불기를..진정으로 자유와바라는 불씨가 당겨지길 기대하고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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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나무 2007-01-05 08:32:34
    님의 헌신한 정신력에 머리가 숙여지네요
    저도 여기에 온지 2년이 되였지만 님을보니 아직정신을 못차린것 같아 부꾸럽군요 아침이슬님 언제나 지금처럼 우리 탈북자들의 거울이되여 주시기를바랍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좋은일만이 있기를 바랍니다
    참 지금 사시는데가 경상도라고한것 같은데 혹시 가까운곳에계시는건아닌지모르겟네요 저는부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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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림거사 2007-01-20 23:05:32
    한국도 87년 민주화 운동이전 까지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이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자유와 민주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자들의 노력에 의해 성취된다는것을 그때저는 체득 했습니다. 제가 이해할수 없는것은 여기 수기처럼 그렇게 북한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라면 왜 민중들은 봉기하지 않는냐하는것입니다.절대왕정국가 시기인 전근대사회에서도 수많은 민란이 있었고 심지어 일제시대에도 3.1운동이 안있었습니까? 저도 한때는 80년대 전두환군사독재시절 그정권을 무너떠리기 위해 우리세대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했습니다.저는 이분론적 사고로 남북문제를 보고싶지 않습니다.이남의 자본주의사회나 이북의 사회주의 사회나 모두 완벽한 사회는 아닐것입니다. 물론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대학교 까지 다녀서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볼려고 노력합니다.요는 문제는 어느사회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벽 하지않은 모든문제를 국민모두에게 알리고 공론화 하고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개진할수있는 사회냐 아니면 그반대의 사회냐라고 규정 할수있습니다 . 즉 언론의 자유가 확보된 사회를 말합니다.한국은 언론 자유가 20위권쯤되고 북한은 100위밖인걸로 알고있습니다.이모든 성적표는 그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의 책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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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경 2007-02-11 20:09:13
    열심히 사시는군요. 힘냅시다. 저도 님처럼 잡초처럼 일어서서 사렵니다. 오히려 저에게 용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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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사람 2007-04-12 16:15:39
    저두 잡초처럼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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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사람 2007-04-12 16:16:32
    제 닉네임도 "잡초처럼'으로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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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희 2010-07-05 16:11:17
    저는 미국에서 3살 , 9개월 두딸을 키우는 아기엄마예요.
    몇날 몇일을 시간 날때마다 이곳에 들어와서 수기를 읽어봅니다.
    정말 21세기에 일어나는 일들이 맞을까.하는 의심과 뉴스에서 보던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잔인함에 참담함이 동시에 밀려오네요.
    여기 미국생활이 낯설고 힘들어 한동안 우울했었어요.
    한국에서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방황도 많이 하고 힘들게 홀로
    살아왔답니다.
    저의 돌아가신 엄마가 생전 항상 하시던 말씀이 엄마가 국민학교때는
    부잣집 밥먹듯이 굶었다 였었어요.
    굶는다는것이 어떤건지 배고픈것이 어떤건지 모르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 절실함이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지금도 도대체 굶어서 숨이 끊어진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정도 입니다.
    21세기에 어떻게 그런 나라가 존재할수 있는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며칠째 잠을 못이루었어요. 아침이슬님 얼마나 슬프고 억울하고 화나실까
    생각하니 제가 눈물이 나네요.
    님을 보면서 제가 가진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에게 주어진 내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
    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 ..감동 이상입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는것같아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혼자라 생각하지 마시고 좋은사람과 좋은 인연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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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요미양 ip1 2011-08-11 16:48:12
    님 저도 지금 회계자격증을 따고싶은데 컴맹이여서 이렇게 매일 망설이구만 있습닏다
    오늘 님의 글을 보고 저두 할수있겠다는 신심이 생기네요
    저도 꼭 열심히 배워서 성공할래요 고마워요 힘되는 글 올려주셔서,,,
    님도 더 행복하고 성공된 삶을 사시기를 기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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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암 ip2 2016-06-08 11:46:58
    언니도, 어머니도 같이 오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언니가 굶어서 타계했다니 현실이 야속합니다,,,,이제는 언니와 엄마몫까지 행복하고 보람되게 살아야 겠지요,,,,???? 힘네세요,,,^^ 여행도 자주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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