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풍요속에 홀로 서기 - 김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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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 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낮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북한을 떠나 러시아에 벌목을 갔다가 전혀 다른 세상천지를 보고 좀 사람답게 살고 싶어 탈출했었다. 그후 러시아의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며 살길을 찾다가 남한으로 온지도 이제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그 세월동안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 김포공항으로 들어설때에는 '이제는 북한에 잡혀갈 위험은 없다'는 안도감으로 몇 년간의 피말리는 긴장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니 살 것 같았다. 긴장이 풀어진 나에게 남한의 물질적 풍요로움이 온갖 환상을 불어넣었다. 야, 이렇게 물건이 많은 나라도 있구나, 수퍼에 가면 온갖 먹거리들이 가득히 쌓여 있다는 것이 그때는 어째서 그렇게도 신기하던지... 북한에서 양복 한 벌을 갖고 네 계절을 지내고 늘 배급쌀이 모자라 배고픈 생활만 해왔었다. 남조선이 발전했다는 소문만 들었지 이처럼 잘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사람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처음에는 남한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다만 잡혀갈 신변의 위협이 없이 편안하고 내 마음대로 살 수만 있으면 될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발전되고, 모두가 잘 살고(처음에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잘 사는 것으로 보였다.) 상품이 가득한 세상을 접하고 보니 욕심과 야망이 살아났다. 신문과 텔레비젼 방송으로 보여지는 남한을 보며 나도 '재쏘'(러시아 벌목장)에서 일하던 것처럼 열심히 일해서 한 5년쯤 되면 1억원을 벌어보리라고 겁없이 계획을 세웠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주는 월급은 한달에 7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 보너스까지 합하면 한달 평균 봉급이 110만원 정도였다. 아침 6시 반쯤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일해서 버는 돈 치고 '너무 적은 것'이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나면 도저히 계획을 실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북한에서 결혼 후 4년을 부모집에 얹혀 살았던 나에게 임대집은 너무나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무덤같았다. 저녁에 퇴근길에 올라 열쇠를 열고 들어가면 텅 비여있는 집, 누구도 반겨주지 않고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도 준비되어 있지 않는 집은 정말로 외로웠다. 어떤 때는 러시아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피곤함을 못이겨 옷을 대충벗어 놓고는 잠들었다가 늦게 일어나 대충 끓여먹으니 서글펐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가슴아픈 것은 북한에 있는 부모와 가족과 형제들이었다. 텔레비젼에서 보여지는 굶주린 사람들과 두만강가에서 썩어가는 시신을 보며 혼자만 와서 잘 살고 있다는 괴로움과 죄책감으로 항상 고민해야 했다. 이러다가 통일이라도 되는 날이면 돈이라도 벌어서 가족들에게 지은 죄를 갚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돈을 벌려 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북한사람이라고 호기심을 나타내더니 다음에는 무엇인가 등뒤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멸시와 같은 열등감이 나를 항상 괴롭혔다. 처음 회사에서 일할 때 였다. 나는 북한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한자를 좀 알고 있었다. 어느날 신문을 보는데 나보다 나이가 적은 직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승철씨, 한자를 볼 줄 알아요?"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남한은 법치국가이다. 못살고, 못먹고, 못입고 김일성에게 저항도 못하고 굶어죽어가는 북한 현실이 남한사람들에게 나를 남한에서 2등 국민으로 보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장사를 해보고도 싶고, 식당을 해보고도 싶고, 남한의 대학을 졸업해보고 싶고. 그러나 가만히 생각을 깊이 해보면 남한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물렁물렁하고 허술한 나라가 아니었다. 또 언제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그런 일에 성공할 자신도 없었다. 한때는 안보강연을 다녀서 버는 돈에 안주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자꾸 새사람들이 오는데 일생동안 안보강연을 한다는 담보도 없었다. 다만 임시 방편이었던 것이다. 힘든 것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남한사회의 온갖 나이트클럽이니 카바레니 하는 유흥거리들이 유혹하고 괜찮은 자가용을 굴리기도 싶었다. 성적인 충동을 못이겨 아가씨들이 유혹하는 곳에도 가고 싶었고 또 가보았지만 진실된 기쁨과 만족이 없었다. 그렇게 한 번씩 가고 쓰고 할 때마다 타락하게 되고 돈을 벌고 남한사회에서 멋있게 성공해서 통일되면 고향으로 가리라던 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남한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해서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다녀서는 돈을 벌수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로 생각뿐이었지 나는 돈을 벌수가 없었다. 남한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나는 아무런 지식도 재간도 없었던 것이다. 단지 처음에 북한에서 왔다는 것 때문에 텔레비젼과 사회단체에서 관심을 돌려주고 띄워주고(지금은 그런 것이 거의 없지만) 해서 현실을 잘 몰랐던 것이다. 내가 남한에서 살면서 제일 몰랐던 것은 돈과 내 삶 혹은 인생과의 관계를 잘 몰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에게는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것만이 성공이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이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또 돈을 벌어야 북한에 있는 부모와 가족과 형제들에게 내가 지은 죄를 보상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신념이었다. 말하자면 돈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한 사회는 나쁜 사람도 곁에 있고 좋은 사람도 곁에 있다. 남한에서 나에게 고마운 충고를 주고 나를 위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는 내 생각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을 배운다기보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정말로 내 인생을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또 내가 내 자신을 책임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물우에 뜬 기름같은 존재인 북한사람이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처음에 남한 정부가 마련해준 직업이 월급이 적다고 1년만에 그만두었었다. 금방 입사한 20대의 신입사원과 같은 월급을 받고 또 그렇게 일해서는 도저히 돈을 모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년 4개월을 놀았다. 남한에서 말하는 '백수' 생활을 했던 것이다. 북한에서 조용하게 살았던 내가 무슨 재간이 있을 것인가. 사람은 항상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뒤를 돌이켜보고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곰곰히 느껴보아야 한다. 그냥 되는대로 젊음 하나만 믿고 살다가는 능력껏 살아가는 남한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젊음을 잃게되면 인생도 잃을 수밖에 없다. 1년 4개월동안의 백수 끝에 내가 깨닳은 것은 내 자신이 내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하고 차분하게 배우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장사를 해보지도 못한 사람이 째일대로 째인 남한사회에서 장사를 해보아야 성공할 확률이 적은 것은 뻔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내 깨달음이었다. 또하나 깨달은 것은 돈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내가 처한 현실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지금 차도 없고 핸드폰도 없다. 처음 남한에 왔을 때 같이 있던 친구들이 나를 보고 지독한 깍쟁이라고 흉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에는 개의치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천원을 가지고 하루를 기쁘게 보낼수도 있고 10만원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나일뿐이고 풍족하지는 않지만 차례진 월급을 가지고 행복하게 느끼고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했다. 자신의 생각과 습성을 바꾼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풍족하지 못한 조건에서 내 자신이 만족스럽고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통일을 대비하고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적은 금액이지만 열심히 저축하고 자신을 준비한다. 남한사람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기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도 승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승자의 기준은 돈도 아니요, 사회적인 성공도 아니다. 내가 훗날 내 자신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래 나는 열심히 살았어"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사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러시아 벌목장에 갈 때 들은 말이 있다. "재쏘가면 아무리 못 되어도 세 번은 돈을 벌 기회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지만 내 인생을 훌륭히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배운다면 언젠가는 차례질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더욱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9년 8월 김승철 (현 북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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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사는 스타일이나 느끼는바도 틀리겠지만 아주 현실적인 내용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일반적인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남한이나 남한 사람 같은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탈북자 출신들이 먼저 남한, 남한 사람 같은 단어를 사용하니 서로 구분짓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저만의 착각인가요?
그러나 남한이라고 한다고 해서 불편해 하실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남한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념과 제도와 문화가 달랐던 남북한을 몇년만에 같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거짓이죠.
남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북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세월 닳도록 살다보면 언젠가 저도 모르게 한국이라고 부르게 되겠죠. 그렇게 되는 날이 진정한 통일이 되는 날이죠. 또 내적인 통일, 융합된 통합, 문화와 삶이 통일되는 것이고 가치관이 통일되는 것이죠.
통일된 독일에서 2004년 9월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의 여론조사에서 다시 분단되어 장벽 세우는 것에 찬성한다는 쪽에 21%나 된다는 것은 통일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 자연스러움을 따라가되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 옳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남북한의 국민과 인민을 위한 통일이 되는 것이죠.
요즘처럼 독재자가 무서워 인위적으로 독재붕괴를 막는 것이 위선인 것처럼, 그런다고 독재가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러움을 막는 것은 언젠가는 분명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남한, 남한사람이라는 단어에 예민하지 않으시고 그냥 자연스러움으로 봐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실은 한국인들도 이런 고민과 흔들림이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및 설계와 유혹을 이겨냈을때 한국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것을 하는것이죠..
그런말이 있지 않습니까?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
노동을 하고 그이후의 자기시간엔 휴식으로,운동으로,유흥으로,또는 미래를 위한 배움으로 제각각이죠.. 적당한 운동 및 유흥은 노동에서 지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될수 있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죠..
하지만 그 절제라는것이 누구나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항상 유혹은 달콤하죠..ㅎㅎ
무엇보다 자기의 욕심을 얼마나 컨트롤하며 자기안의 싸움을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
이겨냅시다...
우리 모두 화아팅입니다.. ㅎㅎ
원래 글을 쓰시는 분이신가요?.
<a href=http://blog.chosun.com/nkman target=_blank>http://blog.chosun.com/nkman</a>
그리고 arekny 님께서 말씀은 고마우나 당시의 한자 이야기가 나온 분위기가 저를 위하는 것을 모르고 그랬다면 제가 좀 바보라고 해야겠죠.
님은 착하신 분 같아요. ㅎㅎㅎ
한국에서 부모도움받지않고 결혼한 새내기 부부가 집을 장만할려면 적어도 8~9 년은 내외가 입을것, 먹을것 절약해가며 알뜰살뜰 살아야 겨우 작은 평수나마 내집장만을 할수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볼때 탈북해서 남한에 오시는 사람들에게 집과 정착금을 준다는 것은 파격적인 대우 입니다. 남한사람들은 그런게 어디 있습니까? 순전히 자기힘으로 벌어서 집을 사야 합니다. 그게 몇년이 걸리거든요. 그러니, 첨부터 돈에관한 허황된 꿈은 버리시고 정부에서 직장을 잡아 주거든 열심히 하셔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합니다. 수천만명의 각양각색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다 좋을수는 없죠... 설사 남한 사람들이 조금 무시를 하고 하드라도 참으십시요. 어쩌겠습니까? 결국은 그 사람들이 피땀흘려 낸 세금으로 여러분들 정착금을 주고 집도 주고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겸손하고 부지런히 절약하며 사시다 보면 10 년만 가면 남한내 어딜가시든지, 자신있게 사실수 있습니다. 그정도 되면 남한체재에도 익숙해 지실거고요. 첨부터 돈에대한 욕심과 집착을 가지고 하다보면 백이면 백 다 실패합니다. 남한이 풍덩풍덩 멋대로 사는거 같아도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알부자들 사는생활 을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 사람들 절대 헛돈쓰지 않습니다. 나이트 클럽 도 사시사철 흥청 거리는거 같지만 몇달 열심히 일하고 어쩌다 나이트는 스트레스를 풀기위해서 한번쯤 가보는것이지. 유흥가를 그쪽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매일 가는사람은 없습니다. 유흥가를 매일 같이 다니며 탕진하다간 얼마안가 쪽박 차게요? 열심히 이를 악물고 사셔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모든것을 배급으로 주지만, 남한에서는 모든것을 스스로가 벌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니, 절제없는 생활은 자신을 망치는 길이 됩니다. 특히 탈북자님들은 더욱 참고 절약해야 합니다. 돈에 허황된 욕심을 부리다 보니, 사기를 당하고 그러는거 아닙니까? 힘이 들때면 여러분들이 탈출할때를 떠 올려 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