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는 제게 맡겨 주십시요 - 이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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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는 북한의 평범한 노동자였다. 1990년대에 쿠웨이트에 파견되었는데 북한의 문화와 사회제도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쿠웨이트에서의 파견생활은 신선함과 설레임 그 자체였다. 물론 행동이 그리 자유롭진 못했지만 그 동안 모르고 지냈던 나라밖의 사정들을 여러 경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동포들이 살고 있는 남한의 소식은 금기시 되었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다. 결국 쿠웨이트에서의 생활은 내게 북한에 대한 회의와 어두운 미래를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 이 더운 나라에 와서 고생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것이 혼란스러웠다. 30년간 굳어진 삶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고민끝에 근무지를 탈출하여 힘겹게 대한민국에 귀순했다. 쿠웨이트 파견생활 1년만의 일이었다. 정착생활의 희망 정착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자마자 서울에 있는 대형 음식점에 취직했다. 돈을 빨리 벌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일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틈나는 대로 요리와 운전을 배웠다. 음식점에서 일하다 보니 요리사 자격증을 따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동료들이 운전은 사회생활의 기본이라고 해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학원에도 열심히 다녔다. 하루가 참 짧게 느껴졌다. 새벽과 밤 시간을 학원에 다니는데 투자해야 했기때문이다. 하지만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게 여겨졌다. 내가 남한에 적응을 잘하고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은근히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난 희망찬 정착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했다. 정착생활의 좌절 내게도 좌절은 찾아왔다. '좌절'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 힘겨운 경험이었다. 음식점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내게 남한에 온것을 축하한다며 근사한 저녁을 사주기도 했고 여러모로 일하는데 도움을 준 친구였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인것 같아 나도 마음을 열고 허물없이 지냈다. 어느날 그가 자동차를 구입하려는데 보증 서줄 사람이 없다며 걱정을 했다. 그러면서 내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할테니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 난 보증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며 3년 할부 자동차 구입에 보증을 섰다. 돈이 모자란다고 해서 200만원도 함께 빌려주었다. 평소 그 사람이 성실했기 때문에 거절할 필요는 없을것 같았다. 1998년 초 나의 소박한 꿈을 키워오던 정든 일터는 IMF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 음식점이 망하자 그 동료도 잠적했다. 내가 빌려준 돈은 이제 돌려 받기 힘들게 되었다. 다행히 보증을 서준 것은 연대보증인이 잇어서 내게까지 피해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성실해 보였던 사람이 약속을 어기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욕적인 생활을 하던 내게 직장을 잃어버리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일은 힘겹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의욕이 꺽인걸까? 다시 예전처럼 힘차게 생활할 자신이 없었다. 내게 찾아온 첫번째 좌절에서 난 허둥대고 있었다. 다시 시작하는 희망 얼마가의 방황을 마치고 택배회사에 취직했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리라 마음먹고 지난 일은 운이 없었던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회사생활...이 회사의 사훈은 '신속, 정확, 확실한 서비스'였다. 택배회사이니 '신속, 정확'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확실한 서비스'는 와 닿지가 않았다. 음식점같이 손님을 많이 접하는 일도 아니고 물건을 배달하는 일인데 서비스가 중요시되는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친절하게 일하면 나쁠 것이야 없겠지...'라 생각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신속'이라는 사훈을 실현하는 문제가 난관에 부딪혔다. 지리를 잘 모르니 10분 걸리는 거리도 30분을 돌아가는 경우가 생기고 목적지에 다 와서도 건물을 찾지 못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은 꼭 지키려고 했다. 조금 늦는 것이야 고객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물건을 잘못 배달하거나 착오가 생기는 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배달을 잘못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내겐 고객에게 '확실한 서비스'를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내 투박한 사투리는 고객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서비스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고 있던 나는 동료들의 친절이 왠지 굽신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큰 착각이었다. 나름대로이 직업정신을 가지고 일에 충실히 했던 그들이 옳았다. 그동안 동료들에게 직업정신, 친절한 서비스와 세련된 매너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 덕분에 나도 고정 고객이 많이 생겨 성과금으로 받는 수입이 많이 올랐다. 나의 직장생활은 노력한 만큼 보상이 뒤따르는 남한의 생활방식을 체험하는 교육의 시간이었다. 새로운 도전 이제 난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작게 나마 택배회사를 차려보는 것이다.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지만 열심히 일하며 배운다면 못하란 법도 없다. 노력하는 자에게 성공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희망의 내일이 있기에 오늘은 내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택배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미래의 내 모습을 꿈꿀 것이다. "이제 택배는 제게 맡겨 주십시요!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2003년 4월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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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다른일 없이 좋은일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