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도 인간이다.(7) - 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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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전거리교화소 경험자 2001년 9월 입국 또한 교화소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다. 개똥 속에 호박씨를 닦아 먹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개똥 속에 있는 호박씨를 물에 씻어 말리운다음 불에 닦아 먹었겠는가. 배고픔에 시달리다 보니 그들은 아무 거리낌도 없이 건져 먹는다. 교화소 내에 쥐와 산속에 뱀은 정말로 특식이었다. 그 외에도 도마뱀, 도룡뇽 하물며 붉은 배개구리까지도 모두 불에 구워 먹었다. 큰 쥐를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나무를 뒤부터 머리까지 꾀어 불에 구우면 마치 토끼 고기를 구워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역시도 뱀은 물론 뱀알까지 먹었다. 누구나 살고 싶은 생각이 있기에 사회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먹으며 살았다. 그나마 먹을 것이 없으면 나쁜 오염된 물을 마시고 병을 앓는다. 그것은 마지막 발악이었다. 병을 앓으면 거의 죽기 전에는 병보라는 것을 떨구어 집에 내보내서 병을 고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형기는 그대로 있고 병치료가 완치되면 다시 남은 형기를 교화소에 와서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이란 항상 죽느냐 아니면 사느냐 하는 두 길에서 헤매이게 되는 마지막 위험한 모험이나 기회였다. 이것마저도 실현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딴 도리는 없었다. 또 교화소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죄수 싸움은 어린아이 싸움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말은 범죄인들이 얼마나 사고 수준이 어린가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너무나도 약한 몸이다 보니 때릴 힘마저 없이 침뱉기를 싸움처럼 하는 것이었다. 일어서기조차 힘든 허약자들을 힘이 없어 서로 노려만 보며 침을 뱉고 맞으며 싸움했다. 서로가 다 때릴 힘이 없다보니 침뱉기를 하는 그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한때 사회에서는 한다하는 이름 날린 놈들이 들어와서 허약에 걸리다보니 정말로 어린애들 같았다. 콩알 한알을 놓고도 싸우며 침 뱉으며 말 싸움했다. 나 시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54kg의 튼튼한 몸이었지만 교화소에 가서는 24kg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몸은 약할 때도 약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악을 키워 주었고 세상을 악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주었던 것이다. 혹시 사람들은 악한 놈이라고 하면 악을 행하는 사람같이 여길 수도 있지만 실지 교화소의 애착에 대한 악은 그와 다른 의미였다. 그대로 말한다면 이악하고 강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흔히 강하다는 말을 쓰는 일이 많다. 체육쪽에서나 마지막 끝까지 일을 끝내는 이악성…이것은 교화소 안에서 전혀 다른 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제의 목적을 놓고 이악성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목숨을 위해 마지막 힘을 내는 것이었다. 그것마저 실패로 돌아간다면 살이 썩어 불망산에 가는 길이 나지는 것이다. 그들의 힘은 무서웠다. 하지만 자신을 잃은 사람이 거의 90% 가 차지 하다보니 거의 다 죽어 나갔다. 거기에 들어가 살아 나온다는 것은 거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터이라 사회 사람들 역시도 전거리 교화소라면 꺼려 했고 무서운 지옥으로 생각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이 제일 마음 아팠고 불쌍했다. 그의 범죄 행위가 추악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감정으로 놓고볼 때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이 죽음 앞에 놓인 한 인간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나 자신의 생각보다 그 죽어가는 영혼을 자신처럼 여긴다. 반역죄라도 그 사람을 도우고 싶은 심정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교화소 내에서는 남이 죽던 상관하지 않는다. 남의 생각을 하다가는 자신이 죽기 대문에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걱정해줄 사람도 없다. 오직 물질로만 통하는 것이 교화소 죄수들의 생활방식이었다. 철호는 항상 나를 증오했고 나 역시도 굽히려 들지 않았다. 나는 점심시간이면 문 앞에서 지키며 자유주의를 단속했다. 하지만 허약자들에게는 빨리 갔다 오라고 약속을 한 다음 보내곤 했다. 하지만 철호가 어데가려다 내 눈에 띌 때면 나는 그를 꼭 부른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선생에게 말해버렸고 철호는 범칙이나 바꿔치기를 하러 다니려고 해도 나 때문에 항상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항상 그를 주시했고 어느 골목으로 갈 때면 항상 뒤를 밟았다. 그리고는 거래를 할 때 나타나 거래 목적을 안 다음 돌아왔고 담당 선생에게 말해 버렸다. 결국 철호는 나와 완전한 적이 되었고 자그마한 흠을 놓칠세라 서로 감시하는 판이 되어 버렸다. 차마 자존심 때문에 화해하려는 말도 표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눈이 발목까지 올라온지라 나무를 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철호가 나무하던 방향으로 가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대답이 없었다. 이때 열이 오를대로 오른 담당선생이 철호를 무조건 찾으라고 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나는 도주 사고가 일어날까봐 속으로 불안함을 느꼈다. 십분 정도 흘러서야 철호를 골짜기에서 찾았다. 선생은 철호와 나를 세워 놓고 때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팔뚝 보다 더 굵은 나무로 철호를 사정없이 내려 쳤고 나를 때리려고 몽둥이를 들었다가 몽둥이가 너무 굵어서 맞으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지 몽둥이를 던지고 자그마한 싸리 나무로 나의 허리와 종아리를 때렸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아끼시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린 나이라고 살려 내보내려고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지만 선생의 표현된 모습에서 나는 얼마든지 읽어 낼 수 있었다. 너무나도 그런 선생이 나를 고마워 그날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기쁘기만 했다. 사실 감시는 남들보다 일은 적게 하지만 한가지 위험성은 꼭 있었다. 도주자가 생기면 감시병이 예심받고 가형과 독감방에 까지 갇힐 수 있는 위험성이 컸다. 또한 번호가 제대로 맞지 않고 점검이 실현되지 않으면 내가 욕 먹고 매까지 맞을 때가 많았다. 그런 것이 없었다면 교화소가 아니었다. 일명 교화소 돈이라면 담배를 이야기 한다. 담배는 교화소에 있어서 아편과 같은 흥분제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말아초 반대면 밥 한덩이였고 통대면 두덩이 였다. 담배만 있으면 면식가루도 바꿔 먹을 수 있고 옷도 바꿀 수 있고 교화소 내의 별의 별 것을 다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교화소 준칙에는 담배와 술을 금지하고 있었고 약까지도 외국약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없는 국내약이라도 얻어와야 했고 얻기 힘들다보니 병이 심해 나중에는 죽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금지된 담배를 어데서 얻는가?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본소 정문을 나서서부터 길로 가면서 담배 꽁초를 줍는 것이었다. 하지만 꽁초가 앞에 있다고 해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두 명의 계호원과 선생이 뒤로 따라오면서 주시하기 때문에 들키는 날에는 뼈가 부서질 정도로 매 맞는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묘한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신발 앞코를 째고 밑바닥을 째서 밑바닥이 열려 신발 안을 통과하게 만든 다음 꽁초를 발견하면 신발 코를 꽁초를 조준해서 발을 차면 신발 앞창이 열리면 담배 꽁초가 신발 안으로 날아 들어온다. 그런 다음 교화반의 휴식시간에 꽁초를 꺼내어 작은 꽁초 주머니에 넣는다. 또 다른 한가지는 도끼던 삽이던 나무자루 제일 끝에 있는 동그란 면에 침을 바른다. 그러고는 대열과 함께 가면서 꽁초를 보면 침바른 자루 끝을 꽁초에 댄다. 물론 동작이 빠르지 못하면 들키기 쉽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꽁초를 찍어야 했다. 꽁초를 향해 침바른 도끼자루면을 갖다 누른 다음 그것을 계호원들이 보지 않게 반대편 손에 가져가서 왼손으로 꽁초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침이 자루에 붙어 있었기에 꽁초가 도끼 자루면에 달라붙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다가 들키면 도끼자루나 삽자루에 죽어라 매맞게 되고 들키지 않으면 밥 한 덩이를 얻은 것이나 같았다. 그것을 가져다가 다른 교화반 사람들과 밥이나 먹을 것을 바꾸기도 했고 조금씩 피우기도 했다. 담배란 참으로 아편이나 같았다. 사회 사람들은 담배를 피워도 진짜 고상하고 흥분되는 감을 잘 느끼지 못했지만 교화소의 몸약한 죄수들에게는 귀한 흥분제나 같은 역할을 했다.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휭휭 돌고 흥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담배란 교화소 아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항상 눈은 길바닥을 휩쓸었고 여념없이 따라오는 계호원들의 눈을 피하여 줍는 것이었다. 밥을 굶으면서라도 담배를 바꾸어 피우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교화소 아편 중독자라고 할 수 있었다. 담배에 맛을 들인 그들은 한끼라도 먹으면 살듯이 두 끼를 담배와 바꾸어 피우는 것이 많았다. 그것마저도 협잡당하면서도 바꾸려는 률이 많았다. 협잡의 예를 든다면 산에 나무하려 가면서 가랑잎을 주어 가지고 내려온다. 물론 붉은 담배색과 전혀 다름이 없는 가랑잎 을 주어 가지고 내려와서는 잘 말려가지고 부스려 담배처럼 종이에다 말아서 판다. 물론 밥덩이를 가진 놈은 피워보려고 하지만 그것을 손에 가져가는 순간이면 밥덩이 역시도 그에게 주어야 했고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해야했다. 그것이 교화소 비법 바꿈질의 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동시에 주고받고는 담배 받은 놈은 불부터 붙여 보는 것이 습관적인 일이었고 밥덩이를 가진 놈은 그 밥덩이를 먹는 것이 선차적인 일이었다. 결국 피워보면 매캐한 가랑잎이었고 밥덩이를 가진 놈은 그것을 한편으로는 먹으며 한 쪽으로는 손에 들고 하며 간다. 피워보고 가짜라는 것을 안 다음 쫓아 가보면 밥은 이미 먹은 뒤끝이었으며 또 행패질 할 맥도 없는지라 속으면 할 수 없이 재수 없는 날이 었다. 또한 길가에 꽁초 종이에다 가랑잎을 말아가지고 불을 붙여 조금 피운 다음 불을 끄면 어느 말아초 담배 꽁초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런 꽁초를 두 세 개 쥐어주고 밥 한 덩이를 받는데 그들은 그것을 보고 정말로 진짜인가 하여 서슴없이 밥덩이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불을 붙여 피워 보면 그것 역시도 쾌한 맛이 나는 가랑잎이었다. 뒤늦게 나마 찾아가보면 그는 이미 밥을 다 먹어버린 뒤끝이고 그 때가서 하소연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때 손해 본자의 마음은 이러했다. 다시는 너와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반발심이었고 복수심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자신을 속인 자와 또 다시 거래한다.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사탕에 유혹되어 선생님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말이다. 속이는 자는 그만큼 골이 비상했고 영리하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누가 한번 빠진 함정에 빠지겠는가? 사실 교화소에는 머저리가 극히 드물었고 모두가 머리가 좋고 꾀가 많았다. 남들보다 일찍이 깨고 일찍이 교화소에 들어온 그들이기에 머저리는 극히 드물었다. 보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똑똑한 골이 잘 돌아가는 그들 가운데서도 전문 협잡을 치며 살아가는 그들의 머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또한 교화소란 범죄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한 개의 집단이기에 범죄의 요령을 더 깨우게 되는 것이다. 서로가 자신의 옛말을 할 때보면 너무나도 고생을 많이 했고 누구나 할 것 없이 골을 많이 쓰던 이들이었다. 옛적에 한다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들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 교화소에 경사가 났다. 그것은 대사 발령이 떨어졌던 것이다. 대사 발령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6개월 후에는 대사가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사 발령이 떨어졌다고 다 기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예정없는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 병도 없던 사람이 이틀 여간에 마구 죽어가는데 육개월 여간에 죽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죽음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예정 없는 암시였다. 2월 어느날 고도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이라 추위가 살 속을 파고 들었다. 하지만 해가 그 기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도 교화부장이 내려와서 우리에게 대사 발령이 떨어짐을 얘기했다. 물론 김정일의 혜택과 당 창건 50주년 815해방 50주년을 기회로 떨어진 대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년짜리 대사가 떨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듯하게 다 나가게 된다고 말하는 교화부장의 말은 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만약 3년 짜리라면 거기서도 범죄에 따라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형기 많은 사람들에게는 극도로 타락하게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3년 짜리가 떨어졌다고 하자. 하지만 10년이나 6년 이상의 형기를 받은 사람들과 범죄명에 따라 떨어지는 것이 다르기에 살인이라면 큰 범죄이기에 3년에서 2년 반을 삭감하고 6개월의 형기를 덜어주었고 강간범 역시도 그런 정도에 속했다 3년을 다 받을 수 있는 범죄명은 도적놈이나 절도범들이 거의 3년을 다 받을 수 있었다. 비법월경이나 조금 큰 범죄명 같은 것은 1년반 1년 정도의 형기를 감소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고 나면 가장 큰 범죄인들에게는 큰 타락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남들이 감소를 받고 나간다거나 형기가 조금 밖에 안 남은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고 그 부러움이 나중에는 도주기도 자살기도를 불러 일으키기 까지도 했다. 남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며 맥없이 주저 앉으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산지옥이었다. 2000. 3 ∼6월까지 무려 70여명의 죄수가 정신적 충격으로 죽어나갔고 심지어 도주기도가 4건이나 발생하였다. 도주기도만 일어나면 온 교화소가 작업을 중지하고 감금한 다음 도주자를 잡을 때까지 밖에 전혀 나가지도 못하거니와 내보내지도 않았다. 도주기도 하다가 잡히기만 하면 그는 말뚝감을 면치 못하게 된다. 즉 사형선고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수 십년의 경력을 가진 교화소지만 여태껏 도주해서 잡히지 않은 놈은 없었다고 한다. 산새가 묘하다 보니 온 밤을 걸어도 새벽에 보면 교화소 입구에 와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묘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누구든지 헤매이다 잡히기가 일쑤였고 6개월이 지나면 사형 당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선생이 모주를 가져왔다. 모주라면 흔히 술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모주란 평민들이 도토리나 강낭이로 술을 뽑고 난 깡치물(누런 술깡치)을 모주라고 했다. 그런 시클고 텁은 술깡치를 바께쯔에 가져왔던 것이다. 모주를 한 그릇씩 받아 먹으니 참 별 맛이었다. 사회에 있을 때는 먹어보지 못했는데 교화소에 와서 먹으니 참말로 맛있었다. 그런데 5분이나 지났을까? 골이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술 성분이 조금은 남아있다 보니 그 기운에 우리가 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참 기분이 좋았다. 교화소에서 취해보기까지 하다니 너무나도 행복한 감이 들었다. 거의 똑같은 시간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살점이 꽤나 붙어 있는 놈들은 괜찮았지만 허약에 걸려 있는 사람들은 한 사발 밖에 안 되는 술깡치에 취했던 것이다. 몸이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예민해지다 보니 조그마한 술깡치에도 취기가 오른 것이었다. 술 마신 기분이나 다를 바가 없는 술기운이었다. (계속) 2006년 4월 김혁 자료제공 : 북한인권시민연합 죄수도 인간이다.(1) 죄수도 인간이다.(2) 죄수도 인간이다.(3) 죄수도 인간이다.(4) 죄수도 인간이다.(5) 죄수도 인간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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