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전쟁"을 이겨낸 통일부부 - 김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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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1차 정착사례 수기공모 우수상(2등) 수상작 - 북한이탈주민후원회 ‘장미의 전쟁’이라는 사랑의 비극에 관한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젊은 변호사와 여인은 첫눈에 반해 결혼하여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으나 사소한 문제들로 의견충돌이 심화된다. 자존심만 내세우는 양보없는 갈등은 격렬한 싸움으로 발전하여 결국에는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 영화가 장미의 전쟁이다. 북한사람이었던 나와 남한사람인 아내와의 만남으로 시작된 나의 결혼생활 초기에는 장미의 전쟁만큼이나 격렬한 충돌이 많았다. 사람들은 흔히 한민족이고 말도 같은 북한사람과 남한사람이 결혼해서 통일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아내가 만나 함께 살기로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남과 북이라는 차이 때문에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북한사람끼리 살거나 남한사람끼리 만난 결혼생활이었다면 우리 부부가 겪었던 수많은 충돌의 대부분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결혼 초기부터 우리 부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의견차이로 자주 다투었다. 남한 출신인 아내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들이 나에게는 불만이었고 나로서는 양보하면 안되는 것들이 아내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오기로 보였던 것이다. 50년동안 서로의 제도와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남북의 삶의 방식이 어느날 갑자기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함께 하다보니 대립하고 갈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으로는 남한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을 선택했지만 북한에서 굳어진 사고방식과 몸에 배인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것은 길에서 주은 클립 때문에 심하게 다투었던 일이다. 아내와 만났던 그 이듬해였던 것 같다. 어느날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을 가보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 길을 걷는데 아내가 보도 바닥에서 무엇인가 주어 내 주머니에 넣으라고 주는 것이었다. 아내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니 자그마한 클립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남들이 보는 길거리에서 ‘별로 쓸만한 것도 아닌 클립 따위를 주어서 건사하라고 주다니…’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화를 냈다. “내가 거지냐고… 길바닥에서 주은 그따위 클립을 주머니에 넣어다니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때는 누가 볼까봐 창피했고 자존심이 상했다. 아마 북한에서였다면 주위를 돌아보면서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었을 테지만 남한에서는 이상하게 부끄럽고 화가 났었다. 아내와 나는 길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었고 결국 정릉에 가지 못하고 도로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숟가락으로 코팅냄비의 찬을 걷어내는 아내를 보고 “코팅이 벗겨지겠다”고 걱정했다가 “사람보다 코팅이 더 중요하냐”는 말에 화내고 다툰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귀했던 북한에서 살았던 나와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온 아내의 생각은 이처럼 차이가 많았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대충대충 되는 대로 하는 습관도 문제였다. 통제속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아야 했던 북한에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이런 습관 때문에 아내의 충고와 부탁에 귀 기울이지 않고 대충대충하면서 권위를 내세우다보면 신경이 날카로워져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수많은 갈등을 낳았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싶으면 어디엔가 숨어있던 그 다음 단계의 새로운 갈등 요소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결혼 이후부터 5년 넘도록 아내와 나는 남북한의 사회문화적,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무수한 갈등의 지뢰밭을 헤쳐왔다. 개인주의적인 남한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적극적이며 경쟁적인 요소가 많은 삶을 살고 있는 반면에 집단주의적인 북한사람들은 수동적이며 통제를 벗어나려는 회피성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우리의 결혼생활에서는 갈등하고 다투고 싸워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여기에 북한사람 특유의 체면과 자존심은 붙는 불에 기름을 친 것과 같았다. 서로의 사고방식이나 습관 때문에 갈등이 시작되어 싸우다보면 자연히 정치적인 입장으로 문제가 심화되면서 남북한의 대립이 재현되었다. 아내는 나보고 “빨갱이”라고 비난했고 나는 “남조선 괴뢰군”이라며 욕을 했다. 상대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지면 말도 험악해지면서 살벌해졌다. 그 통에 전화기도 박살났고 리모컨은 몇 번이나 수리해야 했다. 언젠가는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고 나서 수녀님을 찾아가 “내가 사람 때리려고 남한에 온게 아닌데…”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었다. 북한주민들의 가난과 고통을 겪는 모습을 TV로 보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다 못한 아내가 그렇게 가슴아프고 고향이 그리우면 돌아가라고, 왜 여기까지 와서 남까지 힘들게 하냐며 내 속을 긁어놓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의 아내와 여자에게 지면 안된다는 가부장적인 나와의 양보없는 싸움이 격해지다보면 이렇게는 못산다며 헤어진 것도 십수차례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를 위해주고 이해하려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재혼 부부이다. 더욱이 자녀가 있는 아내에게 북한에 아들과 아내를 두고 온 남편이 통일되면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없지 않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갈등과 싸움이 조금만 잘못된 방향으로 심화되면 결혼생활이 하루아침에 끝나버릴 위험이 컸다. 서로의 지난 삶이 너무나도 달랐고 또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 그런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차이를 좁히기 위해 어느 한쪽이 아닌 서로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북한 남편과 남한 아내로서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부닥쳐야 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척이나 인내하고 노력했었다. 크게 다투고 나면 대화로 차이를 좁혀갔고 대화가 안되면 전화로, 편지로, 메일로 서로의 생각과 견해들을 나누었다. 심각한 갈등의 피로감으로 인한 중압감을 이겨내려고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동거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보와 이해와 노력들로 우리는 서로에게 한걸음 한걸음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남한사람과 결혼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보다는 이혼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도 나와 아내와 겪었던 수많은 갈등들을 겪었을 것이고 끝내는 해결하지 못해 이혼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남들처럼 헤어지는 아픔을 겪지 않고 지금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우리 통일부부의 결혼생활은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이제 어떤 문제로 또 갈등하고 다투고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가장 분명하게 정리된 것은 어떠한 갈등이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것이고 또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믿음과 사랑으로, 또 크고 작은 장미의 전쟁을 넘어선 통일부부의 지혜로 더욱 아름답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통일부부의 결혼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은 아내가 편지에 쓴 것처럼 “머뭇 거리며 남한 사회로, 내게로 한 걸음씩 걸어 나왔습니다”이다. 아내가 쓴 편지에서처럼 우리 통일부부의 삶은 “가슴아픈 말 하지말고… 특히 서로의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해주는 그런 사랑, 어려울수록 더 합하고, 아픈 상처 어루만져줄 수 있고, 어려울수록 더 위해주는 그런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또한 초기의 수많은 충돌로 가슴아팠던 기억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노력이 계속되는 삶이다. 남북한의 통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통일은 60년 전에 헤어졌던 남한과 북한이라는 부부가 다시 만나 함께 사는 것과 같다. 현재 남과 북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끔찍이나 사랑하며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반세기 넘는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의 삶의 방식이 합쳐지는 통일된 삶은 바라는 만큼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남북한 사람들의 통일도 나와 아내가 경험한 통일부부의 갈등처럼 필연적으로 겪어야 될 아픔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아픔을 사랑으로 지혜롭게 극복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통일, 진정한 통일부부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 8월 10일 김승철 서울에서 자료제공 : 북한이탈주민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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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가 아니라 내가 쓰는 것 같은 공감을 느낍니다.
끝까지 통일을 유지하시기를 기원하면서-
더 조은글 마니마니 바람니다.
"가공 식품들이 사람의 성격을 망치고 청소년들을 범죄케 하고 부부를 이혼시킨다는 것입니다 " 지나친 비약이시네요
공간적으로 볼 때 지금 지구상에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순진하고 잘 산다는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범죄가 많고 사회가 불행하며 인심이 사나운데
시간적으로 볼 때 옛날로 갈 수록 곧 옛 어른들의 인심이 후덕하고 사람들 간의 정이 두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여기 넘어온 이들 말은 김정일의 독재 체제만 아니었더면 다정다감한 북한이 더 좋은 곳입니다. '
같은 남한에서도 시골로 갈 수록 인심이 더 후하고 도시로 갈 수록 더 각박합니다.
그러나 제가 먼저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시골이라도 슈퍼 마켓만 들어가면 3년안에 동네 인심이 냥량하게 싹 바뀌어 버립니다
이런 일반이 잘 모르는 것은 구약 시대 같으면 선지자들이 잘 알고 경고하지만 현대에서는 과학자들이 선지자들입니다.
아마도 슈퍼 마켓 하는 이들이나 제과업체 사람들이 불평을 하는 고로 제 글을 지운 모양인데
그러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짓밟고 공해 식품을 팔아먹는 이들이 얻은 유익은 하나님께서 100배나 징벌하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는게 내가 남한에서 정착할려면 배우자와의 정착도 못하는게 남한생활을 어떻게 이겨나갈가??하고 저의 뒤모습을 봅니다. 앞으로 님의 좋은글을 부탁드립니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돈독한 오늘의 가정을 이루어 내신 님들이야말로 진정한 통일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더불어 가족 모두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인간쓰레기같은놈,.
주둥치만 베아링달린 개쇄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