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마저 잃어버린 한국 성인TV 포르노의 기억 - 박경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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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인민 진짜 썩은 줄 착각…북으로 돌아가 최근 북한에 포르노 비디오물이 많이 나돈다고 한다. 음란물 CD 한 장을 한 시간 동안 빌려보는데 2000~3000원이라는 소식이다. 중학생 아이들도 서로 돈을 내고 음란물을 돌려보고, 이를 큰 자랑으로 여기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포르노 때문에 함께 중국까지 탈북했던 친구와 헤어진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북한을 탈출하여 2박 3일째. 얼음이 된 밥덩이를 떼어 먹으며 친구인 신영일과 함께 중국땅 왕청현 백초구에 들어 선 것은 2003년 12월 29일이었다. 그곳까지 목표를 정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추운 겨울에 당장 거처할 곳이 없었던 우리는 일거리를 주겠다는 사람을 만난 곳이 왕청현 백초구의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주인은 마을에서 5리 가량 떨어진 산막(山幕)으로 안내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장작 패는 일을 하였다. 주인이라는 사람은 닷새에 한번씩 차를 몰고 와 나무를 실어가곤 했다. 그 때마다 쌀과 부식물을 조금씩 가져다 주었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소형 라디오였다. 전기도 없는 산막에서 밤새 라디오로 한국방송을 들으며 언젠가는 꼭 한국으로 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밤늦게까지 가족들 이야기를 나눌 때면 영일이의 눈은 언제나 축축이 젖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은 영일이는 엄마와 누이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의 누이동생 영심이는 참 곱게 생겼었다. 힘없는 집안 탓에 영일이는 집단동원이나 돌격대(대규모 건설이 있을 때 사람들을 동원해놓은 집단) 같은 것이 있으면 빠지는 법이 없었다. 영심이도 '6.18 돌격대'라는 곳에 나갔었는데, 얼굴이 곱게 생긴 덕에 그곳에서 통계원으로 뽑혔다. 하루 생산실적을 조사하고 보고하는 통계원 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돌격대에서 유일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통계원들은 대대장이나 정치 지도원의 공개된 노리개감이었다. 그런 자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은 너나없이 통계원 일을 원했다. 2년간 돌격대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 온 영심이는 군에서 제대한 총각과 결혼하였고 금슬좋은 부부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영심이의 돌격대 생활을 흠잡으며 집안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걸핏하면 남편은 폭력을 휘둘렀고 결국에는 이혼하게 되었다. 영심이는 임신 중이던 뱃속의 아이를 없애려고 수술을 받다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충격을 받은 영일의 어머니도 몇 달 안 되어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영일은 이런 일을 계기로 북한 사회에 침을 뱉고 탈출하게 되었다. 여동생과 어머니의 잇따른 죽음으로 그는 '북한의 간부들'이라고 하면 치를 떨었다. 한국 성인 TV방송에 절망한 친구 우리가 산속에서 지낸 지 한 달이 지나 음력설을 맞게 되었다. 나무를 실으러 왔던 주인이 우리더러 음력설은 자기네 집에서 보내자며 차에 타라고 했다. 산속에 숨어 짐승 같은 생활을 하던 우리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주인은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아내는 홍콩에 돈벌이를 가고 딸은 연길(延吉)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주인집에 있던 한국 위성TV였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TV를 통해 한국을 보게 되었다. 저녁 때가 되어 모두 술에 취했을 때 주인이 갑자기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들 섹스영화 본 일 있어?” 영일이는 흠칫 놀라며 '그런 것은 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호기심이 생긴 나는 한번 보자고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은 한국 TV의 성인영화 채널을 틀었다. 우리를 아연케 한 사실은 성인영화를 몰래 비디오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TV방송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런 TV가 성인인증을 받아야 시청할 수 있는 것인 줄은 몰랐다. 남조선에서는 TV만 켜면 아무나 성인방송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처음 그런 것을 보니 나도 어지간히 당황했다. 영일이는 말없이 독한 술을 연거푸 마셨다. 집주인은 친구의 전화를 받자 우리만 집에 남겨 놓은 채 나가 버렸다. 우리 둘만 남게 되자 영일이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경민아,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갈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남조선이라는 곳이 저렇게 썩은 땅이었구나. 북조선에서 하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그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다. “저런 땅에 가려고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여동생으로 인해 가슴에 큰 상처를 안고 있던 영일이는 붙들고 말리는 나를 남겨놓고 끝내 그날 밤 떠났다. 눈바람이 부는 텅 빈 밤길을 울면서 떠나던 영일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여동생의 죽음이 얼마나 가슴 아팠으면, 그렇게 증오하던 땅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됐을까. 그의 심정을 지금도 이해한다. 나는 그때 왜 그런 영화를 보자고 졸랐을까?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말할 수 없는 후회감과 씁쓸함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미안하다…. 지금은 어디서 살아 있기나 한지…. 보고 싶다, 친구야. 그때는 나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대한민국은 그때 너와 함께 본 그런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알았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2007년 11월 18일 박경민(2003년 탈북, 33세) 자료제공 :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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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한번 죽임니더~~~
좀 아름답게 말씀합시당
머리가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아예 댓글을 달지마시길 바랍니다.
주제가 야동인가요? 소재하고주제도 구분 못하시지요?
국어는배우시고 댓글다시는 겁니까?
무식하다고 자랑을 하시는 것도아니고 아름답게 말씀하라고?
당신은 참 아름답게 야동을홍보하시네요.
구분을 못하니깐 야동, 일본검색?이라고 손가는데로만 글만 적지요.
머리가 비셨다고 생각하시면 야동만 주구장창 보지마시고 공부라도 좀하시고 댓글을 달던가 하십시요. 정신병자에서 탈출하신 분이 글을 작성하신것도아니시고.
안보고 O
하두 눈물 흘려서 이제는 나오지도 앚네요 간간히 뎃글 올리겠읍니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런성 영화도 다 교육인데..휴!안타깝네요
다 북한의 독제정권이 우리를 가두어놓고 그런걸 전혀모르게 했던 탓이라고 생각돼요. 어쨌튼 님이라도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폐.쇄.적.인.국.가
그안에 있는 사람들은 남자, 여자가 아닙니다
성은 아름다운 것인데 포르노에는 사랑과 생명이 빠져있습니다
그런것을 보는 것은 자신이 자신의 몸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놀아난 것입니다
자기 몸과 정신을 소중히 다루시기 바래요
어렸을적 성교육을 제대로 받으신 기억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아보세요
포르노는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며 당당히 얘기하면서
왜 성교육을 받는것은 부끄러워 하시나요
야동만 다운 받으실게 아니라
구성애가 강연한 좋은 성교육 동영상도 있습니다
여자의 몸은 조각품이나 그림 예술 작품에서 처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지 절대로 상업적인 동영상은 아닐거에요
잠깐의 쾌락을 느끼고자 몸과 정신을 부디 망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포르노 합법화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포르노가 합법화인 나라가 섬 범죄율이 낮습니다 남자의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 주는 방법입니다.
일본 거 미국 거만 보니 지겹잖아 우리나라 것도 좀 보자구.
여성이시니까 남자 배우를 좋아 하시겠네요.
전설적이 배우로는 론 제레미, 존 홈스, 피터 노스 , 지이미 길리스 ,톰 바리런 다들 유명한 배우들이지요.
특히 피터 노스 같은 경우 100년에 한 명 태어날까 말까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 배우 입니다. 사정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이 가능하며 특히 사정하는 정액의 량이 일반인에 비하여 2~3배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줄리엣님 여자 배우중에 줄리엣 앤더슨이란 배우가 있어요.
1938년 캘리포니아의 버뱅크에서 태어난 그녀의 출생명은 주디스 카. 아버지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단역 배우였다. 그녀의 부모는 매우 금슬이 좋았고 원만하며 왕성한 성 생활을 즐겼는데, 이것은 이후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 줄리엣은 크론병으로 긴 시간을 병실에서 보냈다. 21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것도 그런 이유. 하지만 영민했던 그녀는 ‘올 A’로 학업을 마쳤고,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다가 중퇴하고 애인이었던 해군 사병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들은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다.
그녀가 포르노와 인연을 맺은 건 광고 일을 하던 때였다. 이때 만난 포르노 제작자 알렉스 드 렌지는 당시 다큐 스타일이 가미된 혁신적인 성인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업계의 개척자. 새로운 여배우를 찾던 그녀는 예쁘면서도 지적인 줄리엣 앤더슨에게 매혹되었고, <프리티 피치 Pretty Peaches>(1978)라는 영화를 제안한다.
싱싱한 육체를 과시하는 젊은 여배우들 틈에서 줄리엣 앤더슨은 조연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핸디캡에서 장점으로 바꾼다. 그 계기가 된 작품은 <페그 아줌마 Aunt Peg>(1980). 그녀는 ‘빅 사이즈’의 대명사 존 홈즈와 섹스 신을 벌이는데, 이때 누군가가 이런 대사를 던진다. “오, 페그 아줌마! 그 남자 물건이 정말 크네요!”
이후 ‘페그 아줌마’는 미국 포르노그래피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가 되었다. 성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위험한’ 중년인 페그 아줌마. 그녀는 영화 속에서 결국은(!)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된다.
늦은 나이에 출발했지만 줄리엣 앤더슨이 각광 받을 수 있었던 건 그 진정성에 있었다. 그녀는 연기 중에 항상 실제로 오르가슴을 느꼈다. 그리고 섹스에 통달한 듯한, 농익은 중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마음껏 발산했다. 글래머도 아니고 테크닉이 뛰어나지도 않았던 그녀가 스타덤에 오를 수 있던 이유였다.
오로지 남성들만 포르노를 연출했던 시절, 시나리오부터 메이크업까지 모든 분야에 다재다능했던 그녀는 1981년에 첫 연출작 <킹스 레이디>를 내놓으면서 금기를 깼다. 이후 니나 하틀리라는 불세출의 여배우를 발굴해 <니나 교육시키기>(1984)라는 야심작을 내놓았지만 제작자가 마음대로 편집해 작품을 내놓자, 그녀는 포르노 업계를 떠났다.
1995년에 다시 포르노 업계로 돌아온 그녀는 1998년, 환갑의 나이에 <나이를 먹지 않는 욕망>이라는 영화에서 50대 이상 남녀의 성생활을 하드코어 포르노 속에 담아낸다. 이후 커플 카운슬러로 일하며, 섹스 트러블에 대한 조언을 담은 책들을 저술했다.
평생 클론병으로 고생했고 결국 그 병으로 2010년 7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줄리엣 앤더슨에게 섹스는, 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었다. 그는 섹스를 통해 생겨나는 엔도르핀의 치유 효과를 믿었다. 감독이 “컷!”을 외친 후에도 섹스 신의 여운을 느끼며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던 줄리엣 앤더슨. 그녀는 섹스를 통해 몸을 해방시키려 했던, ‘포르노의 아줌마 여전사’였던 셈이다.
한국도 진지하게 포르노 합법화를 논의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전 중국에서 좀 어래 살아 그런지 실지 한국 위성 방송은 그다지 센거 아니거든요
준요한부분만 가리고 나오는거 뭐그리 심각하게 받아 들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성이란 아름다운것 아닌가요???
그성을 더 화려하게 장식하자고자 만든 프로노를 보고 절망햇다면 방법없는것이겠죠???
22살밖에 안된 철없는 때문이랄까 아니면 너 무일찍 개방 한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 합니다
성 그자체가 아름다운 겁니다
결국엔 무지한 북한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 한번 못받아본 대문이 아닐가 하는 생각입니다
어잿든 친구분의 일은 참 안타깝네요..
앞우로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할게요
남한사람으로선 이해안되는 행동이긴하지만 문화적충격이 컸었나보군요..
끝까지 붙잡지 그러셨어요 ㅠㅠ
가지 말지...슬프기만 하네요...
친구의 몫까지 잘 살기를 바랍니다.
글구 북한으로 돌아가신 그 친구분에겐 언제나 행운이 함께하길..........
포르노 제작, 출연, 유통 전부 불법이고 외국의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기만 해도 처벌 받습니다.
그 때 TV로 본 것은 에로 영화 아닌가요? 그 에로 영화도 케이블 방송에서 심야 시간대에만 보여줍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본주위국가에서 성매매금지법이나 인신매매금지법.
성삼품화금지에 여러가지 제도를 두고있지만 음성적으로 자라나는 불법성행위는 모두 감시할수없는게 사실입니다..정말안타깝네여 자유로 첫발을 내리실때 자본주위의 폐단을 먼저 보신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에로영화도 있고 포르노도 있습니다.
일본성인포르노전문,한국전문 두서너개의 성인채널이 있는데 방송사는 모두 한국입니다.
이러한 야동은 정력이 퇴세한 나이가 많은 분들의 성을 자극하는데는 일정한 도움이 되겠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자주 보면 신체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리고 정력은 잠을 잘 자고 신체단련을 위주로 하면 더욱 건전히 강해지겠죠? ㅋㅋ
글쓴이 친구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어릴때 중국이 금방 개혁개방을 했을때 야동이나 야한 사진을 보고 엄청 충격을 먹고 그러한 사진이나 야동을 만든 미국을 혼잡하고 더러운 곳으로 오해했었죠 ㅋㅋ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런 뉴스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아직도 성을 파는 사람들이 많구나.
사람인 이상...성에 관심을 갖는것은 당연하겠지요.
또 사람이기에 나누는 사랑도 아름답기를 추구하는 것일겁니다.
그러나 세상은 셀 수도 없이 많은 논리와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삶은 자신이 통제해야 합니다.
과도하다거나..심지어 그것이 차마 못할 짓이면 법률이 만들어질 것이고 또 치료법도 개발되는 것이 우리 사회 이듯이 그렇게 정제되어 가는 것입니다.
북으로 되돌아 가신 님의 친구분은 그 가치를 모른체 선택을 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영상을 접한 친구분의 충격이 어떠할 지는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 영상을 접했을때의 충격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워서 한동안 괴로워 했었답니다.
님의 말씀대로 님의 친구분은 부족한 경험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셨네요.
안타갑습니다. !
통제된 사생활, 편향된 교육이 낳은 유연하지 못한 사고의 결과인것 같습니다.
200~300 개의 위성 채널중 하필이면 포르노 채널을 틀어 주었는지
집주진 중국인도 참 보통 스포츠나 오락 프로그램을 틀어 주면 좋았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