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로커였다(7) - 유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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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수잉지와 기록수,통역과 경찰관 한명이 와서 나를 나오라고 한다. 내가 천천히 출입문쪽으로 가니 수잉지가 밥을 먹었는가고 묻길래 밥먹을 생각이 없어서 먹지 않았다고 대답 하였다,수잉지의 얼굴 표정은 한가하게 느껴졌으며 나를 잡아당겨 한쪽벽면에 서라고 하면서 중국어로 유상준이라고 씌여져 있는 패쪽을 들고 사진촬영을 하잔다. 촬영이 끝난후 우리는 어제 조사 받았던 방으로 갔다. 내가 걸상에 앉으니 통역이 나의 앞에 와서서 문서인듯한 종이를 들고 서툰 한국어로 "네 윤철 아는가?"고 묻는다. 나는 처음에 이여자가 누구를 말하는가고 생각하는데 다시 "네 화자아는가?"고 묻는다. 나는 아무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김윤철은 알고 있엇지만 화자란 이름은 연길에 있을때 아시던 분이 있엇지만 그분의 이름이 여기에 오르내릴수가 없었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그들을 정말 모른다, 나를 믿지 못하겠으면 나의 전화번호 수첩에서 화자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아보라고 하였다. 나는 책상위의 A4용지에 중국어로 김화자, 1966년 9월 26일생, 직업 무직, 학력 중퇴, 그리고 주소란에 길림성 연길시 의란진이라고 씌여져 있는것을 보았다. 의란진 다음 글들은 종이에 가려져서 볼수가 없엇다. 뚱보의 이름이 화자였구나,하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다. 언제인가 김윤철이 그녀가 연길 의란에 산다고 말한적이 있엇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통역을 하는 여자가 짜증석인 목소리로 "네 김윤철 안다, 네, 화자 안다"고 말하자 나는 확실하게 모른다고 대답을 하니 의자에 비슷듬히 앉아 지켜보던 수잉지가 네가 내몽고로 오면서 누구를 보았는가고 물었다. 나는 뚱뚱한 조선족 여인과 탈북자로 보이는 일행 두명을 렬차에서 만났다고 하자 수잉지는 네가 어떻게 그들이 조선족이고 탈북자인것을 아는가?고 반문했다. 나는 연변에서 오래 살았고 경험적으로 그들이 탈북자 인것을 알아 볼수 있게 되였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수잉지가 네가 지난해(2006년)12월에 어떻게 되여 이련호특으로 왔는가?고 다시 질문하는것이 였다. 나는 2000년도에 한국 갈때 나갔던 길로 탈북자들을 보낼수 있겠는가를 알아보려고 왔다고 대답했다. 이쯤되고 보니 뚱보여인이 아주 구체적으로 고발하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엇다. 뚱보와 김윤철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포항에 살때 김윤철은 한동네에서 살았으며 이후에 경기도로 집을 옮긴후로는 나는 그의 존재를 까많게 잊고 있엇다. 2006년 4월경 김윤철은 오래만에 나에게 전화로 만나자고 하여 우리는 나의 집에서 만날수 있었다. 그때 김윤철은 탈북자 3국 탈출을 200만원씩 받기로 하고 나와 함께 하자고 말하는것을 나는 탈북자들에게 돈을 요구하여 본적이 없기에 그렇게 할수 없다고 잘라 말해 주었었다. 실제로 나는 탈북자들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검은돈을 받아본적이 없엇으며 2006년 9월 이후부터 내가 한국으로 입국시키는 탈북자들에게 "나는 최근에 아니 좋은 일을 당하여 많은 돈을 벌금으로 내여주어 재정적으로 몹시 어렵다. 그러니 한국에 가서 남들이 내는 입국비용의 10~30% 한도에서 량심적으로, 그리고 자각적으로 돈을 돌려주기 바란다고 호소하군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마고 약속한후 돈을 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김윤철은 몇달을 나에게 함께 일하자고 했고, 길을 가르쳐 달라고 수차례 집에 와서 간청하군 했다. 그런 그에게 탈북자들에게 돈을 많이 받지 말라고 이야기 했고, 윤철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후 어느 날엔가 김윤철에게 탈출하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었으며 날짜선택하는 법도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때로 부터 얼마후에는 함께 이련에 가서 탈출하여 빠져나가는 장소로 부터 불의의 정황에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수 있는 곳들을 상세히 일려주기까지 했다. 그때 윤철은 내가 나가는 곳으로 함께 나갔다 돌아오면서 "야, 범의 입에 들어가는것 같아 혼났다"고 말하는 것이였다. 2006년 12울초 나는 왕청에 있는 진옥이네 가족을 할빈에 데려다 주고 연길에 돌아온후, 준비되여 있는 탈북자들과 함께 이련호특으로 떠났다. 윤철은 이때 두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떠났으며 나는 3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길을 떠나서 내몽고 중부선 열차에서 서로 만날수가 있엇다. 윤철과 함께 떠난 두명의 여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무슨 생각인지 수심에 잠겨 있엇고 그들과 조금 떨어져 앉은 우리 일행은 여러가지 이야기로 웃고 떠들면서 명랑하게 여행을 즐기였다. 우리는 준비한 음식도 넉넉하여 윤철이와 함께 떠나는 일행에게도 음식과 음료를 가져다 주었다. 한번은 싸이한 타라 역전에 들어가 차표를 사가지고 우리 일행들에게 주고있는데 윤철의 일행중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그는 현재 송파구 거여동에 살고 있다고 함)가 나에게 와서 "선생님, 차표를 좀 끊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당돌한 그녀가 믿음직하여 그들 일행의 차표를 끊어주었다. 우리 일행은 정말 눈속에 몇일을 있어도 끄떡없이 준비하였는데 두 여자분은 옷이 얇고 수건도 변변치 않아 그때 나의 모자와 장갑을 벗어준 기억이 있다. 윤철은 자기의 일행을 나에게 부탁을 하였지만 나는 우리 일행들에게 함께 가는것이 어떻냐고 물어보니 다들 우리끼리만 가자고 한다. 나는 우리 일행들을 순조롭게 출발시켰으며 밤12시 30분경에 무사히 목적지인 역전에 도착하였다는 전화를 받앗다. 명일과 아가씨는 미국으로, 윤명화는 한국으로 떠나보낸것이다. 그날이 2006년 12월 25일,성탄절이였으며 윤철과 함께 있는 뚱보여인을 만나게 되였다. 내가 김윤철에게 길을 알려준것은 그가 끈질기게 접어든것도 있고 한국에 오려는 탈북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줄수 있는 인권단체나 선교단체가 많지 못하였으며 선교단체라고 하여도 선금을 받는 선교사보다 후불로 입국비용을 받는 브로커가 훨씬 났다고 판단한데 있엇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윤철에게 선후불 포함하여 150만원이면 당신이 넉넉히 살아갈수 있으니 절대로 그 이상을 받지말라고 이야기 하여주었고 그도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탈북자들이 저렴한 비용에 안전하게 한국 오기를 바라고 탈출로를 알려주었지만 결국은 함정이 되여버린 것이었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자면 그에 걸맞는 일군이 준비되여야 한다. 또한 재정문제, 환경문제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것은 탈북자들을 따듯이 보살펴주고 사랑하여 줄수 있는 생명중심의 세계관이 투철한 일군을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다음에 계속) 2008년 5월 13일 유상준 자료제공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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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소롭습니다
- lol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01 10:24:05
- lol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01 10:29:03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문학 운운해대는 너같은 머리 빈 꼴통도 탈북자랍시고 국민 세금으로 남한에 기거하게한 남한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다.
빨갱이 간첩같은 놈.
우리가 처음 몽고에 가서 군인들에게 죽도로 맞아댔고 수술한 상처는 아물지 않아 피고름이 나오는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엇습니다.
나는 그러한 탈출 경험이 있기에 100%몽고 소개신을 주어 보내고 협조공문을 하여주게 되였습니다.
지금은 경기도에서 노가다(일당로동)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장차 영웅이시고 늘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도와주셔서 넘 고맙고 이은혜 죽어서도 잊지않을것
이고 갚을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미화된것도 없습니다.
저 자신도 선생님의 선으로 일전한푼 내지 않고 한국까지 왔습니다.
언젠가는 보답하렵니다.
탈북인님, 혹시 심술과대증상같은 병에 걸리시지 않으신죠,
샘물에 티가 있다고 그 물에 침 밷는다면 어딘가 인성부족같네요.
이 한국땅에 하선생님의 도움으로 오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무 하시네요
하선생님 선생님의 글 참으로 감회깊게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꼭 뵙겠습니다,
선생님의 현재 전화번호, 주소,그리고 지금 어떤 일 하신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상준씨라면 정말 그글대로라면 정말 존경합니다,
상준씨는 앞으로 꼭 해낼겁니다,
건강하시고 쓰시고자하는 글작품이 제대로 성공되여 책으로 발간되면 좋겠어요,,
저도 상준씨의 자품에 공감합니다,
꼭성공하십시요
다자기가 브로커라고 하던데요 ㅋㅋㅋ
말할줄 몰라서 어케 위로해 드렷으면 좋을지 모르겟어요. 암튼 힘내세요 好人有好報전 이말을 믿어요.꼭 성공하시고 ...
저는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유상준님이 참 좋은 분 같아요,
앞으로도 열심히 사시고 비록 저와 같은 이야기이지만 자주 글 올려주세요.
- tkso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10-23 16:05:34
숨 넘어가는 사람에게 돈 줘야 치료 해준다는거와 같지요.
돈으로 비참한 현실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꼴 아닌가요?
그러나 사람 먼져 살리면 그 은혜를 잊겠습니까?
설마 잊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선행을 베푼사람은 얼마나 뿌듯 합니까.
얼마다 가격을 정해 놓고 탈북을 돕는자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자 입니다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당신 펜이 이세상엔 더 많으니깐요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 8회기대할게요
자유대한으로 왔다는 자체가 만주벌판에서 이리저리로 헤메던 불행한 삶이 끝나고 새롭고 보다 행복한 삶의 시작이 아닌가요.
그렇게도 오지 못한다면 불법체류자처지가 면할 수 없고 그사람들도 부자가 아니고 누구한테서 지원받는 돈이 없는 이상 그 멀고 험한 길을 자기돈으로 로비를 써가며 탈북자들을 데려 올 수 없다고 봅니다. 국가에서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나온다고 그 사람들도 한국에 온 탈북자들과 다 같은 처지고 특별히 잘사는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탈북브로커나 상준씨같은 사람들을 뭐라고 해도 그 분들의 노력이 없다면 2만명의 탈북자들이 자유대한으로 올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오케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4-09 14:35:30
그러나 중요한것은 2만명의 탈북자중 대한민국에 혼자서 알아서
오신분이 몇명없으며/대한민국정부가 정성들여 데려온 탈북자가
없다는 랭정한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브로커들이 없었다면 2만명은 고사하고 몇명이나 이땅에 왔을가요?
- lol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01 11:47:00
브로커들 덕분에 남한에 무사히 온사람들도 있지만, 브로커들 덕분에 공안에 잡히거나 나침판도 없이 사막에 팽개쳐져 숨지거나 인신매매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수가 몇배 많다
900주고 비행기타면 개 몇 마리값일가???
이런 조은일을 하시면서 알아봐주는 분들도 많다고 봅니다
그 혜택을 입었던 안 입었던
진실이 밝혀질날은 옵니다
화룡에서 살면서 이런일에
(기회도 없엇거니와) 동조를 못 해드리는 저는
머리숙여 존경 합니다
힘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