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에 찼던 내 운명의 역사를 올립니다 - 소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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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시기 우리는 장군님 한사람만을 믿었다. 배급소 문 닫을 때 언젠가는 다시 열릴 것이라고 믿었고 농장에서 계획미달이라고 분배 몫 잘릴 때도 다음해는 풍년이 들겠지 기다렷다. 하지만 굳게 닫힌 배급소 문이 가끔가다 열리면 그 앞은 아수라장,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마당이었고 농장의 탈곡장마저 분배 타는 날이면 서로 밀치고 닥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배급소 문이 닫히던 90년대 초에 우리 아버지는 장 천공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였다. 병명은 ‘위 천공’이라고 해서 위부터 갈랐지만 결국은 위는 멀쩡하고 소장에서 터진 자국을 발견하고 수술을 했으나 이미 갈라진 배는 실로 꿰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큰 병도 아닌 것으로 수술대의 실험용이 되고 말았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북한에서도 환자가 나오면 그 가족은 내릿 길을 걸어야 했다. 더욱이 부실한 병원설비와 치료로 우리 집 경제는 살아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혼수품으로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싸구려로 시장 통에 내다 팔렸고 가정은 결국은 서발막대기 휘둘러도 거칠 것 하나 없이 되었다. 3차에 걸치는 대수술에 아버지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7개월이라는 동안 뒤로 변을 못 보기에 배꼽으로 볼일을 보아야 했던 아버지, 그나마 하루 한 끼 차례지는 밥도 밥이라고 먹다가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아버지의 변으로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병으로 인한 가정의 파산으로 언니 오빠가 한시에 머리가 돌아버렸다. 비록 돌아버린 이유가 정신병이라고 간단하게 말하면 되겠지만 유전으로 볼 때 정신병자 하나 없는 집안에 두 사람의 정신병자가 나온 것을 무엇으로 해석하면 될까? 잊고 살던 지난날에 내가 지금 이글을 쓰는 손가락이 떨린다. 정말 중국생활 십여 년에 한국생활 비록 일 년이지만 아직 한번도 가족에게도 내 비치지 못한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또다시 내 눈에 눈물이 흐른다. 떨리는 이 분노 어디에 토해야 하는가? 기아와 굶주림은 이제는 우리의 머리위에 아니, 정확히는 내 머리위에 떨어졌다. 병마로 고통하시는 아버지는 의식이 없으니 집안 실정 감감 모른다. 정신 나간 오빠와 언니도 세상이 이제는 녹두알만하다. 농장에 나가서 이렇게 저렇게 구실을 만들어서 아버지 영양을 위하여 찹쌀이며 낙태한 염소새끼며 갖다가 고아드리고 지어는 농촌 지원하는 학생들 식당과 병원을 다니며 국 끓이고 남은 소 뼈다귀를 얻어다가 망치로 때려서 골수를 부수어 그 물을 우려내서 거기에 밥 지어 아버지 대접하고, 아버지는 그런대로 몸은 호전했으나 정신이 돌아간 언니 오빠는 돌아올 수가 없다. 걸핏하면 도끼, 톱, 가위를 쥐고 나하고 아버지한테 달려들기가 일쑤다. 돌아가신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이런 꼴로 살라고 나를 낳아서 제대로 키워도 안주고 먼저 갔어요? 나의 엄마는 내가 열 살도 되기 전에 가족을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떠나갔다. 너무나 원망스럽다. 아버지와 돌아버린 형제들을 내 어깨위에 얹어놓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죽고 싶다. 살아서 뭐하냐.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기 싫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은 또 어쩌고???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이제는 일이고 머고 다 싫다. 죽이라도 연명하려면 이제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가정의 세대주가 되였던 오빠가 이 꼴이 되고 보니 내 앞으로 다 옮겨왔지만 아버지의 병간호로 일을 못하니 온가족 분배가 다 잘렸다. 결국은 죽으라는 말 밖에 더 있는가? 하지만 살아야 하겠다. 언제 덤벼들지 모르는 정신없는 오빠를 데리고 산에 가서 봄이면 부채마, 삽주, 더덕, 산나물, 도토리 닥치는 대로 캐고 주어 온다. 그래도 하루에 한 끼밖에 차례질 수 없는 우리 살림이다. 정신이 나가기 전에는 착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 놓던 오빠가 정신을 놓으니 일하기를 딱 싫어한다. 몸 쓰기를 싫어한다. 온 하루 도토리 한줌을 줍고는 졸졸 내 뒤만 따라 다닌다. 미칠 지경이다. 지금은 죄스럽지만 차라리 빨리 안 죽는지 싶다. 마대 같은 배낭 하나 가득 채우면 산골짜기에서 해가 넘어간다. 허겁지겁 산을 내려오다가 나무가치를 보면 또 주어 와야 한다. 이제는 내가 소녀 가장이 된 것이 실감이 낫다. 오면서 눈물을 씹어 삼킨다. 저녁은 뭘 해먹나? 낑낑거리면서 집에 들어서자 썰렁한 집안, 살아있는 온기라고는 느껴도 안 진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도토리 줍다가 곰발자취를 따라다닌 적도 있다. 하지만 죄 많은 인간은 살아서 고생하라고 하는지 불 만난 곰이 돌아치면서 사람을 무지도 죽이건만 나한테는 눈도 안 돌리는 것 같다. 그만치도 값없는 목숨 이였든가.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간다. 이 겨울은 어찌 살까? 하지만 겨울이라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눈 속을 헤집고서라도 다람쥐가 먹다버린 도토리라도 주어야 식구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살찐 부채마는 없어도 야윈 놈이라도 캐와야 한다. 돌 사이를 곡괭이로 파면 언 손잔등이 짝짝 아려난다. 피가 샘솟는다. 북방의 날씨도 나를 애를 먹이려고 작정을 했나부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삶이 점점 고달프다. 엄마가 또 원망스럽다. 차라리 멜레(묘 이장)라도 해볼까? 생각을 하니 별로 어려운거는 아니었다. 아버지하고 의논해서 엄마의 묘소를 찾아가서 제를 지내고 이장을 서둘렀다. 한마을에 사는 분이 해 주려다가 아파서 드러눕게 되였다. 그런데 이런 일은 미루면 안 된단다. 귀신이 노한다나. 그래서 그냥 하기로 했는데 형부라는 사람이 묘를 좀 파 내려가더니 못하겠다고 나앉는다. 그럼 어쩌란 말인고. 할 수 없이 내가 삽을 들고 나섰다. 무덤을 겁도 없이 제껴댔다. 뼈를 꺼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몸이 성치 않은 아버지를 안아서 묘안에 들여앉혔다. 그리고 위에서 나는 아버지가 “오른쪽” 하면 내가 오른쪽을 받아 외친다. “왼쪽”하면 또 “왼쪽” 뼈가 잘 발라 안 진다. 나무칼로 살을 뜯으니 잘 안 된다. 장갑 벗어 메치고 칼을 집어던졌다. 손이 시원히 말을 잘 듣는다. 이렇게라도 하면 꼬인 집안이 혹여 풀릴지, 돌아간 엄마 귀신이 노여움이 풀릴지 간절한 소망안고 끝내고 이장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니 긴 한숨과 추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긴장해서 느끼지 못한 것이 인제야 느껴지는가부다. 술, 술밖에 날 달래 줄 것이 없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계절은 흘러서 다음해가 되었다. 정신없는 오빠를 정신병원에 보냈으나 탈출해서 생강냉이 씹어 먹으면서 집이라고 찾아왔다. 봄이면 계집애가 소나무를 타고 올라서 솔 화분을 채취했다. 그렇게 또 늦은 봄이 왔으나 이제는 나는 기력이 쇠진했다. 몇 년을 앓는 아버지와 정신이 없는 형제를 살리느라고 살 기운이 다 빠졌다. 어른들이 그랬던가? 헌 독이 새 독 친다고. 그 찰나에 오빠가 사고를 쳤다. 농장의 소를 잡았다. 감방감이다. 그때 소 잡고 감옥 가서 죽은 사람이 얼마였든가? 하지만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을 바에야 하고 소도둑이 늘어나는 판에 우리도 소고기나마 배불리 먹어보자. 나도 참을 수가 없다. 다른 짐승은 소리 나서 불편하지만 소라는 물건은 큰 눈을 뒤룩거리며 눈물만 흘리는 거 같다. 하지만, 하지만 나도 살고 싶다. 근데 잘되는 놈은 엎어지면 떡함지에 엎어지고 재수 없는 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밤중에 누구도 몰래한 도둑질이 걸릴 줄이야. 밤중에 뼈를 찍는 소리에 동네 경비가 듣고 신고를 했다. 비록 정신 나간 사람이 끌고 들어온 소지만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소도둑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했든가? 근데 내가 소를 죽였다. 나도 살고 싶다. 아, 어쩌란 말인가... 안전부행도 내 몫이다. 취조를 한다. 하지만 나는 가족을 살리고 싶다, 나는 죽어도 아버지만큼은 살리고 싶다. 결국 고기 한 점 입에 넣을 수 없는 나인 것을 모두가 인정을 해서 겨우 그 사건이 무마 되었다. 하지만 뒤로 따라다니는 따가운 눈총들, 어쩌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살아야 하기에 얼굴을 들고 산다. 죽은 정승이 산개만 못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임금도 사흘만 굶겨 놔봐라. 도둑질 안하나. 내가 도둑이며 농작물 가지고 너네 마음대로 하는 너희는 머냐. 오기로 버티자. 하지만 결국 소 한마리 때려잡고 돌아온 것은 ‘소도둑’. 고기 한 점 입에 넣어보지 못한 아버지와 오빠의 얼굴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허탈하다. 이제는 어찌하고 살까? 힘을 놓자. 이제는 순응하자. 그렇게 3일, 집은 불하나 안 때고 쌀독은 텅텅 비고 아버지가 난리를 한다. 물이라도 먹어야 산다고... 허참 웃기지. 물 먹고 오늘 하루 살구 내일은? 눈 감으니 편하다. 이제는 굶주림도 몸에 배인가 부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그렇게 또 3일. 그나마 소뼈물이라도 우려 드셔 그런지 아버지 눈길은 그나마 빛이 있다. 딸년 하나 죽인다고 이웃에 가서 쌀 한 되 얻어 왔다. 죽 끓인다. 일어나서 먹으란다. 오빠 역시 윗방 침대에 누워서 내 자세 그대로 흉내를 낸다. 일어나서 죽 한 모금 입에 넣으니 배가 얼얼해 온다. 윗방을 흘겨보던 아버지 죽그릇 들고 올라가더니 황급히 소리친다. 왜?? 하고 일어서보니 한술 떠서 넣어준 죽이 입가로 주르르 흘러내린다. 죽 한술도 넘길 힘이 없어진 오빠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어차피 가기로 각오를 한 목숨들이 아닌가. 다음날 바로 장례를 했다. 그래도 칠성판에 눕혀놓으니 사람이 있는 거 같아서 실감이 안 난다. 죽은 거 같지를 않다. 무덤을 만들고 비석이 없다. 총각무덤이라서 없단다. 후ㅜㅜㅜ 그럼 총각귀신이네. 눈물도 아마 사치인가부다. 내 눈에는 눈물도 안 난다. 오히려 옆에서는 대성통곡을 해 댄다. 아니꼽다. 너희들 먼데 통곡이야? 젯밥으로 올려놓은 이밥 한 그릇, 그걸 보는 아버지의 눈이 빛이 난다. 드리니 누가 먹을세라 뚝딱 해치운다. 그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집, 그나마 정신 없어도 사람이 들어오면 빛이 없는 멀건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던 그 얼굴이 안 보인다. 갑자기 집이 썰렁해진다. 통곡이 나온다. 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부둥켜안고 온 하루를 울었다. 간 사람이 불쌍한 것보다 살아야 할 앞날이 캄캄하다. 농장에서 쌀 몇키로를 준다. 산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한다. 어이가 없다. 한 송장이 나오니 두 송장이 나올까봐 인제야 쭉정이 강냉이도 차례가 오나 부다. 옥수수 속괭이를 얻어다가 같이 분쇄를 해서 양을 늘려서 끼니에 보탬을 했다. 확실히 죽은 놈만 불쌍타. 오빠 한 사람이 줄어드니 어느 정도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게 부치는 정도가 나아진 거 같다. 하지만 여름이면 극심하게 떠드는 게 하나 있었으니, 김일성의 애도표시로 다문 며칠이라도 농장에 나와서 일하란다. 그럼 내 하루하루 끼니는 당신들이 해 주는가? 다음해 봄이 되니 또 기근이 닥쳐온다. 그래도 추운 북방이지만 소토지라도 하니 겨울 한때는 죽이라도 먹고사니 그나마 행복이라고 해야 하는가? 보릿고개부터는 마을 곳곳에서 도둑질하다가 살인이 일어나고 목매 자살을 하고 하룻밤만 지나면 온 마을이 뒤숭숭하다. 이 상태로 가면 작년의 그 꼴 못 면한다. 아버지한테 중국가자고 했다. 안된단다. 겨울에 가자고 한다. 시장 통에 나가서 몰래 선을 놨다. 아버지 몰래 중국 가서 친척 찾아서 돈 얻어 가지고 와야지.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길을 떠났다. 집에는 통강냉이 몇키로와 국수 한 사리 남겨놓고. “아버지 딸이 꼭 돌아올테니 기다려 주세요.” 이말 한마디와... 지금도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떠난 걸음이 이제는 십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그 다음해 내 이름 부르고 부르다가 돌아가셨다. 이 딸이 아버지한테 쌀밥 배불리 드리겠다고 목숨 걸고 떠났건만 그 약속 지키지도 못한 채 나의 가슴에 빚만 남기고 떠나가셨다. (오빠가 가던 해, 그 달에 언니도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이렇게 나는 졸지에 부모 형제 다 잃고 세상에 내 몸뚱이와 내 그림자만 밟게 된 고아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서 눈물 쥐여 짤 바보는 아니다. 굳이 내가 가슴 아픈 사연 올리는 이유가 있다. 가슴에 고이 묻고 그 누구에게도 헤쳐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과거 내 삶을 내가 이렇게 드러내도 가슴이 후련한 거는 하나도 없다. 단지 그 누가 북한 땅에서 태어난 사람치고 고생이 없었으랴만 우리의 이 고생이 왜 생겼는지, 내가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서? 나처럼 돌 위에 올려놔도 산다는 사람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효도도 하려고 했지만 세상은 나에게 자식으로써, 동생으로써 앓는 형제를 돌볼 수 없이 각박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오빠 언니 네사람을 내 손으로 보내고 말았다. 그럼 이런 비극을 만들어 낸것이 누구인가? 내가 살인자인가? 아니면 분배몫을 자른 농장의 간부들인가? 아니다.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럼 그게 누구인가? 우리가 그렇게 목숨걸고 지키던 사회주의와 장군님이 안겨다준 비극의 종말이다. 차라리 거기서의 종말로 그치면 나는 이글을 써야할 의미도 느끼지 않는다. 이제는 나도 내 부모형제을 저 세상으로, 아니 지옥으로 보내놓고 나 하나 살아보겠다고 자유대한민국으로 찾아왔다. 이제는 역경을 헤치고... 2008년 7월 25일 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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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항상 님에게 좋은일만 있으시기를 기원 할께요?
그길밖에없스니 노력하여 부자되어야민 불상한 북한동포를 구할수 있으니까요, 꼭성공 하세요, 힘내세요,기회가 되면 도우겠습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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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과거를 회상하기란 참으로 힘든일인데 쓰시느라고 얼마나 고생 많으셨나요 ....
소향씨같은 증언자들이 애국자들이 있다는것이 참 다행스럽고 고맙습니다
님처럼 열심있는 분들은 꼭 행복하고 좋은 앞날이 약속 되여 있는줄압니다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바꾼 그 힘을 놓지말고 아직 도 고난의 길가에 놓여있는 북한 인권을 위해서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에 성공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소향씨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하이팅 !! ~~~~~~~
소향씨 앞을 내가 보며 웃으며 사십시오
난 소향씨의 앞길에 행복만 있기를 진심으로 바람니다.
갑자기 드시지 못해서 영양실조로 돌아가신 저의 아빠생각이 마니 났어요.
그나마 전 아빠의 임종도 보지못했죠. 지금도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면 효도를 못한 저의 불효가 가슴이 찢어지도록 젖어듭니다.
힘내세요. 탈북한 사람들치고 가슴아픈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강해지는 거죠. 자고로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더 강한 법이에요. 그만큼 더 행복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그것이 효도 아니겠어요. 전 그렇게 믿습니다. 울 새터민들 아자아자 화이팅!~~~~~~
수기들을 읽을때마다 숙연해지고 죄송한 마음 금할길이 없군요
소향님 힘내시길..갚아야죠 웬수를..
님의 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안식 하시길 기원합니다
소향님 화이팅...힘내세요~
세상에 하느님이 과연 계시기는 하는것입니까? 하느님이 계시다면어찌 부모에게 효하고 형제에게 의를 다하는 이 마음이쁜 녀인을 이다지도 비참하게 하시는것입니까?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찌
김정일같은 악마를 만들어 내신것이며 만드셨다면 우리민족의 천적일본놈들에게나 보내실것이지 대대로 선량하고 화목한 이나라인민에게 군림하여 도탄에 빠지게 하시옵니까?
그죄는 김정일 의 악독한 인간백정이 있었기에 이러난 일입니다, 백성은 죽어가는데 김정일은 먹는것 마시는것 스는것 등 모든것은 세계에서 제일 졸은것만 먹고마시고 사용하며 거기다가 기쁨조를 도고 어린처녀들 다 수시고 이런 악독하고 용서뭇할 인간백정을 없에기 전에는 할수가 없습니다,
소향님 그러니 남쪽에서 꼭성공 하여 북쪽의 우리부모형제 자매 를 우리가 미력하나마 도웁시다, 이길박에 딴 방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소향님 힘내십시요..소향님이야말로 이세상의 전부를 다가진 보배중의보배입니다..악착같이 살아서 부모형제들의 원쑤인 김정일이를 처단하여야합니다
끝으로 일자리땜에 안타까우신 새터민분들 좋은연락 부탁드릴게요.
연락처;010-3856-9705
이세상 다한들 어찌잊을수 있습니까 소향님의 통곡의 눈물 이제는 밀어내고 저세상간 부모 형제 자매들을 위해 더 굳세게 살아갑시다.
글자도 모르는 농촌 아낙네들마저 김정일이 아버지 권력을 이어받았다니 중국형세와 분석하더니 북조선이 더욱 망하겠네 하고 말하더만 현실로 됐군
80년대까지 중국하고 거이 비슷하면서 조금 못했는데 정일이 올라앉고 나라가 망하다 망하다 못해 온 백성이 무리죽음 하는구나
일성이색히가 중국에서 독립투쟁할때 일본애들의 총에 생식기라도 맞아떨어져야 했었는데..
북한백성들 운이 지지리도 없다.
정일이도 마챤가지구요..
정은이한테까지 세습을 한다니.이제 분열되는거 얼마 안남은거 같아요..안되는거 괜이 시비 붙이지 말고 순수히 체면 차릴려면
이제라도 인민을 위해서 완전개방하고 점차 흡수 통일 하는것이 어떨지..
힘내세용,,,
세상은 내가 할수있는것보다 할수없는일이 더 많다는것입니다
하지만 할수없다고 손을 놓고 과거에 끈을 놓고있는다면 남은 소향씨의 삶은 누가 대신할수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아픔 내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아픔을 지금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가신다면 분명 행복한 남은 생을 살거라고 생각됩니다
눈물이 글썽이는것은 저도 어쩔수 없네요....
힘내시고 항상 주님이 함깨 하실거에요,,,
화이팅 !!
아니 배고파 죽는데 무슨 수령타령인지...도대체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북한사람들은 무슨 생각하고 삽니까?
군대 갔다와보면 알게 됩니다. 다들 고학력자들이면서도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온갖 불합리에 침묵했던 적이 얼마나 많은지를...
물론 21세기인 지금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거늘 개정일 체제에선 나라 전체가 감옥인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세뇌란 무서운 거지요.
제 소설 중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아주 흡사합니다.
아아, 제가 이 카페의 여러 곳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언자를 찾습니다' 등의 제목으로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여기에 다시 저의 메일 주소를 적습니다.
보신다면 꼭 연락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mysoo501@hanmail.net
그런데 님과 너무도 흡사한 상황에서 고아가 되어 북녘땅을 탈출하여 현재
연길에서 누군가에 의해 감금당한채 하루속히 남한땅을 밟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여성동포가 있습니다. 저는 남한사람이고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고 있는 45세된 김민수라고 합니다
저와 북한여성은 인터넷으로 만나 너무많은 정이 들었습니다.
이 여성동포가 연길땅을 안전하게 탈출하여 남한땅을 밟을 수 있는 방법 이나 님의 경험담 등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전화: 019-363-9116, 개인메일: 05016514@naver.com
24시간 기다리겠습니다. 꼭, 부디, 전화 한통이라도, 메세지라도 주십시오
님이 올리신 글을 보앗구요
어찌 그런사람이 저 하나만이겟나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그 기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죠...
글 올려주는 님들의 격려의 메세지로 큰힘을 얻고사는 소향입니다
아참,,, 그리구요
님이 올려주신 메일로 글을 보내드렷는데 반송이 되네요??
그리고 메일을 다시 보내드렷는데 확인을 하지 않으셔서 다시 메일 보내드릴려고 합니다
참,,, 그리고 이 기회에 우리님들 잘 살고 있는 소향의 모습보시려면
"새터민 쉼터"에 오세요
오시면 저녁 8시부터 진행하는 저의 방송을 들으시고 그때의 그 고통을 이겨낸 한 이름없던 소녀가 성장한 모습에 더욱 격려를 해주심 고맙겟어요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고맙구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잘 살도록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리겟습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다 그런삶을 사는것이 아니에요
바람피워서 중국을 나왓다고 생각하면 님의 생각의 수준이 한치 차이일것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여서 생과사의 기로에서 죽음을 택햇을때 그 심정 아세요? 님은 그나마 도강길도 수차례 햇다고 햇죠? 그럴수도 없는 연약한 여자였었고...타산이 왜 많은지 압니까,, 너무나도 지나온 생활이 사람을 독하게 만들었죠. 하지만 님이 생각하듯이 탈북여성들... 여기서 애낳고 저기서 애 낳아서 버리는 사람들 여자의 지켜야할 성도 사고 팔리는 그런데서 탈출해서 요행수로 한국까지 온 사람들께는 님의 말이 큰 상처가 된다는생각 안해 봣어요? 님이 어머니를 존경하듯이 자기의 성조차도 지킬수 없었던 그 가슴아픈 현실을 직시햇으면 좋겟네요
그리고 님의 어머니도 님한테는 존경스런 어머니듯이 세상의 어머니는 다 어머니 입니다.
자기의 배속에서 열달내내 같이 숨쉬다가 낳은 자식을 버릴수밖에 없었던 여인네들의 아픈 마음을 당신의 머리로 얼마나 이해를 할가요? 그리고 당신은 도둑이고 사기 건달 치고 탈북햇을지는 몰라도 남의 가슴아픈 과거, 글에 모욕을 삼가하세요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소향이 당신같은 너절한 쓰레기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대한민국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어요
300만의 아사자를 우롱하는 당신 정일이하고 언젠가는 지옥에서 같이 팔짱끼고 벌 받을 그날이 올것이예요
사람못살곳이라도 땅이 없어요 물건이 없어요 ㅎㅎㅎ
당신 북한서 덜 살아 본거 같은데???
소토지 하면 거기서 분배량 짤랏죠? 소토지도 정부에서 못하게 한 항목인것도 알고 잇어요? 그래도 기를 쓰고 소토지를 하죠...
여름이면 아픈 아버지를 산속움막에 보내서 메돼지 경비를 세우고 도둑 경비를 세우고... 그래도 찾아드는 메돼지 기습과 송이철이라고 찾아와서는 힘들게 지은 옥수수도둑, 감자 도둑... 그리고 고산지대라서 일찍 찾아드는 서리에 채 여물지 않은 곡식들,, 더 무엇을 말할가요? 그럼 내가 자라온, 아니 우리 아버지때부터 모든 역사 다 이야기 할가요? 님이 진정으로 남의 수기에 이런 글 올릴때 원한 것이 있다면 그런것이였어요?
나의 가족, 그리고 정신병이 정일이 탓이 아니였다구요?
감히 그런말이 나와요? 시작이 어디였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의 충성심자체가 정일이 부자한테 기만이였고 성쌓다 남은돌이 되었고,,, 똑똑한 사람들이 남아서 사는것이 아니고 김정일이 정치에 쇠놰된 사람들이 살고 있네요
아직도 세상돌아가는걸 모르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물론 있겟죠, 아마 그들은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남아있는 자산들을 목적으로 남아있겟죠, 하지만 그것은 일부이고 대 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정일이한테 미련이 남아았다는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그리고 온 가정이 몰락하고도 아직도 남아서 그래도 언젠가는잘 살아볼 미련의 끈을 못놓은 사람들이죠.
그리고 당신같은 사람들이 허황한 꿈을 찾아서 대한민국에 들어왓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열심히 사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많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남자이신가 분데 결혼반려자에 대해서 어떤 실망하시고 이런글 썻는지는 몰라도 님이 저의 글을 놓고 억측을 한이상 저도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님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얼마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통괄력있게 바라보세요
내가 쓰레기면 남도 다 쓰레기로 보이는 법입니다
가슴에 화~악 와 닿는 글임.
- 0000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1-02-04 11:11:26
님고장에서도 아마 콩 7킬로에 교도소에 갓다고 햇는데 아마 시범이였겟죠? 그리고 소 절도가 살인만큼 중하다는것도 알고 있어요. 근데 갑자기 내가 왜 대한민국와서 도둑넘이 된 기분이 들가요? 다시금 제 글 자세히 읽어주세요 그리고 법도 사람이 지켜야 하는거지만 그 법을 만들고 조서를 꾸미는 안전원들도 사람이네요
아마 내가 살아오면서 지지리 인간처럼 못살앗더면?? 비록 정신 잘못된 오빠의 일이지만 내가 응징을 받았겟죠, 하지만 체구작고 연약한 아가씨라 그냥 정신이상이 된 오빠의 법정 대리인으로 섯을 뿐이네요 갑자기 돌아간 부모님과 형제들한테 미안하고 욕보인거 같아서 죄스럽네요. 그만큼 님이 이렇게 가증스러울수가 없어요. 당신이 말하는 고난의 행군때 나는 온 가족잃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보니 어느만큼 잘 보냇는지는 모르지만 10살짜리 딸내미가 정일이한테 위협인물이여서 잘못됏다는 억지,, 그만 부려 보시죠? 그런속에서 살아나온 당신이 더 의심스럽고 어이가 없으니깐,,아비는 왜 살려두고 그리고 고난의 행군을 그렇게 잘 어필하는 사람이 300만 아사자를 의심하고 우롱하는 글이 나온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어요.그리고 항상 남한테 의심보다는 자기를 되새기면서 열심히 자기 앞날을 살면 대한민국에 삶은 그래도 보람있고 성공할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가요?
님의 쓰신 대글을 마지막 까지 읽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셨지만 북한이란 나라 법이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은 아실 테죠 ...
사실 소를 도둑한 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인거 맞습니다 ....하지만 오죽 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 ..이 북한에서 비일 비재하게 나타난것도 사실이구요...다 곤난 때문이 아니였나요
북한도 법 규정이 있겠지만 돈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기 자대로 전반을 재려고 하지 마세요
다 나름대로 자기 설음이 젤 큰것입니다
아무리 신동혁 씨 아니여 천하 별 슬픔이 다 있다고 해도 어떻게 슬픈이야기를 비중을 따지며 비교 할수 는 없죠
어떻게 내설음을 남의 설음에 비할수 가 있겠는가 하는것 입니다
그리고 대글을 다는 분들은 님보다 현명하지 못한 분 없습니다
그러니까 소향님은 소향님 대로 또 님은 님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이런 글 쓰라 마라는 좀 그렇네요
쓰는 사람 맘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하지만 입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사랑을 모아 북한 사회를 세상에 알리고 북한주민을 돕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애쓰는 분들에게
도움은 못줄망 정 쪽 박을 깨는 그런 대글은 이제 삼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머 조용히 사는 것이 인간 다운 것은 아니죠 !
0000님 웃글은 참으로 공감하다가
아래부분에 와서 유감스러움을 한마디 적고 갑니다 .......
꼭 성공하시어 고향땅을 밟게 되길 저도 기원해 드리죠.
난 아직 못만나봤는데...ㅠ.ㅠ..나두 탈북민들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이 생각나실꺼 같으신데 힘내세요.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님이 그동안 펄쳐 보시지 못해셨던 꿈을 마음껏 펄쳐 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더이상 고통없이 항상 즐거운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
소향님은 그런 수난의 길에서 쌓으신 경험으로 미래에 대한 투철한 인생을 살고 싶어하시는 강한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존경스럽습니다. 멋진 인생 사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화이팅....
대문호가 쓴 것처럼 간결하면서도
체험이 깊이 담긴 글이네요.
너무 소중하여 우리 홈 www.nkca.net에 퍼 감을 용서하시고요.
그리고 풍선삐라를 날리는 단체로서
이글을 삐라 원문으로 허락해주시면 합니다.
leejnk@hanmail.net
010-5543 2574
저게써거지는날에느 백두산에 ..싼타할아버지온다이까이 ~.
소향님 ..멋지다 .. 결혼으 햇소 .?
woxiangni229@hotmail.com ~ 멘저추가할분 ~~ 여성분들만 ㅋㅋ
님의 너무나 기막힌 인생살이 처절했던 삶이 그대로 동영상되여 안겨옵니다. 제가 북한사람들 좀 알고있지만 소향님처럼 부모형제 다 잃고 외로이홀몸이된 기막힌 사연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치를 않네요.
그런데 0000님.당신 아주 유식한거 같은데 말이맞질 않아요
당신은 북한의 아사자 300만은 부정하면서 소향님이 겪은일을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일로 보고있는데요 그렇다면 게산좀 해봅시다.
소향님은 부모형제 다섯식구중 5분의4가 죽었어요 현재 북한인구 2200만명 정도인데 0000님 당신말대로하면 10여년전 북한인구는 8000만이 넘어야했을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존재하지않는 6000만명은 어데로갔죠?당신이 잡아 잡수셨나요?....
어떻게 남의 모진아픔을 그저 일반적인일로 볼수있어요?...
당신이 아사자 300만을 믿지안아도 지금 북한에는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며 죽기보다싫은 삶을 살아가는 불쌍한사람이 500만도 더 될거에요...
연약한 녀자의 모진아픔을 어찌 가랑잎 스치듯이 그렇게 무심히 볼수가 있어요?.....너무하네요...........
소향님은 아직 젊으십니다
좋은인연 맺으시여 행복하게 사세요
일찍 돌아가신 부모형제들의 못다한 명까지 이어받아 부디부디 오래사시여억울하고 피맺힌 력사의 산증인으로 꿋꿋이 서주세요...
앞으로 좋은글 많이 부탁합니다...홧팅
오늘 이 사이트에 많은 글들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등따시고 배부르고 하고 싶은 일 맘 껏 하며 지내는 제가,,, 불평불만을 가지고 살았다는게 너무 부끄러워집니다. 소향님을 비롯해 많은 글들을 보고 정말 많이 느낍니다.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남북교류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네요...
- 관중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07-15 21:00:59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07-21 23:53:38
오죽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소향님 바나나우유보다 더 맛있는 우유를 드릴게요. "아이러브 우유~ ㅎㅎㅎ"
탈북자동지회 라는 URL을 알게되여 찾아와서
3일밤을 새면서 읽고있는데...
이렇게 의견이 다를꺼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네요
서로다 같은뜻을 내빚출꺼라 생각했는데...
한결같이 모두 북한출신이라 해도 살아온 지역이 달라서 의견도 다른가 봅니다
북한체재 정말이지...현대에서 가장 비극이네요
지구상에서 가장 알려지지않은 은둔국가 북한...
그속에서 생활했던 ㅅ사람들의글들
그리고 그 글을읽고 상반되는 의견들
북한이 단순히 춥고 배고프고 힘든곳 이라는것이 아니라
엄청 복잡하고 김정일을 충성하는 사람도 있다는게..
다시금 알게 되였네요
지금 북한에 인권때문에 세계가 떠드는데 님은 자기 개인만 입다물고 있으면 행복합니까??
이런글 쓰는 사람은 마음이 편해서 쓰는줄 알아요? 피를 토하는듯한 아픔을 다시금 되새기며 씁니다. 그런 사람들께 힘을 실어주시는 못할 망정 자기처럼 살아라고 하면 안되죠...
님은 님 하나를 위하여 살지언정 북한의 인권상태를 알리는것은
우리 새터민들의 몫이고 또 북한의 정일이정권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슬픔 그런 고통을 겪엇으면 남들도 외면하지 않는 진실에 동참해 보세요...
말을하든지무시하고 반박을하세요 뉴스같은곳에들어가보면 한글철자법도제대로모르는병아리들도 욕설에다가 폭언에다가 시골동네 개들짖듯이울루몰려나와짖어됨니다 언제나건강하시고 행복한생활되세요
얼마든지살아갈수있음니다 한국의직업은 통계에의하면14000개라고합니다 자기의적성에맞는 직업을선택하고기초부터다져나가야할것임니다 사람들중에는별의별사람이다많슴니다 이번31명의 중국공안에게 발각된것도 그중 탈북자로가장한 남매로위장하여
정보원이 신고를했기때문으로밝혀졌음니다 어찌되였건안전하게되기를기도드림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에게말씀드릴것은 이메일주소나 핸드폰전화번호를공개하지마세요
사이트란곳은 세계어느나라나 다들어와서 보고있다는것을 아셔야합니다
저도블로그를하고있으면서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미국유럽각국나라 멀리는남태평양 에있는 섬나라들과도소통을하고있고 수많은인원들과 이야기를주고받고 심지어신의주건너단둥에있는중국동포하고도 서로 공유하고있음니다 하루빨리성공하시기를바람니다
지인들에게 군말없이 글을 보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