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람의 친근한 모습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사람의 모습은 귀중한 자산으로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늘 삶의 의미를 북돋아 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영원히 꺼질줄 모르는 사심 없는 사랑의 잣대로 내게 남겨진 생을 보듬는 것처럼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문득 만나 문득 사라진 사람이여도 내 심장 속에 고이 남겨진 사람, 그는 나에게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삶, 아니 사랑의 등대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봄빛 같은 사람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지금까지 생활한 2년, 이 2년 세월이 지난 40여년 살아온 생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된 것은 이제 말하려는 그 사람이 내 곁에 머무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갓 사회에 나와 무엇을 어떻게 어느 것부터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내게 바람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 남쪽 남자가 있었다.
물론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었지만 처음엔 이성으로서 아무런 호감도 안가는 사람이었다.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나오자부터 김밥집, 일당을 구하는 식당을 돌아다니며 알바를 하던 내게 다가온 그 사람은 매우 수줍고 어리 무던한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내 머리를 꽉 채운 것은 같은 민족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이질화된 문화 차이가 있어 진실한 동거동락이 말처럼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생각이 그러하다보니 남자는 정을 안고 다가왔지만 나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내 가슴을 울리는 말이 그 남자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저의 이름은 김용식입니다. 현재 중장비기사구요, 장가도 갔었어요, 이혼한 처는 사기전문가였습니다. 듣건대 선생님은 고학력자라는데 저는 겨우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 수입은 높은 편이나 지금은 천 오백만원의 빚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저 빚일 뿐 내 마음엔 빚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놀랐다. 어찌 반려자로 생각하며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이 같은 말을 아무 꺼림 없이 할 수 있을까? 혹시 항간에 도는 말처럼 내가 북한여자이기에 업신여겨 아무 말이나 내 뱉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이 이상한 여운으로 내 가슴에 박혀들었다.
마음속엔 이미 빚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건 삶에 대한 사랑과 확신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었다. 떠듬떠듬 힘들게 말하면서도 눈빛만은 어눌하지 않고 새별처럼 반짝인다.
여자 앞에서 허세를 떠는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 어딘가 모르게 진실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대체로 많은 남성들이 여자가 맘에 들면 우선은 낚으려 별의별 허세를 다 부린다. 그 다음 사랑이 무르익은 다음엔 허점이 드러나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맞선보는 장소에서까지 솔직하게 자기를 밝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가 정말 마음에 드세요?”
내가 얼결에 던질 번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첫 만남에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그 남자가 던진 말속에 이미 내 이성이 나를 떠나 스스로 빨려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남자의 말이 계속됐다.
“여자를 만나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려 보기는 처음입니다. 20대 총각 시절에도 느끼지 못하던 이 울렁거림이 나를 다시 청춘으로 돌려놓는 것 같네요. 정말 허락만 해 주신다면 난 정말 그 사랑이라는데 충실 할게요. 이건 정말입니다.”
그는 사랑만은 진정 하늘에 맹세한다고 곱씹어 말했다.
일단 나는 서로 지내보며 조금 더 깊은 내역을 쌓으리라 맘먹었다.
그 사람은 퇴근하면 곧바로 나를 찾아와 대청댐을 비롯한 경치 좋은 곳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나는 마침 컴퓨터학원수료와 동시에 ITQ자격시험준비로 알바를 더는 할 수 없어 오후시간에는 열심히 자격고시준비하고 있어 해가 짧은 겨울철 저녁시간에만 그와 데이트 할 수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도 저녁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듯 했다.
어느덧 자격고시도 성과적으로 치렀고 그이와의 사랑도 조금씩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지내보니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꾸밈없는 열렬한 사랑으로 나를 뜨겁게 감동시켰고 하여 나는 어느덧 그이와 함께할 내 일생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친구한테서 취직할 직장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가 왔다.
나는 너무도 기뻐 준비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웬일인지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취업이 제대로 되어 나못지 않게 기뻐해야 했지만 내가 당당한 회사원이 되면 혹 자신에 대한 마음이 바뀔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안가면 안 돼? 여기서 쉬운 일이라도 하면서 적은 돈이라도 벌면 살 수 있잖아?”하며 연속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너무도 순수하고 나에게 더 줄 것이 없어 못주는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많이 생각해 봤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길은 대체 무엇일까?
대단한 존재도 아닌 나한테 그가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학력이 모자라 대화가 좀 불편한 적도 있지만 그 이상의 배우자를 욕심낼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이미 나는 이 사람에게 깊이 빠져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이라면 일생 변치 않고 나를 끝까지 사랑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혼인신고를 결심하였다. 그래야 서울에 올라가 주말에만 만나는 그가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인신고를 한 후 그가 하는 말이 주민등록등본을 받아들고 너무 기뻐 잠을 못 잤다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허벅지를 꼬집으며 온밤을 환희로 들먹였다고 한다.
나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리도 기뻐했는지, 그는 연신 “나 같은 놈 택해주어 고마워. 이제 됐어. 능력 없는 나 때문에 당신이 서울 가서 고생하게 해 너무 미안해.”
나는 옷가지들과 간단한 주방도구를 챙겨 서울의 싼 월세 집에 입주하였고 주말에는 어김없이 그이가 있는 청주로 내려갔다.
버스터미널에 내가 도착하기 30분전부터 마중 나와 차에 태우고는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 주곤 했다.
토요일이면 먼저 이른 새벽에 출근하고는 자고 있는 나에게 전화로 그만자고 밥 먹으라고 재촉한다. 퇴근해 오기 바쁘게 장을 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려 법석을 떨었다.
나는 그가 해주는 음식이 별로 맛이 없어도 그 성의가 고마워 맛있게 먹어 준다.
식사 후 설거지하려고 부엌으로 들어가면 나를 포근히 안아다 침대에 눕혀 이불을 꽁꽁 여며주며 일어나지 말란다.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왔어도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자기라는 존재는 이미 버리고 오직 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그가 고마워 나 역시 금요일이 오기만 기다리는 여자가 됐다.
둘이 함께 하는 시간에는 유머와 농담으로 웃음이 그칠 새 없고 집안청소고 세탁이고 다 내가 할 사이 없이 해치웠다.
나를 사랑하면서부터 이 세상만물을 모두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 그는 나의 취미까지 헤아려 화분에 물주고 새로운 화초를 구입하기에 바빴고 개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회사에서 강아지동영상도 가끔 보내주었다.
월요일이 되면 서로가 아쉬워 눈물을 흘리며 잠시 헤어진다. 주말 이틀 동안 같이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야속하기도 했다. 우리의 주말은 늘 그렇게 지나갔다.
그는 언제나 나를 천사라고 불렀고 늦은 밤 외부에 나가 강의하고 올 때면 “날 만나서 당신 고생 많아. 너무 미안해. 꼭 밥 잘 챙겨 먹고 푹 자. 사랑해.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진짜야. 믿어 봐.”하고 꼭꼭 문자를 보내왔다. 진실한 사랑을 해 본적 없는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이 현실에 너무도 행복했고 오로지 그이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대출이 있는 그는 휴대폰요금 미납으로 풀이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사이에 내 돈, 네 돈이 어디 있냐며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고 겨우 그가 과일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 알아내어 기회만 되면 과일을 사서 회사의 친구들과 같이 먹으라고 차에 실어주곤 했다.
그이는 시골의 시댁에 가서도 마누라를 내세우려고 열심히 노력하였고 부모님들은 나를 친딸보다 더 극진히 아껴주셨다.
한번은 그이를 따라 시댁에 갔더니 큰 대야에 청국장을 한가득 담아 회사의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내게 주었다.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들께 수고를 끼쳐드려 마음이 아팠지만 그 분들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내 건강을 위해 많은 보약을 지어 주고 딸들 몰래 비상용으로 남겨 두었던 복분자도 아낌없이 내주셨다.
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산나물을 뜯느라 시부모님과 그이도 분주했고 나물들은 냉동되어 서울 자취방에 올라 왔다.
그이의 다리는 두릅나무가시에 할퀴어 상처가 났고 그걸 보는 나는 너무도 미안하고 고마워서 울었다. 내가 뭔데 이렇게까지...
문득 알바 할 때 남쪽의 근사한 배우자를 만나기 힘들거라며 많은 소개팅을 거절했던 일도 어느덧 까맣게 잊었고 이게 정말로 나의 팔자인지 믿어지지 않아 그이께는 “당신 너무 나한테 잘하지마.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 둘 중 하나가 빨리 간다고 했어” 하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나 이젠 죽어도 원 없어. 정말이야. 나보다 더 행복한 놈 있으면 나와 보래.”하며 행복에 젖어 두 눈을 슴벅였다.
산 설고 낯 설은 남쪽에서의 나의 생활은 이렇게 한 남쪽남자의 사심 없는 사랑에 의해 한 떨기 백합처럼 활짝 피어났다.
정말이지 그이는 찬 서리 밑에서 시들었던 북녘의 한 여자를 사랑으로 보듬어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 낸 봄빛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 내 사랑아
2010년 5월 18일은 내게 있어 천추에 잊지 못할 저주의 날이다.
그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 붓는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웬일인지 두려운 눈길로 빗소리 요란한 밖을 바라보고 섰는데 뜻밖에 청주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김용식씨가 누구시죠?”
“네, 저의 남편인데요. 그런데 무슨 일이?”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많이 다쳤는데 마음의 준비는 좀 하셔야겠습니다. 암튼 빨리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내려오세요.”
쿵, 심장이 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온 전신을 감싸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며 나는 비칠 했다.
무슨 정신으로 대전까지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제발 안녕만, 무사기원만을 바라며 병원에 도착했건만 그이는 애타게 찾는 내 얼굴 한 번 다시 보지 못하고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 세상이 이렇게 야속할 수가? 왜? 왜 하필이면 그이를? 이제 함께 한지 겨우 넉 달, 그이의 품이 너무 따뜻해 그 속에서 인생의 참 미를 새로 느끼며 시간마다 나를 잊고 너만 생각했던 날이 고작 넉 달 뿐이라니...
정말 그랬다.
그 사람은 분명 남이 아닌 나였다.
차라리 내가 죽은들 이렇게 가슴이 찢기진 않으리라.
여보! 그때까지 불러보지 못했던 부름이 처절하게 내 입에서 터졌다.
그저 자기라고만 부르며 응석만 부렸던 날과 달이 그렇게 후회될 수 없었다.
냉장고에 가득한 갖가지 산나물을 봐도 그이가 떠오른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한복에도 인자한 그의 얼굴이 웃고 있다.
구정 때 “웬 한복이야?”하는 나에게 “당신에게 절을 하려구”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면 나는 “세상에 윗분에게 절을 올린다는 말 들었어도 마누라에게 절 한다는 말 못 들어 봤어”하며 깔깔 웃자 “마누라에게 절하는 법 내가 새로 만들 거야”
그때는 그저 그 말을 즐겁게만 들었을 뿐 이렇게 가슴에 한으로 맺힐 줄은 몰랐다. 얼마나 응석받이였으면 받을 줄만 알고 줄줄은 몰랐을까?!
그이가 나를 기쁘게 하려고 정성껏 가꾸던 화초를 보아도 휴대폰에 입력된 나를 꼭 안고 찍은 사진을 봐도 어느 것 하나 그이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지 않은 구석이 없다.
그러면 너는 그이를 위해 무엇을 하였더냐. 둘러보아라. 그이를 위해 나를 바친 흔적을 어서 찾아내야지. 하지만 별로 없다.
그래서 더욱더 힘들고 슬프다.
슬픔을 견디느니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아 이건 정말 그이께 미안하고 한번만이라도 웃는 그 얼굴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다.
비로소 사랑이란 무엇인지 참다운 사랑이란 어떤 추억인지 온 몸으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그이를 향해 사랑해란 말 한 번 해주지 못한 나여서 애틋한 마음을 더더욱 주체할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11년을 함께 일해 왔다는 사장님도 연신 “용식아! 용식아! 미안해”를 울며 불러 식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너무도 착하고 열심히 베풀다 간 사람, 그 사람이 내가 남쪽에 내려와 인연을 맺은 첫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비극의 이 현실이 너무 싫어 막 미칠 것만 같다.
그렇게 그는 나를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지금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이를 잊을 수 없어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혼자서 그이가 누워있는 산으로 찾아가곤 한다.
그리고는 부르짖는다.
“미안해 여보, 남쪽에 와서 당신같이 정 깊은 사람을 만나 난 너무 행복했어요. 차갑게만 느껴졌던 이 땅에 뿌리를 내려주고 사랑을 알게 해준 당신, 어린애처럼 당신의 품이 있어 난 북녘마을에서 잃어버렸던 삶의 향기를 모두 되찾았습니다. 당신의 사심 없는 사랑 속에서 이제야 사람 사는 세상에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쩍 가버리면 난 어찌하나요? 야속합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당신에게 내가 해준 건 아무것도 없군요. 그래서 더 속이 아픕니다. 어쩌면 그렇게 가셔요? 조금 더 내게 시간을 주면 안 되었던가요? 너무 그립습니다. 당신을 순간도 잊을 수 없어 울며 지새는 밤, 이 야속한 이별의 서러움을 대체 무엇으로 달래야 할지... 사랑합니다. 여보”
나는 평생 해보지 못했던 "사랑합니다"란 말을 그렇게 진정을 담아 눈물 속에 애타게 불러 보았다.
그 부름은 입이 아닌 내 가슴속에서 울린 사랑의 메아리였다.
2015년 1월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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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실을 못하는 남편에게 낮전등 혹은 집지키는 멍멍이라던 그 말, 하지만 아무리 경제적으로 구실을 못해도 밤일만 잘하면 그 부부는 깨지지 않는다던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래가 생각나는군요.
글을 보니 어쩜 우리 탈북여성들은 남자를 품는 포옹력과 너그러움이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여성들보다 한 수 위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비록 그것이 빛쟁이거나 백수거나 할지라도 마음만 맞고 금술이 맞으면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그 진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이 사회를 적응하는데서 부부가 겪어야 했던 갈등이라던가, 아니면 어려운 난관을 이겨내는 그 시절에 있었던 사연같은 것을 서슬했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군요.
당신에 마음을 어떻해 글로서 표현 할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과 그분에 인연이 아마도 여기까지 인가 봅니다 운명이라 생각하시고 힘내세요 열심히 또 사셔야 하시잔아요 그 아름다운 사랑 가슴에 묻고 힘내시기을 바람니다 소영씨 화이팅 ^^
- 잡초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1-04 06:46:52
좋은 날들 기약하면서 홧팅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힘내서 성공하세요...
나도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 지 나라 국민도 건사를 못하면서 왜 북한 나메나라 사람들
호의 호식하게 하면서 거두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 온건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10-02 20:08:31
그래서 노무현과 이명박은 둘다 똑같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고 둘다 대통령을 했어도 이명박은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가난을 극복하고 대학까지 나와서 출세했고, 노무현은 자기와 아무런 원수진일도 없는 부자들을 티껍게 생각하며 세상을 비관하고 대한민국이 미워서 김정일에게 오래사시라고 발가락 빨며 아부하고 국민혈세 퍼주고 사병들 군복무기간 줄여서 국방력 약화시키고 나라를 좌빨 빨갱이 소굴로 만들어놓고 국가보안법 폐지해서 김정일이에게 남침하라고 길터주려했닥가 그 역적질한 댓가 치르느라고 천벌을 받아서 대가리 깨저 죽었지...김기종이나 노무현이나 둘다 똑같은 놈이네...
니같은 사람때매 우리나라가 이모양이꼴이야
아프십니까?
5년여기간 동안 마음에 자리잡으신분 이제는 놓아주세요
저승에서도 소영씨의 햄복을 빌어줄겁니다
너무 진실하면서도 충격을준 글입니다
여운이 깊게남았어요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빨리 극복하시고 새로운 좋은 인연 만나셔서 못다한 사랑 이어가시릴 바랄께요
막을 내리시나요...
부디 그분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시길. 소 원 할께요
~
마음씨 어여쁘신 북녘여인 당신은 시인이군요
윗글을 읽으면서 지금 당장 나는 내남편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반성하고 있습니다
조금더 이해하고 양보하고 사랑해줘야 되겠습니다
모르는게 사람일인지라,
나는 탈북민의 아내입니다
가슴아프네요.
이겨내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너무 긴 시간을 보내지 말길 바랍니다.
뭐라고 위로해드려야 할지 몰라 안타깝네요.
저도 청주살고 있는데...
그 신랑분 정말 천사였군요
좋은곳으로 갔을꺼에요
남은 시간...행복하세요
그게 신랑에게 잘 하는것 같습니다
따뜻한 분 다시 만나 더 행복하시길 기도 할게요. 진심으로...
사랑과 축복을 소리없이 한번더 빌어봅니다...
오늘의 음지는 내일의 양지가 된답니다. 추운 겨울날 건강하세요`~
남의나라와서 살면 감사히 살아야지 니들이 왜 울나라 국민들이랑 똑같은 혜택을 가지고 살려고 하냐 인생역겹다 니들 나라로 가라 북하능로
생각하는데 이 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륵 흐르네요...
사람의 마음 깊은 속의 슬픔은 어떠한 말을 해도 치유가 잘 안된다는 점...
저도 겪어 봐서 잘 압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많이 치유가 됐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이 병에는 최고의 약이....시간...이거든요...
나 한국여자인데 북한남자 만나서 웃겨부는 사연이 있어,
니들이 지울거면 조용히 지위,
나 북한 고위직 와이프인데 도무지 인간성 바닥이야!!!!!!
살다 살다 웃기는꼴 보겠네~~~
- 무수리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6-09-19 13:53:18
감정적으로 글 올리지 않았으면 하네요
돌아가신 남편의 시부모에게 가끔씩 찾아가셔서 김치찌게 라도 끓여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베풀면 행복해 진다잖아요.
부디 좋은 사람만나서 새로운 행복 찾으시기를 바라봅니다.
님의 천사같은 마음이 있어 또 하나의 천사가 이땅에 내렸다가 돌아갔나 봅니다.
힘내시고, 화이팅입니다.~
소영님.. 제가 마침 "먼저온 통일"이라는 교회 선교계간지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9월경 창간호가 발행되는데.. "탈북민 사연" 페이지에 사연을 게재해도 될까요??
저는 탈북민 목사 강철호님이 담임목사로 계신 목동 "새터교회" 성도입니다.
편집 중인 선교 계간지에 탑재하여도 괜찮으신지..
이글을 보시면 바로 좀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휴대폰 010-7475-5911 E-Mail : joy8379@naver.com 김 옥배 드림..
사랑의 이별은 아픔은 크지만 , 이겨 내면 그 만큼 우리의 삶의 숭고함을 더해 갑니다.
힘내세요..
- 실향민후손1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4 01:52:05
- 권상식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10-24 14:50:48
부디 희망 잃지 마시고 열심히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리무던한 남조선남자가 일하면서도 일에 집중하지 않고 여자생각을 했단 소리이다. 그러다가 사고난것이다.
아니면 그 홀아비 남조선남자가 여자를 얻어 깨고소하게 사니 그 누군가가 질투로 하여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였을지도 모른다.
건물외벽에서 작업하는 근로자가 켜놓은 라디오소리가 귀찮다고 옥상에 올라가 그 근로자가 의지한 바줄을 잘라 죽여버리는 남조선에서 능히 있을수 있는 일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사랑과 예절한 남여 간 삶이 내 가슴 속까지 파고들어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리며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사랑하는 이는 저 먼 하늘 나라로 갔지만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시간을 잊지마시고
힘내세요.
항상 건강하고 하시고 하는 일들이 모두 잘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해피엔딩인지 알고 기쁘게 읽다가 아 내사랑아 하는데 갑자기 쿵 했어요.
어쩜 이리 아타까운 일이 있나요. 읽으면서 눈물 흘릴뻔 했어요.
앞으로 좋은인연 다시 만나서 행복한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자세한.내용은.010-7702-4214.전화바람
윗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경북 의성에 있는 교회 목사입니다.
우리 노회 에서 행사하는데 한번 와서 강의해 줄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강의하신 수고비는 많이는 못 드리는데 꼭 한번 오셔서 북한 상황과 남한의 다른 점을 강의해 주셔서 현재 시국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네요
종북과 좌빨의 무서움을 .... 남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자유주의가 얼마나 행복한지 강의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제 폰 번호는 010-3212-1374
연락주시면 날짜랑 장소를 의논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