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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청우당
동지회 1941 2004-11-17 01:16:58
민족종교인 천도교를 토대로 한 노동당의 우당.

천도교청우당은 1946년 2월 1일 소련군정의 인가를 받아 「천도교 북조선종무원」을 설립한지 1주일 후인 8일 당시 천도교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김달현(해방전 함남 고원군 종무원장)이 교세확장을 두려워한 소련군정 당국에 포섭되어 「북조선청우당」을 창당한 것을 모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천도교청우당은 일제치하인 1919년 9월 2일 김기전을 당수로 창당된 적이 있으며 해방 후에도 남한에서 먼저 1945년 9월 14일 김병청을 위원장으로 청우당이 조직됐었다. 그후 북한체제 내에서 명맥만 유지되던 북조선청우당은 1950년 「남조선청우당」을 흡수·통합, 「조선천도교청우당」으로 개칭됐다. 당시 위원장은 김달현이, 부위원장은 남조선청우당 당수인 김병청을 비롯해 박윤길·이용규 등이 맡았었다.

그러나 6·25전쟁을 치르는 동안 고위당직자들은 북한당국에 적극 협조했으나 일반 당원이나 신도들은 반공대열에 앞장서 궐기함으로써 심한 박해를 받았는데 이 와중에서 김달현이 1958년 말 「조국전선 간첩사건」으로 숙청되고 1959년에는 시·군 이하의 당조직이, 1960년에는 도당조직이 해체됨으로써 사실상 조선 천도교청우당은 완전히 해체됐다.

그러다가 북한은 1970년대초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전술적 필요에 따라 「천도교청우당」을 다시 내세워 대남선전에 이용했는데 특히 1980년대이후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양상을 띄었다.

예컨대 반한 정치망명자인 최덕신(전 천도교 중앙본부교령)을 포섭, 그를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으로 임명(1989. 3. 16)해 대남선전에 이용한 것을 비롯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지지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및 주한미군 철수 주장 △한국의 북방정책 모략·비방 등 북한 통일방안 지지 및 반한·미 선전에 이 정당을 적극 활용해 온 것 등을 들 수 있다.

1996년 1월 현재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은 최덕신의 처 유미영이 맡고 있다. 유미영은 1993년 7월 24일 천도교청우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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