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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일전투
동지회 4703 2004-11-17 01:38:38
심각한 경제난 타개와 함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의 주요 시설공사를 기한내 완공키 위해 추진된 시한부 노력경쟁운동.

1988년 2월 20일 김일성이 주재한 당정치국회의에서 제시됐으며 88년 9월 9일 정권창립 40주년까지를 기한으로 추진됐다.

북한은 이 운동 발기직후 10만명의 주민을 동원한 평양시 군중집회를 시발로 각 지역별 군중집회를 잇따라 개최(3월 8일까지 37회)하고 신문·방송 등에 이를 선전하는등 200일전투에 대한 홍보와 전주민의 참여를 적극 독려했다. 이와 함께 시인·예술가들에게도 이 운동을 고무·찬양하는 시·가요 등을 창작케 하는 한편 인민반 조직을 총동원해 「군중정치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도 했다.

특히 북한은 청소년들의 참여를 부추기기 위해 이 운동 발기 직후인 88년 2월 27일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 청년학생횃불모임」을 열고 「충성의 200일전투 청년결사운동」을 전개할 것을 촉구하고 각급 학교 교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실적을 점검하는 「200일전투기록장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은 200일전투의 시한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각종 건설공사가 부진을 면치 못하자 88년 9월 「전국영웅대회」(88.9.2∼9.4)를 통해 200일전투에 이어 「새로운 (제2차) 200일전투」를 개최키로 결정, 이 운동을 89년 4월까지 연장했다.

북한방송들은 2차례에 걸친 200일전투에 대해 이 기간중 평양축전 관련시설을 완공한 것을 비롯해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1단계공사(89.10 완공) △사리원카리비료연합기업소 1단계공사 △발전용량 100kw 내외의 중·소형 수력발전소 건설 △김책제철확장공사 등의 공정을 완공단계까지 끌어 올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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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숙 2008-11-27 21:26:56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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