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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 73살의 승병장 서산대사
운영자 2131 2004-11-14 02:56:30
임진조국전쟁시기 평양성탈환전투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들중에는 중출신의 애국적의병장 서산대사(1520-1604년)도 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최현웅인데 서산대사로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묘향산 즉 서산에서 오래동안 대사(봉건국가에서 불교 선종계통의 높은 급의 중에게 주는 칭호)로 있었기때문이다.
서산대사는 리조봉건통치가 부패하여 당파싸움이 날로 우심해지고 인민들이 도탄에 헤매던 시기에 안주고을의 빈한한 량반가정에서 출생하였다.
불행하게도 9살때 부로를 잃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럽게 성장한 그는 계급적압박으로 가득찬 당시 사회의 참을수 없는 천대와 멸시를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였다.
용맹하고 령리하여 서당에서 글과 무예를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에서 체득하였으나 그는 어지러운 관료계에서 벼슬할 생각을 단념하고 전라도 지리산에 들어가 중이 되였다.
그때부터 대사는 우리 나라의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시를 지어 노래하였고 큰 절의 이름있는 학자중들을 찾아다니며 불교공부를 착실히 하여 30대에 벌써 수양이 깊고 지위가 높은 중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

봉건통치배들의 부패무능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방비가 약해진 틈을 타서 1592년에 일본침략자들이 불의에 침입해왔을 때 서산대사는 73살의 고령이였다.
그러나 남달리 애국심이 강한 그는 사랑하는 조국강토가 왜적에게 짓밟히는것을 보고만있을수 없었다.
리조봉건정부로부터 전국 8도 중들을 총지휘할 권한을 가진 승병(중들로 무어진 의병대오)의 총사령관격인 으로 임명된 서산대사는 곧 전국의 중들에게 고 호소하였다.
그리고는 솔선하여 순안 법흥사에서 1,500여명의 중들을 묶어세워 의병을 조직하였다.
이때 일부 중들은 이 불교의 계률과 어긋난다고 하면서 싸움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서산대사는 고 하면서 그들을 왜적격멸의 길에 일떠세웠다.
서산대사의 불같은 호소와 통첩을 받은 전국각지의 중들은 한결같이 호응하여 의병투쟁에 나섰다.

금강산 유점사에서 사명당이 700여명을, 호남지방에서 처영이 1,000여명의 중들을 이끌고 싸움에 나섰고 공주, 진주, 의암 등 온 나라의 중들이 일떠섰다. 그리하여 전국적으로 중의병들의 수는 수만명에 달하였다.
서산대사가 승병들을 거느리고 평양성탈환을 위한 싸움을 벌리기 위하여 대성산 광법사로 나오게 된것은 1592년 가을이였다.
서산대사는 아미산기슭에 지휘처를 정하고 김응서장군과의 련계하에 평양성동쪽에서 식량과 재물을 략탈하는 적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며 승병들의 대오를 싸움에 편리하게 재편성하였다.
1593년 1월 6일, 평양성탈환을 위한 전투가 시작되자 서산대사는 승병을 거느리고 모란봉일각에 돌입하여 적진을 갈라놓음으로 우리군대의 진격로를 개척하여 전투의 승리를 보장하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그는 1604년 1월 23일 묘향산 원저암에서 8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라고 하면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앞장에 서서 왜적을 몰아내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서산대사의 이름과 위훈은 우리 인민들속에 길이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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