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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 방랑시인 김삿갓
운영자 3749 2004-11-14 02:57:02
행길엔 물좋은 비웃드름을 진 어물장수들과 패랭이에 보짐을 진 천민들, 갓에 도포입고 술띠 두른 량반자들, 인총들의 행색은 각각이였다. 해안을 가까이한곳이라 길바닥까지 비린내가 슴배였다.
물이 낡기전에 몇마리의 비웃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어물군들이 성급한 걸음발을 옮기는데 그들앞에 한가해뵈는 한 삿갓쟁이가 걸어간다. 행인들은 비좁은 길에서 느릿걸음을 걷는 객이 도대체 어떤자냐싶어 지나칠 때마다 힐끔 옆을 돌아본다
두드러진 관골에 짜르기도 하고 길기도 한 턱수염, 때국이 흐르고 허름한 홑것중치막… 등에는 오라로 붓대가 삐죽 내민 배랑을 멨다. 얼굴의 눈이며 코는 삿갓을 푹 눌러쓰고있어 잘 볼수 없다.

선비인듯한 량반이 타고 가는 하늘소의 견마를 잡은 눈 큰 녀석이 어처구니 없다는듯 그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갈로 만든 삿갓은 눈오고 비올 때, 간혹 해빛을 가릴 때도 쓰군 하지만 지금은 눈비는커녕 동산에 해가 겨우 솟는 아침이라 오히려 따스한 해빛을 맞자 하는데 해를 가리는 삿갓을 썼으니 하는 소리이다.


삿갓,… 이 과객은 하루이틀, 비오고 눈올 때만이 아니라 노상 일년열두달, 거의 한생토록 머리에 삿갓을 얹고 다니는 사람이다. 삿갓은 그의 이름이기도 하고 행장이기도 하다. 그러하니 행인들의 이러한 놀라움쯤은 지금껏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라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본명은 김병연 (1807-1863년), 자는 성심이요 호는 란고인 그는 본래 서울사람으로 스무살에 과거에서 장원하였으나 그만 삭탈당하였다. 그것은 그가 여섯살때 조부인 김익순이 성천부사로 부임되였다가 홍경래농민폭동군에게 투항하였다는 죄명에서였다. 하여 의 자손인 그는 그날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실은 더러운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삿갓을 썼다.)이라 이르며 일생을 집을 나가 산수를 즐기며 방랑하였다. 그는 뛰여난 시재로서 량반벼슬아치들을 야유, 풍자하는 시를 쓰며 평생을 흘러보냈다.
본명을 대면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고 하면 규방내인들과 삼척동자까지 다 아는 방랑시인, 인생시인, 풍류시인, 강개시인, 파격시인, 언문시인, 풍자시인, 력사시인 김삿갓!… 이러한 김삿갓이기에 그가 가는곳에 시와 노래와 웃음과 해학이 없을리 만무하다.


1

금강산이 온통 단풍에 붉게 타던 어느해 가을에 있은 일이다.
어느날 백운동골안의 마하연대청에는 어려서부터 이 암자에서 사는 중과 속세에서 방랑생활을 하는 김삿갓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중은 누구보다도 금강산에 대한 애착을 가진 대사로서 시를 짓는데서도 한다하는 문장가들보다 못지 않은 재간을 가지고있었다.
먼저 말을 뗀것은 김삿갓이였다.





이 말을 새겨듣고보니 김삿갓이 과연 뜻하는바가 있는지라 대사는 곧 그가 청하는 글짓기내기에 응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대사와 김삿갓사이에 글짓기내기가 시작되였다.
시는 먼저 금강산의 이름난곳들을 많이 알고있는 대사가 전구를 떼고 김삿갓이 대구를 하는식으로 이어나갔다.


대사
이른아침 립석봉에 오르니
구름은 발아래에 생기고
삿갓
저녁에 황천강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더라

대사
사람의 그림자는 물속에 잠겨있어도
옷은 하나도 젖지 않았고

삿갓
물속에 청산을 오르고내렸어도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네

대사
산에서 돌이 굴면
천년이 걸려야 땅에 닿을듯 하고

삿갓
산이 한자만 더 높으면
손이 하늘에 닿을듯 하여라

대사
가을구름이 만리에 뻗었으니
흰 고기비늘이 겹쌓인것 같고
삿갓
천년묵은 고목의 뻗친 가지는
사슴의 뿔이 높이 솟은듯 하구나
대사
청산을 돈을 주고 샀더니
구름은 공으로 얻고

삿갓
맑은 물가에 다달으니
고기는 저절로 모여드누나

대사
절벽은 비록 위태롭게 솟아있어도
그우에서 꽃이 웃는 경치가 좋고

삿갓
양춘은 비록 아름다와도
새는 슬피 울며 떠나가누나

대사
물은 절구공이가 되여
절벽을 내리찧고

삿갓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되여
청산을 재여간다.



대사가 연해연방 불러대여도 삿갓이 거침없이 대답을 하는데 그것이 앞뒤가 꼭 맞을뿐아니라 그 뜻이 하도 깊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대사는 마침내 글짓기내기를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아끼던 마지막 구절을 떼였다.
달이 희고 눈이 희니 천지가 다 희고

삿갓이 제꺽 그 뜻을 알아차리고 끝을 맺었다.

산이 깊고 물이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다.


대사는 김삿갓의 마지막 구에는 더구나 감동되여 입을 딱 벌렸다.
대사가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감복하여 말없이 그를 쳐다보는데 삿갓도 중을 마주보다가
하고 빈정대며 웃으니 대사가 기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대사는 진정으로 말하였다.
그들 둘은 뜻깊은 상봉을 계기로 좋은 시벗이 되였는데 김삿갓은 금강산을 찾을 때마다 그 중과 함께 지내면서 조국의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2

김삿갓이 칠보산구경을 작정한지는 오래전부터였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하여 이라 한 천하명승 금강산은 한해에 두번도 가고 세번도 가군했지만 칠보산은 아직 한번도 다녀오지 못하여 늘 속을 앓고있었다. 신선이 빚었다는 그토록 아름답고 기이한 칠보산을 못보고 내 어찌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다 안다하리오. 삿갓은 봄이 접어들자 벼르어오던 이 행차길에 훌 나서고말았다.


함관령

북방의 봄은 4월도 이르다 한다. 음지엔 눈이 희슥하고 초목은 종종 추위에 떨기도 한다. 그래도 양지쪽을 보면 봄은 왔노라고 점점이 핀 진달래가 외로운 과객을 반긴다. 백화만발한 한양을 지나쳐온것이 한달전이니 북방은 남방보다 절기가 한달은 늦는셈이다.
구부러든 지팽이를 내여짚으며 김삿갓은 생면부지의 처지에 본읍의 사또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는 원에게 굽실거리고싶지 않았다. 지금껏 방랑길에 무슨 모욕인들 안당했으랴. 못되면 주막이고 뭐고 다음 고을까지 내처 가면 그만이다.

원:
김:
원:
김:
원:
김:
원:
김:
원:

원은 말문이 막혔다. 더 말해보았댔자 이런놈에겐 코나 떼우기 십상이다. 칠보산의 위치쯤은 물론이요 산의 높이며 생일까지 풀어대는 이놈이 누구일가? 암행어사… 요즘 어사또가 떴다는 말은 못들었다. 그럼 신선이 아닐가. 허나 세상에 걸인 신선이 있다는 말도 들은적 없다. 원은 이것으로 끝맺으면 뒤말이 생기리라 생각하고 잠시 세모눈을 굴린 다음 그에게 주막을 잡아주라고 뒤따르던 군노배에게 명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동헌으로 되돌아갔다.
김삿갓은 그러한 원의 모습을 보고서 입안에서 야유조의 글줄이 뱅글뱅글 맴도는것을 북방의 첫인사가 그럴수도 있는지라 산수를 둘러보며 시 한수를 읊조리였다.

함관령, 사월에도
북청군수 추워하네
진달래 겨우 이제야 피니
봄도 령 오르기 힘이 드나봐

한편, 원은 발편잠을 못들었다. 명색이 사또라는게 걸인량반에게 야유를 당했으니 잠이 올리 만무했다. 래일아침이면 북청군수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일화로 되여 세상에 파랑새처럼 날아다닐것이다.


벙어리처럼 눈알만 굴리고있던 례방이 무릎을 탁 쳤다.


례방은 여우웃음을 지으며 제 꾀를 이야기했다….
잠시후에 례방이 힘꼴이나 쓰는 사령 두엇을 데리고 주막으로 갔다. 원도 슬금슬금 주막으로 갔다.

례방이 주막문을 부시고 돌입하니 김삿갓은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져있었다. 눈이 불량한 사령이 달려들어 김삿갓을 깨워 일으켰다.


술은 말로 들이키는 그였건만 잠자리에 들기전 거퍼 마신 술기운으로 골이 떼끈거린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건 홍두깨가 아니라 칼날이다. 시 한수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판이라 삿갓은 더 딴생각없이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흰눈을 가지고 시를 지으라니 원놈의 얕은수가 빤히 알리였다.
삿갓은 별로 생각하는 품도 없이 시를 줄줄 내리엮었다.


하늘왕이 죽었는가
인간왕이 죽었는가
일만나무 푸른 산이
몽땅 상복을 입었구나

래일아침 둥근해가
조상을 오게 되면
집집마다 처마들이
눈물 뚝뚝 흘리리라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뒤방에서 몰래 엿듣고있던 원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김삿갓은 이 한마디를 하고 몰려드는 졸음에 못이겨 다시 잠들었다…


원생원

김삿갓이 북관의 문인 마천령을 넘어 어느 한 고을에서 묵고있을 때였다. 저녁이 늦어 발길 닿는 집에 찾아들어가 하루밤 묵을것을 청하니 주인은 선선히 응해주었다.

마음 무던해보이는 주인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서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반겨맞아주었다. 아래방엔 칠순이 된다는 로파와 맨상투바람의 집주인, 비녀도 못찌르고 둘둘 말아 트레머리를 한 그의 안해… 그리고 층층이 자라는 다섯아이가 있는 적지 않은 가솔이였다. 바람벽에 패랭이가 걸려있는것으로 보아 짐승도살을 업으로 삼는 백정이거나 아니면 행상짐을 지여나르는 천민일시 분명하였다.
잠간후 주인아낙네가 송구스레 들여오는 상우를 보니 물인지 죽인지 분간 못할 멀건 죽그릇, 산채나물 한종지, 메주장단지가 전부였다. 삿갓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아이들이 먼저 좋아라 손벽을 쳤다. 칠순로파도 남정도 안해도 화기에 찬 얼굴로 삿갓을 바라보았다. 삿갓은 언젠가 남도지방을 방랑하며 지은바있는 시를 읊었다.


허줄한 소나무밥상에
덩그렇게 놓인 죽 한그릇
하늘빛과 구름그림자가
그속에 비쳐 떠돌고있네


주인은 죽이 멀겋다고
제발 미안해하지 말라
나는 푸른 산모습이
물속에 비끼는걸 좋아한다네


반평생을 남의 집 문전을 두드리며 삼천리 방방곡곡의 안가본데 없지만 백성들의 생활이란 모두 하나같이 피나는 가난뿐이다. 방금 죽그릇을 두고 우스개시구를 읊었지만 이 집 녀인의 가슴에선 피눈물이 흘렀으리라…
다음날 아침,
삿갓은 해가 중천에 솟아올랐을 때 옆집 원생원의 솟을대문을 세게 두드렸다. 전날 원생원의 고약한 심보에 대해 들은바 있는지라 한번 혼쌀내주리라 속다짐하고 있었던것이였다.
하인아이의 뒤를 따라 넓은 사랑채에 이르니 어제밤 진탕망탕을 부리던자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요염스런 기생들도 아직 돌아가지 않은채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이라는 원생원은 하관이 빠르고 턱끝에 염소수염을 기른자였다. 생원이 옆자리에 앉은 좀상들을 차례로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라고 알려주었다. 모두들 향촌에선 떵떵 으르는자들이라 삿갓을 향해 너는 어떤놈이냐는 태도였다. 삿갓은 자기는 칠보산구경을 가는 과객으로 이 집 담장을 지나치다가 시회를 가지는것 같아 나도 시 한수 짓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 대문안으로 들어섰다고 말해주었다. 허름한 삿갓쟁이의 입에서 시소리가 나오자 모두 코웃음을 쳤다.



잰내비상통의 원생원이 비양거렸다.

곧 대접이 들어오고 동이채 들어부은 술이 찰랑찰랑 넘쳐났다. 삿갓은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대접 한그릇을 꿀럭꿀럭 맹물삼키듯 마셔버렸다.

모두들 눈이 뚱그래졌다.

삿갓은 옆에 벗어논 배랑에서 굵다란 붓대 하나를 쑥 뽑아 한웅큼에 거머쥐고 좌중의 시선이 쏠리는속에 대붓을 들어 백설같은 종이우에 시를 적어나갔다. 필체는 그야말로 룡이 서리고 범이 도사린것과 같은 요 높은 봉우리우에서 굴러내리는 바위돌같은 이였다.


일출원생원
황혼문첨지
묘과서진사
야출조석사

(해가 떠오르면 원숭이가 들에 나오고
해가 지면 모기들이 처마에 모이누나
고양이가 지나가니 쥐새끼는 간곳없고
밤드니 벼룩이 자리에 나와 들입다 쏘누나.)


김삿갓은 붓끝을 휘둘러 뗀 다음 허공중을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글뜻을 몰라 어리둥절해있는 원생원을 향해 하고 소리친후 성큼성큼 대문을 빠져나갔다.


뒤미처 토방아래 머슴, 하인들까지도 이 시의 뜻을 얘기듣고 가가대소를 했다. 신도 미처 꿰지 못한 원생원이 동구밖에까지 뛰여가보았으나 그 즈음 김삿갓은 잘코사니야하고 길주목 경계에 들어서고있었다.


길주 명천

김삿갓은 길주고을이 한눈에 내려보이는 둔덕에 올랐다. 오래간만에 땀이 밴 삿갓도 벗고 푸른 잔디우에 앉았다. 봄바람이 가늘고 화창하게 불어와 잔머리털을 날리며 부채질을 했다. 예서 칠보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흰구름에 싸인 저 멀리 산발 그 어디에 아름다운 명산이 숨어있으리라.

삿갓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호가 그럴듯하다. 길주라 하였으니 사람좋고 물좋고 모든게 다 좋다는 뜻일러라…
삿갓이 흥타령까지 부르며 들어선 고을은 전혀 딴판이였다. 김삿갓은 문득 한 어물장수와 구레나룻의 엿장수가 돈흥정끝에 피를 흘리며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였다.

돈이란 천하 어딜 가나 환영을 받는고나
이것만 있으면 나라도 흥하고 가세를 떨친다지
갔다왔다 왔다갔다 성질 본래 이러하니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까지도 맡았다네

삿갓은 시를 적은 종이를 구경군들이 제일 잘 바라보이는곳에 찔러놓고 자리를 떴다.
서산으로 거의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솟을대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허가촌아란 동리에 들어섰다.
허가, 허할 허자라 그러니 모든것을 승낙한다는 허가이렷다. 하지만 여섯번이나 대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똑같은 대답을 받고 돌아설수밖에 없었다. 배에선 쪼록소리가 연방 들려왔다.
길주서 명천까지 온 삿갓은 박달령밑 어전이라는곳에 이르렀다. 이곳 역시 읍호가 명천이고 촌호가 어전이나 삿갓은 또 푸대접만 받았다. 명천이라면 밝은 개울이란 뜻일텐데 부역에 지치고 기아에 주린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밝지 못하고 어전이라는데서 겨우 밥 한끼 얻어먹었는데 물고기고장의 이름을 가지고도 상에는 물고기 그림자도 없으니 이건 모두 빈 이름뿐이였다. 삿갓은 길주 명천의 읍호를 다시 음미하며 혼자소리로 시를 읊었다.

길주 길주 불길주
허가 허가 불허가
명천 명천 인불명
어전 어전 식무어

그는 휘청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했다.


3

평생시

천하명산으로 이름높은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평양의 대동강, 개성의 박연폭포, 안변 풍연정, 안주 백상루 등 조선팔도 안가본데가 없고 간곳마다에 시를 안남긴적 없는 호방한 방랑시인 김삿갓이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산의 푸른 빛도 구름속에 저물고있던 어느날 강참봉과 술을 나누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다음과 같이 자기의 삿갓과 평생의 운명을 시로 읊었다.


내 삿갓은 물우에 떠다니는 빈배와 같은것
한번 쓴 뒤로 40년을 쓰고다녔도다
삿갓은 본디 목동이 소에게 풀을 뜯길 때 쓰는것이요
어부가 갈매기와 더불어 고기잡이할 때 쓰는것이여라
술에 취하면 난 삿갓을 꽃피는 나무가지에 걸어놓았고
흥이 절로 나면 삿갓을 풀고 루각에 올라 달구경했다
세상 속인들의 의관은 다 겉치레에 지나지 않지만
내 삿갓은 사나운 비바람이 불어쳐도 아무런 걱정없다

새도 짐승도 제집이 있는데
나는 한평생 홀로 쓸쓸히 떠돌았네
짚신과 대지팽이로 천리길을 걸었고
물, 구름처럼 이르는 곳을 내 집으로 삼았도다
팔자가 이러하거늘 하늘에 원망해서 무엇하랴
흘러가는 세월속에 내 마음만 아플뿐이네

나도 유복한 가문에서 태여났고
한북의 땅은 내가 자란 고향이였네
구슬갓끈을 늘인 초상은 대대로 부귀의 인물이였고
꽃다운 장안에서도 이름높은 문벌이였네
이웃사람도 나를 옥같은 귀동자라 칭찬하며
장차는 꼭 장원급제하리라 축하해주었네
하지만 자라서부터 운명은 점점 기구해져
재더미가 된 페족잔문은 상전벽해로 변하였네
의지할 친척도 없는 몸에 세상인정은 야박하고
가족은 통곡끝에 망하고말았구나.

남산 새벽종소리에 신들메하고 집떠난 나는
이 나라 팔도를 안간곳 없이 돌아다녔네
마음은 아직도 타향땅에서 머리를 박은 여우와 같고
궁박한 신세는 울타리에 뿔이 걸려 버둥대는 염소와 같네
남쪽고을에는 옛날부터 오가는 나그네가 많다지만
쑥, 부평초같은 이 몸이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가?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어찌 타고난 내 본성이랴만
입을 놀리며 밥 빌어먹는 재주만 늘었네
아까운 세월을 그런 일로 다 보냈고
그리운 삼각산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강산을 따라가며 두드린 대문은 천만집에 달하였고
풍월행장은 빈 주머니만 남았다네
천금을 가진 가문의 만석군자식이
세상의 인심을 다 맛보며 다녔다네
이 몸이 거지신세여서 늘 속인들의 멸시를 당하지만
해가 갈수록 희여지는 머리가 더욱 서글프구나
아! 고향에 돌아가기도, 타향에 머물기도 어려워
멀지 않은 여생을 길가에서 헤메며 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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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stnwls 2010-04-12 20: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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