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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보내는 일곱통의 편지1 - 김현아
동지회 23 791 2006-01-19 09:52:52
나는 누구일까

나는 남한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학교 다니다가 남한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지금은 윗동네 사람들과 하루 종일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다가 퇴근해서 잠깐 남한 사람을 만난다.

나는 가끔 이런 나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되물음을 해보곤 한다. 함경도 말도 아니오 내가 태어난 경상도 말도 아닌 그렇다고 안성말도 아닌 정체불명의 요상한 말투를 쓰며 늘 환한 표정을 짓고있다. 하지만 이제는 거칠고 투박한 인사말을 건네는 게 자연스럽고, 가끔은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화장기 없는 얼굴로 깊은 시름에 잠겨있기도 하다.

TV에서 북한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고향소식처럼 귀가 솔깃해지고 ‘하나원생들 이젠 마주보기도 싫다. 더 이상 이 일 못 하겠다.’ 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탈북자를 비난할 때면 ‘속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고 있네’ 하며 신경질도 나고 속이 아리고 마음이 상한다.

하나원에 와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두 바퀴 지나갔고 또다시 싱그러운 6월을 맞이하였다. 어느새 나 자신은 남한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닌 하나원 선생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 저 이렇게 지내요

수료생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선생님! 예전 같지 않슴다. 못쓰게 됐슴다!” 라며 현재의 내 모습을 일깨워준다. 가끔은 ‘내가 너무 망가져 버렸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긴 여정을 압축해서 3달 안에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나날을 보내다 보면,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이고,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 또한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도 상담실에는 이제껏 한번도 풀어놓지 않았던 속내를 말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한바탕 넋두리를 하고나면 후련하다 위안이 된다 하면서도 ‘혹시 서류로 남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스러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한(恨) 많은 인생보따리 한번 풀어놓으면 눈물이 절로 나오니 내 마음 또한 편치만은 않다.

상담실 문을 닫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애잔하고 그 사연을 듣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지는 서러움이 전해져 맥이 풀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으로 그들은 나를 만나고 3달 후 하나원을 나간다.

윗동네 사람들은 순박할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여우와 승냥이 모습으로 다가오는 메마른 인심에 지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닫았던 마음을 다시 열게 하는 것은 “선생님! 접니다. 제 누군지 모름까? 예~” 하는 정 때문인 듯 하다.

나는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의 주름과 한숨이 모두 이 끊을 수 없는 정(情)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무지개 편지/행운의 편지

일곱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lucky seven"이라는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고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희망의 메세지를 담고 있기도 해서 7이라는 숫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하나원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 중 7가지 사연으로 “그동안 소식 전하지 못한 하나원생들! 다들 잘 지내죠?” 하는 인사말을 대신하고 싶기도 하다. 7사람에게 보내는 이 편지가 무지개 빛깔처럼 희망과 행운을 안겨 줄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첫 번째 편지

직업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은철아!

“여보쇼!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나원 30기 졸업생 이은철 인사드립니다. 저 오늘 직업학교에 입학했슴다. 축하해주쇼! 그런데 한가지 문의할게 있슴다. 오늘 같이 배우는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슴다. 저도 모르게 남쪽 주소를 대었슴다. 그래도 됨까?”

은철아, 남한 살이 만만치 않지? 진지한 네 목소리 듣고 있자니 선생님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내가 도대체 너희를 이해하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친해지고 나면 다 같은 사람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슨 편견과 선입견이 그리도 많은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남한 사람과 부딪혀 보고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건 흔들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로 하자.

키만 멀대 같이 크고 순박하던 은철이와 하나원 퇴소를 앞두고 생활관 옆 계단에 앉아 오누이처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남한에는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 앞으로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게 걱정되고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는 두려움의 소리.....

그런데 거주지역에 배치 받은 그날만큼은 아주 밝고 들뜬 목소리로 연락해 오늘 가구도 새로 사고 배치 받은 지역의 담당자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며 기뻐할 때 내 마음도 함께 기뻤습니다. 잘 지낸다는 문자와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메시지가 올 때마다 이 녀석 대견하구나! 그래도 잘 버텨내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그러던 어느날 하나원에서 지난 석달 동안 성실히 생활하며 남한 사회에 대해 적응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지만 직접 나와 보니 모든 게 낯설고 두렵다는 메시지 한통은 제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였습니다.

“처음에 집을 떠날 때와는 달리 제 마음이 많이 약해졌나 봅니다. 요즘은 자꾸 엄마가 많이 보고 싶슴다.”

은철아! 밤 10시에 어머니 생각을 하며 혼자 숙소에서 있을 네 모습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뿐이구나.

“중국에서도 그토록 고생했는데 말이 통하고 같은 민족이 사는 남한에서 못살겠슴까? 한번 열심히 살아서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겠슴다.”

하던 너의 힘찬 다짐도 오늘은 헛된 메아리로 들려오고, 너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지금 선생님이 너무 작게만 느껴지는구나. 하지만 은철아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단다.

“은철아! 약해졌다고 부끄러운건 아니란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끈기만 있다면 그 어떠한 난관도 이겨낼 수 있을거야.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래. 네 곁에서 선생님이 항상 지켜줄께.”

2005년 6월 하나원 심리상담사 김현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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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이~~ 2006-05-02 01:02:48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두 하나원졸업생예요..
    선생님 편지를 참 잘읽어보았습니다...어쩌면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보내주시는 편지처럼 고맙게 잘읽었습니다...저두 하나원에있을때 선생님
    상담을 많이 들었었는데..지금도 때때로 선생님에대한 추억을 많이 하군한답니다....지금도 선생님 뵙고싶은데 아직은 준비된모습이 못되서 정말 떳떳한모습이 될때 어젠날을 후회하면서 선생님을 뵙고싶습니다...
    하나원졸업해서 사회에나오니 우리 또한 얼마나 무지목메한인간들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되였습니다...이러한 저희들을 가르치시느라 하나원선생님들 또한 얼마나 수고하시는지도 잘알았습니다...
    하나원선생님들은 저희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첫모습입니다...
    항상 처음 그날처럼 선생님들의 수고와 노고를 잊지않겠습니다...
    그럼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구요 좋은일들만 있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안녕히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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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숙 2010-11-24 14:25:36
    안녕하세요? 하나원 62기 졸업하였습니다.
    인간미 넘치는 선생님의 따뜻한 이야기 참 가슴에 와닿네요.
    기억나세요? 북한사람 많이가는곳이 싫어 제주도 가겠다는 저를 선생님댁도 평택이라며 평택 참살기좋다고 공단이 많아 일자리 잡기도 좋다고...
    참 선생님 말씀대로 평택와서 많은것 얻었습니다.
    귀여운 쌍둥이들과 요즘은 공무원이 되였습니다.
    이자리에 서기까지 하나원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소중한 땀방울인것 같아 한번 가보고 싶은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아직도 슬하를 떠난 자식생각하는 부모의 심정처럼 따뜻한 사랑을 가슴에 지니고 계시는 선생님 필체를 보니 왠지 눈꿉이 젖어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선생님 가시는 길에 영광만 있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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