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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보내는 일곱통의 편지2 - 김현아
동지회 25 630 2006-01-19 09:55:34
두번째 편지

다짜고짜 사무실로 전화해서 “여보쇼! 제 누군지 암까? 이야~남조선사람들은 다 그렇슴까? 어찌 제 목소리도 모름까! 벌써 잊었슴까? ”

굵고 거친 목소리와 떡 벌어진 어깨에서 뱃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나이 대장부 영철 아저씨! 어떻게 제가 아저씨 이름을 모르겠어요.

수업시간에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바다라고 적어논 걸 보고 “많이 갑갑하신가봐요?” 했더니 그 다음주에 상담실에 와서는 “날아다니는 새도 앉고 싶은 나무가 있다.” 하시며 험악한 인상으로 그간 살아오신 이야기를 술술 하셨잖아요.

쑥스럽게 들어오셔서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셨고 오래 동안 못 본 여동생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글썽거리며 붉어지는 아저씨의 눈시울을 보면서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만약에 우리 삼촌이 저런 모습이면 어떨까하고.

그날 따라 식구생각이 많이 나셨는지 어색하게 부탁을 하셨죠. 술 한 병만 사다주면 안 되냐고. 러시아에서 혼자 고독을 달랠 때 드셨던 오랜 친구 같은 술! 사십이 넘어서 파란만장한 인생살이 소설로 써도 굉장할 거라 하셨는데 그 술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셨죠.

그 후론 저를 아주 차갑게 대하며 굳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셨죠. “남한사람은 그렇게 앞에서는 다 이해해줄 듯 하면서도 앞뒤가 다릅니까?”, “오죽하면 이 나이에 이런 부탁하겠어요?”

영철이 아저씨는 하나원을 수료한 후에도 거침없이 불쑥 찾아와선 “퇴근 언제 하심까? 제가 그쪽으로 가겠슴다.” 해 나를 놀라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런 영철이 아저씨가 마냥 좋기만 하네요.

아직은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는 이른 봄날 바바리코트를 입은 아저씨를 보는 순간 처음에는 못 알아 볼 정도였으니.....‘이야~자본주의가 사람 세련되게 만드는구나!’ 싶었답니다.

그동안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친구가 되었고, 동료들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마다 도와주기도 하는 멋진 아저씨다 생각했죠. 남한 동네 공부한다 하시며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다니시느라 많이 분주하시죠!

하나원 나가서 같이 술 한잔 기울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쏟아놓으셨죠. 그리곤 긴 한숨과 더불어 “남한사람들 거 참 별납디다."

기술을 익히고 있으면서도 아저씨는 남한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질 않나 봅니다. 하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데 체제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온 아저씨는 오죽하시겠어요. 저도 아저씨 심정 충분히 이해해요.

다짜고짜 “여보쇼! 점다.” 일방적으로 말 한마디 툭 던져놓고 본인을 기억하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우리 가족들, 기억에 남는 특별한 존재이고 싶다는 숨은 뜻을 이해합니다.

이젠 저도 여러분들과 많이 부딪히다 보니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화할 때 제발 먼저 이름 좀 밝혀주세요. 예~”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하고 나니 제 마음도 상처받지 않고 좋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어울리면서 터득한 지혜겠죠? ^^* 생각해보니 1년이 넘게 걸린 것 같네요.

아직도 여전히 영철아저씨는 “아.....점다” 하는 첫마디로 전화를 주십니다. 고집이 워낙에 쌘 분이라 빠른 시일내에 고쳐질 것 같지 않습니다. 서로 조금씩 닮아가고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겠죠? 영철 아저씨! 다음 전화의 첫마디는 꼭 “저 영철입니다.” 라고 말씀해 주세요.

세 번째 편지

지금쯤 어엿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을 영화엄마 영숙이에게 이 글을 보냅니다.

유난히 인정 많고 착한 영숙이는 탈북과정에서 많은 힘이 되어준 한 남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여자 혼자 몸으로 남한에 오기까지 쉬운 길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그 남성분은 결혼도 했고 가족과 함께 온 분이라 영숙이에겐 벅찬 자리였죠. 또 자녀를 데리고 올 생각이라 나이 스물 아홉에 ‘새엄마’가 되어야 하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북한에 부인도 있는 남자와 함께 살다가 부인이 오면 어떻게 함까? 그간 열심히 나그네를 보살펴 준다하더라도 저는 뭐가 되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어떤 게 적절한 판단일지 자신도 모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심정을 누군가가 확신을 주고 위로를 해주었으면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바로 그 때 영숙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유난히 눈물도 많고 서러움도 많았던 그녀, 그녀는 나를 언니라고 부릅니다. 언니처럼 많이 가르쳐주고 언니처럼 보듬어 달라는 요청과 함께.....

영숙이가 하나원을 나간 후 1년 동안 보내온 소식들은 너무도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부가 재미나게 시장도 다니며 알콩달콩 사는 모습, 이곳에서는 평범한 일이지만 북한에서는 꿈에도 그리지 못하던 다정한 부부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년이 지났을까요? 영숙이의 남편은 깜찍하게 생긴 딸아이를 남한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간 딸아이의 입국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해왔었고, 드디어 한 가족이 늘어난 샘이었습니다. 당초에 마음을 먹고 시작하긴 하였지만 그래도 영숙이는 못내 마음을 다잡기가 힘든 모양이었습니다.

“아이가 똑똑하고 귀여워서 엄마가 된다는 게 벅차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행복이구나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 무작정 귀여워하는 게 전부는 아닐 텐데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아이가 저를 너무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젊은 여자가 북에 두고 온 아내가 있는 남자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웬만한 결심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강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서서히 무너지는 느낌..... 설은 남한 땅에 혼자 사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아서 선택한 혼인이었지만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이 다른 가족인 것처럼 외로움이 찾아드는 것이었습니다.

영숙이의 남편과 가족들에게 이 딸아이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고 행복의 시작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왠지 부담스럽고 어렵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3달이 지났습니다. 남한에 온지 3년이 되어갈 때 그녀가 제게 행복에 겨워하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이가 오고 나서 그 사람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생전 일도 안하더니만 아이 학원비가 많이 드니까 요즘은 일거리가 없으면 막노동을 나가 일당이라도 꼭꼭 챙겨서 옵니다. 딸아이가 와서 제겐 더 행복한 가정이 되었어요. 일을 하니 예전과는 달리 생기도 있고, 저에게도 더욱 더 잘해줍니다.”

우리 교육생들에게 가정이란 어떤 의미일까? 외롭고 힘들때 누군가를 만나고 그리고 나서 함께 살다가 조금 힘이 들면 다시 헤어지고...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을 하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상처를 남기고 가족이 오히려 짐스런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데...

그런데 저는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며 성실히 살아가는 영화엄마, 영숙이에게 이 땅의 한 여성이자 언니로서 가장 큰 격려의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영숙아! 너 진짜 멋있다.~^.^’

네 번째 편지

탈북자들과 어울리기 싫어 거짓말하고 다니는 광혁이 보거라!

얼마 전에 네 소식 듣고 깜짝 놀랐다. 같은 기수로 졸업한 수혁이가 “선생님 광혁이 알죠? 녀석 하나원 졸업하고 나더니만 소식 딱 끊었습니다.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럽디다.”

너희 부모님도 많이 허약하셨고, 네 누나도 많이 아팠고 해서 안 그래도 걱정 많이 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런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콧등이 시큰하더라. 전화를 하니 전화도 바뀌었고, 통 소식을 알 길이 없었지. 선생님 속이 얼마나 탔는지 알기나 하니.

그 후 일주일이 지났을까? 낯선 번호가 선생님 핸드폰으로 뜨더니 반가운 너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라. 어찌나 반갑던지.....

“히~, 탈북자들이랑 같이 어울려서 복잡하게 생활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짓말 했슴다! 선생님 아무일도 없슴다. 저 취직한지 2달 넘었슴다. 아직 적응하느라 바쁨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찌나 허탈한 웃음이 나던지.....“광혁아! 아무리 이 악물고 살려고 하더라도 제발 암이라는 몹쓸 소리는 자제해다오~. 선생님은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만으로 기쁠 뿐이야. 선생님 마음 알지. 그래 이해할거라 믿어.”

속으로는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육생들은 왜 함께 모이면 정착하기 더 힘들다고 말하는 걸까요?

2005년 6월 하나원 심리상담사 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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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청 2006-05-09 00:15:39
    현아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46기로 나온 성은 심이랍니다. 선생님의 글을읽으니 저의 생화과 같아서 이글을씁니다. 저도 하나원에 있을때 솔많이 썩엿습니다. 납자때문에 ....지금도 저와 상담해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저도 나중에 그사람이 아들을데리고 오고 또 본 처까지 데리고 오다나이 헤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좋은 한국분 만나서 잘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 보고싶습니다. 앞으로 자주 글을 올릴테이니 잘보아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오늘도 우리 새터민을 위하여 수고하실 현아선생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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