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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들어주는 친구가 될 때까지 - 이정옥
동지회 4 1560 2007-01-17 11:00:08
서울이라는 곳은 나에게도 참 낯선 곳이다. 고향을 떠나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나에게 상경은 참으로 낯설고 두려운 일이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땅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는 많은 고민으로 며칠 밤을 설치곤 했다. 초기에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팍팍한 생활을 해 나갔다.

그러던 시기에 내게 새터민과 함께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대학시절 우연한 계기로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탈북자 관련 복지제도, 지원단체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복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국내 정착 탈북자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몰랐지만 왜 그들을 위한 복지사업이 없는지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바람은 거기까지였다. 그 후 학업과 취업을 핑계로 탈북자에 대한 사회복지사로서의 관심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점차 잊혀졌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두려움보다 설레임이 앞섰다. 탈북자를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주변에서 다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새터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지난 5월, 업무를 시작해서 처음 만난 한 새터민은 내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실태조사를 위해 가정방문을 했던 나는 설문지를 작성하다가 미안하다고 하며 한참을 울기만 하던 그 분에게 맘껏 울 수 있는 시간을 내어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북한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 자녀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고 목숨을 걸고 온 남한에서의 생활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수많은 좌절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목숨 걸고 온 곳인데 무엇이든 못하랴 하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냉정했고 남은 것은 몇 천 만원에 달하는 빚과 건강악화 뿐이라고 한다.

6개월 뒤 다시 만났을 때에는 건강이 더 악화되어 병원에 가는 일 외에는 외출도 하지 않고 은둔하다시피 지내고 있었다. 본인은 비교적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무런 자신도 없다고 한다.

정착초기에는 새벽녘에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마음을 들뜨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계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겨울바람소리, 새벽을 달리는 차 소리, 집 앞을 지나가는 이웃의 발소리 등 활기차고 의욕에 넘쳐 보이던 그 모든 소리들이 이제는 마음을 한 없이 슬프게 한다고 한다.

어린 초등학생 새터민은 배고픔보다 사회와 친구들의 따돌림이 더 힘들다고 한다. 밥도 배부르게 먹어보았고 고기국도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어보았으니 이제는 친구들이 있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 되느냐고 하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새터민이라는 생소하고 낮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들어주고 위로하기엔 나의 삶은 너무나 편안했다. 그들에게 전하는 나의 위로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나 또한 나의 말과 행동이 진심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들의 고통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그들을 이해하려는 나의 마음도 점차 무뎌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돌아보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과 취업문제로 힘들었던 시간동안 나도 새터민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가끔은 정착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새터민들을 보며 ‘답답하다’, ‘도대체 왜 그렇게이야기를 해도 말을 안 듣지?’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애정 어린 지지를 받고 있는 나도 그랬었다. 귀는 한없이 얇아졌고 무엇이라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누구를 믿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나를 걱정해 주던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다시 희망을 갖게 된 것은 새터민과 함께 하는 사회복지업무를 시작하면서다. 이젠 내가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다. 눈길을 헤맬 때 작은 성냥개비 하나가 주는 따뜻함 같은 작지만 큰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새터민 어머니에게 들려오는 시계바늘 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겨울바람소리, 새벽을 달리는 바쁜 차 소리, 집 앞을 지나가는 이웃의 발소리가 다시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나의 마음이 새터민들을 향해 다 열려 있지 못한 건 아닌지 생각하며 오늘밤 시계바늘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봐야겠다.

2006년 12월 이정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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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 천국의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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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민 2007-03-10 01:36:24
    제가 좋은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좋은 분들과 좋은 만남을 가지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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