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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려준 고마운 친구 김00(탈출 과정) 02
Korea, Republic o 청진 1 500 2010-05-26 18:05:12
잊을 수 없는 산나물 풀죽(보위부원들에게 쫓기다 얻어먹은 풀죽 입에서 살살 녹아)
내가 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보안원들을 앞세워 규찰대원들이 무리지어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길 없는 산길을 가자니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때로는 넘어지고,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뒹글기도 하면서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온 몸이 땀과 피투성이로 말이 아니었다.그렇게 산 꼭대기로 향해 올라가고 내려왔다가 다시 앞에 솟은 산을 향해 다시 올라가고 하면서 계속 앞으로 갔다.얼마나 정신없이 갔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개 짖는 요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큰 바위가 있는 높은 절벽쪽으로 몸을 숨기고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떠나올 때 친구가 어렵게 구해준 떡과 강냉이 쌀,강냉이 국수,옷가지(겨울,여름 등 비옷),성냥,작은 도끼,마른 명태와 이면수,이불 등 내가 그렇게 아껴먹고 또 아껴먹어 그나마 많이 남은 것을 배낭채로 빼앗기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눈 앞이 캄캄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산 골짜기에서 방향을 틀어 반대방향으로 내려갔다.골짜기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개가 냄새를 맡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어디인지 방향조차 모른채 계속 걸어 내려갔다.그리고 또 산 하나를 넘어갔다.

날이 저물었다.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어 길을 찾는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나는 너무 지쳐 언덕 위 나무 숲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근처에 큰 떨기나무 무리가 있어 중간을 쑤시고 들어갔는데, 가시에 얼마나 몸이 아프던지 다시 기어서 나왔다.배낭을 빼앗긴 나는 먹을 것이 없었다.주변을 살펴 보았다.

집이 없는가 했더니 뜻밖에 누군가 있었다.산 아래쪽에서 불빛이 보였다.나는 무작정 그 불빛을 따라 걸었다.부엌에는 아주 야위어 보이는 40대쯤의 아주머니가 어린 자식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문 앞에 서성이는 나를 본 부인은 “같이 먹자요”라고 했다.요즘같이 식량이 고갈되어 가족간에도 불화가 일어나는 상황에 처음 본 길손에게 서슴없이 나누어주는 인심에 “일없다”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밥 상 앞으로 다가갔다.배가 너무 고팠다.

음식은 씹기도 전에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강냉이 국수를 조금 섞은 산나물 풀죽이었지만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왜 여기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부인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혼자서 어린 자식 3명을 데리고 어디를 갑니까”그러면서 부인은 파란만장한 자기의 삶을 이야기 했다.

남편은 00 보위부 반탐과에 있는데 결혼 전부터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다가 자기를 만났을 때는 총각 행세 하고 거짓 결혼까지 하였다. 결혼 초기에는 자기에게 조금 신경 쓰는 듯 하더니 첫 아이를 임신한 후부터 아이를 하나 둘 낳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집안 살림은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남편은 식량이나 돈(뇌물)을 받은 모든 것들을 첩들에게 주고는 그들과 매일같이 부화방탕하게 생활 했으며, 집에 들어오는 날도 1년에 1번이나 2번 정도인데 술에 잔뜩 취해 쩍하면 자기한테 손찌검을 하고 자식인 자기 아이들에게까지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러면서 바깥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인양 행세하고 다니고 있어 주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 굶주리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 자기 남편은 매일같이 술에 절었고,살만 푸딩푸딩 쪄 몸이 많이 불었다는 것이다.

부인은 꿈많은 처녀로서 소학교 선생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학교에 학생들의 토대(출신성분)를 요해하러 검열나온 그루빠에 속해있던 지금의 남편에게 온갖 달콤함과 거짓에 속아 마지못해 억지로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보위부원이라 부푼 기대를 안고 결혼을 했지만 생활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부인은 신혼초부터 남편하고 이미 별거 아닌 별거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후 부인은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피해 아이들 데리고 이 산중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데,남편의 일은 전혀 모른다고 했다.산에서 약초나 산나물을 뜯어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강냉이 쌀이나 국수를 사와 아이들을 먹인다고 했다.부인은 내가 보는 앞에서 소리내어 엉엉 울기까지 했다.그동안 남편에게 받은 서러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아이들하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니 남편은 얼마나 험상궂게 생겼는지 꼭 영화에 나오는 오빠시 같이 보였다.여자를 노리개로 실컷 즐기다가 나중에 버리고 또 다른 여자를 건드리고 하는 보위부원들의 엽색 행위는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자기 남편이 어느 약국에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약국의 처녀가 조금 고왔다고 한다.약국에서 약이 계속 없어지자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조사를 빌미로 남편은 남들이 다 퇴근한 후 조사할 것이 있다고 처녀를 따로 불렀다.그리고는 처녀에게 옷을 다 벗게 한 후 여자의 은밀한 곳에 약을 숨겨 나갔다고 생트집을 부리자 여자가 울면서 아니라고 두손을 모아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귀뺨을 때리고 주위에 있던 가위로 머리를 자르기도 하면서 협박을 하다가 끝내 처녀를 강간하였으며 그후 7개월 가까이 그 처녀를 겁탈했다고 한다.처녀는 수치심 때문에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말도 못하고 불어오는 배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하였다.그것도 조사의 일종이라고 하면서...그동안 처녀는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있다가 남편의 부인인 자기에게 말을 하고는 이 사실이 알려지면 보위부에 끌려가 죽을까 두려워 다음날 산에 가서 목을 매단채 자살 하였으며 그의 가족은 자살자의 가족이라 하여 한밤중 보위부 차에 실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 갔다.아마 수용소로 끌려 갔을 것이다.듣고 있는 나는 소름이 돋았다.

1년에 한 두번 들어올까 말까하는 남편의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자 부인은 아이들이 아버지 보고 싶다고 보채는 바람에 몇 번 보위부에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와 남편 친구들이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나도 인민학교(지금의 소학교)시절 이런 사실을 목격한 일도 있었다.어느날 오후 학교에서 주는 과제물을 수행하려고 토끼풀 뜯으러 인곡 고동산으로 가는 길에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는데 그때 나와 친구 여러명이 있었다.물론 나를 살려준 고마운 친구도 끼어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고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인가들이 모여있고 그 옆에는 여자 고사총부대,그 아래는 안전부 등이 있다.고동산은 낮 12시가 되면 울리는데 그 소리가 인곡동에 다 들린다.인가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 가는데 한 처녀가 울면서 남자를 따라 가는데 그 남자를 자세히 보니 보위부원이었다.인곡동에 사는 00보위부원인데 얼마나 악질적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인가들이 있는 중간쯤 어느 집으로 강제로 끌고 들어 가더니 그 안에서 여자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호기심에 우리들은 살금살금 발자국을 죽이며 다가갔다.한동한 남자가 여자를 구타하는 소리가 들리며 남자가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참후 더 이상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이상해서 귀를 쫑끗 세우고 창문쪽에서 다가가 안의 소리를 들었다.생전 처음 듣는 이상한 여자의 신음 소리와 함께 남자의 헉헉 하는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우리는 너무 무서워 고동산으로 올라갔다.약 2시간 동안 우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토끼풀을 뜯어 마대 자루에 넣었다.그리고 학교로 가기 위해 다시 오던 길로 내려갔다.

다시 아까 있었던 생각이 들어 그 집 앞으로 다가갔는데 그때까지 여자의 울부짖음과 비명 소리,남자의 헉헉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영 모르고 떨리기만 했다.친구들도 와들와들 떨기만 하고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막 달려 인곡 인민학교로 갔다.그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하루종일 무서웠다.

이런 식으로 조사를 빌미로 수많은 처녀와 유부녀들을 건드려 그들을 노리개로 이용한 후 버리고 다시 다른 처녀와 유부녀들을 욕받다는 것이다.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는데 부인이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이었다.부인은 또 보위부원 밑에서 일하는 보안원들도 마찬가지로 많은 처녀를 겁탈하고 있으며,당간부와 그 자식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남편이 역겨워 그 집을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언젠가 남편은 자기를 찾겠지만 제발 자식만은 마음고생,먹을 걱정,입을걱정,폭력이 없는 좋은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눈물을 계속 흘리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 보았던 일이다.초급당비서 사무실이 있는 3층은 복도 끝에 있다.문도 2중 문으로 안에서 무슨 소리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는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20명 정도 앉고도 남을 길쭉하고 넓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그 끝에 초급당비서가 앉아서 일을 본다.그 앞에는 전화가 3대가 놓여 있고 항상 서류가 놓여 있다.그리고 밤에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아침까지 항상 불을 켜고 있는데 요즘같은 어려운 시기에만 전기가 없어 깜깜했다.

어느날 오전 9시 30분 경으로 기억된다. 초급당비서와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 사무실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는 사람이 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에는 초급당 비서와 처음 본 여자가 있었다.초급당 비서가 앉아 있는 무릎팍에 여자가 앉고 둘이 껴안고 한동안 키스하고 있다가 나에게 들킨 것이다.여자는 조금 곱상하게 생겼는데,나를 보더니 벗겨진 웃 옷을 추수려 입고 옆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 방에는 초급당 비서만 쓸 수 있는 방이 있는데 수돗물이 나오는 세면기가 같이 있다.초급당 비서는 버럭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 통에 쫓기듯 나와야 했다.

주변에서 초급당 비서가 일은 안하고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여자와 놀아난다고 하더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그 후부터 초급당 비서는 나만 보면 째려보고 갈수록 나에 대한 핍박이 높아졌다.친구는 무슨 일인가 물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비단 초급당 비서만 아니었다.조직비서 등 한다하는 간부들이 공장 여자들을 성 노리개로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부인의 마음씨는 정말로 착했다.이런 착한 부인을 버리고 폭력을 휘두른 보위부원이 몹시 미웠다.듣고 있는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었다.그렇지만 쫓기는 몸이라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부인은 하도 맞아 피멍이 여기저기 들었으며(조금 낳았지만 그 흉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그동안 먹지못해 핼쑥해져서 힘들어 했지만 남편이 없는 곳에서 사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목이 막혀 더 먹을 수 없었다.귀한 아이들 밥을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앉아서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아랫 바지를 뜯었다.거기에는 친구가 나에게 준 마지막으로 남은 전 재산인 돈이 들어 있었다.얼마 되진 않지만 조금 남겨놓고 나머지 돈 모두를 제일 큰 아이의 손에 꼭 쥐어 주면서 어머니께 꼭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아이는 알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 거렸다.

그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보름달 덕에 밤이지만 환했다.나는 주변에 있는 솔가지와 솔방울을 한짐 메어다가 그 집 앞에 살그머니 놓고 돌아섰다.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다시 가서 솔가지와 솔방울을 한짐 지고는 그 집 앞에 놓고 이렇게 여러번 반복하니 제법 나무와 솔방울이 쌓였다.그리고 진심으로 그 아줌마의 행복을 빌었다.자신은 굶고 지쳐 빼빼 말랐으면서도 나에게 먹으라고 권하는 착한 아줌마의 감동에 나의 작은 선물이나마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쫓기는 몸이라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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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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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풍나무1 2010-05-26 21:49:20
    이것, 저것 여러가지 챙겨주는 참으로 귀한 친구를 두셨군요. 그 친구를 다시 찾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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