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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탄 훈장
Korea, Republic o 권정름 0 565 2011-06-28 18:36:41

  지만원  

자다가 탄 훈장

중대장 급 초급지휘관은 매월 1회씩 병사와 신상면담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우기 철이 오기 전에 벙커식 내무반 건축을 서둘러야 하는 병사들을 불러 가족사항으로부터 애로사항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묻는다는 건 짜증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규정이라 해도 나는 1년 내내 병사들을 개별적으로 부르지 않았다. 대신 병사들이 쓰는 편지를 보기로 했다. 들어오는 편지는 개봉할 수 없어도 나가는 편지는 보안 검열의 대상이 됐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보안검열을 하사관에게 맡겼다. 숫자가 담겨 졌는가만 체크하고 편지를 봉해서 보냈다. 하지만 나는 편지 읽는 일을 스스로 맡아 했다. 개인별로 신상 파일을 만들어 놓고, 편지내용과 수신인과의 관계를 메모했다. 오는 편지는 주소와 성명만 메모했다. 한 두 개의 편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많이 모이니까 신상파악이 제대로 됐다. 신상면담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사실들과 느낌들이 시시각각 들어 있었다.

트럭 운전병이 면허증 갱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옛날 면허증은 쉽게 따지는 것도 아닌데다, 3년마다 갱신해야 했다. 시한을 넘으면 면허증 자체가 취소됐다. 이를 회복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지옥 같은 획득 과정을 거치면서도 돈을 써야 했다. 그런데 그 갱신 기간이 파월 기간 중에 걸려 있으니 얼마나 걱정이 됐겠는가?

나는 경남 도지사에게 정중하게 편지를 썼다. “전투에 전념해야할 병사가 이런 일에 마음을 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고국의 모든 국민이 파월장병들을 위로합니다. 매일 같이 편지와 위문품을 보냅니다. 존경하는 도지사님, 이 병사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린 대위의 간절한 소망에 도지사가 매우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도지사의 서명날인이 들어 있는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가 귀국해서 운수교통과에 제시하면 무조건 갱신시켜 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당번병을 통해 그 병사에게 전달했다. 생색내는 것이 싫어서였다.

또 다른 편지를 읽어보니 중태에 빠진 어머니를 걱정하는 병사가 있었다. 그를 위해 대대장께 특별휴가를 부탁했다. 주월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보잉기의 좌석 하나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병사를 불렀다.  

"어머님이 몹시 편치 않으시다며? 독자라고 했지?"
" . . . . . . . . "
병사는 눈만 크게 떴다.

"차를 내 줄 테니 대대본부 인사과로 가봐. 보름간의 휴가다. 사이공까지 가면 고국에 가는 보잉 여객기를 탈 수 있어. 모래 오전 11시에 떠나는 보잉기에 자네 자리를 마련했어. 잘 갔다 와"

나는 그에게 20 달러를 봉투에 넣어 주었다.  

"포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996년 어느 날 나는 수원 소재의 경기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었다. 앞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학생이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는 자기의 이름을 댔다. 바로 이렇게 휴가를 갔던 부하였다. 그는 지금은 귀뚜라미 대리점을 많이 가진 부자가 됐단다. 그 날, 그는 내게 동원참치 스페셜과 술을 대접하며 이런 말을 했다.

"포대장님, 그 때는 참 크게 보이시더군요. 패기의 상징이셨죠". 47kg의 바싹 마른 체구가 그 때 당시의 병사들 눈에는 크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또 다른 편지를 읽었다. 태권도 5단인 박 병장이 갑자기 세상을 비관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에 쾌활하던 녀석이 왜 그럴까? . . . . 혹-시 . . . ?'

나는 위생병을 불렀다.

"어이, 김 상병. 박병장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해 볼래? 그 녀석 혹시 말못할 병 걸린 거 아닌지 말야. 내가 그러더란 말은 하지말고. 눈치 못 채게 물어봐.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곧 보고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위생병이 다시 왔다. 눈이 커다래 가지고.

"맞습니다. 그런데 포대장님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셨습니까?"

"얼마나 심하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건 자네 책임이야. 교육 좀 시켜"

나는 연대 군의관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그 녀석으로서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명약(?)을 구해 위생병에게 건네 주었다. 포대장이 구해줬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이런 조치가 취해질 때마다 소문은 그 날로 모든 병사들에 퍼졌다. 포대장은 자기들과 일일이 대화하지 않고서도 병사들의 행동과 애로를 귀신처럼 꿰뚫어보고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다. 그리고 포대장이 병사들에게 일일이 생색내지 않고 애로를 해결해 주듯이 그들 역시 포대장에게 생색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일을 찾아 했다.  

하루는 연대 기지에서 보급품을 수령해오던 병사가 헌병 초소에서 뺨을 맞고 왔다. 인사계와 중위가 쉬쉬하며 소곤거리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뭐야?"

"아, 포대장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누가 맞았다구? 어서 말해봐"

"김병장이 연대 헌병 초소에서 C-레이숀을 안 빼앗기려다가 뺨을 맞고 왔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김병장을 불러와"

"포대장님, 쫄병들은 원래 다니면서 헌병에게 맞게 돼 있습니다. 예사로운 걸 가지고 무얼 그렇게 걱정하십니까? 진정하십시요"

2년 후배인 중위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다. 그 후배 장교는 훗날 2성장군까지 올라갔다. 나는 우람하게 생긴 15명의 고참들을 트럭에 태웠다. 총을 장전시켜 가지고.

어두울 무렵, 연대 정문 헌병대에 도착했다.

"야, 이 헌병 놈들 포위해"

헌병들이 덜덜 떨었다. 뺨을 맞은 김 병장을 앞으로 내세웠다.

"어느 놈이야, 나와"
"접니다"
"너, 임마 계급이 뭐야?"
"네, 상병입니다"

"오라, 너 바로 하극상을 저질렀구나. 너 내일 영창에 넣을 꺼다"

겁이 나자 그 녀석은 다시는 안 그럴 테니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한동안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다.

"야, 사단 헌병대장에게 전화 걸어"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퇴근해 버렸다. 세 녀석 모두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비는 모습을 보는 병사들의 얼굴에 만족감이 흘렀다. 남의 자식들을 혼만 내주고 그냥 돌아서 온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져갔던 C-레이션 박스 5개를 던져 주면서 앞으로 필요하면 병사들에게 달라하지 말고 내게 직접 전화하라고 말했다. 그 후부터 녀석들은 우리 포대 차번호 "30포 2- "자만 보면 무사 통과시켰다. 이는 모든 병사들에게 신나는 무용담이 됐다.

분대장 이상과의 간부회의가 매일 2시간씩 계속됐다. 첫 번째 회의는 "어떤 내무반을 지어야 하는가"가 의제였다.

베트콩의 박격포 공세 때문에 내무반은 지붕을 지면과 일치하도록 땅에 묻으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 빨간 진흙 속에 내무반을 완전히 묻으면 더위에 숨이 막히고 냄새가 나며 우기에는 습기가 차고, 마루 밑에서 물이 솟아 밤새내 물을 퍼내야 했다.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라지만 이러한 내무반에서는 나도 살기 싫었다. 밤늦도록 나는 병사들이 남기고 간 작업장에 쪼그리고 앉아 궁리를 했다. 이틀만의 궁리 끝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을 퍼내지 않으려면 물이 마루 밑에서 자동적으로 흘러나가도록 해야 했다.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바닥을 좌우로 수평이 되도록 팠다. 나는 가로와 세로가 다 같이 한쪽 귀퉁이로 기울어지도록 땅을 팔 생각을 했다. 네 개의 코너 중에서 한 개의 코너를 향해 물이 흐르도록 경사지게 파는 것이었다. 마루 밑에서 샘물처럼 솟아난 흙물은 가장 낮은 한쪽 코너를 향해 내려갈 것이고, 거기에 드럼통을 묻으면 맹물은 위에 뜨고 흙은 가라앉게 된다. 맹물은 파이프를 연결해서 자연스럽게 배수시키고, 흙은 가끔씩 마루 뚜껑을 열어 퍼내면 될 일이었다.

쾌적한 내무반, 바람도 잘 통하고 채광도 잘 되고 시원한 내무반을 짓기 위해서는 벽의 50%만 땅에 묻기로 작정했다. 병사를 박격포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철판과 흙으로 덮인 튼튼한 지붕을 벽에서 3m 정도 길게 내뽑기로 작정했다. 지붕 위에 떨어지는 박격포는 안전할 것이다. 지붕 밖에 떨어지는 포탄의 파편이 내무반에 들어오려면 3m의 거리를 수평으로 이동해서 직각으로 낙하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동하는 파편은 없다. 지붕 하나만 넓게 빼면 내무반의 50%만 땅에 묻어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그리고 신이 났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지시하면 병사들은 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다음날 회의에 이 문제를 회부했다.

"내무반을 지금 짓는 방식대로 지으면 우기 철에 마루바닥에서 샘이 솟습니다. 그러면 밤새내 물을 퍼내야 합니다. 물을 퍼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을 지을 수는 없을까요?"

"그런 방법이 있으면 다른 부대에서 벌써 했게요?"

좀 늙어 보이는 상사가 가소롭다는 생각으로 던진 말이었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모른 체 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도 있습니다. 반드시 있으니 찾아내야 합니다. 자, 우리 분대장들 중에 누가 먼저 말해 볼까?"

내 눈이 가는 데마다 하사들은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굴을 숙였다.

"야, 맥주 한 깡씩만 가져와라. 커피 좀 끓여오고. 마시고 나면 말해야 해"

10여분 후에 제2분대장을 지명했다. 그는 말을 약간 더듬어서 고문관으로 불렸다.

그가 얼떨결에 한참 중얼거렸다.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중사가 그에게 면박을 주었다.

"니는 마, 좀 알아 묵도록 말해라. 도대체 무슨 말인겨?"

"아 아, 김중사, 여기에는 계급이 없습니다. 모두 다 편하게 말하는 대화의 장소입니다. 2분대장 말을 들으니 나는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

나는 그가 한 말 중에서 살릴 수 있는 몇 개의 단어를 찾아내 내가 생각해낸 방안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듣기에도 그럴 듯 한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 맞습니다. 포 포 포대장님, 바로 그런 말인데 제가 말하는 게 서툴렀습니다. 감사합니다. 포 포 포대장님"

나는 김 중사를 돌아봤다.

"거 봐요. 김 중사, 2분대장이 일리 있는 말을 했잖아요"

나는 그 하사에게 여러 번 발표 내용을 따라하게 했다.

"자, 이렇게 말하니까 알아듣겠나?"

"예, 알아먹겠습니다"
이 얼마나 멀고 먼 길인가? 나는 토의가 막힐 때마다 힌트를 주면서 하사들을 표 안 나게 유도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내가 생각했던 결론이 그들로부터 나왔다.

"첫째, 지붕을 넓게 내뽑을 것, 둘째, 바닥을 경사지게 팔 것, 이 두 가지만 준수하고 각 분대는 마음대로 집을 지어라. 원형으로 지어도 좋고, 빨갛게 지어도 좋다. 이의 없지?"

그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들이 시행하는 것이라 주인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토의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를 거르면 열흘을 거를 수 있다. 열흘을 거르지 않으려면 단 하루도 거르면 안 된다. 하사들은 매일 무엇을 착안해야 포대장에게 예쁨 받고 동료들에게 쭉정이가 안 될까 생각하면서 일했다. 분대원들의 도움도 받았다. 내무반에서는 분대장을 중심으로 모든 병사가 토의를 했다. 착안사항이 날로 예리하고 다양해 졌다. 어제까지는 예사로 지나치던 것들이 오늘은 문제로 부각됐다. 관찰력이 향상되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4개월을 훈련하니까 다음부터는 내가 참석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검열이나 전투력 점검이 언제 있는지 등에 대한 외부 정보를 얻어 무전기로 포대에 알렸다. 알리기만 하면 금방 시행됐다. 이처럼 시스템을 설치하고 궤도에 올리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시스템이 돌아가고 나니까 포대장은 여유를 가지고 보다 큰 것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병사들은 그들이 갖게 될 내무반 설계를 매우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만큼 진도가 빨랐다.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던 작업이 불과 3개월만에 끝났다. 병사들마다 철침대가 있었다. 내무반은 웬만한 가정집보다 더 깨끗하고 넓고 시원했다. 휴양을 가라고 해도 "여기가 최고"라며 가지 않았다.

나는 외부에 나가 교환병의 친절도를 체크했다. 교환병과 정문 보초병의 매너는 그 부대의 대외 이미지를 좌우했다. 지적만 해주면 교육은 하사들이 알아서 철저하게 시켜 주었다.

전쟁터에서는 포성이 자장가였다. 고요와 적막은 오히려 긴장과 공포를 유발했다. 그렇게 곤히 잠든 어느 날 밤, 나 민하 소위가 매복을 나가 24명의 베트콩을 사살했다. 그는 그 날로 특진을 했고, 영웅이 되어 고국을 방문했다. 그가 김포에 도착하자 국회의원들까지 공항에 나와 그를 영접했다. 바로 그 매복전에서 나의 장교들과 병사들은 나를 깨우지 않고 베트콩 퇴로에 1,800발의 포탄을 밤새내 날렸다. 이로 인해 베트콩 18명이 추가로 퇴로에서 사살됐다. 포대 장교들이 모두 훈장을 탔다. 이런 경우는 월남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곤히 자다가 훈장을 받았다. 그들이 나를 깨우지 않는 것은 내 조치가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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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정름 ip1 2011-06-28 18:51:58
    지 만원 박사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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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정을 ip1 2011-06-28 18: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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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rryin ip2 2011-06-28 20:16:28
    지만원 박사는 영구분단론자로 유명하지요. 통일은 못하는 거란 지론을 가지고 있지요. 앞으로 북이 중국의 식민지가 된다면 대남 도발을 중국이 억제해 줄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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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ip3 2011-06-28 20:59:35
    만원이 타령 할 필요가 없다. 지만원은 영구분단론자이고 꼴통 ㄱㅐ리는 친북행위자인데 어떤 놈이 더 나은 놈일까? 우선 머리는 만원이가 2배는 좋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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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rryin ip2 2011-06-29 01:21:52
    지만원은 이명박의 그간의 대북정책에 매우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의 대북정책은 실질적으로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흡수통일론자도 이명박에게 만족하니...둘 중에 누가 틀린 걸까요? 물론 흡수통일론자들이죠. 그들은 자기가 뭘 하는지조차 모르니 견적이 안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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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ip3 2011-06-29 01:41:56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지난 좌빨 정권의 그것 보다 지지도가 훨씬 높다. 만원이가 만족하건 말건 그와 상관 없이 국민께서 만족하고 있다는게 중요한 것. 어차피 국민이 원치 않는 정책을 자꾸 고집하면 지지율 폭락에 선거란 선거는 연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열우당은 집권당이면서도 공중분해됐던 것. 대가리에 슨상님밖에 없는 놈에겐 이렇듯 상식적인 일 조차 가늠이 어렵다는게 슬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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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슨상족 ip4 2011-06-29 11:11:29
    개리녀석 매일 행복한테 깨지면서도

    매죜스트인지 욕을 먹어야 삶의 의지를 느끼는가 보당

    등ㅎ신 머저리 슨상족놈

    대한민국의 악성 바이러스들

    개슨상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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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ㅎ ip5 2011-06-29 17:52:44
    깨지는거와 무시하는것도 구분못하네 ㅎㅎㅎ 대한민국 악성바이러스는 너같은 넘들이라는거....앞뒤 구분못하고 날뛰는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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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ㅎ ip6 2011-06-30 09:42:44
    아이고 이 악성바이러스 또 나왔군. 살충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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