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도움 때문에... |
---|
나는 북조선에 있을 때 많은 친구들에게 배반을 당하고,그로 인해 친구와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딱 한명 좋은 친구가 있었다. 모든 것은 그 친구 덕분이었다. 정말 고마운 친구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인 것이다. 그 친구의 덕에 나는 공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나를 잡으러 온 보위부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나의 가족들은 지금 그 친구의 덕에 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전해 들었다. 그 친구는 청진시 00구역 00동 00반에 살고 있는 나의 단짝 친구였다. 어려서 인민학교를 같이 다녔고 중학교도 졸업하고 나중에 직장도 같이 들어갔다. 그 친구는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친구인데 옆집에 사는 인민반장 할머니가 얼마나 고약한지 틈만 나면 시비걸고 모든 악담을 늘어놓고 하여간 잡아먹지 못해 난리를 쳤는데 할머니인데 얼마나 악한지 [호랑이는 뭐하고 있는지]유독 그 친구집만을 미워했다. 아버지는 그 친구가 어렸을 때 보위부에 끌려가 죽어 과부인 엄마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워낙 공부를 잘해 대학갈 수 있었지만 출신성분이 나빠 항상 반에서 왕따를 당해야 했고,공부를 못하는 깡통 말그대로 바보(머저리)가 당비서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학까지 가는 것이 북조선의 현실이다. 담임 선생은 학교에서 무슨 사고가 났다면 그 친구를 불러다 취조하고,동네에서는 인민반장 할머니가 못살게 구는데 나같으면 당장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 친구는 마음이 너그러워 그냥 눈물만 흘리며 참기만 했다. 동네에 똘만이라는 안전부(보안원) 아들이 있었는데 고발쟁이였다.친구들이 말하는 말을 엿듣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쪼르르 아버지 한테 이야기하거나 선생한테 고발을 하여 억울하게 많은 고초를 겪은것이 나의 친구였다. 안전부의 아버지는 [출신성분 나쁜 집안]이라 하여 같이 다니거나 어울려 놀지 말라고 하면서 그 친구를 길에서 보기만 하면 인상을 쓰면서 길을 피해 다녔다. 어린 내가 봐도 정말 어이없는 북조선의 풍경이 지금 현실이다. 김정일은 사람을 철저하게 분류하여 이용하는데, 그중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출신성분이 나쁘다 하는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면서 죽을때까지 출신성분의 딱지가 붙어다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일해도 찾아오는 것은 천대와 멸시,굶주림과 헐벗음이다. 하여튼...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장을 빠져나와 그 친구와 나만 아는 비밀 아지트에서 만나 돈과 식량,약간의 옷가지와 이불 등 밖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들을 받고 청진에서 더 멀리 북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친구는 나 때문에 보위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해 손가락이 부러지고 한쪽 눈이 멀어 몇 달간 집에 누워 지내야 하는 처지였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회령 장마당에 나가니 사람들이 북적 거렸다. 거기에는 보위부원과 보안원(안전원)들이 눈에 불을 켜달고 나같은 사람들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다니고 있었다.그래서 할 수 없이 어둑어둑할 즈음에 장마당 한 귀퉁이에서 강냉이 한 되를 산후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산에 올라가 동굴같은 숨을 곳에 들어가 친구가 준 냄비로 물을 부어 강냉이를 삶아 먹으니 기운이 조금 생겨 그 길로 다시 강으로 나갔다.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나이 어린 새파란 경비대 군인들이 반말과 욕설을 지껄이며 여자건 남자건 몸 수색을 하여 돈 될만한 것과 돈과 쌀이 보이면 무조건 자기들이 모두 빼앗가고 있었다. 정말 죽일놈들이었다. 안전부,보위부 놈들도 죽일놈들이지만 저 나이어린 인민군대 놈들도 너무나 악했다. 인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다니는 것을 붙잡아 트집을 잡고 모두 빼앗가 가니 영화에 나오는 오빠시(일본순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새벽 3시경 산에서 거의 기다시피 강가로 나가 살그머니 물에 들어서니 여름이지만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심장이 탁 멎을것만 같았다. 친구가 나에게 강을 건널때 사용하라고 긴 빨대를 주었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공부 잘하는 친구는 지식이 많았다. 모두 친구한테 배운 것을 지금 써먹는 것이다. 그 친구는 강에는 인민군대 새끼들뿐 아니라 보위부,보안원(안전부),심지어 인민반장들까지 나와서 감시를 하는데 얼마나 심한지 자칫 잘못하면 아오지 탄광에 끌려갈 지 모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일러 주면서 강을 건너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나는 공장에서 아침 출근 한 후 배가 아파 변소에 있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오는 바람에 목숨은 건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식량이며 이불이며 냄비 등 산에서 일체 생활하는데 아무 불편없이 살 수 있도록 군대배낭까지 얻어서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친구가 가장 아끼는 자기의 집에서 비상장비를 모두 가지고 왔는데 어렸을 때 그의 엄마가 장만한 것을 친구가 엄마를 설득하여 나에게 모두 주었던 것이다. 그 군대 배낭에 돌을 나의 몸무게의 10분의 1만큼 채워넣은 다음 물론다른 물건을 젖지 않도록 비닐 봉지에 묶고 또 묶고 하여지만,1미터 길이의 빨대(밖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긴 막대기)를 두 개 연결하여 물에 들어가 건너면 밤에는 절대 알아볼 수 없다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면서 다만 물에 들어가기전 운동을 좀 할 것을 간곡히 강조하였다. 무리하게 수영을 하거나 물 밖에 몸을 내밀다간 한순에 그 주변을 지키는 경비대놈들한테 들켜 총알받이 신세가 되거나 아니면 잡혀서 아오지에 갈 수 있으니 조심,또 조심해서 건너라고 당부해 주었다. 또한 물에 들어가면 빠른 물살에 빨대가 이리저리 흔들려 물이 들어올 수 있으니 머리에 단단히 매던지 손에 든든히 잡던지 하고 귀와 코는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작은 비닐봉지에 바람을 넣은 후 그것을 막으면 된다고 자세한 방법까지 알려 주었다. 미처 운동을 못하고 와들와들 떨리는 몸으로 물에 들어가 돌이 든 무거운 배낭을 메니 몸이 물에 가벼히 가라앉았다.그리고 빨대를 물밖으로 내밀고 천천히 걸어서 가니 건너는데 지장이 없어 보였다. 참 잊어버린 것이 있었는데 친구의 말은 중국쪽은 불빛이 강해 그 불빛만 따라가면 무사히 건너갈 수 있으니 만약 물속에서 길을 잃을 경우 그 불빛만 보고 계속 따라 걸으면 무사히 중국쪽에 갈 수 있으니 마음 놓으라는 말이 내 귀에 쟁쟁히 울려 퍼졌다. 중국쪽에 갈 경우 그냥 나가면 들키니까 포복전진으로 천천히 나간 후 산쪽으로 무조건 달려가지 말고 포복전진으로 동네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가라고 하였다. 혹시 중국에서 북조선을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나 하여 곳곳에 숨어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있으니 물 건넜다 해서 무조건 일어서서 걷지 말고 사람이 없는 것처럼 힘들지만 포복전진만 해서 산으로 오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친구는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었는지 대단했다. 나도 주변 사람들도 전혀 모르던 일을 얼마나 지식이 많았는지 우리는 그 친구를 백과사전이라고 했다.정말 백과사전이었다. 중간쯤 들어가니 점점 물이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하늘을 보니 깜깜해서 보이지 않았다.물살이 얼마나 센지 빨대(나무 막대기)가 세게 흔들려 물이 들어와 숨을 쉴 수 조차 없어 배에 힘을 주고는 힘껏 뱉어내니 물이 빠졌다. 그렇게 물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중에 아까 좀전에 보아 두었던 불빛을 따라 계속 앞으로 걸어가니 물이 점점 얕아지기 시작했다.그리고 물 밖으로 그냥 나오지 않고 천천히 포복전진하며 산속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참 전진하니 도로가 보여 주변을 살핀 후 포복전진으로 산으로 올라갔는데 갑자기 오른쪽 주변이 환해지면서 개 소리가 나는 동시에 불이 환히 켜졌는데 대낮도 그런 대낮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북조선에 태어나 그렇게 밝은 불빛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내가 건넌 오른쪽에 나와 같은 탈북자가 강을 거너다 중국에서 기다리던 군인들에게 들켜 얼마 가지 못하고 붙잡히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중국의 변방 군인들이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기다렸다. 한참동안 왁자지껄이며 움직이던 군인들이 자동차에 탈북자를 싣고 가더니 남은 수명의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작은 묘지같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것은 탈북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초소였던 것이다.밖에서 보이지 않지만 움막 안에선 모두 보이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밤에도 볼 수 있는 야간 쌍안경까지 휴대하고 있었는데 탈북자들을 무슨 적국의 원쑤인마냥 취급 하는 것을 보니 몸에 핏기가 돌면서 적개심이 불타 올랐다. [에이,떼놈들!] 그날 여러명의 사람들이 강을 건너자마자 중국 군인들에게 잡혀 가는 것을 눈에서 볼 수 있었다. 친구의 말대로 산꼭대기까지 기어서 포복전진 하거나 때로 기어서 아주 천천히 소리 내지 않고 올라갔다.온몸엔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지만 친구의 말대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니 정말이지 친구의 말대로 하면 중국을 떠나 무사히 남조선으로 가는 것이 쉬울 것 같았다. 힘이 났다. 온몸에 땀으로 젖고 입에선 단내가 났지만 친구가 일러준 대로 한다면 중국 경찰에 잡히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산꼭대기에 잠시 숨을 몰아쉬고 천천히 일어나 중국 내륙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그날 몇 개의 산을 넘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많이 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겨우 3개였다. 허기가 져 배낭에서 식량을 꺼내니 밀가루는 이미 물에 풀어져 없어졌고,강냉이 쌀만 있었다.그것을 한줌 입에 털어넣고는 주변에 마른 나무 가지를 찾아 불을 피어 냄비에 끓였는데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완전히 설익은 밥이 되었지만 밥 냄새에 배가 진동하여 소금을 찍어 먹으니 힘이 났다. 친구야 고맙다. 네가 일러준 대로 했더니 나는 무사히 살 수 있었다. 훗날 남조선에 온 후 중국을 통해 나의 가족에 대해 알아보니 친구가 잘 보살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참 안타까운 사실은 친구의 어머니가 내가 도망칠 때 도와주었다고 하여 보위부 감방에 갇혔을 때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어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북조선은 친구 하나 믿기 어려운 세상이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친구가 보위부에 고발하여 하루아침에 반동으로 낙인찍혀 가족들이 아오지 탄광으로 추방되어야 하는데 나는 운좋게도 친구를 잘만나 남조선까지 오게 되었다. 남조선에 오니 북한에 있는 친구만큼 좋은 친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야, 나는 너의 은혜를 죽을때까지 잊을 수가 없다. 부디 몸조심하고 살아만 있어다오. 시간이 나면 중국에서 겪었던 일들과 남조선(한국)으로 넘어오기까지 과정을 이야기 할 것이다. 나의 글 재주는 친구의 손톱만큼도 따라가지 못한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속히 나오셔서 같이 웃을날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