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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도움 때문에 02
Korea, Republic o 새로남 0 358 2011-09-14 16:42:45
 

친구의 비밀(출신성분)


친구는 항상 손에 책을 들고 살았는데,

학교 갈 때 책을 보며 등교 하기도 했고 집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집에서 잠 자기전 머리맡에 촛불을 켜 책을 보고야 잠을 자야 하는

말 그대로 책 벌레였다.


나는 지지리도 공부하기 싫어하고 한창 때 놀기만 하고 잠만 실컷 잤지만(주변 청소년들도 아마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특히 김일성,김정일 혁명활동 공부나 시험은 너무 지겨워 그 시간되면 눈꺼풀이 감겼다.


친구는 학교에서 못하는 것이 없었다.

수학,도덕,미술,체육,음악 등 내가 봐도 천재 이상의 능력을 지녔던 것 같았다.


오히려 당간부 애새끼들(도당 책임비서 아들,시안전부 부장 아들,보위부 반탐과장 아들 등)은 하나같이 공부를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두 깡통들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어에서 [쓰빠시보 아쩨쯔 마르샬 000]을 [뻰찌 아저씨 말랐다]고 해 수업 시간에 배꼽이 빠져나올 정도로 전체 학급 학생들과 선생이 웃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수학 시간도 곱하기와 덜기를 너무 못해 아주 간단한 문제를 풀지도 못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놀기에만 바빴지 숙제나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임선생은 다른 학생들이 숙제를 해오지 않을 때는 나머지 복습(공부 끝나고 남아서 공부)을 시켜 주었지만 유독 당간부 자식들만 집으로 빨리 보내면서 우리와 차별을 두었다.

또한 당간부 자식들은 학교에서나 밖에서 사고는 있는대로 치고 다니면서 한번도 보안원(안전부)에서 잡혀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이 학생들을 특별 대우하면서 인민학교(소학교) 때는 소년단 반장을 시켜주고(반장 때문에 우리반이 항상 골찌를 하던가 욕을 먹어야 했다-일을 전혀 할줄 모르는 머저리(바보)를 앉혀 놓아 불만이 너무 많았다.) 고등중학교 때는 당간부 새끼들에게는 사로청 위원장까지 시켜 주기도 했다.


반면에 나의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학생들 사이에 인기도 아주 많지만(키고 크고 잘 생기지 않았지만 훤칠하다.) 출신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사고가 나면 항상 불리워 가서 억울하게 야단만 맞고 또 어느날에는 공부 시간에 보안원(안전원),보위부의 손에 의해 학생들과 선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끌려 나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친구의 두뇌는 북한의 선생도,보위부도 따라갈 수 없었다.

끌려갈때마다 얼마나 맞았는지 눈에 퍼렇게 멍이 들고 온몸엔 채찍,몽둥이 자국이 선명했지만(실제로 등을 보았는데 목에서부터 엉덩이 심지어 다리에도 길게 빨간 선들이 나 있었고 피가 나와 한동안 집안에 드러누워 앓기도 한적도 많았다.)선생은 오히려 반동분자의 새끼들이지만 살아돌아온 것만 해도 당의 배려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린 우리로서는 두려움과 떨림속에 선생의 말 하마디,안전원,보위부의 말만 들어도 벌벌 떨기만 했다.


친구가 어렸을 때(유치원 시절)

어느날 새벽에 번호를 가린 트럭에 수십명의 보위부원들이 완전무장을 한채 우르르 내리더니 잠을 자고 있는 방으로 구둣발을 신고 들어와 아버지를 끌고 갔다고 한다.새벽에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 났지만 보위부원들이 발과 총탁(개머리판)으로 엄마의 온몸과 가슴을 차는 바람에 지금도 그 후유증이 있어 숨이 턱 멎을때도 있다고 한다.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과부가 된 엄마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못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엄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버지도 생전에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며 항상 남을 도우며 살아야지 악하게 살면 안된다고 강조하셨다고 기억한다.


보위부에 끌려간 아버지는 지금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생사조차 알 수 없었고 그후 친구는 할머니 집에 살다가 엄마와 함께 아는 친척의 도움으로 청진으로 이주하여 인민학교부터 지금까지 한 동네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북한은 이와같이 출신성분을 따져 사람을 구별하는 계급사회이다.

죄를 아버지가 지으면 대대로 자식은 죄인의 자식인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당간부나 되는 간부의 집안이 아니고 로동자의 집안이지만 출신성분에는 삼촌이 걸렸다 해서 학창시절 때나 탈출하기전까지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를 받았다.


어느날 학교앞 고동산(낮 12시에 고동이 울리며 비상시에 고동이 울려 사람들에게 알리는 큰 것이 설치 됨)에 토끼풀을 뜯으러 올라갔을 때 내가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자 친구가 달려와 자기 옷을 찢으며 지혈을 해주어 피가 멎었고 친구의 부축으로 간신히 집으로 온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감동한 우리 부모가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신 적이 있었다.


그때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해서 나는 대충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모처럼 하얀 입쌀밥과 닭고기 김치 등을 푸짐하게 상을 차려 먹고 가라고 하였지만 친구는 나의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정중하게 거절하며 돌아가는 바람에 나와 동생들이 그날은 배부르게 포식하였다.


부모는 이 북조선에서 친구 하나 구하기 힘든데 너는 친구 하나 잘 뒀다고 하면서 앞으로 싸우지 말고 잘 사귀라고 하면서 참으로 아깝다고 자주 말씀 하셨다.앞으로 사위 삼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때는 나와 동생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주변에 똘만이(안전원 아들),째포(재일교포 아들)등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 친구만큼 진정한 친구는 없었다.


친구는 북조선에 잘못 태어나 그렇게 죽도록 고생하는 것을 여기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고 참으로 북한 정권에 붙어 아부 아첨하는 당간부들을 특히 안전원들과 보위부원들을 이 땅에서 한놈도 남김없이 그 씨(사돈의 팔촌이상)까지 모조리 쓸어 버려야 인민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중국에서의 도피 생활


중국에서의 도망 생활도 친구가 말해준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갈 수 있었다.


첫  째 : 북조선 사람,남조선 사람,중국 사람,특히 종교를 믿는 선교사나 목사(목사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 어느 누구도 믿지 말고 오직 자신만 믿을 것

둘  째 : 북조선에서 도망친 사람들 같이 옷을 입거나 행동,말도 조심할 것

셋  째 :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두 번 다시 그 장소에 가거나 사람을 만나지 말것.

넷  째 : 조선 국경에서 더 멀리 부탄이나 네팔 방향으로만 향할것.(절대로 몽골,쏘련,베트남,태국 방향으로 가지 말 것)

다섯째 : 남조선으로 가던 미국으로 가던 중국에 있는 제3국 외국 대사관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라.조심할 것은 중국에 있는 남조선 대사관에는 절대 가지 말라.도움 절대로 바라지도 말고 그냥 지나치라.잘못하면 도망친 것이 모두 거품이 되어 자칫 북조선으로 끌려올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실수하여 북조선에 다시 끌려올 경우 절대로 불리한 말은 하지 말라.잘못하면 보위부에서 없는 죄를 뒤집어 씌어 총살하거나 아오지 탄광(그때는 수용소란 말을 몰라 제일 무서운 곳이 아오지 탄광인줄 알았다.)에 가서 평생 죽을때까지 살지 모르지 절대로 남조선 만났거나 선교사,남조선 안기부 사람 만났다고 말하지 말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해 할수없이 국경을 넘었으며,넘을때 어떻게 넘어갔다고 자세히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정말 놀랍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많은 지식을 주변 나의 친구들이나 심지어 나의 부모까지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자세하게 알 수 있었을까?


친구는 머리가 좋아 무엇이든 들은 지식은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주로 시장에 장사하러 다니다 보니 그런 지식을 얻어 들었을 가능성이 많다.그리고 내색하나 하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이 비밀을 알려 주었다.


중국에 오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사방에 먹을 것이 넘쳐나고 이미 의식주(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식량,옷 등)는 해결이 된 것 같았다.그렇지만 사람 차별하는 것은 심할 정도로 너무 돈에 눈에 멀었다.


특히 나와 같이 도망친 북조선 사람들(어른,아이,여자)이 중국 군인들의 총칼과 구둣발에 사정없이 매 맞으며 대낮에 중국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울며불며 끌려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했다.


낮에는 다리 밑이나 야산에 가 가만히 숨어 있거나 잠을 자기도 하면서 아주 천천히 북경방향으로 밤에만 이동했다.그리고 쓰레기장에 가서 입을 수 있는 옷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다 먹으면서 살수 있었다.


쓰레기장은 북조선의 당간부들보다 더 좋은 것들이 넘쳐났다.

옷도 한번도 입지 않은 깨끗한 옷들로 넘쳐났고,쌀도 북조선에서 볼 수 없던 하얀 쌀들이 넘쳐나 있었다.그리고 그밖에 내가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는 생필품들이 많이 있었다.비록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었지만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친구의 말대로 옷을 얻으면 냇물에 깨끗이 휑궈 햇빛에 말려 입으니 북조선을 탈출한 거지같이 보이지 않았고 여행(관광)하는 사람같이 보였다.


중국 군인들의 만행

중국 북경에 가는 도중에 나는 박00이라는 함흥 출신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연길에 있을때 조선족의 고발로 밤에 잠을 자다가 중국 변방부대에 끌려가 온갖 구타와 고문을 받았는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중국인들이 북조선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인종 차별을 한다는 것이었다.


감방에는 중국인 죄수,러시아 죄수,몽골 죄수 등 많은 죄수들이 있었는데,

중국인 죄수들에게는 중국 음식을 주고,몽골인 죄수들에게도 몽골 음식,러시아 죄수들에게는 러시아 음식(빵-흘레브)을 주는데 유독 조선인 도망자들에게는 개도 안먹을 쓰레기를 준다는 것이었다.개가 다 먹은 음식을 그냥 던져주고는 먹던지 말던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남조선 죄수들도 있는데 그들에게도 밥을 주면서 같은 민족인 북조선 사람만은 차별이 심하다는 것이었다.개가 먹은 찌꺼기를 던져 주고는 그것을 밥이라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 잘 들으세요!

북조선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조국을 등져야 했고,이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 천대와 멸시를 받아야 하는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유엔에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중국 공산당은 인간도 아닙니다.북조선과 결탁하여 수많은 북조선 인민들을 보위부에 넘겨 죽이는 인권 유린을 행하고 있으며 그것을 외면하는 대사관 누구인지 잘 알죠?


그리고 조사할 때도 마치 구원자인양 친절하게 대해 주면서 결국엔 북조선 보위부로 넘어가게 된다는 기막힌 사실에 나도 놀랐다.


여자들은 더욱 심했다고 한다.

끌려온 북조선 여자들을 밤마다 불러내 그짓을 해 억지로 임신한 여자들이 보위부에서 엄청 고초를 겪는다고 했다.가기 싫은 여자들을 억지로 끌고가거나 때로는 얼려서 데려가 밤마다 그짓을 하는데 여자들이 포기하고 죽던지 말던지 한다는 것이었다.


또 여자들이 아이건 어른이건 할것없이 인신매매에 끌려가 낮에는 노예 노동을 하고 밤에는 몸을 바쳐야 하는데 어느 시골에 끌려간 40대의 아주머니는 어제는 첫째 아들에게 강간 당하고,오늘은 그 아버지인 할아버지에게,내일은 둘째 아들,이렇게 그 집의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며 죽지못해 살다가 도망쳐 나오자 그 집 아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혀 다시 북조선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겼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듣는 나로서는 정말 대낮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후 나는 박00과 뜻하지 않게 헤어지게 되었다.북조선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여럿이 같이 다니면 오히려 붙잡힐 염려가 더 크기 때문에 흩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도망자들 속에는 간첩(보위부 첩자)도 있으니 더욱 말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고맙습니다,동지- 승리하는 날 우리 다시 만납시다”하고 굳게 악수를 나누고는 각자 제 갈길을 가야 했다.


오늘도 많은 북조선 사람들이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회령 보위부에 끌려 갑니다.

김정숙 동상 앞에서 돌팔매질과 침,그리고 온갖 욕설을 들어야 하며 포승줄에 묶인채 회령시내 한바퀴 돌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발길질과 몽둥이질,돌팔매질 심지어 소학교 어린아이들에게도 맞아야 합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보위부원은 입가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봐라! 조국을 배반하고 도망한 자들!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봐라.”


조국을 배반하고 싶어 배반했습니까?


배고파서 온 가족이 굶어 죽으니 할수 없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만강을 건넌것이 무엇이 죄입니까?


그렇다고 북조선에서 장사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지 화폐 개혁으로 많은 돈이 휴지조각으로 남았는데 이제는 남은 것이 악이 오를대로 올랐습니다.


이번에 김정일의 아들 정운이를 보니 배가 엄청 나왔더군요.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매일같이 인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김정일은 자기 아들만은 엄청 잘 먹였더군요.


청진시 도 보위부장,시 보위부장 개새끼 잘 들어라!

내 너희들 이름 똑똑히 기억한다.


아무리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들을 파견한다 해도 굶주린 민심을 달랠 수는 절대 없다.

아니 이제는 곪아 터질대로 터져 전쟁이 나면 제일먼저 너희가 먼저 죽을 것이다.

너희 종자들 씨까지 말려 버릴 것이다.


북조선 인민들에게 쌀과 옷 그리고 자유와 해방을!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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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딩임 ip1 2011-09-18 15:19:13
    탈북자들은 그렇게 참혹한 대우를 받는군요..
    슬프네요..근대 근본적으로 그러한 상황이 발생된 원인 뭘까요..??
    친구 띄우는 말대신 그 사람 까는 말좀 더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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